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세계사 3 - 로코코의 여왕에서 신의 분노 흑사병까지, 화려하고 치명적인 유럽 역사 이야기 풍경이 있는 역사 3
이주은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뒷표지에 보면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가르친다면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 J.R. 키플링(정글북 작가)"

 

이 책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출판사의 선전문구이다.

아 근데 나는 이 한 줄의 글이 어찌나 거슬리는지....

영국인 키플링이 어떤 맥락에서 저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 말을 한 키플링이 역사를 제대로 교육받은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키플링은 아주 견고한 제국주의자의 논리로 무장하고 그 논리를 문학으로 전파했었다.

 

         백인의 의무    -키플링-

백인의 의무를 다하라

너희가 가진 최정예를 파견하라

용사들은 쉽게 못 돌아올 것이니

새 백성들은 교화할 일이 너무도 많은 탓이라

무력도 불사해야 하리라

참으로 미개한 원주민들,

막 포획되어 아직 야수와 같은

사납고도 유치한 이 무리들에게는

 

 

식민지 경험을 한 우리는 키플링이 말하는 바 미개한 원주민들에 속했다.

제국주의자들의 최정예 군대에 의해 무력을 통해서라도 교화를 받아야 하는....

출판사가 어떤 의도로 저 문구를 광고 문구로 선택했는지 그 의도는 알겠으나,

이 의도가 읽는 독자들에게 과잉 해석되어 마치 지금 학교의 역사교육이나 어린 시절의 역사교육이 재미가 없어서 내가 역사를 못했다는, 그래서 역사교육이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통한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로 귀결되어버리는 걸 자주 목격했다.

물론 이것은 출판사의 본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의도와 달라지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야기라는 형식 또는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스토리텔링은 결국 역사교육의 방법론일 뿐이다. 효과적인만큼 한계도 분명한..... 

방법론을 본질적인 내용으로 치환해버리는 오류를 조장한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건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일까?

 

거창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별게 아니다.

이 책은 역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이야기'이다.

그냥 재밌는 이야기... 더더구나 저자의 입담과 글솜씨가 좋아서 상당히 재밌게 읽히는 이야기.

어릴 적 할머니같은 어른들에게서 귀를 쫑긋대며 듣던, 또는 몇권 안돼서 아끼고 아끼며 읽던 동화책속의 이야기들.

이야기들은 재밌게 읽으면 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즐겁게 읽어 달랬다.

쓸데없이 과도한 의미무여를 할게 아니라는거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건 꽤나 즐거웠다.

'스캔들'이란 말 자체의 사전적 의미가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지 않은가?

원래 무난하고 도덕적인건 재미가 없다.

얘기 중에서도 뒷담화가 재미로는 최고다.

세계는 넓고도 오래됐으니 웃기고, 슬프고, 부도덕하고, 충격적인 인물들, 사건들은 넘쳐난다.

뒷담화를 할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는거다.

그들의 사생활을 엿보고 본격적으로 뒷담화를 해보는건 재미의 영역만큼은 확실히 보장한다. 물론 최소한의 말솜씨는 있어야겠지만....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이야기꾼을 잘못 만나면 얼마나 썰렁해지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인 이주은씨는 상당히 숙련되고 세련된 이야기꾼이다.

걸쭉한 입담은 아니지만 조근조근 맛깔나게 말을 버무릴줄 아는 이야기꾼이다.

 

또한 책속 각 장의 부제들을 보면

'합스부르크 가문, 악마를 낳다' '여왕의 연인, 그리고 슬픈 부인', '오스만 제국의 올드보이', '왕의 자리를 탐낸 꽃미남'......

이런 걸 선정적이라 하던가?

이런 제목들 치고 실제 내용이 부실하지 않은 경우가 드문데 의외로 이 책은 내용도 상당히 충실한 편이다.(덕분에 벌써 3권까지 나왔고 나 역시 1-3권을 다 읽었다)

이런 글들의 특성상 전체적인 내용에서 논쟁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빼거나 ~카더라 식으로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면서도 필요한 자료나 증거들은 성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자료들을 잘 수집하고 버무려놓았다.

또한 흑사병의 전파과정이나 이유들, 마녀재판의 이야기, 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렸다는 조지 카버의 일생 같은 이야기는 선정성과 상관없이 생각해볼 거리들을 제공하여 약간의 지적 만족감을 느끼게도 한다.

 

이정도면 좋은 이야기책이라고 할만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괜히 역사책이라고 우기지 않는다면 그냥 역사를 소재로 잘 만든 이야기책으로 읽는다면 충분히 즐거우리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2-09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14-12-09 23:28   좋아요 0 | URL
우와 돌바람님 정말 오랫만이죠. 뭐 제가 게으르고 무심해서인지라 죄송하기만 해요. ㅠ.ㅠ
잘 지내시죠? 오랫만에 들어와서 여러분들이 그래도 잊지 않고 이렇게 인사해주시면 너무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그래요. ㅎㅎ
집 주소는 그대로예요. 늘 게으른 저인지라 이사같은 어려운 일은 못한답니다. 반드시가 아니면요. ^^
자주 들를게요.

바람돌이 2014-12-12 09:45   좋아요 0 | URL
돌바람님 정말 감사하게 책 받았어요. 어젯밤 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책이 와있더라구요.
예전에 등단하셨다는 얘기는 잠시 들었지만 이후 전태일 문학상까지 받으신지는 정말 몰랐어요. 의미도 큰 상이잖아요. 제 이름을 넣은 사인본 책은 진짜 감동이에요. 이런 훌륭한 작가님과 아는 사이라니, 제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

귀한책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서재를 막아놓으신건가요? 님의 서재로 들어가지지가 않네요.
또 하나 따로 써주신 타이프체 편지는 진짜 타이프인가요? 아님 새로운 글씨체?
오랫만에 타이프 글씨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나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