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서관이 사라진 결정적 사건이 로마의 이집트 지배였다고 생각해.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수많은 서적을 이교도의 것으로 간주해 배척하고 없애 버렸지. 인간이란 참 어리석지않아? 수백 년 동안 쌓아 온 학문과 예술의 축적물을 또 다른 인간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불태운다는 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수난은 7세기,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땅에 들어온 이후에도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P50

현대 사회에서 그 후손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동시에이슬람 사회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가며 그들의 위치를 잘다지고 있다. 카이로 같은 수도권에서는 이집트 기독교인의 생활 수준이 꽤 향상되어, 재능만 있으면 차별 없이 좋은 직업을갖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 콥트교인인 사라 박사 또한 의사 집안을 일구고 이집트 사회에서 보란 듯이 상류층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이 땅의 이집트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같은 언어를 쓰는 국민으로서 같은 동네, 같은 건물에서 이웃으로 살며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 P62

"최근 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예멘 난민이 전 세계를 유랑하고 있어요. 이 사람들이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자신의머릿속에 박혀 있던 문화적 프레임이 완전히 깨지고 있지요."
이것이 예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맞아요. 언젠가 내전은 끝나겠죠. 그때 세계의 곳곳에서 활동하던 우리 다음 세대들이 예멘으로 돌아올 거예요. 그리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예멘으로 자연스레 유입되겠죠? 이것이 예멘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틀에 큰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 P84

아랍인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과 음성, 몸짓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아랍에서 수사학인 발라가 Balaghah가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레바논계 미국학자 필립 쿠리 PhilipKhur는 세계에서 아랍인만큼 문학적인 표현에 열광적으로 반응하고 말과 글에 감동하는 민족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아랍인은기쁨, 슬픔, 분노 등 마음속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호소하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청자의 가슴에도달시키려 한다. 부끄러움이나 거리낌이 없다. 박사 과정에서같이 공부하는 친구 아스마는 과제를 할 시간이 없다며 수업 중에 큰 소리로 교수에게 자주 호소한다.
CC교수님, 제가 애도 봐야 하고, 무엇보다 우리 어머니가 아프신 거 아시죠? 제가 어머니 돌보랴 아이들 밥하랴 과제 할 시간이없어요! 제 상황이 너무 애처롭지 않은가요? 우리 어머니도 너무 불쌍해요! 그런데도 과제를 해야 한다고요?"
- P101

 이슬람 전파의 시작은 메카와 메디나였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아랍인들은 이슬람의 기치 아래 사막을 발판 삼아주변으로 계속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이들은 사막 가장자리에거점 도시를 건설했고, 그 거점 도시에서 출격한 아랍인들은 주변 지역을 하나씩 정복해 나갔다. 중동학의 권위자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는 사막을 바다에, 군사 도시를 항구 도시에 비유했다. 즉 아랍인들은 사막의 출구에 항구(군사 도시)를 설치한 후그곳을 기지 삼아 ‘낙타‘라는 배를 타고 주변 영토로 세력을 확장했다는 것이다.  - P1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