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꺼는 대로 삶을 말하고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자유이지만 우리는 대개 이 자유를 택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 내가 엿본 여자의 내면은 하고 싶은 말들, 다른사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불가사의하게 다가오는 말들로 살아 생동하고 있었다.
- P12

그저 와이프일 따름이 구나. 이 남자는 행사 자리에서 만난 여자들 이름을 십중팔구 잊는 편이어서 어쩜 저럴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였다.
그래서 늘 이름 대신 누구누구의 와이프 또는 여자 친구라고 칭했다. 마치 그 여자들에 대해선 누구의 배우자 또는 동반자인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말이다.
우리에게 이름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인 걸까?
- P18

남자와 아이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 순위로 두어 오던 가정집이라는 동화의 벽지를 뜯어낸다는 건 그 뒤에 고마움도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있던 기진한 여자를 찾는다는 의미다. 모두가 즐거이 누리는 가정, 순조롭게 기능하는 가정을 짓는 일은 수완과 시간과헌신과 공감 능력을 요한다. 다른 이들의 안녕을 건설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넉넉한 인심에서 비롯하는 행위다.
- P21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자유를 쟁취하고자 분투한 사람치고 그에 수반하는 비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 P26

이는 내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서 다룬 주제이기도 한데, 그 글에서 난 우리가 알기를 꺼리는 것들이란 어쩌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너무 면밀히 바라보려 들지는 않는 것들이 아닐까추측했다. 프로이트는 아는 것을 알지 않으려 하는 이런소망을 동기화된 망각motivated forgetting이라 불렀다.
- P96

헛간에서 메두사 신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내 안에 메두사가 들어앉았다. 메두사가 내 내면에 깃든 게 반길 일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메두사는 막강한 힘을지닌 여자이자 심기가 거슬린 여자였다. 남성의 시선을피해 눈을 돌리는 대신 정면으로 되쏘아 보며 맞서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메두사는 신화 중에서도 특이한 경우에 해당하고, 결국 여자가 잔혹히 참수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여자의 머리 (곧 마음, 주관, 주체성)와 몸의 분리로, 여자의 머리가 지닌 잠재력이 그만큼이나 위협적이란 듯이 말이다.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위협적인 여성 권력을 끝장내고 남성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에서 메두사를 참수한 것이리라 추정한 바 있다.  - P97

오웰은 1936년에 쓴 「코끼리를 쏘다』란 산문에서 제국주의자는 "가면을 쓰며, 얼굴이 가면에 맞춰 점차변해 간다"는 데 주목했다. 와이프 또한 가면을 쓰고, 그갖가지 변형된 모습에 맞게 얼굴의 양태가 달라진다. 집안의 주소득자인 여성 중에 그들이 성취한 성공을 빌미로 남자 식솔에게 간사한 제재를 받는 이도 있었다. 남성반려자가 원망과 분노, 우울감에 빠진 경우였다.  - P99

남자가 성공적인 사람으로 간주되는 이유가 여자들을 (가정에서, 일터에서, 침실에서) 진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면, 사회는 이런 측면에서 실패하는 것을 위업으로 여겨야 마땅하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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