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음악하겠다고 2년 전 통기타 하나 들고 집을 나갔다. 가족 카톡방에서도 나갔다. 요새는 그렇게 가출에 두 종류가 있는데아들은 완벽하게 가출했던 것이다.  - P10

정희는 이제 비로소 딸의 결혼이 실감났다. 딸이 내 곁을 떠난다기보다 엘리사라는 아이가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정희에게 딸의 결혼은 명백히 인생의후반전을 여는오프닝 이벤트였다. 그 2막의 커튼을 열어젖힌 사람이자신이 아니고 딸이라는 것. 내가 더 이상 내 태양계의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 P67

‘정치적 올바름‘ 강박을 가진 진보 엘리트의 자기검열을 통과한 말들이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딸이 다시 남자를 사귀고 보통의 결혼을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엘사하고 깨지자 하민을 위로하면서도 내심 안도하고 있다. - P95

하지만 서른은 판타지와 결별하는 나이, 이제 내 인생은 시시해지는 일만 남은 걸까. 책임에 가위눌리는 일만남은 걸까. 집과 회사 사이의 셔틀인생, 연봉과 승진에 목을 매는 따분한 군상 속으로 스며들게 되는 걸까. 또는 워킹맘이라는 고단한 트랙에 올라타서 무면허 엄마 노릇을 하게 되는 걸까. 발신인불명의 선물상자 앞에서 두근거리는 일은 더 이상 없는 걸까. 올해 일어난 일들은 길고긴 판타지영화의 엔딩 세리머니였는지도 모른다. - P97

방금 전까지 고막을 때려대던 소음의 공중전은 잠시멈춘 듯했다. 모든 배경이 지워지고 지상에 엘리사와 둘만 남았다. 판타지의 공간은 순간이면서 영원이다. 엘리사와 하민, 둘은방금앨리스의 토끼 구멍으로 빠져나온게 분명했다. 페스티벌은 역시 페스티벌이다. - P107

어릴 적 하민에게 엄마 아빠는 거인들이었는데 어느새노약자가 돼버린 느낌이다. 곧 부서질 듯한 고치의 느낌.
고치를 벗고 나오는 일이 서른 나이에도 너무 이른 것인가. 고치를 벗고 나오는 몸짓이 너무 거칠었나. - P131

나이 육십이면 인생의 칠부 능선이고 시야가 제법 트이는데 어느 코스냐에 따라 세상풍경이 사뭇 달리 보인다. 네 사람에게는 네 개의 앵글이 있다. 서로 딴 데를 보고 있다면 말을 섞기 힘들 것이다. 다만 고개를 돌릴 줄안다면 친구로 남을 수 있는 것 아닐까. - P214

정희가 하민에게 "우리 동민이 일베야?" 하고 물었던적 있다. "특별히 일베는 아닌데 요새 남자애들이 보통그래." 하민이 대답이 그랬다.
"당신 강의는 훌륭하지만 나는 그게 안 먹힌다고 봐.
이게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러니까 뭐냐 미감이 다른 거야. 미감. 북한도 그렇지만 중국도 그 체제나 스타일이나 비호감이라는 거지." - P316

 아이들 이름을 지을 때 이 아이들이 이 땅에서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으로 살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가진 것 없고 생각만 또렷했던 서른으로부터 10년이지나고 또 10년이 지나고 또 10년이 지나면서 소박한 꿈에 덧칠이 되고 욕심이 없어지고 삶이 무거워졌다. - P320

"나는 사람들 상식을 믿어. 부지런히 하루하루 살면서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세상이 이상한 데로가지는 않을 거야."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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