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서 보기에 우리의(대한민국의) '성공'을 가능케 한 것은 제대로된 노동 생산성의 향상이나 기초과학 성과의 장기적 축적, 내수시장의 원만한 성장이라기 보다는, 노동자로 하여금 말도 안되는 대우를 감수하며 죽도록 일하게 만드는 '생존공포'의 분위기다. 나는 <태극기 휘날리며>같은 화려한 영화를 재미있게 봐도 과연 그 전투 장면을 어렵게 연출해낸 수많은 엑스트라들이 일당으로 얼마를 받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떨쳐낼 수가 없다. 상품이 아무리 좋아도 그 상품을 만든 이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않았다면 '노예'노동의 결실을 즐기고 있다는 가책을 어떻게 면할 수 있겠는가?-15쪽
혁명이란 모든 객관적인 조건들이 두루 성숙되고 특별한 내외적 계기가 주어질때만 일어난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가능하려면 수많은 준비작업들이 필요하고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의식'의 준비다. 지배자들의 담론이 얼마나 허황한 거짓인지, 지배와복종의 권력관계가 ㅇ러마나 야만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지, 지배자들이 우리에게 주입해온 '애국주의'나 '민족주의'가 전 세계적인 해방 투쟁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이모든 것들이 대중적으로 이해되고 수많은 이들에게 '남'의 아픔이 바로 '나'의 아픔으로 느껴진다면 역사를 바꿀 만한 변혁이 가능해질 것이다. -22-23쪽
복장과 외모의 규칙을 체화하게 되면 일상적인 권위주의의 또 다른 담론과 행동방식들을 더 쉽게 받아들이게끔 된다. ...... 외모 결정권이 박탈된 개인의 내면에서 모든 외부적인 권력 압력에 저항하는 힘이 한층 약화되니 남의 내면을 다스리려는 권력자들이 남의 외모부터 다스린 것이다.
----->중학교만 들어가면 시작되는 복장단속. 이젠 지겨운데도 없어지지 않는 이유!!-35쪽
청소년의 성이 폭력 서클에서의 왜곡된 애정 행각이나 성폭력, 폭력적이며 남성 우월적인 음란물 열람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차라리 서로에 대한 아낌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따뜻한 키스나 평등하고 자유로는 결합으로 표출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우리가 자연의 지혜를 따를 줄 알았다면 10대 후반 학생의 키스에 처벌을 가하는 대신 그들의 멋진 성장에 상을 주었을 것이다.
----> 나는 우리 아이가 10대가 되어 첫키스를 했을때 상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남자친구와 독립하겠다고 했을때 지원해 줄 수 있을까? 내 속의 보수성이 여전히 살아있군.... 아직 멀었다.-45쪽
나는 민족주의자도 아니며 한국어가 다른 언어들에 비해 특별한 우수성을 보유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머나먼 미래에 세계 전체가 하나의 사회주의적 사회를 이뤄 만국의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는 것도 즐겁게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단계에서 다수 근로자들의 언어가 지식 사회에서 시민권을 잃어가는 것과 패권 제국의 언어가 사회 귀족 특권의 상징으로 부상하는 것은 사회의 대다수 피지배 구성원에게 피해를 줄 수 밖에 없다. 미안하지만 이는 결코 선진화가 아니며, 사회 양극화의 언어적 표현이자 동아시아 시대에 역류하는 대미 예속의 강화일 뿐이다.-63쪽
5공시절부터 빈민 개병제로 전락되고 만 국민개병제라는 엄청난 부담, 하릴없이 썩어야 할 잃어버린 3년에 대한 쓰라린 기억, 그리고 나처럼 썩는 대신 미국에서 공부나 즐겁게 한 돈과 백이 있는 놈에 대한 분노 등은 어디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가시적으로 병역을 면하게 된데다 우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남이 됨으로써 우리의 국가주의적, 집단주의적 감정을 건드린 그(유승준)는, 국민개병제의 억압으로 인한 원한을 풀 수 있는 최적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유승준을 왕따시켜봐야 국민 개병제로 인한 심각한 문제들이 해결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유승준에게 분노를 퍼붓는 것보다는, 군축과 모병제로 점차적인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인 해결법일 것이다.
--->이 땅의 예비역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124쪽
중고등학교에서 서구가 아닌 아시아 위주의 세계사를 배우고, 대학교에서 이슬람 문화 강좌를 교양으로 듣고, 방송과 신문에서 파키스탄의 소설과 방글라데시의 시에 대한 보도를 자주 접하면서 어릴 때부터 아시아의 구성원으로서 자라날 수 있는 나라가 되지 않는다면, 서구처럼 인종, 문화적 배타성 문제로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많다. -216쪽
외세 침략과 같은 외부적 모순들은 박물관의 전시에 반영되지만 '우리' 역사의 내부적 모순들은 주로 은폐된다. 예컨대 '민족의 우수성'을 만방에 알리는 불상의 조성이 사찰 노비의 강제된 노동과 국가라는 폭력 조직의 보시로 이루어졌다면 그건 부처의 가르침으로 보아 심각한 모순이다. 그러나 박물관은 비판의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아름다운 우리 역사'는 감상용이지 반성용이 될 수 없다.-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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