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자 앞에 앉은 베르나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울기시작했다. 주체하지 못하는 흐느낌이었다. 그는 한참이나 그렇게 있었고 나는 그에게 다가가야 할지, 안아 주어야 할지,
어깨를 두드려 주어야 할지, 아니면 농담을 건네야 할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기는 했다. C. S. 루이스의 책이 젖지 않도록 치웠다. 가끔 나는 나 자신이 정말 밉다.
- P32

"신의 이름으로나 미래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살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범죄의 이유가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하는순간 공감과 연민은 사라지고 말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아주 냉정하게 누군가를 죽이는 거야. 정신병자의 묻지마 범죄 같은 거지."
- P36

"나를 놀라게 한 것이라………." 그는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결심한 듯 말했다. "그래요. 있지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세기에 그 참상을 지나면서도 그만큼의 평온과 기쁨 속에서 삶을영위했다는 이 소박한 사실이지요. 더없이 최악인 시절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만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 P65

무언가의 이름으로살인을 저지른 자들은 역사를 더럽힐 자격이 없다고 믿어서책을 쓰게 되었지. 티머시 멕베이는 168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수많은 슬픔, 안타까움, 고통은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다. 대체 무엇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이름으로 그 일을 저지른 것인가, 티머시?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나는 또 다른 비타협, 또 다른 종류의 비타협을 상상하며 그에게묻는다. 대체 왜, 티머시, 그런 파괴를 저질렀는가, 신은 사랑이 아니었던가?
- P147

"그들은 그 참사를 겪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글을썼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들은 참사를 기록했고, 이제 죽을 수 있었어. 나는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그것을 쓴다는 것은 그것을 다시 살아 내는 거라는 사실도 깨달았지. 수년 동안 지옥을 다시 경험하는것은 견디기 어렵지. 그들은 이미 경험했던 비극을 쓰느라 죽었던 거야. 결국 그렇게 극심한 고통과 공포는 1000쪽 혹은2000절의 운문으로 축소되었거든. 그러한 고통을 손바닥 반정도 되는 두께의 종이 묶음에 집어넣다니 조롱에 가깝지."
- P198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리다 행복에 겨운 커플은 탐정과 함께 열차에 올랐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는 수도사 니콜라우 에이메리크와 아리베르트 보이트가 그들의 머릿속을맴도는 위대한 사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활기차게 나누며 올라탔고, 한쪽에서 뮈스 박사인지 부덴 박사인지가 켐피스)를읽으며 창밖 터널의 어둠을 응시했고, 열차의 다른 칸에는 베네딕트 수도사복을 입은 성 페레 델 부르갈의 줄리아 형제가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옆에 서서 파르다크의 자키암 무레다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았다. - P263

악이란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이시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아브라함의 엄격한 신, 예수의 설명할 수 없는 신, 잔인하지만 사랑이 넘치기도 하는 알라……. 어떠한 형태든 잘못된 행위에 의해 희생당한 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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