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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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떤 책들을 읽어보면 '아! 이 사람이 도(道)에 이르렀구나' 이런 느낌이 들때가 있다.

뭔가 딱 집어서 얘기하기는 힘든데 무언가 삶의 한 경지를 이뤘다는 느낌이랄까?

예전에 신영복선생님의 <강의>를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느꼈었는데, 이번 쿤데라의 책을 읽으면서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학문의 궁극은 통한다고 한다.

학문뿐만이 아니라 어떤 분야든지, 심지어 육체노동이 중심인 장인에게서도 오랜 세월을 녹여낸 삶의 경지를 느낄 때가 있다.

쿤데라의 이번 책은 딱 그 느낌이다.

 

쿤데라가 살아왔을 시대를 생각하면 거대담론의 한가운데를 헤쳐왔을 것이다.

그 시대를 헤쳐 살아오면서 80세가 넘은 쿤데가 도달한 곳의 결국 무의미한 것들 또는 무의미하다고 치부되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가치이다.

거대담론의 시대는 스탈린의 자고새이야기에서 통렬히 비판된다.

자고새의 농다이 뻔뻔스런 거짓말로 이해되어지는 농담 후의 시대...

거대담론에 파묻히면 디테일한 삶의 순간들은 숨어버린다는 것을 이렇게 명확하게 보여주다니...

 

소설은 마치 중구난방처럼 이야기들을 펼쳐놓는다.

네 주인공의 일과를 무심하게 따라가고 중간중간에 스탈린의 이야기가 뜬금없이 끼어들고....

그런데 읽다보면 아 이것이 모두 삶의 소중한 순간들이구나

무엇도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삶의 한 순간 순간들.....

 

밀란 쿤데라는 이제 무엇을 더 얘기할 수 있을까?

내게 이 책은 마치 쿤데라의 마지막 메시지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거장이 도달한 최고의 경지를 내놓고 한 시대의 종언을 이야기 하는...

농담 후의 시대에서 무의미의 의미로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축제의 시간이 오롯이 책속에 담겨있다.

어쩌면 쿤데라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지 않을까?

자신의 시대와 문학세계를 이렇게 아름다운 책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으니....

더불어 이런 거장의 인사를 받을 수 있게된 나 역시 행복한 사람이다.

 

이제 이 나이든 거장의 다음 책을 기다리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 그의 책을 다시 한 권씩 한권씩  찬찬히 보고싶다.

너무 어릴 때 읽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읽었고, 이제는 기억도 안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부터 시작하려 책을 주문했다.

다행히 밀란 쿤데라 전집이 나와있으니 두고 두고 아껴서 거장을 되짚을 행복한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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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1-14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우리 딸만 읽고 나는 안 읽었어요.ㅜ
못 읽은 책이 어디 그뿐이겠습니까마는 박웅현님의 말처럼 `도끼`를 만나야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