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기 2년 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내가 매우 못생겼다고 했다. 신혼 시절 장만한 리오네 알토 구역 산 지아코모 데이카프리가 꼭대기에 있는 집에서 아버지는 속삭이듯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나폴리의 모든 공간도, 얼어붙을듯 차가운 2월의 창백한 햇살도, 아버지가 내뱉은 문장까지도나만 혼자 그곳에서 살며시 빠져나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전히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빠져 헤매고 있다. 내게 완성된 이야기를만들어주려는 문장들 사이에, 실은 무의미한 문장들일 뿐인데,
진정 나의 것은 아무것도 담지 못했는데,
나는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하지도 완결 짓지도 못했다. 내 글은 혼란일 뿐, 이야기가 제대로 전개되고 있는지, 그저 구원 없이일그러진 고통의 나열일 뿐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지금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이마저도,
- P9

고모와의 두 번째 만남은 첫 만남보다 더 강렬했다. 나는 그때처음으로 짧은 순간에 모든 감정을 욱여넣을 수 있는 공간이 내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들통난 거짓말에 대한 부담감, 부모님을 배신했다는 수치심, 그들이 받았을 상처로 인한 괴로움은 어머니가 현관문을 닫는 순간 철로 만든 새장 같은 엘리베이터 유리문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건물 입구를 지나 차에 들어가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빅토리아 고모 옆에 앉는 순간, 나는 생소한 감정을 경험했다.
- P91

고함을 치는 고모의 눈빛은사납고 비통해 보였다. 입안에 고인 하얀 침이 가끔 입술에 튀었다. 빅토리아 고모는 내가 고모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 깨닫게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 고모를평생 좋아해주고 감사한 마음으로 노년의 버팀목이 되어주기를바란 것이었다.
- P246

어느 날 저녁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네 아빠는 너보다도 어려. 너는 그새 자랐는데 그이는 여전히어린애 같아. 네 아빠는 평생 자라지 않을 거야. 놀랍도록 똑똑하고 자신만의 놀이에 심취한 아이로 남겠지. 그래서 잘 돌봐주지않으면 다칠 거야. 어렸을 때부터 그런 네 아빠의 특성을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오히려 지금보다 그때가 더 성숙해 보였지."
어머니는 자신이 아버지를 잘못 봤다는 걸 알았지만 그런데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 P287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언제든 검은 베일이 드리워질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눈이 멀어서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고 부딪힐 수 있다. 어떠한 한계를 넘어가면 모든 사람이 앞을못 보게 되는 걸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만 그러는 걸까. 인간의본모습은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볼 수 있을 때 드러나는 걸까, 아니면 증오나 사랑처럼 농도가 짙고 무거운 감정에 의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질 때 드러나는 것일까. - P376

이렇게 보니 평범해 보이네."
나는 로베르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니, 그의 수많은 재능 중에는 자신을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능력도 있는 거야."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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