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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이 책의 주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연루됨의 윤리"(10쪽)다.
영화로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는 일본 제국주의가 현지인과 포로들을 동원에 미얀마와 인도를 연결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당연히 전범인 일본 제국주의 군인들은 현지인과 포로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일본인에게는 조선인이었고, 현지인과 포로들에게는 일본인이었다.
조선인들은 일본군 이등병과 포로들의 사이에 있는 신분으로 직접 포로들의 작업을 감시하고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시하는 것은 일본이었고, 직접 채찍을 들고 포로들을 구타하는 것은 조선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조선인들은 전범일까? 아닐까?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많은 한국인들은 팔이 안으로 굽어 여기 조선인들은 피해자였다고, 그들을 전범으로 규정하는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말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
그러나 예를 바꿔보자.
전후 독일 사회는 전쟁범죄의 주체를 나치 독일의 나치당과 친위대 등의 범죄 집단이 저지른 것으로 한정하려 했다.
국민의 의무로 징집되었던 정규군은 결코 범죄 집단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후 밝혀진 자료들에 따르면 정규군 역시 수많은 학살의 주범이었다.
정규군의 협력 없이 소수의 친위대 병력만으로 그토록 엄청난 학살을 저지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266쪽)
전쟁 중 독일인 1700만명이 정규군에 징집됐다.
독일인 대다수가 정규군이거나 그 가족 혹은 친지였다.
"나는 몰랐다"고 말할 수 있는 독일인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독일인들은 전범일까? 아닐까? 국가권력에 의해서 징집되어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가한 피해자였을까? 아니면 가해자였을까?
남의 일은 판단하기가 쉽다. 그들 역시 전범이며 가해자다.
인간이란 한 단면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 복잡다단한 인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역사는 더더욱 그러하다.
윤치호는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뼛속까지 받아들였던 인물이다.
그의 관점에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것은 인류의 발전 법칙이었다.
물지 못하면 짖지도 말라고 독립운동을 폄하했던 이다.
그런 그가 나혜석과 박인덕의 이혼을 "이혼은 개인의 선택"이라며 변호했다.
이게 뭐 대단하냐 싶겠지만 당대 조선의 지배층 남성으로서 여성의 이혼의 권리를 옹호한다는 것은 거의 혁명적인 발상이다.
민족주의자든 사회주의자든 상관없이 여전히 남존여비, 여성은 남성의 부속물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판을 치던 시대다.
큰일 하는 남성을 위해 여성이 내조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 시대 사람들의 내면 깊숙히 골수에 박혀 있던 시대다.
그런 시대에 윤치호는 이혼을 개인의 선택으로 인정했다. 한 마디로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윤치호의 친일행적이 가려지는가?
승자의 편에 서는 것이 인류전체의 발전의 길이라고 했던 강변이 옳았는가?
그의 눈에는 식민지가 됨으로써 더 고통받았던 그의 주변 수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이런 입장을 통해 그가 향유할 수 있었던 개인의 평안과 부와 권력이 정당한 것이었는가?
자신의 생각이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연루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자의 삶과 선택은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
한나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이라고 했다.
그 사유는 단지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연루됨의 윤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윤리를 제대로 파악할 때 우리는 콰이강의 다리 건설에 참가했던 조선인 노동자들, 나치 독일에 복무했던 수많은 정규군과 평범한 독일인들, 그리고 윤치호 같은 인물들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사유의 끝이라면 인간의 미래는 얼마나 처참할 것인가 말이다.
저 수많은 개인들을 단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윤리적으로 우리들 대부분은 저 시대 저 상황에 처한다면 아마도 다르지 않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라는 말로 변명하거나, 또는 몰랐다라고 프리모 레비가 말한 '고의로 획득한 무지'를 빙자해서 말이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
책을 읽다가 재밌는 대목을 발견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걸그룹의 이름은?
이렇게 물으면 고개를 갸웃하다가 1950년대 활동한 김시스터즈 할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무려 1930년대에 만들어지 5명의 여가수로 이루어진 걸그룹이 있었다.(이 그룹은 일종의 프로젝트성 그룹으로 만주와 일본, 중국 순회공연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인원은 유동적이었다고 한다. 그룹원 중 유명 인물은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이다.)
이 그룹의 이름이 재밌어서 책 읽다가 빵 터졌었다.
뭘까요?
정답은 저고리 시스터즈
뭔가 좀 힙하지 않나? ㅎㅎ
이 책에 대해 리뷰를 쓰다보니 이 책이 한없이 심각하기만 한 책인거 같아 혹시 다른 분들이 어렵게 여겨 안 읽을까봐 걱정이 된다.
그런데 책은 생각보다 쉽고 재밌다.
이렇게 저고리 시스터즈도 나오고....
나치 독일의 최고의 선전예술인이었던 레니 리펜슈탈에 대한 평가도 인상적이고 재미있었다.
또한 알려지지 않았던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아버지의 실제 주인공 트라프소령과 의화단의 난 이야기의 결부와 그가 그 사실을 평생 침묵으로 묻어두었던 이유를 찾아가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러면서 또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연관됨의 윤리를 떠올리는 것이다.
일관된 주제의식 하에 많은 이야기들이 유려하게 펼쳐진다.
이 가을 손에 들어볼 만한 역사책으로 추천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