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듣거나 읽은 이야기는 사람의 내면에 쌓여흐르다가 모여서 살아 움직이는 힘이 되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내면에서 자신의 이야기로 바뀌어 밖으로 풀어내지 못하면 갇힌 이야기의 힘이 그 사람에게 해롭고 부정적인 에너지가 된다는 비밀이 이 이야기에 담겨 있다. 여성들은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억눌렸다. 그렇게 살가죽 아래 쌓인 말과 글의 힘은 응축되어 더욱 강력해졌고, "살이 글이다"라는 말도 터져 나왔다. - P8
이상화도 대상화다. 살과 피로 된 감정과 생각이 있는 전인적인 존재가 단 몇 가지 요소로 줄어들어 환원되는 것이다. 환원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가 ‘줄이다‘라는 뜻을 가진 reduce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대상화는 결국 여성들에게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인 셈이다. - P27
성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여신의 제단에라도 오르는일인 것처럼 착각해서 낭만화의 허구에 빠지면, 백설공주 꼴이 난다. 착하고 어질게 순종하면서 자신의 욕망도모르고 욕망의 주체가 되어보지도 못한 채 사는 여성은백설공주의 어머니 왕비처럼 쓸모없다. ‘착하면 호구‘라는 세간의 표현은 여기에도 딱 들어맞는다. 사실 의미 없는 존재가 되는 것만큼 인간에게 치명적인 대우는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키우지 못하고 남자들의 시선을 가치의 기준점을 삼는 백설공주의 계모왕비같은 삶은 비참하다. - P37
《마법에 걸린 공주님》에 숨은 진실은 여자의 내면에있는 수많은 얼굴 중 가부장 사회가 보여도 된다고 허락하는 얼굴은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얼굴은 베일로가려서 세상에 내보이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내가 자아를 포기할 수도 있을 만큼 사랑한 남자는 나를 사랑한다면서 수많은 얼굴 중에 예쁘고 연약한 나만 고르고 나머지내 얼굴은 모두 버린다. - P85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자르고 돌아가는 길에우연히 안드로메다를 보고 구해주지만, 사실 두 이야기는 ‘우연히‘ 엮인 게 아니다. 뱀 머리카락을 지닌 하위 신격을 죽이는 일과 용을 죽여서 연약한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일은 결국 아테나가 제우스의 딸로 복속, 편입되는과정을 효과적으로 그려 고대 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 P93
이렇듯 가부장 신이 신 중의 왕이 되거나 아버지 유일신을 모시는 종교가 통치하는 사회가 되면 뱀부터 잡아죽인다. 뱀은 대지에 붙어서 대지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을뿐더러, 뱀과 함께 등장하는 여신들은 대지 모신의 신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아테나, 아르테미스, 키벨레를 비롯해 헤라마저 그리스·로마 신화 초기에 뱀과 함께등장했다. 이후 여신들이 가부장 신화로 편입되면서 뱀은 사라진다. - P97
이렇듯 여자를 복속시켜 지배하려는 작업은 현실계에서는 마녀사냥으로, 상상계에서는 용을 죽이고 공주 구하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 P105
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를 통해 개연성이 주어지면 현실에서 이룰 수 있다. 이것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기도 하다. - P148
여자가남자의 구원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구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성이 구원이라는 말은 참으로 옳다. 곰에 불과한, 아직 동물의 세계에 사는 어린 소년이 털 아래 숨은 황금빛을 찾으려면, 내면에 있는 여성성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 여성성이 내면에서 변화의 동인을 찾아내고, 그 뒤틀린 자기중심성을 구원해야 비로소 파묻혔던 금은보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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