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이때가 1556년 7월경이었고, 훗날 시인이자 전위예술가였던 오스바우지 지 안드라지 Oswald de Andrude는 원주민 인디오가초대 가톨릭 주교를 먹어치운‘ 이 사건을 식민주의적 근대화에 역류하는 문화적 반란과 탈식민주의적 욕망의 미학적 분출로 해석했다. 그 사건에서 저항적 탈식민주의의 문화적 레시피와 정체성 구성방식을 발견하고 그 해를 ‘식인종 선언 Manitiesto antropótago(1928)‘ 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계몽과 금지와 터부의 논리가 작동하기 이전의 상태를 부정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은 사고, 즉 ‘벌거벗은 이성‘재고考를 통해 ‘우리의것이 ‘야만적인 것 barbaro e nosso‘에 뿌리를 대고 있다는 사실을 선뜩하게공표한 것이다. 달리 말해 반어와 역설, 전복의 상상력을 통해 브라질의 인식론적, 미학적 브락질 모더니즘, 지적, 문화적인 독립을 선포한 것이다.
- P25

장벽 사이의 불평등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 수비와 감시공식이 바뀌고 있다. 국경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테러, 불법 이민, 마약, 전염병 차단이라는 명분 아래 요새화된 장벽, 첨단 감시장비, 대규모 인력 배치 등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있다.
- P49

파트리시아와 마찬가지로 무상교육에 안도하고, 쿠바 혁명의 대의에도 선뜻 동의하지만, 교육의 획일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전인교육에가려진 쿠바의 정치 편향적인 교육 실태를 꼬집는다. 사회현실의 이런저런 형편을 짚어가면서 ‘평등한 가난이 야기한 결핍과 제약의 세목들을 푸념처럼 길게 늘어놓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악무한의 노동과 경쟁을 통박하는 한편, 쿠바 혁명이 폐쇄적이고 정체된 탓에 ‘변화‘도 ‘진화‘도 이루지 못한다며, "혁명이 스스로를 혁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 P77

자신을 활짝 열어놓은 채, 사람과 삶을 환대하는 카리브의 신명나는웃음. 삶에 대한 자세와 인간에 대한 태도도 제도일까? 제도의 (부) 산물일까? 콤파이 세군도, 그도 자신을 쿠바라는 국가에 구겨 넣으며 살았을까? 그냥 쿠바이기에 한 세기를 그렇게 신나게 훨훨 살다 간 걸까?

문화와 삶이 고스란히 경제지표에 담길 리는 만무하다. 진짜 음악이악보에 없듯이,
- P85

하지만,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안팎에서 구축되는 타자의발명 발굴 (재) 발견의 논리는 눈엣가시처럼 걸린다. 몰입을 방해하고쿠바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하고 강화하기에 충분하다. ‘쿠바 혁명에의해 뮤지션들이 대중과 유리되었고 세계 시장에서도 철저히 고립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 또한 애석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 P95

카바레와 레스토랑에서 듣는 쿠바음악 반주에 ‘안주 하는 꼴이란 쿠바에서 시가를 끽연실에서 태우는맛이니, 즉흥적인 어울림과 살아 펄떡거리는 골반문화를 만끽하려거든길거리로 광장으로 아바나 밖으로 발품을 팔지이다. 소유의 길을 따르지 않은 ‘작지만 강한 니과의 푸진 가락과 신명을 찾아서, ‘저항을 배운 자들의 고통과 희망의 번주고을 눈으로 직접 들으면서.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기. 시거먼 설당눈물이 배인 쿠바의춤과 노래와 퍼커션들은 신산한 나날을 날려버리던 위무이었음과 동시에 한과 슬픔의 날을 벼리던 무기였음을, 거의 모든 형태의 잡종과 변종의 계보악보를 아우르며 전방위적 섞임에 늘 개방적이었음을, 쿠바도 쿠바 음악도.
- P108

 ‘폭탄 머리‘를 말세나 사탄의 징표로 간주하고, 독단주의와 배타주의라는 이즘의 격자에 갇혀 믿음을 종용하는 곳은 이쪽이다.
가난에 허덕이는 그곳이 아니라 소비 욕망으로 헐떡거리는 바로 이곳이다. ‘일상의 파시즘‘, 특히나 타자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전체주의적사유구조가 문화적으로 팽배한 곳 역시나 이쪽이다. 반면, ‘물음 없는맞이하기‘리는 자크 데리다 현대에 대하여 식 타자에 대한 환대 rospitalite‘를맛볼 수 있는 곳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대뜸 ‘늙은 꼬레아나 며느리와 춤판부터 벌이는 저쪽이다. 성별화된 Gendered 시각을 드러내면서신랑과 신부의 나이 차이를 추궁하고, 급기야는 어린 조카까지 나서서차이와 차별에 대해 ‘논하는 이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을 감금하는 ‘주의 義‘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세계시민으로 살고자하는오리엘비스에게 "자본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인가?"를 따지듯이 캐물으면서 몰아세우는 이쪽일 리가 만무하다. 최소한 이 영화에서는 그렇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간에.
- P125

체 게바라보다도 그가 더 길게 더 파란만장하게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걸은 셈이라고. 늙지 않는 체 게바라와는달리 늘 자기 몸에 길을 새기면서 늙어간 그가 되레 더 위대할 수도 있다고. 이상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 혁명 안에서 시간과 혁명의 하중을 견디면서 삶을 밀고 나간 그가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고,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리얼리스트에 훨씬 더 가깝다고, 아니, 더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고, ‘길이 체 게바라를 만들었고 체 게바라는 길이 되었다, 라고 한다면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평생 그 길을 살았다. 체 게바라가 별을 향해 걸어갔다면 그는 샛길을 따라 사람을 향해 걸었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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