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자기들을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따뜻함을 절실히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그따뜻함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멀어지고 있다. 이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이웃 사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페스트를 옮길 수 있고 방심한 틈을 타 감염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 P231

리외는 으레 그러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것은 랑베르 자신의 문제이고 랑베르는 행복을 선택한 것이며 자신은 그에게 반대할 논거가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느끼기에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해 무엇이 옳고그른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 P237

그러는 사이에 내가 이 세상을 위해 더이상 쓸모가 없다는 사실과,
죽이는 것을 단념한 그 순간부터 결정적으로 추방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역사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가겠죠. 그리고 내가 그 사람들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이성적인 살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데, 나에게는 그 자질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이것을 우월성이라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이제 나는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기로 했어요.. 겸손을 배운 거죠. - P295

"통행증을 보여주면 방파제까지 갈 수 있을 거예요. 페스트 속에서만 사는 건 너무 어리석은 짓이에요. 물론 인간이라면 희생자들을 위해 싸워야죠. 하지만 뭔가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투쟁은 해서 뭐하겠어요?"
- P298

그러나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이 결국 이런 것이라면, 희망하는 것을 다 잃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기억에 남는 것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면, 그 삶은 얼마나괴로운 삶일까. 타루가 경험한 삶이 아마 그런 삶이리라. 그래서 그는환상 없는 삶이 얼마나 황량한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희망이 없으면 마음의 평화도 있을 수 없다. 타루는 인간이 인간을 단죄할 권리를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남을 단죄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없으며, 심지어 희생자도 때로는 사형집행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분열과 모순 속에서 살았고 희망이라곤 전혀 경험하지못했던 것이다. 그가 성스러움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봉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고 한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 P340

공포가 끝나면서 페스트도 끝이 났고, 그렇게 부둥켜안은 팔들은심오한 의미에서 페스트가 사실은 유배와 이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 P348

그것들을 바라보며 의사 리외는 침묵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페스트에 걸렸던 사람들에 대해 우호적으로 증언하기 위해,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그리고 재앙 중에 배운 것,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만이라도 말하기 위해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결심했다.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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