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래디가 끊임없이 속삭이며 말의 몸통과 머리와 얼굴과 다리에 삼베 자루를 문지르고 안아 주는 15분 내내 롤린스는 말 고삐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존 그래디가 안장을 골랐다.
그렇게 중얼대면 말한테 무슨 도움이라도 돼? 롤린스가 물었다.
나도 몰라. 내가 말은 아니잖아.
- P158

이 데 로스 옴브레스?(사람의 영혼은요?) 존 그래디가 물었다.
노인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찔했다. 마침내 대답하기를, 말과는 달리 사람은 결코 영혼을 공유하지 않으며,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롤린스가 서툰 스페인어로 말도 천국에 가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은 천국 같은 것이 필요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존 그래디가 지상에서 말이 모두 사라진다면 말의 공동 영혼도 새로 영혼을 나눠 줄 말이 없으므로 사라지지 않겠느냐고묻자, 노인은 신이 그런 것을 허락할 리도 없는데 말이 사라지는 일 따위를 묻는 것은 어리석다고 대답했다.
- P166

그녀가 멕시코시티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모습은 북쪽 하늘에 충층이 쌓인 먹구름 아래 품위 있게 상체를 펴고서 말을 타고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이었다. 앞으로비스듬히 기운 모자의 끈이 턱 아래에 단단히 묶여 있고 검은머릿결이 어깨 위로 이리저리 흩날리는데 뒤에서 번개가 검은구름을 뚫고 조용히 내리쳤다. 빗방울이 바람에 날려 후두둑떨어지는데도 태연히 말을 몰며 갈대가 무성한 희끄무레한 호수와 목초지를 지나는 그녀를 빗줄기가 야생의 여름 풍경 속에 완전히 감싸 안았다. 진짜 말, 진짜 사람, 진짜 땅, 진짜 하늘인데도 그것은 여전히 하나의 꿈이었다.
- P194

그녀는 그를 유심히 뜯어보았지만, 그 눈길에서 다정할이묻어났다. 그녀가 미소 지었다.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지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거든, 흉터를 얻게된 사연은 결코 잊을 수 없지. 안 그런가?
- P199

그들은 메사에서 폭풍이 북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자 빛이 곤란을 겪었다. 발 아래 메마른 평원에 펼쳐진 검은 비취 모양의 라구니야스(늪지대)는 마치 또 다른 하늘을 꿰뚫고 있는 귀걸이 같았다. 서쪽에서 층층이 띠를두른 색깔들은 망치로 두들겨 맞은 구름 아래에서 피를 홀렸다. 순식간에 보랏빛이 온 땅을 감싸 안았다.
- P202

사람 안에 악한 면이 있을 수는 있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악이 아니야. 어디서 악을 구하겠나?
대체 무슨 수로 그게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나? 말도안 되지. 멕시코에서 악은 실재하는 존재야. 제 발로 걸어 다니지. 언젠가는 자네한테도 찾아올 거야. 아니, 벌써 찾아왔는지도 모르지.
- P284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힘겨운 삶을 사신 만큼 열린 마음을 갖고 계시리라 기대했습니다.
잘못 생각했군.
그런 것 같군요.
내 경험상 고통을 겪었다고 해서 마음이 더 넓어지는 것은아니더군.
- P334

난 사회적인 사람이 아니라네. 내가 겪은 사회는 여자를 억압하는 기계나 다름없었어. 멕시코에서 사회는 아주 중요해, 여자들은 투표권조차 없는 사회지. 멕시코 사람들은 사회나 정치에 광분하지만 실천은 형편없어. 우리 집안은 가추피네75) 이지만, 스페인인이나 크리오 요나 광분하기는 매한가지야. 스페인에 있었던 정치적 비극이 20년 전 멕시코 땅에서 그대로 되풀이되었네. 진실을 볼수 있는 사람들이 비극의 희생양이 된 거지. 전혀 다른 동시에 완전히 똑같아. 스페인 사람의 심장에는 자유에 대한 강한열망이 깃들어 있지만, 그 열망은 오직 자기 자신의 자유만을향하고 있네. 온갖 진실과 명예를 한없이 사랑하지만 그 본질은 사랑하지 않아. 피를 뿌리지 않는 한 어떤 것도 증명될 수없다고 강하게 확신하지.  - P335

그날 밤 여기 정원에서 구스타보는 커다란 부상이나 상실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강력한 유대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맞았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한 유대감은 슬픔의 유대감이며, 가장 견고한 단체는 비통의 단체이지.  - P347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누워 있는 동안 심장 속에 똬리튼 고통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세상의 고통이란 형태 없는 기생충 같은 존재가 알을 깔 따스한 인간의 영혼을 찾아다니는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무엇으로 인해 사람이 그런 존재에게무방비 상태가 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존재에게는 마음이 없으니 영혼의 한계를 알 길이 없다는 것을 몰랐던 그는 영혼에ㅠ한계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었다. - P373

고 있었다. 핏빛 먼지가 태양을 온통 휘감았다. 그는 발꿈치로말을 살짝 때려 앞으로 나아갔다. 태양이 그의 얼굴을 구릿빛으로 물들이고 붉은 바람이 어둠의 땅을 건너 서쪽에서 불어오는데, 자그마한 사막의 새들이 마른 고사리 숲과 말과 기수사이에서 재잘거렸다. 기다란 검은 그림자는 마치 세상에 유일한 존재의 그림자인 양 말을 바싹 뒤따랐다. 그러다 어두워지는 땅속으로, 다가올 세상 속으로 점점 사라져 갔다.
- 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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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8-2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요, 저는요.... 코멕 맥카시는요, 몇 년 전에 <카운슬러>를 읽어보고 워매 뜨거라, 정나미가 똑 떨어져 다신 쳐다도 안 보는 작가거든요.
헌데 워낙 유명한 작가고, 제가 읽은 건 딱 하나 <카운슬러>밖에 없고 그래서, 한 권 정도 더 읽어도 괜찮겠다 싶어 지금 생각 중이랍니다. 이 책은 좀 덜 사납나요? 아이고, <카운슬러> 그거 말이 카운슬러지 잔혹 엽기 더티 도무지 드세서 말입니다.
이것도 그렇다면 맥카시는 걍 때려 치는 걸로.....
다 써놓고 보니 어려운 질문 같아 죄송합니다. 흑흑흑....

바람돌이 2021-08-25 12:29   좋아요 0 | URL
헉 코맥 맥카시 후기작이 그렇군요. 저는 이 소설이 처음인데 이 소설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너무 좋아요. 말하자면 한 텍사스 소년의 성장기인데 그의 여정은 감동적입니다. 문장도 정말 끝내주고요. 강추합니다. 전 국경3부작을 다 보려구요.

Falstaff 2021-10-20 14:18   좋아요 0 | URL
근데요, 지금 마지막 페이지 읽고 딱 3분 지났거든요.
이거 참, 바람돌이 님께서 보시면 흉악해 하실 독후감을 쓰려고 준비중이랍니다.
마음에 안 드셔도 양해해주세요. 흑흑흑....

바람돌이 2021-10-20 17:04   좋아요 0 | URL
ㅎㅎ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