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김성보, 기광서, 이신철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의 풍경들 몇가지

1. 초등학교 운동장 웅변대회 - 잔뜩 폼잡고 조례대에 올라간 꼬마 연사가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허공으로 휘두르며 '공산당을 때려잡자'고 외친다. 말들은 다 엄청 원색적이고 초등학교생에게서 나올 수 없는 과격함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아무도 과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심히 박수치는 나!(와 멋있다. 나도 하고싶다. 이런생각을 하며 동경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나)

2. 초등학교 교과서 - 무슨과목인지는 기억 안난다. 아마도 도덕책이었으리라. 포스터가 하나 그려져 있다. 시커먼 악마로 묘사된 북한 공산당. 그 아래에서 검은 실루엣으로 표현된 쇠고랑 차고 쟁기들고 삽들고 일터로 끌려가는 북한 사람들. 다들 삐적 말랐다. 그리고 설명 글들(같은 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북한 사람들은 자유도 없이 매일 강제노동에 시달리고(천리마 운동이랬다) 엄마들은 아이를 탁아소에 빼앗기고 일을 해야 된다는 둥...

3. 악몽 - 밤에 악몽을 꾸게 되면 꼭 북한 공산당이 쳐들어오는 꿈이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대학 때 만난 내 친구는 닭을 무지 무서워했는데 악몽 중에 가장 무서웠던 것이 북한공산당이 굉장히 살찐 닭을 뒤뚱뒤뚱 앞세우면서 쳐들어왔던 꿈이래나 뭐래나

나는 가끔 현대사 부분 수업할 때 이 이야기들을 써먹는다. 그러면 거의 교실은 코미디 분위기다. 아이들은 내가 뻥치는줄 안다. 전혀 이해를 못한다.  참 그랬다. 코미디같은 일들을 하고 그런 속에 살면서도 그게 코미디인줄 몰랐다.

이런 나에게 대학시절 북한도 사람이 사는 땅이라는 사실을 알게된건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곳을 한번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기에....

이후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까지 참 많이도 변해왔다. 요즘이야 더 이상 북한을 옛날의 내가 아니 우리가 봤던 식으로 보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감정적인 반감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잠재적인 적으로 북한을 꼽는 사람들도 많이 남아있고, 아니면 북한을 못살아 나를 괴롭히는 불쌍한 친척 보듯이 보는 사람들은 더 많고...그래도 여러 부문에서 교류도 많이 이루어지고 여행기들도 나오고 세상이 참 많이 변하긴 했다. 하지만 감정적이고 동정적인 북한론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이성적으로 북한을 볼 수 있게 하는 시도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있다 하더라도 연구서나 논문들이어서 학생들이나 비전공자가 볼 수 있는 글들은 거의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아니면 있는데 내가 몰랐거나)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몇가지 결점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높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 1945년 이후 북한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쉽게 잘 정리해놓았다.

북한 정권의 성립과정과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의 권력독점과정, 폐허위의 복구과정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인력동원을 위한 수많은 운동들(대표적인게 천리마운동) 주체사상이 나오게 된 배경과 확립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최근의 경제 위기의 원인들 등이 잘 정리되어 있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북한의 여러가지 모습들 -대표적인게 아마도 북한의 권력승계과정이나 북한 사람들의 수령숭배같은 것일 것이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받아들이는건 개인의 몫이지만 적어도 그걸 무조건 우리의 관점에 비추어 비웃을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역사속에서 이해해 볼 수 있는 단초도 제공하고 있다. 감정적인 북한에 대한 동정론이나 통일론 아니면 반대의 적대론 모두 이제는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이성적으로 통일문제에 접근해가는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기에 그 출판 자체가 큰 의의를 가진다고 본다.

몇가지  단점들 - 서술 자체가 굉장히 교과서적이다. 요즘은 학교 교과서도 칼라판이다. 책이 편집이나 서술형태나 모두 꼭 교과서 같다. 고등학교 북한사 교과서라고 하면 될까? 책은 쉽기는 하지만 별로 재미있지는 않다. 나와 비슷한 어린시절의 경험을 공유한 세대라면 궁금증 하나만으로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세대에게는 어쩔지 잘 모르겠다. 두번째 단점은 단점이라기 보다는 한계인데 그 파란만장했던 50년의 역사를 책 한권에 다 담으려다 보니 지나치게 개괄적이다. 모든 궁금증을 다 풀수는 당연히 없고 좀 더 설명이 필요한 것 같은데 싶은 대목들이 많다. 앞으로 한 세권쯤으로 늘려서 재출판할 의사는 없는지....(책이 잘 안팔릴려나...) 세번 째, 참 너무도 조심스럽게 서술했다. 북한사 자체가 워낙 민감한 부분이다 보니 저자들이 조심 조심 또 조심한 면이 많이 느껴진다. 명확한 관점의 제시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에 대한 해석 같은건 이 책에서 기대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하기야 국보법의 망령에서 누군들 자유로우랴?)

단점들을 썼지만 이 책에서 단점들이 그리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시도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기에... 지금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고등학생들이나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요즘의 풍경하나 - 아직도 학교는 국민의례 참 열심히 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도...이건 예나 지금이나 참 안 변했다. 가끔 국민의례가 끝난 후 아이들에게 묻는다. "야 너 진짜 조국을 위해 목숨바쳐 충성할거냐?" 아이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안할건데요, 싫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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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03-15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이신가 봅니다.
"안할건데요, 싫은데요"가 무지 맘에 드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