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용산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 그녀는 이어서그렇게 썼다. 페이퍼백 영어 소설들을 읽으며 그녀는 용산으로부터도 자신의 언어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었다. ‘영어는 나와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쓰던 말이 아니었다. 내게상처를 줬던 말이 아니었다. ‘ - P19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일 뿐이고, 더 나쁘게 말해서 - P32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 P32
그녀가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에 대해 쓴 글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퇴근해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고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언제나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 P43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 P52
그날 차 안에서 다희에게 한 이야기들은 오래도록 밖으로 나가기를 바랐던 것처럼 그녀 안에서 아우성치며 그녀를 밀어붙였다. 이미 정리한 시간이기에 그녀는 정제된 언어로 이야기했지만, 몸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땀이 났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머리가 아팠고, 때로는 그때처럼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 P101
한편으로는 두려웠다는 말도.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증오하기도 하니까. 애초에 그녀는 깊은 이야기를 할수록 서로가까워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는 말도. - P120
다희와 주고받던 이야기들 속에서만 제 모습을 드러내던 마음이있었으니까. 아무리 누추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마주볼 때면 더는 누추한 채로만 남지 않았으니까. 그때, 둘의 이야기들은서로를 비췄다. 다희에게도 그 시간이 조금이나마 빛이 되어주었기를 그녀는 잠잠히 바랐다. - P123
핸드폰을 집에다 두고 나온 채 이십 분을 늦은 친구에게, 내가좀 있다 연락할게 기다려봐, 이야기하고 다시 전화하는 것을 잊은 애인에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깊이 상처받았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이 꼭 버려지는 것 같아서였다. 눈물이 났지만 그마음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그저 참았다. - P206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간다는 고양감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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