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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채.한홍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평점 :
어제자 신문기사에는 민경욱이 드디어 백악관 앞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라고 하면서 1인 시위를 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일단은 쪽팔린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주장할 수도 있고 다 그럴 수도 있는데 왜 시위장소가 미국 백악관 앞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베 수상님 죄송합니다를 외치던 주옥순과 판박이다.
한국의 우익들은 오늘도 이렇게 국민들을 웃겨주려고 열일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는 저 모든 일이 웃기는 일이 아니게 돼버리는게 우리의 비극이라고 할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평소에 이 문제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일본이 진심으로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 필요하고, 그 진지하고도 의미있는 첫걸음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전하는 충격적 진실은
또 한편으로는 일본의 평화주의가 갖고 있는 명확한 한계도 지적했습니다. 자신들이 아시아에 저지른짓에 대해 속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본은 ‘일국 평화주의‘에 머무를 뿐이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P259
전후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도 전쟁의 피해국이라는 집단 최면에 홀린듯 하다.
그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으로 인한 것이다.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이라는 것이 모든 역사적 죄악을 덮어버린 것이다.
내가 피해자인데 전쟁의 책임이나 반성이 어디에 설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일본의 시민사회가 가지고 있는 평화인식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입었던 그 피해를 다시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필요로서의 평화를 넘지 못하고, 이는 전쟁을 일으켰던 주범들과 그 후예들이 계속 일본 사회 내에서 권력을 잡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토대가 된다.
내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강한 국가의 존재, 전쟁은 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국가는 강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현주소인듯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일본의 평화주의의 한계는 너무도 명백하다.
만약 상황이 변하여 내가 피해를 입는다면 전쟁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는 것은 정말 한순간일 것이므로....
한국의 우익은 상당히 아이러니한 존재들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우익들은 강력한 국가라는 환상을 매개로 성장한다.
하지만 한국의 우익의 뿌리는 이승만이 살린 친일파에서 시작되고, 박정희에 의해 광범위하게 다시 살아난 온갖 일제 잔재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주적-북한-을 향해서는 강력한 국가를 지향하지만, 우리보다 강한 국가-미국, 일본-에 대해서는 비굴할 정도로 굴종의 모습을 보인다.
저 코미디 같은 민경욱이나 주옥순이 서있는 지점이다.
한국에 있어 친일파의 문제는 단순히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이승만 시절에는 사람의 문제와 사회구조, 문화의 문제가 모두 섞여 있었고, 박정희 시대로 오면 친일파 출신이냐 아니냐라는 문제보다는 그들 집권자들이 만들려고 했던 사회구조와 문화가 더욱 문제가 된다.
박정희와 친일파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지적하는대로 박정희 개인의 친일여부가 아니다. 그는 본격적인 친일파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젊었고,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해방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일본 아베 총리의 정치적 지향이자 외할아버지인 전범 기시 노부스케는 박정희에게도 정치적 아버지이다.
그가 만들고자 했던 국가의 모델이 바로 만주국이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아주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기시는 사실상 만주국을 설계한 사람입니다. 이런 만주 경험은만주군 장교로 근무한 박정희와 잘 맞아떨어졌지요. 사실 유신 시대의 국방국가 한국은 만주국 모델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생겨난 한일 간의 유착관계에는 기시와 박정희가얽힌 만주국 인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습니다.
- P108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친일잔재의 청산은 단순히 누가 친일파인지를 가려내는게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일본 군국주의의 유산들, 그들이 퍼뜨린 군국주의의 유령들을 몰아내는 것, 그럼으로써 억압적이고 양비론적인 문화를 바꾸는 것이 진정한 친일청산의 과제일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황국신민학교의 줄임말인 국민학교를 모르고 다녔다.
아직도 황국신민서사를 본뜬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조차도 불가능하다.
한국전쟁 시기 국군이 운영했던 군 위안소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으며 이런 사실이 자랑스럽게 국방부 공식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베트남에서 우리가 저질렀던 범죄에 대해서도 여전히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고 있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사진이 하나 있었다.
한 초등학교 교사의 전신문신 사진이었는데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많이 심해서 내아이가 중학생 정도가 아니라 그 초등학교 학생이라면 조금 꺼려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프랑스사회에서는 이 문신 남성이 초등학교 교사로 적합한가 않은가에 대해서 논쟁이 가능하다는 것이 내가 부러운 지점이었다. 우리 사회였다면 무조건 퇴출이었으리라고 본다.
타인에 대한 관용과 다름에 대한 인정 역시 군사주의적인 문화에서는 어렵고도 어렵다.
일본은 사실 더 답이 없어보인다. 길이 안보인달까?
혐한을 먹이로 하며 일본 우익은 어떤 악재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고, 오히려 확대되는 듯하다.
지난 9월 아베는 총리에서 퇴임하면서 다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일본의 우익은 어쨌든 야스쿠니신사를 국가 공식 추도원으로 격상시킴으로써 그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공식화시키고자 한다. 이는 결국 일본의 헌법 9조 - 자위대의 무력행사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조항의 개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에 일본의 혐한 우익의 득세, 그리고 자위대의 교전권 인정이 가져올 동북아의 새로운 지형 등 갑갑하기 이를데 없는 일본 내부다.
사실 일본의 시민사회에 대해서는 항상 궁금한게 많았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는 일본의 여러가지 해프닝들에 대해서도 우리야 바다 건너라고 웃긴다고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왜 일본 국민들은 저 꼴을 보고만 있을까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다.
이런 일본의 상황을 가져오는데는 전후 일본 시민운동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데 이 책에서 상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결국 1960년 6월 19일 자정이 되어 안보조약 개정안이 자동적으로 성립됨으로써 안보반대 사회운동 진영이패배하게 됩니다. 격렬했던 반대운동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지요. 한국에서는 4·19 혁명이 일어났던 바로 그 무렵입니다. 한국이었다면 개정안이 강행되더라도 곧장 폐기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하고 계속 이어갔을 것입니다. 정권을 바꿔서라도 목표를이루기 위해 투쟁했겠지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일단 법이 제정되어 실행되자 완전히 패배했다고 생각하고 포기해버렸습니다. 일본사회운동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 1960년부터 거듭해서 이런 경험을 하며 점점 패배주의가 쌓였고 사회운동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깊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 P241
1970년대 일본사회운동의 몰락은 이후 커다란 구조적 문제를 남겼습니다. 우선 운동세력 내에서 연대에 대한 불신이 강해졌습니다. 전학련, 전공투, 적군파 등 큰 조직에서 발생한 모순과 폐해를목격한 뒤로 수평적 연대를 하지 않는 경향이 생겨났지요. 지금도일본 공산당과 사회당은 절대 손을 잡지 않고, 시민운동단체들도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사회운동 조직은 갈수록 작아질 뿐 크게통합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사회운동이 권위주의적 체제 해체나 안보조약 폐지같은 큰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세울 수 있는과제들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여성운동, 원전 반대, 군사기지 반대, 장애인 해방, 소수민족 차별 해소 등으로 사회운동이 세밀하게 분화되었지요. - P248
일본이 자랑하는 역사 중에 만세일계(萬世一系)라는 것이 있다.
2,000년간 천황의 혈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는 것인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한번도 역성혁명을 겪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1,000년이나 이어졌던 무사정권도 천황을 허수아비로 두었을지언정 천황의 집안을 유지했다.
임진왜란에서 일본군이 조선에서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두려워했던 것이 의병의 존재였다.
일본의 경우 어떤 전쟁이든 전투가 벌어지고 우두머리가 항복하면 그것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인데, 왜 조선에서는 왕이 도망을 갔는데도 백성들이 싸우냐는 것이다.
강력하고 영원불멸한 권력에의 의지, 그에 대한 복종이 일본인 내면 유전자에 새겨져버린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희망은 결국 일본과 한국의 시민세력이다.
그들의 역사와 현재를 이야기 하는 이유도 한일관계를 제대로 협력과 평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양국 시민사회의 연대 이외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일관계의 어려움과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 역시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시민사회에서 No아베로 방향전환을 한것은 옳았지만, 그것이 국민의 전반적인 정서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이다.
많은 이들에게 No아베는 여전히 No일본이다.
지금은 코로나사태로 수면 밑으로 살짝 가라앉아 있는 듯 하지만, 오히려 그 수면 아래서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와 극일주의 적대적 감정들이 모락모락 키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한때는 시기와 부러움, 증오의 대상이었던 일본이 지금은 약간의 우월감과 냉소, 비웃음의 대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한일 양국에서 저 우익들과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강화되어지는 토양이 될 뿐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의 한일관계에서 일본과 한국의 사람들은 서로를 거울처럼 따라하며 닮아가고 있는듯도 하다.
어디에서부터 이 두 이웃나라의 문제를 풀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데 결국 희망은 시민사회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결론을 곰곰히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때다.
만약 한국이 계속해서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전면에내세운다면 일본 시민사회는 한국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극우주의에 전부 포섭될 것입니다. 그런 흐름은 일본의 헌법개정 및 동아시아 평화의 위협으로 이어지겠지요.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은 갈등과 혐오가 필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한국과 공통점이 많은 덕에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일본을 직시하고 배울 건 배우면서 연대해야 합니다. 그랬을 때 비로소 우리는진정한 과거사 청산은 물론이고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향해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P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