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은 환원주의와 반대의 길을 간다. 환원주의가 멈춤이라. 면 융합은 지속적인 이동, 재해석이다. 재해석은 창의력의 발판이고, 창의력이 필요한 이유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융합 능력, 즉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기존의 언어를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른 앎과 만나 혼란을 느끼면서 기존 개념에 의문을 품고, 차이와 경계의 기준을 재설정해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사안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 P179
요약하면 융합은 원래 존재했고(혼종성, hybridity), 대화가 필요하며(learning), 기존의 지식을 넘어서야 한다(trans~). 물론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 P191
대립하는 논리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융합은 충돌을 지향한다. 합치지말고 충돌 양상을 질문해야 한다. - P200
그들은 시간을 중심으로 삼아 세계를 해석했다. ‘원시 사회 - 봉건제 -자본주의‘처럼 문명의 발전에 따라 역사를 서열화하는 것, 역사를 과거의 사건으로 생각하는 것, ‘세계 최초‘가세계 최고라는 인식, ‘~의 아버지‘라는 말처럼, 시원(始原)을 중요시하는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는 한 사회의 역사밖에 서술하지 못한다. 세계 200여개 나라가 동시에 같은 경험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동시대여도 지역마다 삶이 다른데, 하나의 시간을 기준으로삼아 사유하면 ‘문명인, 야만인‘ 같은 구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시간 중심 사고는 한 사회(서구)가 기준이 되어 강자 중심의 보편성을 만든다. 나머지 사회는 서구를 따라잡아야 할 역사의 대기실로 간주된다. 타자(the others)를 만들어내려면 단일한 시간개념이 필수다. - P212
객관성은 중립의 대명사다. 그래서 진리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너의 객관‘이 ‘내겐 폭력‘인 경우가 많다. 객관은 스스로 선재한다고 여겨지지만, 상황적 지식은 지식이 만들어진 조건을 파고든다. 어떤 조건에서 우리의 인식이 만들어졌는가. 그과정을 알아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모든 지식은 특정 맥락에서만 의미가 있다. 만사에 적용되는 지식은 없다. 시트콤처럼 어떤 테두리, 상황, 패러다임 안에서만 ‘웃기는 것이다. 다른상황에서 그것을 재연하면 ‘썰렁한‘ 이유가 그것이다. - P222
이성애의 정상성은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간주했을 때, ‘남성‘은 여성/노인/가난한 사람/장애인 등 지배의 규범에서 배제된 ‘비(非) 남성‘을 상정했을 때만 가능하다. ‘서양‘은고정된 ‘동양‘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백인우월주의는 유색인종이라는 임의적 설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처럼 대개 언어는위계의 만남이다. 이분법은 A와 B가 아니라 기준으로 삼은 A와 그 외 것들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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