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를 떠올리면 ‘시인 되기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것이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내면에 말의 보물창고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말을 잘 골라내고, 말에색깔을 입히고 그것들을 잘 배열하는 재능 말이지요. 이는 인위적으로 꾸며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천성적으로 주어지는 것일 테지요. ‘뮤즈‘를 자신의 안에 간직한 자들이 시인인것이지요. ‘보물창고‘는커녕 ‘웅덩이 조차 없어서 시인 되기를 포기한 저 같은 자들도 더러 있으니까요.
- P49

또 다른 하나는 ‘젊어서 늙어버리기‘같은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서 병들고 늙어야지" 같은 구절들이 황지우 시에는 있지요. 이를 견자로서의 시인 되기‘의 품성이라 합니다. 김소월, 윤동주 등이 다 그러한데, 이들 시인들은 청춘 시기에도 나는 늙었다. 청춘이지나갔다 말합니다. 그들은 젊어서 이미 늙어버린‘ 자의 철학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일찍 철들고 일찍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농담‘ 같지만 은유적인 구절들이 그의 시에 있고 그것은 철학적이고 예언자적인 아우라를 풍기며 독자를 기다립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된 시인의 인생철학은 구구절절 나열하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단박에 달려 나가듯 질주하는 시인의 언어 바로 그 자체입니다.
- P50

이런 쉼표를 저는 ‘철학자의 쉼표‘, 미학자의 쉼표‘라 부릅니다. 황지우는 그 쉼표를 시 자간에, 시 행간에 찍어둡니다.
질주하면서 사유하고 사유하면서 달려가라고 말하지요. ‘쉼표‘라고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쉼표 하나하나에 너무나 많은 말이 담겨 있습니다. 황지우에게 쉼표는 사색의 표지이자 침묵의 표지입니다.  - P72

기형도의 시에 빠져드는 것은 자연스럽고 정직하게 우리 삶의미세한 흔적들을 탐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P84

하지만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타인의 죽음의식에 공감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의 상실을, 연애의 불모를 겪은 자의 것이라면 우리는 그 심정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비극의 심정에 되풀이하듯 다가가면서 시인을 향한 공감의 알림 버튼을 쉴 새 없이 누르겠지요. 이것이 타인의 아픔과고통과 상실을 같이 사는 한 가지 방법이지요. 연애시는 심정적으로 타인과 공감의 연대를 맺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 P95

시어 하나하나에, 각각의 구절에 각각의 의미가 대응되어야 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믿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온전하게 시를 읽는 방법이아닙니다. 리듬으로도 읽고 이미지로도 읽지요. 시를 낭송할때 느끼는 리듬 감각이 시의 의미를 해독하는 지적 기능보다.
더 우위에 있고 그것이 보다 우리의 삶에 더 간절한 신호를보낸다 하지요. 의미를 해독하려 애쓰지 마시고 그냥 읽으세요. - P99

여류‘라는 호칭은 문학 혹은 시가 남성의 소유물임을 증명하는 용어였고, 남성의 후광 아래서 존재하는 시인, 특이한 일(문학)을 하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의미가 ‘여류‘라는 명칭아래 숨겨져 있었습니다.  - P169

여성주의 시인‘을 호명하면서 일종의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시기는 1980년대였습니다. 1980년대에 등단한 여성시인들은, 남성시인의 ‘타자‘, 그러니까 ‘여성‘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여성 시인‘으로 인식되었는데, 이 따옴표(‘)의 이동이야말로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지요. 이들여성시인들은 스스로 빛나는 자이지 타자의 후광으로 빛나는 수동적 인간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 P170

시의 말은 결국 동일한 은유의 틀 내에서 움직이고 이 유형적인 말법을 은유의 방정식‘이라 칭합니다. 은유란 죽은말법인데, 시인들은 죽은 은유들을 살려내 의미의 진폭을 확장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영혼을 충동하지요. 암시된 것은 단호히 주장된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인간의 마음은 진술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에머슨의 말도 있습니다. - P198

김춘수는 특이한 존재입니다. 그는 죽음 직전까지 ‘젊은시‘, 좀 더 쉽게 말하면 모던하고 세련된 시를 썼습니다. 보통시인의 생물학적인 연대와 시의 스타일은 평행하게 간다고말합니다. 관례대로 한다면, 시인이란 모름지기 느지막한 나이에 이르러서는 모던한 시에서 손을 떼고 노장사상이 노니는 초월의 수풀로 들어가거나 시단의 원로로서 권위를 지키면서 대가급의 시론을 펼쳐야 옳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김춘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김춘수는 최후까지 우리말 이미지가 빛나는 시를 썼습니다. - P228

시의 언어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할 때, 시인은 항상 언어의 구속, 의미의 구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일상의 말과 시의 말이 어떻게 다른지 회의하기도 하지요. 시인은 ‘의미‘로부터 자유롭고자 하지만 독자들은 시인의 말에서 언제나 ‘의미‘를 찾고 ‘의미‘가 찾아져야 제대로 시를 읽었다 생각하지요. 시의 말에 일상적이고 사전적인 ‘의미‘를 갖다 붙이기 일쑤이지요. 시 교과서에서 시의 ‘주제‘를 찾는 작업과 유사합니다.
- P231

한용운 시학의 핵심에 ‘언어의 침묵‘ 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말은 말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 인간의 언어는 불충분하다(신의 언어만이 완전하다)‘는 그 개념 말이지요. 언어의 불완전성, 불명확성 때문에 시인은 고뇌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완전한 표현이 될 때까지 계속 쓸 수밖에 없는 언어의 무한 지옥이 시인의 운명인 것이죠. 이를 ‘언어의 감옥‘ 이라고 합니다. 언어의 창조자이자 언어로부터 절멸당하는 시인의 숙명은 피할 수 없는 모순에 갇힌 자의 그것이지요.  - P284

심장에 다가갑니다. 그러니 소월의 시를 읽으려거든 머리가아니라 심장으로 읽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지의 칼을벼르기보다는 심장의 불을 켜기를 권합니다.
- P307

시는 곧 은유이고 은유가 곧 최고의 대상을 향해 말을 건네는 방식이라면, 이 정의를 완벽하게 실현하는 것이 ‘연애시가 되겠지요. 연애시의 말법은 ‘은유‘라는 문장 구성법과본질적으로 동류라는 것이지요. 연애시는 시의 본질적 수사법인 은유와 등질적으로 접합된다는 점에서 연애시를 읽는밤은 곧 시를 배우는 밤이지요.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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