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서경식씨 책으로 읽은게 이번이 4번째인가 싶다.
근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그저 한 작가가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잘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그의 글 자체보다도 그가 가진 태생적인 슬픔이 내내 나를 끌고 다녔다. 
연인에게 손을 내밀듯 그의 아픔을 다독거려주고 싶은 심정이라고나 할까? 

디아스포라라는 생소한 단어는 원래는 '이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한다.

서경식씨는 이것을 좀 더 확대하여 근대의 노예무역, 식민지배, 지역분쟁 및 세계 전쟁, 시장경제 글로벌리즘 등 몇가지 외적인 이유에 의해, 대부분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있던 공동체로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쓰고 있다.
결국 재일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서경식씨 자신이 바로 그 디아스포라인 셈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강제적으로 벗어난 그들은 무엇하나도 확정적인 것이 없다.
그 사회에 속해있는 다수자들에겐 확고하고 안정적인 것들이 대부분 그들에겐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불안의 원인들이 된다.
나처럼 한국땅에서 당연히 주어진 국적과 모어와 모국어의 일치를 당연시하고 한국내의 공동체에 뿌리내린 삶은 고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원래부터 그렇게 주어진 것일 뿐이다. 

그러면 서경식씨 같은 재일 조선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들은 우리와 같은  공동체적 기반을 가진 사람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일본땅에 살고있는 그저 타자일 뿐인것일까?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일본 사회, 한국사회 어디에서도 소수자일뿐이며 두곳의 경계 어디쯤에서 늘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는 존재다.
숙명적 슬픔? 나같은 정착민은 근원적으로 이해할 수없는 그런 종류의 슬픔. 
그런 슬픔은 어떻게 안을수 있을까?
손잡음의 연대는 언제나 서로에 대한 동일시의 애정에서 시작된다.
너와 내가 같은 슬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그 연대감.
하지만 재일조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타자에 대한 경계 아니면 연민이다.
연민은 경계보다 낫긴 하지만 그것은 대등한 관계는 아니다.

그러면 정답은 있을까?
서경식씨가 이 책에서 명시적으로 그 정답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이 세계의 수많은 망명자들 - 마르크스, 프리모 레비, 한나 아렌트, 재일조선인 예술가인 문승근 - 을 찾고 소개하면서 그는 그들이 바라보던 세상에 대해 얘기한다.
타자의 눈을 통한 세계 읽기. 그것은 정녕 내부자의 시선과는 다르다. 
이미 가진자의 시선으로 보는것은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무의미하다.
근대적 국가와 민족의 시선으로 무언가를 보는것은 이미 그것이 억압과 배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그는 그의 글을 통해 낮은 톤으로 얘기한다.
그가 목소리 높여서 주장하지 않는것도 어쩌면 그의 태생적 슬픔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진실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전달될 수 있는 힘을 가진다고 믿는다.
그의 나직하고 담담한 말속에서 나는 내부로는 너무나도 강렬한 열망을 만난다.
국경과 민족의 경계를 초월하는 인류애적인 발상. 그것이 세계를 이 암흑의 구덩이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나와 타자의 구별이 아니라 인간임으로 우리는 같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가 존중받아야할 존엄한 존재라는 것 - 그것이 어쩌면 디아스포라적인 가치관이 아닐까?
멀어보이지만 그래도 진리는 나직이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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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2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읽어야 할 책이 또 하나 늘었네요. 감사 ^ ^.

바람돌이 2007-05-25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관심가져주시는데 제가 더 감사하지요. ^^

난데다로 2008-10-02 0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겨레 신문 디아스포라의 눈에서 서경식 교수가 쓴 글에 인용이 됐길래 찾아와 봤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14751.html

바람돌이 2008-10-02 23:32   좋아요 0 | URL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니 1년도 더 전의 글이네요. 전 못보고 지나갔는데 이렇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은 부끄럽고 또 조금은 기분좋은 하루였습니다. ^^ 근데 이런건 어떻게 찾아내신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