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국왕의 발밑으로, 레미에서 프레누아까지 촘촘하게 포진한포병대들이 쉴새없이 몽셀과 대니를 공격했고, 스당을 넘어 북쪽 고원까지 화염에 휩싸이게 했다. 아직 여덟시가 채 못 되었다. 국왕은 전투의 필연적 결과를 기다리며 거대한 장기판을 응시했고, 자애롭고 무궁한 자연 속에 흩어진 조그만 병정들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였다.
- P262

영웅이 되는 건 멋진 일이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
배를 채우는 일, 그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 맛있는 수프가 끓는 날이면 얼마나 사랑스러운 눈으로 냄비를 바라보았던가! 그러나 빵이 없는 날이면, 그들은 어린아이나 야만인처럼 불같이 화를 냈다.
"먹지 못하면, 전투도 못해." 슈토가 말했다. 젠장, 오늘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 P265

그러자 보두앵 중대의 병사들 사이에서 조소가 터져나왔다. 모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경멸에 찬 야유를 쏟아붓는 슈토와 루베의 편이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그저 떠미는 대로가면 돼! 이제야 장군들끼리 마음이 맞는 모양이군. 그래, 더이상 자기가 옳다고 고집 피우는 자가 없는 건가! 이따위 장군들 밑에서는 잠이나 자는 게 상책이지 않겠어? 단 두 시간 만에 총사령관이 셋이라니.
도대체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 제각각 다른 명령을 내리는 건달 셋이라니! 모두가 기겁할 일이야, 그렇잖아, 이런 상황에서는 신이라도사기가 꺾일 테지! 배반이라는 비난이 다시 쏟아졌다. 뒤크로와 드 빔펜도 마크마옹처럼 300만 프랑을 받고 싶은 거라고!
- P286

"그런데, 그가 장에게 말했다. "뭐라도 좀 먹어야겠어.……… 지금 당장총에 맞아 죽을망정 배를 채우고 싶어!"
모리스는 배낭을 열었고, 떨리는 손으로 빵을 집어 허겁지겁 물어뜯었다. 총알이 씽씽 지나갔고, 포탄이 지적에서 폭발했다. 그러나 배를채우는 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안중에 없었다.
"형, 조금 먹지 않을래?"
똑같이 굶주림에 시달리던 장은 얼이 빠진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어쨌든 먹고 보자. 나도 너무 힘들어."
- P362

바로 그때, 모리스는 장이 다시 눈을 뜨는 것을 보고 기쁨을 느꼈다.
장의 얼굴을 적실 물을 구하러 근처 개울로 뛰어갔을 때 오른쪽, 즉 거친 비탈로 둘러싸인 깊은 골짜기에서 아침에 보았던 농부가 커다란 백마에 매단 쟁기를 밀며 태연히 일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왜 하루를허송하랴? 전투를 한다고 밀이 자라기를 멈추고 사람들이 살아가기를멈추는 게 아니잖아.
- P371

기대를 넘어서는 완벽한 압승이었다. 이 광활한 계곡 앞에서 도로 위에 널린 수천 구의 시체는 너무도 작아 보여 빌헬름 국왕은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바지유의화재, 일리의 학살, 스당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아름다운 하루가 평온하게 저무는 이 시각, 무심한 자연은 너무도 눈부시게물들어갔다.
- P403

1780년에태어난 그의 할아버지는 나폴레옹 대군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아우스터리츠 승전, 바그람 승전, 프리틀란트 승전의 주인공이었다. 1811년에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사무원으로 전락해 셴포필뢰에서 징세관으로 일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1841년에 태어난 그는 신사로 자라나 변호사로서 온갖 어리석은 유혹, 온갖 위대한 열정에 사로잡히기도했으나 이제 스당에서 패배해 하나의 세계를 끝장내는 재앙을 맞이했다. 이런 종족적 퇴화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아버지 세대에서 승전을 거듭했던 프랑스가 손자 세대에서 참패를 당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가슴을 몹시 아프게 한 그 종족적 퇴화는 천천히 악화하다가 때가 되면 파국을 초래하는 가족력을 연상케 했다. 만약 승리했다면, 그는 너무도 용감하고 의기양양했으리라! 하지만 패배하자, 그는 여자처럼 신경이 쇠약해져 전 세계가 빠져드는 깊은 절망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더이상 아무것도 없어, 프랑스는 죽은 거야. 목을 죄는 듯한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 P440

그런 다음 그는 고통스럽게, 생각나는 대로 자기 의견을 말했다. 우리는 호되게 당한 거야, 그건 확실해! 하지만 모두가 죽은 것은 아니야열심히 일하고 벌어들인 것을 탕진하지 않는다면, 남아 있는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히 만사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거야. 예를 들어 가정에서도 모두가 참고 견디며 저축을 하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언제나 출구가 보이는 법이야. 심지어 가끔은 따귀를 맞는 것도 나쁘지 않아, 곰곰이 생각하게 해주니까. 게다가 말이야, 만약 몸 어딘가가 썩고 있다.
면, 예를 들어 팔다리가 썩고 있다면, 그걸 도끼로 쳐서 잘라내는 게 온몸에 독이 퍼져 죽는 것보다 낫지 않아?
- P441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 정말 진절머리가 나요!" 프로스페르가 다시말했다. "저기 아프리카에 있을 때처럼, 힘들어도 뭔가 좋은 일을 하게해줘야죠! 그런데 이번에는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다시 제자리로왔다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만 시켰어요, 그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에요…… 게다가 불쌍한 제피르가 죽었고, 저는 완전히 혼자가됐어요. 그러니 다시 농사일을 시작해야죠. 안 그래요? 그게 프로이센포로가 되는 것보다 낫잖아요…..… 푸샤르 영감님, 영감님은 말도 가지고 계시잖아요. 한번 보세요, 제가 얼마나 말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말을 잘 돌보는지!"
- P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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