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중심적 애통함은 다양한 담론장을 가로질러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 감정이 중요한 까닭은 임신한 여성을 이미 자궁안에서부터 자율적인 ‘아이‘의 어머니로 만들고, 임신중지를 여성에게 도덕적으로 문제적이며 해로운 것으로 지칭하기 때문이다. 태아중심적 애통함은 반임신중지의 수사가 숨어들어 그 규범적 효과를 증폭시킨 강력한 수단이다. 이때 정치는 임신중지에 무엇이 뒤따르며 여성이 어떻게 임신중지를 경험하는지를 말해 주는 진실로 둔갑한다. - P131

임신중지는 의료 절차에 추가 단서가 붙는 매우 드문 경우다. 여성이 나중에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도록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는 전제는 여성을 취약하고, 약하고, 착취당할수 있는 잠재적 피해자의 위치에 놓는다. 4 이런 조치는 "여성의판단을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며, 85 여성이 임신중지를 적극적으로 바란다기보다 수동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 86임신 중지를 고려하는 여성은 상담을 받고 국가에서 주는 정보를받아야 한다. 반면 임신을 지속할 여성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런식의 전제는 모성이 임신에서 문제없이 도출될 유일한 결과라는규범적 관점을 반영하며, 이를 재차 말한다. - P147

임신중지의 애통함이 첫째로 불가피하고, 둘째로 태어나지않은 아이의 삶을 끝장낸 여성이 치르는 결과라는 전제는, 임신중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폭을 좁혀 임신 중지 반대론자들의정치와 목표를 지지해 준다. 임신중지는 원치 않은 임신을 끝낸행위라기보다는 자율적 존재를 살해한 행위로 나타난다. 그리고임신중지 여성은 적어도 살면서 한 번은 모성에 ‘아니요‘라고 말한 여성이라기보다는 불가피하게 그리고 언제까지나 어머니인존재로 비친다. 반임신중지 운동 안에서 보자면 태아중심적 애통함의 함의는 더 투명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했듯이, 임신중지의 애통함과 트라우마를 알리는 데 전념하는 조직은 자신들의 반임신중지 의제를 숨기곤 한다. 게다가 태아중심적 애통함은 임신중지 경험의 서사를 더 일반적으로 지배하게 됐고, 아마가장 놀랍게는 프로초이스 활동에 얼마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 P152

임신중지의 부정적 효과를 과장하면서 임신·출산·양육의 부정적 효과를 언급하지 않는 이중전략은, 모성이라는 규범적 행복과 임신중지의 애통함 모두를 구체화한다. 빅토리아 주 토론 당시 한 여성 의원은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지지하며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뚜렷이 대조했다. "나를 포함해아이를 낳는 순수한 기쁨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 어떤 이유로든 어떤 상황에서든 임신을 끝내는 일이 큰 고통을 야기할 것이다."  - P167

‘상실‘은 임신중지의 문화 지형을 지배하고 있고, 오히려 모성이 가져온 상실, 이를테면 모성 바깥의 삶에 대한 상실이야말로 실제 말해질수 없는 것이다. - P170

임신중지와 원치 않은 임신에 대한 책임감을 개인화하는 것은 임신중지 수치에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 P176

여성이 임신중지를 합법적으로 선택할 수 있고 여기 접근할수 있을 때조차, 이를 선택하는 사람은 ‘실패자‘ 혹은 ‘패배자‘로재현된다. 수치와 수치 주기의 이중 과정이 여성에게 그런 느낌을 심는다. 수치와 수치 주기는 임신 중지를 겪은 여성을 처벌하려 하며, 임신중지 관련 선택을 통해 이들의 품행을 단속하고, 재생산을 기준으로 선택·선택자의 위계구조를 만든다. - P177

규범성, 수치, 비밀로 이어지는 순환적이고 자기영속적인 관계는 깨기가 쉽지 않다. 임신중지를 가득 채우는 수치는 이를 비밀에 부치도록 부추기며, 사실상 자주 위반되는 규범 (의도된 임신‘과 ‘태아적 모성)을 유지하는 데 일조한다. 이로써 임신중지는일상적이기보다 예외적인 일이 된다. 수치 - 침묵 -예외성 - 수치 - P194

의 순환은 규범적 여성성과 임신중지 담론(감정의 기록 등)이 서로를 영속시키는 또 다른 순환을 만들어 낸다. 모성적 여성성은애통함과 수치가 뒤따르는 어려운 임신중지라는 서사를 유도하고, 애통함과 수치는 모성적 여성성을 자연화하는 근거가 된다. - P1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