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한 남자가 있다.
노년이고 얼마전에 폐암에 걸렸으나 극복했고....
하지만 다행인건 그것 뿐이고 늘그막에 이혼해 혼자가 되었으며 하나뿐인 딸은 말다툼 끝에 연락도 없고..
처분한 재산으로 죽기에 좋은 곳이 어딜까 싶어 뉴욕 브루클린 한 복판으로 이사를 온 남자.
희망도 없어보이고 그저 그렇게 시간을 죽이다가 조용히 사라질 것 같은 남자.

네이선이라는 이 남자의 얘기는 시작은 적막하고 메마르고 권태롭다.
그런데 그에게 변화가 생긴다.
주변의 누구에게도 관심없이 여기저기를 방황하던 그에게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조카가 나타나고
그를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 나간다.
다시 싹트는 애정은 딸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사과의 편지를 쓰게 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리게 한다.
관심은 사랑의 출발점이다.
네이선은 이제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

온갖 인종이 모여있고 대체로 가난하고 그래서 인종분쟁이 끊이지 않는 브루클린이라는 도시는 돌연 활기를 띤다.
그것이 도시 전체를 바꾸진 못하지만 그래도 어떤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바로 사랑과 관심이 말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은 어쩌면 오늘의 브루클린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산다는게 뭐 그리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듯 온갖 등장인물들은 남들은 모르는 자신들만의 문제를 등에 업고 허덕거린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다는건 다 그렇게 한 두개씩의 커다란 짐을 인간의 등짝에 올려놓는 일이지 않던가?

중산층으로 가장 만족스럽게 사는 것처럼 보이던 레이첼도 이혼의 위기에 떨고 있고
사랑을 잃은 푸에르트리코의 흑인 청년은 그 오열을 마지막 공연으로 표현하고,
미국의 젊은 세대의 대표일것같은 로리는 사랑의 실패를 거듭한 연후에 이제는 배신당하지 않을 것 같은 완전히 새로운 사랑에 정착한다.
모든 인간들은 사랑의 상실에 슬퍼하고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기대한다.
그 사랑이 그들을 그 도시를 구해주기를....
그들의 삶에 희망의 빛이 되기를 작가는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다.

폴 오스터의 소설치고는 드물게 따뜻한 시선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이 책은
어쩌면 브루클린이라는 도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그의 희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얼마나 기묘한 것인지를 생각한다면 소설속의 과장된 우연들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의 희망이 덧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희망이 사람을 살게 하지 않던가?
사랑이 사람을 살게 하는 것처럼....

브루클린 풍자극이라는 제목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오히려 이 책은 브루클린이라는 도시에 바쳐진 사랑의 송가에 가깝다.
역설적인 제목은 어쩌면 그 사랑이 부질없음에 대한 작가의 한탄은 아닐까?
그래도 폴 오스터의 시선은 따사롭다.
부디 그의 글이 풍작극이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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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2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애착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바람돌이 2006-12-27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산타님. 이 책속엔 폴 오스터의 브루클린 사랑이 담겨있다는 느낌을 가득 받았답니다. 동시에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