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쓰기의 ‘세 요소가 정삼각형 같은 형태라고 생각하지않는다. 이들은 상호 보완적이거나 대립하지 않는다. 핵심은 윤리다. 소재에 대한 태도와 글쓰기 방식이 정치적 입장과 미학을결정한다.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 사상의 핵심은 재현의 윤리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듣는가. 누구의 목소리가 큰가.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사람들이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인가. 사회는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이러한 권력 관계의 동학은 교육 현장, 출판 시장, 미디어 같은 구체적인 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글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 P15

타자화(他者化)란 "나는 그들과 다르고 그 차이는 내가 규정한다."는, 이른바 ‘조물주 의식‘이다. 이러한 자기 신격화는 민주주의와 예술의 적이다. 윤리적인 글의 핵심은 다루고자 하는 존재(소재)를 타자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남을 억압하는 사람은 자신을해방하지 못한다. 실천적이고 진보적인 글은 불쌍한 이들에 대한 리포트가 아니라 글쓰기 과정에서 재현 주체와 재현 대상의권력 관계를 규명하고, 다른 관계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 P15

"그들의 상황은 이렇다." (숭배, 연민, 공감……), "나는 그들로부터 현실을 배웠다."는 식의 글쓰기나 초월적 주체들의 ‘힐링의서(書)‘는, 나쁜 글로 보이지 않는다. ‘우월한 자신‘을 재생산하는 이러한 글쓰기가 바로 폭력이요, 지배의 재생산이다. 오리엔탈리즘과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언설이 가장 광범위하고 역사가깊은 예다. 자신을 주체(one)로 상정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삼아. 나를 제외한 나머지들 (the others)‘로 세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 P16

생각해본다. 나는 타인에게삶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인가. 인간에 대한 혐오로 죽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하는 사람인가. 우리 사회는 구성원들이 ‘어쨌든 살아보자‘는 의욕을 일으키는 매력적인 곳인가.
고통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가능성뿐이다. 생사의 갈등으로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 제시되어야 할 것은 미지라는 기대가 있는 사회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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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7-26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희진씨의 첫 책을 좀 어렵게 읽어서 그런가 그 이후로는 쳐다보지 않게 되네요. ^^;; 하지만 올려주신 글 잘 읽었어요.

바람돌이 2020-07-27 23:58   좋아요 0 | URL
저도 첫 책은 어려웠어요. 머리 싸매며 읽었던 기억이... ㅎㅎ 이 책은 그 정도는 아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