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저나 김정은이 악수하며 말했다.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나 역시 생각했다. 정말 오랜 세월이 걸렸구나. 힘겹게 갔으니, 간김에 실내 스카이다이빙 한번 하면 어떨까 하고(나만 당할 순 없다!). 기왕이면 커플처럼 트럼프랑 똑같은비행복을 입고, 손도 잡고, 허공에 붕 떠서 웃으면서, 찰칵! 그럼, 정말 역사적일텐데. 싱가포르 전력의 우수성을 입증할 좋은 계기이기도 하고…. - P47

결혼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우주가 만나서, 20평 내외의 아파트에 몸과 영혼과 라이프스타일을 구겨 넣는 것이다.  - P48

알고 보니 결혼은 두 개의 우주가 만나서 하나의 우주를 시원하게 인수 합병하는 것이었다. 나는 수제 버거를 먹으며, 오픈카를 운전하며, 수영한 뒤에 몸을 닦으며 인수 합병 프러포즈(즉, 설교를 계속 들었고, 결국 내 우주는 아내의 우주로 들어가 평화롭게 사라지는 길을 택했다.  - P49

인생이 비참한 건,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에게서 설렘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 P56

왜 러시아에서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그리고 체호프 같은 대문호가 많이 탄생했을까. 왜 겨울이 우울한 독일에서 니체, 쇼펜하우어, 괴테 같은 문필가가 탄생했을까. 이런 말은 좀미안하지만, 겨울에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겨울에 백곰과 춤출 생각이 아니라면, 러시아의 한겨울을 나는 사람은 택해야 한다. 보드카를 마시며 인생을 한탄하거나, 글을 쓸 것을 서너 시면 해가 퇴근하는 독일에서 겨울을 나는 사람이라면 택해야 한다. 추운 겨울에도 맥주를 마시며 더 추워지거나, 글을 쓸 것을.
그렇기에 쇼펜하우어의 글들이 하나같이 염세적이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하나같이 죽기 직전의 사람처럼 우울하지만,
그래도 이 사실 하나만은 변함없다.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인간이라면, 혹한의 추위에 뇌를 얻게 하느니 차라리 글을 쓴다는 것을. - P65

그런데 돌이켜 보면 언제나 가장 흥분한 시간은 무언가를 막 이뤘던 순간이 아니었다. 성취한 후에 몰려온 길고 허망한 시간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보잘것없는 바람을 이루겠다며, 기대하고 준비하며 기 - P86

분 좋게 땀 흘린 순간들이었다. 차마 이루지 못한 것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조금씩 자신이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
그즈음의 나날들이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했다.  - P87

삶이 익숙한 것으로만 가득 차 있으면 우리는 그 단조로움의 - P100

무게를 견딜 수 없고, 삶이 낯선 것들로만 가득 차 있으면 우리는 그 생경함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 그렇다면 여행과 삶이 별반 다를게 없기도 하다. 둘 다 적당한 변화와 적당한 안정을추구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보면, 삶은 여행이고, 여행 또한 삶이다. 그래서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보내려고 한다. - P101

외국어 학습은 하는 만큼 솔직하게 결과가 나오는 아주 정직한 세계다. 반면, 소설은 아무리 매달리고, 아무리 다가가도, 쉽게 열매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불확실하고, 불투명하고, 깜깜한 세계를 걷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자에게, 외국어 학습은적어도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땀의 보증서 같은 것이다. - P129

소설은 뒷전이고, 생계비와 육아비를 위해 지방을 오가며행사와 강연을 하고 있었다. 집에 오면 육아와 살림을 하고, 밖에 나가면 노동을 했다. 게다가, 내 명의로 된 부친의 은행 대출도 있었다. 부친의 사업 실패 탓에, 내 수입의 8할은 내가 쓴 적도 없는 대출을 갚는 데 쓰였다. 이렇게 3년을 살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사람이 무너진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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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8-24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의 현재 마음 상태
1.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기차를 타고
2.홀로 책을 펼쳐 놓고 맥주를 마시고 싶다.

실제로 추운 나라 사람들이 독서층이 굉장히 두텁고 독서 인구가 엄청 납니다
전 세계 독서 일등 시민이 사는 곳은
아이슬란드 라고 ^^

바람돌이 2022-08-26 12:22   좋아요 0 | URL
기차 타고 맥주마시면서 책 읽고 싶다. ㅎㅎ 정답입니다. 음 사실은 기차보다는 비행기를 더 타고싶긴 합니다. ^^
추운 나라는 아무래도 밤이 길고 또 추우니까 나가서 놀고싶지 않을것도 같고, 특히나 북유럽은 밤에 놀곳도 없고 진짜 할일이 없을 듯요. 그래서 북유럽이 독서강국이기도 하지만 포르노 강국이라고도 하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