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은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했을까.

 근대 건축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보통 사람들의 삶, 그것을 공간적으로 넓히면 근대건축의 사회문화적 의미가 될 터이고, 다시 시간적으로 늘려 현재에 이르면 화석처럼 축적된 장소성이 될 터이다. -5p

 

건축이란 아무리 멋있어도 거기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가 아무리 근대건축의 성지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건 건축학도에게나 그렇지, 인간이 살 수 없어 결국 버려진 집일 뿐이다.

근대 건축물들에 관심이 많다. 아니 모든 건축에 관심이 많다. 한옥에도 관심이 많고, 서양식 근대 건축도 좋아한다. 서양의 교회나 왕궁, 민가들... 그러고보니 다 좋아하는구나. 여행 다닐 때 멋진 건물이 있으면 꼭 들어가보고 싶고, 보고싶다.

예전에 강화도 놀러갔을 때는 강화도에 있는 성공회성당이 잠겨 있어서 민폐임에도 불구하고 담당자분한테 전화까지 해서 불러내 내부안내를 받았더랬다.

건축의 어떤 부분이 좋은걸까?

내가 뭐가 좋은지도 잘 모르는 얼치기 건축 매니아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사람이 빠진 건축이야기는 관심이 안간다는거다.

사람이 살고, 사람의 손길이 가고 그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을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게는 정말 호기심이 확 땅길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책 소개를 읽으면서 근대건축과 근대소설의 콜라보라니.... 아 이렇게 절묘할 수가!

소개 그대로 이 책은 근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100여년 전 경성의 온갖 건축물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건축을 소개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단편 운수좋은 날의 김첨지의 경우, 그와 그의 가족들이 도시로 올라와 전전했을 공간과 마지막 공간인 행랑채의 모습과 환경을 서술하는 식이다. 실제 소설을 읽을 때보다 더 이 시대 하층민들의 삶의 고통이 진하게 전해져 온다.

근대 건축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라는 저자의 말대로 소설과 공간을 오가는 서술은 아주 흥미진진해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즐거운 책읽기 시간이었다.

 

이태준의 <복덕방>, 채만식의 <태평천하>, 박태원의 <천변풍경><방란장 주인><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성탄제>,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 현진건의 <피아노>, 이기영의 <고향>, 강경애의 <인간문제>, 김사량의 <천마>, 이 책에 동원된 근대소설들이다.

읽은 책도 있고 제목조차 처음듣는 경우도 있지만 소설이란 것이 당대를 가장 리얼하게 그려낸다는 걸 생각하면 굳이 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다. 물론 위 작품들을 다 읽었더라면 책을 읽는 재미가 더 커졌으리라는건 분명하지만.....

 

1907년 8월1일 아침, 서 참위 대대는 도수훈련을 한다는 명령에 따라 맨손으로 동대문 훈련원(지금의 국립의료원 훈련원 공원 터)으로 갔다. 그러나 그것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시키려는 일본의 속임수였다. 이미 일본군 부대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채 훈련원을 이중·삼중으로 포위했고, 대한제국 군인들은 졸지에 치욕의 해산식에 참가하게 되었다.(133p)

 

 

이태준의 <복덕방>에 등장하는 서참위는 1907년 해산된 대한제국 군인 출신이다. 그는 저 치욕의 해산식에 멋도 모르고 참가했다가, 누구는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로 떠나고, 누구는 의병이 되고, 누구는 황실 근위대에 남을 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복덕방을 시작한다. 이런 서참위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도시형 한옥이나, 서구문물이 들어오면서 상류층의 새로운 부의 상징으로 떠오른 문화주택(서구식 벽돌집들이다.)을 만나게 되고, 이런 새로운 주거형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태가 펼쳐진다.

도시형 한옥을 사서 첩살림을 하는 이, 영감에게서 집을 뜯어내고 연애는 따로 하는 첩, 부모의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면서 문화적인 삶을 가장하기 위해 문화주택을 사고 그 주택을 완벽하기 위한 아이템으로 피아노를 들이는 젊은 부부(당연히 피아노는 칠줄 모르므로 먼지만 쌓여간다.). 당대 최고의 문화예술 공간이었던 부민관으로 남도소리공연을 들으러 가면서 없는 사람 등이란 등은 다 쳐대는 쪼잔한 영감. 무성영화를 상영하던 우미관에서 활동사진 속 드레스 입은 무용단원이 인사를 하자 그 무용수의 인사를 받기 위해 어정쩡하게 일어나는 갓 쓴 노인들.... 이 시기 다방과 카페가 다르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다방은 차를 파는 곳, 카페는 여급의 술시중을 받으면서 술을 파는 곳이었단다. 카페의 여급들, 시골에서 올라온 공장의 여공들, 한몸 누일 공간이 없어 천변에 토막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

하 이런 사람의 얘기가 공간과 만나면 그대로 그림처럼 100년전이 떠오른다.

 

 

명월관은 1914 인사동 이완용 저택( 순화궁) 빌려 지점을 내고 집에 있던 태화정의 이름을 따서 태화관(지금의 태화빌딩 자리)이라고 불렀다5 뒤인 3 1일에는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이모여 3·1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명월관 광화문 본점은 의문의 대화재로 전소되고 돈의동(지금의 피카디리 1958 자리)으로 자리를 옮겼다.(184p)

 

태화관이 인사동에 있던 청요리집이라는 것만 알고있었는데 그 기원을 보니 기가 찬다. 민족대표 33인의 고민을 이해하기도 하지만 한 건물이 친일파 거물의 저택에서 요리집으로, 독립운동의 기념비적인 장소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김두한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종로의 우미관이 무성영화시대 조선인들과 함께 울고 웃던 조선인의 공간이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나운규의 <아리랑>을 상영할 때 변사가 어찌나 민족적 울분을 실감나게 묘사하는지 일제 경찰이 상영을 중지해야 했다는 에피소드에서 이 시기 우리 문화의 한 단면과 사람들의 마음을 짚어보기도 한다.

일제가 문화공연장으로 만들었던 <부민관>건물은 서울시 의회로 남아있지만, 대부분의 이 시절 건물들은 개발의 과정에서 사라져갔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남았다.

 

100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인력거꾼  첨지는 택시운전사나 택배기사로삼청동꼭대기 사글세방의 박준구는 옹색한 고시원의 취업준비생으로여급 영이와 순이는 무슨무슨 방의 도우미로그들의 직업과 공간은다양하게 변했지만 본질적으로는 100 전과 어딘가 닮은 모습으로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 P272

 

 

이 작가분에 대해 관심이 확 생겨 검색해보니 아직 많은 책을 쓴건 아니고 요 2권이 검색된다.

다행히 나의 전작주의에 아주 적당한 숫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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