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법 - 전설의 사랑시에서 건져낸 울림과 리듬
조영복 지음 / 이와우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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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역시 시의 계절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며 마음도 약간 쓸쓸해지는 느낌이 찾아온다.

좀 있다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멜랑꼴리함은 조금 더 짙어지겠지....

그럴때면 시를 읽고 싶어지다.

아니 사실은 시를 쓰고 싶어진다.

 

시를 쓴다는는 것은 때로 쉽고, 정말로는 어렵다.

그냥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쓰면 그것이 시가 된다고 우기면 된다.

하지만 그런 시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특히나 낭송은 절대 불가하다.

부끄럽잖아.....

 

 

 시를낭송하면 그 소리는 낭송하는 인간의 몸에서 빠져나와 타인에게로 향합니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소통적이고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 청각이라고 합니다. 소리가 인간을 황홀하게 하는 것은 단독으로 소유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시를 크게 소리 내서 읽어보고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물리적 소리도 들어보고 또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숨겨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 필요하지요. 저절로 시의 리듬에몸을 맡기고 하염없이 그 시의 말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황홀해지겠지요. 그때 위로가 찾아옵니다. - P12

 

김소월이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라고 저 쉬운 말로 몇마디 읇조린 것을 읽을 때면 내 머릿속 산에는 온통 진달래꽃이 흐드러진다. 그 시를 가만히 입으로 소리내어 읇조리면 진달래꽃 흐드러진 산이 내 머리속을 뛰쳐나와 내 주변을 감싼다.

저 짧은 말로 다른 세상을 보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인인듯......

 

저자는 시인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황지우를 떠올리면 ‘시인 되기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것이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내면에 말의 보물창고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말을 잘 골라내고, 말에색깔을 입히고 그것들을 잘 배열하는 재능 말이지요. 이는 인위적으로 꾸며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천성적으로 주어지는 것일 테지요. ‘뮤즈‘를 자신의 안에 간직한 자들이 시인인것이지요. - P49

또 다른 하나는 ‘젊어서 늙어버리기‘같은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서 병들고 늙어야지" 같은 구절들이 황지우 시에는 있지요. 이를 견자로서의 시인 되기‘의 품성이라 합니다. 김소월, 윤동주 등이 다 그러한데, 이들 시인들은 청춘 시기에도 나는 늙었다. 청춘이지나갔다 말합니다. 그들은 젊어서 이미 늙어버린‘ 자의 철학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일찍 철들고 일찍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농담‘ 같지만 은유적인 구절들이 그의 시에 있고 그것은 철학적이고 예언자적인 아우라를 풍기며 독자를 기다립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된 시인의 인생철학은 구구절절 나열하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단박에 달려 나가듯 질주하는 시인의 언어 바로 그 자체입니다.- P50

 

 

이 정도면 시인은 일단은 타고나는 것이어야 하고, 아마도 그들은 어느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인듯하다.

똑같은 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표현하고 그것이 사람을 감동시키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끄럽게 하기도 하는게 시인이다.

시를 쓰고 싶다고 하면서 내면의 보물창고는 커녕 단 한줄의 문장도 길어올리지 못하는 나같은 범인들은 그래서 그저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대리만족한다.

 

하지만 때로는 좀 더 잘 읽고 싶은 욕망은 있다. 비록 쓰지는 못할지라도....

나라는 인간의 머리는 사실 고도의 압축된 상징이나 아포리즘 같은 문장보다는 기승전결이 탄탄하게 엮인 서사에 더 관심이있다.

사실 그래서 항상 시읽기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읽고 싶다고 읽어도 내가 그 시를 제대로 읽은건가?

지금 내가 이 시에서 느끼는 감정이 맞는건가?

항상 의문을 달고 산다.

 

아마도 그래서 신간 소개에서 이 책을 봤을 때 바로 손이 간듯하다.

시인의 말법이라니.....

시인에게 일종의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나같은 이에게는 뭔가 그들이 가진 언어의 비밀창고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도 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시인에게 가지는 이 열등감을 조금은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참 오랫만에 기대에 찬 책 선택이었다.

 

저자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알고있는 시인들의 연애시를 소개하며 같이 읽자고 얘기한다.

백석, 황지우, 기형도, 황동규, 김수영, 문정희, 윤동주, 김춘수, 서정주, 한용운, 김소월이 그들이다.

너무 유명해서 새롭게 읽을게 없지 않나 싶을 정도의 시인들이다.

저자가 고른 그들의 사랑시 또는 연애시 역시 잘 알려진 작품이 대부분이며 간간이 처음 읽는 시가 있었다.

 

항상 새 책을 손에 들고 첫페이지를 읽기 시작할 때는 머릿속에 잔뜩 힘을 준다.

너를 완전히 이해하고 말겠어라는 일종의 기합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 서문에서 이 기합을 완전히 빼버린다.

시는 그렇게 읽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논리, 인과, 언어적 이해 이런 걸 버리고 그냥 내 마음에 좋은지 안좋은지, 시에서 말하는 풍경이 떠오르는 것만 보라고 얘기한다.

시를 읽는 100사람이 다 자기의 풍경을 가지고 있을테고, 자기만의 풍경을 떠올린다면 시는 그것으로 족하다고 얘기하는듯하다.

기합이 절로 빠진다.

아 그래서 내가 시를 잘 못읽는구나......

 

무엇이든 좋은 선생님이 있어 그 안내를 받을 수 있다면 빨리 배울 수 있고 더 깊이 배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시읽기에 좋은 선생님이다.

많이 알려져 접근하기 쉬운 시, 시와 관련된 시인의 상황, 인간의 삶의 풍경들의 적절히 엮어지면서 그냥 우리 이렇게 시를 읽고 이렇게 연애를 하자고 조곤조곤히 나를 안내한다.

좋은 시가 좀 더 좋아지고, 시를 읽는 내가 좀 더 좋아지는 시간이다.

그래 내가 싫어지고 세상이 싫어지고 자괴감이 들때면 시를 읽자.

 

어쨋든 연애시의 백미는 역시 백석이다. 취향은 어쩔 수 없다.

눈 내리는 마가리의 밤을 생각하면 조금은 더 견딜 힘이 생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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