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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식모들 -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박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평점 :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신화를 비트는 발상은 참으로 신선하다.
단군신화에서는 오로지 환웅과 곰이 주인공일뿐, 우리 역사 최초의 실패자로 기록되어있는 호랑이의 이후 삶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갖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호랑이에 주목하여 그 호랑이는 어찌 되었을까라는 도발적인 물음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환웅이라는 남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엄청난 고통을 겪은 후에 -인간여자로 다시 태어난 호랑이는 이후 호랑아낙들도 이어져 간다.
이 부분에서 어쩌면 이 소설이 역사를 비틀고, 역사속에 소외되었던 여성의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줄지 않을까 기대해보았다. -물론 이런 기대가 역사소설을 쓰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그의 발상의 전환만큼이나 확실한 입담과 비틀기를 기대했다고나 할까?
내가 기대한건 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같은 류였다.
하지만 호랑아낙들의 활약은 그 시작이 창대했음에도 별로 두드러져보이지 않는다.
그저 연산군때 궁녀로 있었던 호랑아낙들이 어찌 어찌 했더라라는 식의 바람결에 스쳐가는 소문같은 속삭임만 전해주고 만다.
이왕 역사와 신화를 비틀었다면 좀 더 화끈한 상상력을 발휘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에 책을 읽어가는 호흡이 한 순간 흐트러져 버린다.
하지만 어차피 이 책의 주인공이 호랑아낙이 아니고 그들의 후예인 수상한 식모들이니 좀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 모든 인간을 휩쓴 자본의 물결은 호랑아낙들의 모습도 변신케 한다.
바로 수상한 식모들이 바로 그들이다.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치가 매겨지고 자리매김되어지는 시대.
이들은 이제 부르조아 가정에 침투하여 허위에 찬 가족을 해체하고자 한다.
뭐 때로는 성이 수단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한수 위의 전략을 고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해체하고자하는 것들은 여전히 아리송하다.
수상한 식모들은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들의 정체성이 흐릿함으로써 수상해진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휘두르는 식칼은 이미 무딜대로 무뎌져 버렸다고나 할까?
도대체가 그들이 휘두르는 칼은 무엇을 향해서 휘두르는건지 정체가 애매하다.
방향도 칼의 예리함도 무엇하나 제대로 잡히는 게 없다.
책을 부분 부분 떼서 본다면 어디나 재기발랄하고 넘치는 상상력으로 충만해있다.
따라서 보는 동안은 이제 한 칼이 나오겠지 하면서 호기심 만발로 책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상상력이라는게 그에 뒷받침되는 튼튼한 이야기의 구조를 갖추지 못한다면 수상한 식모들처럼 빈 허공을 휘두르고 마는게 아닐까? 무도 못자르는....
결국 다 읽고 나니 뭘 읽었는지 생각이 안나고 정리가 안되는 지경에 도달해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제목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길 잃은 수상한 식모들> 별로 재미없는 제목이네.... ^^
뱀꼬리 - 별점 딱 3개 반 줬으면 좋겟는데 없다. 그렇다고 이 튀는 상상력에 3개는 너무 한 것 같고 울면서 4개를 준다. 모자라게 주는 것 보다야 좀 남는게 그나마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