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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문화 기행
정석범 지음 / 루비박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미술사가와 유럽문화 기행이라... 굉장히 멋진 조합이 아닐까? 게다가 표지의 저녁햇빛을 받은 베니스 풍경은 책을 열기도 전에 맘을 설레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18세기 영국의 부유한 귀족자제들이 견문을 넓히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떠났던 '그랜드 투어'를 얘기하면서 자신의 여행 역시 부유한 귀족자제는 아니지만 도시를 여행하며 책속의 지식을 뛰어넘은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는 계기였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지 않을까 얘기하고 있다.
솔직히 저자로서는 그런 여행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독자로서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나의 도시를 그가 관심을 가진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는 건 특색있는 서술방식이었다. 피렌체를 방문하며 피렌체의 허다한 대가들을 두고 르네상스를 저지하고 싶었던 수도사 사보나롤라의 얘기로 도시의 분위기를 끌어내고, 파리를 얘기하면서 한 소설의 주인공이 다녔던 흔적들을 같이 찾아다니며서 소외의 도시 파리를 얘기하는등 의도는 굉장히 참신하고 흥미진진할 것 같지만.... 결과는? 독자들이 그 분위기에 같이 휩쓸리며 그 향기를 맡기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지 않나 싶다. 대중들에게 쉽게 읽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개인적인 일상이나 에피소드들이 오히려 책을 읽으며 도시의 분위기에 빠져드는데 방해가 되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듣는 사람의 지겨움을 깨주기 위해 한 농담이 너무 썰렁해 하나도 안 웃길때 드는 그런 기분....그리고 도시의 분위기를 뭔가 하나의 주제로 모으겠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이런 의도는 대부분의 경우 -그가 엄청 글을 잘쓰지 않는 이상 - 피상적인 또는 기계적인 조합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한 도시가 가지고 있을 풍부함을 가려버리는 경우 말이다. 저자는 아주 친절하게도 독자에게 유럽의 도시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제시하고자 했지만 독자인 나는 오히려 생명없는 아주 단순화 되어버린 도시를 느꼈으니 이건 누구의 탓일까?
그래도 사진들은 꽤 좋다. 특히 물의 도시 베니스의 사진들은 그대로 갖다가 두고 두고 보고싶은 사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