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유럽을 향한 창을 내세우면서 표트르 대제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 도시는 처음부터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설계되었다. 궁전과 성당, 건물과 운하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의 건축적지향점은 오직 하나, 유럽적인 것이었다. 덕분에 온갖 유럽적인 풍경이 도시의 외관을 수놓게 되었지만, 실제로 이곳은 유럽이 아닌러시아다. 러시아 작가 게르첸은 "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의 다른 모든 도시들과 유사하기 때문에 그 모든 도시들과 다르다"라고 썼다. 바로 이 간극에서 오는 묘한 부조화와 이중적인 정체성이 도시를하나의 거대한 무대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 P6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정말 부족한 것은 공감입니다. 우리는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연극은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을 하게 만듭니다. 연극을 본다는 것은아무것도 안 하고 무대를 쳐다보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 작가와 함께 위대한 정신적 모험을 하는 것이죠." - P40
마치 <알라딘>에 나오는 마법의 궁전처럼, 페테르부르크는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났다. 이곳은 오랜 시간을 두고 조금씩 발전해나간 자연스러운 도시가 아니라, 처음부디 완성된 모습으로 짜잔 하고 등장한 도시다. 아무것도 있던 땅에 갑자기 솟아난 이 눈부시게화려한 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처럼 보였고, 이를 바탕으로이 도시를 둘러싼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만들어졌다. - P94
특히 페테르부르크가 네바강과 운하, 그리고 늪지라는, 물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사실은 이 도시가 땅에 굳건히 뿌리내린 곳이 아닌 신기루 같은 공간이라는 인상을 남겼고, 이것이 이 도시를 더욱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많은 문학에서 이곳이 초자연적이거나 환상적인 공간으로 그려지고, 도시를 배회하는 주인공 중 유난히 몽상가가 많은 것은 모두 이러한 도시의 태생적인 특성과 관련이 있다. - P95
또 한 가지, 페테르부르크의 특징은 이곳이 그전까지 러시아에서 찾아볼 수 없던 유럽풍의 도시라는 점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럽이 아니라 유럽 풍의 도시라는 지점이다. 페테르부르크를(유럽을 향한 창으로 만들고 싶었던 표트르 대제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을 불러 모았고, 이들은 강과 운하를 따라 베네치아와 암스테르담, 로마를 연상시키는 장대한 건축물들을 세웠다. 그러나 이렇게 온갖 유럽의 스타일을 가저 왔기 때문에 결코 유럽이 될 스 없는, 이 도시의 또 다른 특징이 생겨났다. 즉, 페테르부르크 전체에 걸쳐흐르는 유럽적이면서 유럽이 아닌, 인위적이면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이 도시에 어떤 특별한 정취를 만들어낸 것이다. - P95
레닌그라드 봉쇄가 유명한 이유는 단지 참혹한 상황을 오랫동안 버텨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지옥보다 못한 조건 속에서도 사람들은 인간다움을 지키면서 단순한 생존이 아닌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도시의 반 이상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도서관은 여전히 문을 열었고, 사람들은 열람실에서 책을 펴놓은 채 굶어 죽었다. - P159
성 이삭 성당 근처에 있는 바빌로프 식물산업연구소는 소련의세계적인 식량학자인 바빌로프와 그의 동료들이 러시아의 기근을없애기 위해 전 세계 25만 종이 넘는 씨앗을 수집하고 연구한 곳이다. 독소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바빌로프는 스탈린의 숙청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감옥에서 아사했다. 하지만 그가 사라진 뒤에도 그의 동료들은 연구소에서 종자를 지켰다. 극도의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그들은 차례로 쓰러졌지만 아무도 책상 위의 완두콩이나 귀리, 감자 씨 표본을 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결국 봉쇄가 풀린 뒤연구소가 다시 문을 열었을 때, 연구원들은 대부분 죽었지만 바빌로프의 종자 표본에서는 쌀 한 톨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 P160
이처럼 봉쇄 속의 레닌그라드를 진정한 영웅 도시로 만든 것은, 포탄도 탱크도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삶의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시민들의 신념이었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의지가 이 도시를, 끔찍한 파국의 무대가 아니라 고통과 영광이 공존하는 비극적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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