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플라시보님의 '담배를 피우는 여자는 죽어 마땅한가?"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글을 읽고 우울해졌다. 가끔 우리 사회가 내 생각보다 참 빨리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다가도 이런 얘기를 들으면 참 안변하는구나 싶어 우울하다. 가끔 아이들에게 내 어릴 때 얘기를 해주면 거의 코미디 분위기 되면서 같이 웃을 때가 있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상황을 옛날엔 이런 황당한 상황도 있었어 하면서 코미디 같이 웃어넘길 수 있을까?

이 글을 읽으면서 얼마전 3월초에 있었던 우리학교 반장선거에서의 해프닝이 생각났다. 많은 학교들이 남녀공학이 되면서 학교성적의 상위권은 거의 여학생들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 이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그런건지 우리 학교는 작년에 전교 학생회 뿐만 아니라 학급의 반장 부반장에서 여학생들의 수가 압도적이었다. 3명의 반장 부반장을 모두 여학생이 차지하는 반도 몇반 되었으니....(옛날 내가 학교다닐 때 여학교임에도 선생님들로부터 남녀차별적인 발언을 무지 들어야 했던 시절과는 참 많이 달라졌다. 물론 그런 발언들이 모두 다 없어진 건 아니지만... )

문제는 학생회에 여학생의 진출이 너무 두드러지면서 이 역시 남녀평등에 어긋난다는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 - 따라서 이번선거에서는 전교학생회는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학급에서는 최소한의 남녀비율은 맞추라는 말때문에 일어났다. 최소한 학급 반장 부반장 3명중 (부반장이 2명이다) 최소한 한명은 다른 성(性 )으로 비율을 맞추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 황당하여 웃었다. 아들가진 학부모의 입장에 있는 선생님은 아들 기살리기 작전이라고 농담을 했었다. 황당하긴 하지만 옛날 반장은 무조건 남학생이어야 하고 여학생은 부반장 아니면 얌전히 있어야 한다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를 어찌 해야하나....

몇몇 선생님들의 격렬한 반대(맘에 드는건 격렬하게 반대한 선생님에 남선생님들이 많았다는 거다) -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말도안되는 몇가지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여학생 3명이 표를 더 많이 받았음에도 남자라는 이유로 한 2표받은 애가 부반장이 되면 어쩔거냐 등등

대부분의 선생님들의 남학생 동정론 - 불쌍하다 아이가 좀 봐주자...

거기에 강고한 교장샘의 밀어붙이기

결국 학급선거는 남녀비율을 맞추는 걸로 결정이 나고 치뤄졌다. 각 반에서 다행히도 남학생들이 한명도 후보로 안나오는 사태는 없었고, 그나마 나온 아이들도 남학생들의 몰표를 받으면서 어느정도의 표를 확보하여 무사히 반장 또는 부반장이 되었다. 물론 여학생에 비하여 전체적인 숫적 열세는 면할 수없었지만...

아마도 내년에 이 규정은 다시 문제가 될거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같은 여자로서 요즘의 여학생들의 모습에 한편으로 같이 뿌듯해 하면서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도 계속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익히 알다시피 어디 그런가? 여자이기 때문에 안고가는 핸디캡이 어디 한두가지인가? 여자가 담배피운다고 길거리에서 맞아야 하는게 아직도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한편으로 우리의 딸들이 헤쳐나가야 할 세상이 안쓰러우면서도 그래도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는 우리들보다는 더 씩씩하게 세상을 바꿔가지 않을까 마음이 든든하다. 또한 이 아이들이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도록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게 무얼까라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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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4-1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그렇게 말도 안되는 규칙을, 헉!!!
그래도 바람돌이님 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이 "사회적 약자"인 것 같아 한편으론 통쾌하네요.ㅋㅋ 정 안되니깐 강제적인 T/O를 적용해서라도 보호해 주겠다?우하하하.
씩씩하고 똑똑한 여학생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 그렇게 튼튼할 수 있기를...
정말....진정...간절히 바랍니다.

바람돌이 2005-04-12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2005-04-13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5-04-1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예요 수선님께서 글을 써준다니 이런 영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