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자본주의가 가부장제와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는 마르크스주의만큼 명쾌하게 알려주는게 없을 듯하다. 자본주의하에서 여성의 노동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가사노동을 그대로 온존시키는 한편으로 산업예비군에 배치함으로써, 아동노동과 함께 값싼 노동력을 유지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또한 여성의 일터를 남성과는 다른 서비스업종-가정에서 하는 돌봄노동과 비슷한-에 한정시킴으로써 가부장제의 힘을 빌어 저임금을 유지시킨다. 실라 로보섬은 이런 자본주의의 모순성을 여성들이 깨달아야 해방을 성취할 수 있다는데, 이 모순이 뭘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알아듣기가 좀 힘들다.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면
가사노동 산물의 상품화(이게 가사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건가?), 섹슈얼리티의 상품화 때문에 여성의 존재의 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노동자 여성들은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고 그래서 가장 전복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라고 하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내가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는 여기서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데 사실 노동시장에서조차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남성노동자와의 연대가 쉽지 않은 것은 그동안의 역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남성노동자들은 연대하기 보다는 여성노동자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받아들여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21세기 오늘날 페미니즘이 이토록 공공의 적처럼 여겨지는데도 그 기저의식에는 저런 남성의 노동우위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마르크스주의든 뭐든 페미니즘이 극복해야 할 세상에는 바로 이 차별적인 노동현장이 우선이지싶다.
또한 미셸 바렛이 주장하듯이 차별적인 구조를 당연시하는 교육의 변화, 개혁주의를 받아들이는 자세 - "개혁주의 차원의 투쟁을 모조리 거부하는 것은 아나키즘의 로맨스로 빠지게 되는 것-, 그리고 육아를 재분담하고 여성이 남성의 임금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도리스 레싱의 <황금 노트북> - 나는 <금색 공책>이라고 번역된 창비판을 가지고 있는-에 대해 "세계 문학에서 첫 템폰'이라고 명명했다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책을 빨리 읽고싶다는 열망에 휩싸인다. 템폰이 여성에게 가져온 변화는 오로지 여성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걸 여성이 아닌 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도리스 레싱이 보여주는 '메타 서사에 대한 불신'역시 흥미롭다. 하나의 거대 담론에 담나내기에 세상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실제로 메타 담론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의 역사가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황금 노트북>이 이런 담론들의 경합과 실재를 보여준다면 기꺼이 그것을 보고 싶다. 그리고 계급,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의 이슈가 골치 아프게 뒤섞여 있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이후 교차성 페미니즘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