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최소한 고립 상태를 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러한 행위가 도시의 이른 멸망을 유도하게 될 것을 두려워했고, 대부분은 어쩔 줄을 모른 채 공포와 혼란에 빠져 있었다. 감염은 속절없이 퍼져나갔다. 온갖 뜬소문과 괴담이 돌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의 혈액을 한꺼번에 주입하여 면역 기능을 강화하면 감염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속설이 퍼겼을 때, 불멸인들은 서로를 해치기 시작했고, 폭력은 감염병보다 빠르게 전파되었다.
- P36

완전한 믿음도 완벽한 연기도 아닌,
내가 라이오니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단지 그렇게 믿고 싶은 상태. 기계가 죽음을 맞이할 때 어떤 상태가 되는지 나는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런 종류의 중첩 상태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열흘 동안, 셀은 어떤 순간에는 나를 라이오니라고 믿고, 어떤 순간에는 그렇게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를 라이오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낯선존재로 대하며 이어지는 그 기나긴 이야기가 가능했을것이다.
- P47

나는 지금도 가끔 눈을 감으면 셀을 만난다. 그는 무너져 내리는 도시를 지키며 소리 내어 웃고 있다. 파편들이 셀의 위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그 풍경속에는, 내가 아닌 라이오니가 있다. 죽어가는 셀의 곁에서 라이오니는 셀의 손을 잡는다. 둘은 멸망을 맞이하고있지만 불행하지 않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나의 원본이 아니라, 그자체로 최후이자 유일한 존재였던 라이오니의 모습을 - P49

그래서 이 주제를 다룰 거라면 아주 멀리 가자고 생각했다. 멀지만 나에게 친근한 세계, 그러니까 우주가 배경인 청소년 SF의 세계이다. 초광속 우주선을 타고 은하계로 진출하는인류, 장엄한 그림이지만 여기엔 좀 오싹한 구석이 있다. 멀리서 보면 인류는 바이러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유전자를 복사해 최대한 많이 전파하려는 작은 로봇들. 이 유사점을파보면 재미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 너무 직설적이지는않게. 너무 직설적이면 쓰는 내가 재미없을 테니까.
- P70

물론 나도 2020년을 기점으로 세상이 바귀었다는사실 자제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실습실에 들여서는 안되는 사전 지식이지만, 근대인들에게 2020년은 혐오를재발견하는 시기였다. 혐오가 죄조로 발명된 게 아니고,
잠재해 있던 혐오를 하나하나 그집어내기 시작안 시대라는 뜻이다. 감염병이 전 세계에 버지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증오하기 시작했다. 원래도 싫어했지만 이제 더는 숨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시기의 혐오에관해서는 남아 있는 자료가 엄정나게 많았다. 말도 안 되게 많았다. 슬모없는 21세기인들 갇으니.
- P149

2020년이 2019년과 달라지기 시작안 것은, 2019년사람들이 모두 병으로 죽어버려서가 아니다. 그보다는2020년 사람들이 2019년의 삶을 불결하다고 느기기 시작안 게 결정적이었다. 2021년 사람들은 2020년의 생활양식마저 비위생적이라고 느겼고, 2022년 사람들은 그2021년에 대해서도 우월감을 갖게 되었다. 격리실습실이시간을 격리하듯, 한 시대는 바로 압 시대와 거리를 두었다. 매우 잛은 시간 간격을 두고,
- P150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어어어어!"
그 말은 세상에서 제일 억울하게 들리는 문장이었다.
글자 그대로 내면의 억울함이 분출하는 듯안 발성이었다.
문자를 동해 전달되는 의미 이상의 무언가가 서한지의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한(恨)이라는 건가?
- P152

언니가 다니는 회사는 어떤 면에서는 첨단이면서 어떤부분은 구식인 게 비슷하다. 언니는 사람과 사람의 피부가 맞닿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포포처럼 접촉 혐오가 있는 젊은 애들이 이해가 통 안 간다고 혀를차는 구식 인간이다. "탈학교가 사람들을 다 버려놨다니까." 언니가 투덜거리면 포포는 그냥 못 들은 척한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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