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에 발표했던 글을 한편 올립니다. 아직 좀더 다듬어야 되는 글인데, 한번 읽어보시고 지적할 점들이 있으면 메일을 보내시거나 답글을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원래 결론 부분에 인간학적 함의에 관한 두 세쪽 정도의 내용이 더 붙어 있는데, 일단은 생략했습니다. 관련된 논의를 잘 모르면 좀 지루하실 텐데, 그럼 그러려니 하고 넘기시면 됩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야 원래 좀 사소한데 목숨거는 사람들이니까요.^^ 제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 역시 완성된 글이 아니므로 인용은 불허합니다.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은 자기모순적 개념인가?



서론: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통상적 이해

자기원인(causa sui) 개념은 신 또는 자연(Deus sive Natura)이나 코나투스(conatus) 개념 등과 더불어 스피노자 철학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간주되어 왔으며, 이는 그럴 만한 자격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기원인 개념을 스피노자 철학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더 많이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곧 자기원인 개념은 형용모순이거나 또는 적어도 불가해한 어떤 것으로, 이는 스피노자 철학의 신비적이고 불가해한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는 것이다.
  이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쉽게 입증될 수 있다. 1870년대에 쓰여진 유명한 한 편지에서 스피노자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을 극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던 니체는 『선과 악을 넘어서』의 한 구절에서 자기원인 개념을 “자기원인은 오늘날까지 사유된 것 중에서 가장 멋진 자기모순이며, 일종의 논리적 강간, 반(反)자연적 행동이다.”(Nietzsche 1999, 35쪽/Nietzsche 2002, 41쪽―번역은 수정)[국역본은 니체의 신랄한 어조를 너무 점잖게 표현하고 있다.]라고 조롱섞인 어조로 폄훼하면서, 이를 “뮌히하우젠을 능가하는 무모함”(같은 곳)으로 간주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이데거는 『동일성과 차이』의 한 구절에서 “근거(Grund)라는 의미에서 존재자의 존재는 근본적으로(gründlich) 자기원인으로밖에는 표상될 수 없다. 형이상학적 신 개념은 이렇게 불린다”(Heidegger 1957, 64쪽/ Heidegger 2000, 쪽)고 간주함으로써, 자기원인 개념을 서양의 존재-신-학적 형이상학이 도달하게 되는 모순적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원인 개념의 수용과 관련하여 좀더 징후적이고 의미있는 사례는 헤겔에서 발견된다. 헤겔은 초기 저작에서부터 후기 저작에 이르기까지 계속 스피노자 철학과의 대결을 자신의 철학적 작업의 중요한 한 과제로 간주했으며, 이러한 대결에서 자기원인 개념은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초기 저술인 『변증법과 회의주의』(1802)에서 헤겔은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은 설명과 더불어 그의 『윤리학』을 시작하고 있다: “나는 자기원인을, 그것의 본질이 현존재(Dasein)를 자기 안에 포함하는(in sich schließt) 것으로, 또는 그것의 본성이 실존하는(existierend) 것으로밖에는 파악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본질이나 본성의 개념은 실존으로부터 추상됨으로써만 정립될 수 있다. 곧 하나는 다른 하나를 배제한다. 이렇게 각자가 타자와 대립하는 한에서 각자는 규정될 수 있다. 양자가 결합하여 하나의 통일된 것으로 정립될 경우, 양자의 결합은 모순을 포함하고 따라서 양자는 함께 부정된다.(Hegel 1971a 229쪽; Hegel 2003 40-41쪽)

이 인용문이 보여주다시피 헤겔은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대개의 평가와 정반대로 자기원인 개념의 중요성을 그 모순성에서 찾고 있다. 이는 헤겔이 보기에는 자기원인 개념이야말로, 유한한 지성이 파악하는 규정들을 절대화하는 독단론 및 이들의 한계를 반성함으로써 이들을 반박하는 회의주의에 맞서 이성의 우위를 확립할 수 있게 해주는 토대를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겔은 조금 뒤에서는(같은 책, 76-77쪽) 자기원인 개념을 독단적 회의주의의 반대 원리로 설정하고 있다. 반면 헤겔은 나중의 『철학사 강의』(1830)에서는 자기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좀더 부정적으로 논평하고 있다.

사유와 실존의 통일은 곧바로 동시에 정립된다[본질은 일반적인 것, 사유다―헤겔의 추가]. 영원히 문제가 될 것은 바로 이 통일이다. 자기원인은 중요한 표현이다. 결과는 원인과 대립한다. 자기원인은 결과를 산출하고 타자를 분리시키는 원인이지만, 이것이 밖으로-내놓는(hervorbringt) 것은 바로 자기자신이다. 이러한 밖으로-내놓음에서 자기원인은 또한 차이를 지양한다. 자기를 하나의 타자로 정립하는 것은 퇴락임과 동시에 이 퇴락의 부정이다. 이는 철저하게 사변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원인은 어떤 결과를 산출하며, 결과는 원인과 다른 어떤 것이라고 표상한다. 반대로 여기서는 원인의 외출(das Herausgehen der Ursache)는 곧바로 지양되며, 자기원인은 자기만을 산출한다. 이는 모든 사변에 근본적인 개념이다. 이는 원인이 결과와 동일한 무한한 원인이다. 만약 스피노자가 자기원인 안에 포함된 것을 좀더 정확하게 발전시켰다면, 그의 실체는 부동적인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Hegel 1971b, 168쪽)

다시 말해 헤겔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자기원인에 담겨 있는 근본통찰, 곧 원인과 결과의 대립의 지양이라는 통찰을 변증법적으로 전개시키지 못한 채, 자기원인을 통해 표현되는 절대자를 무매개적으로 전제함으로써, 결국 부동적인 절대자를 주장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헤겔의 주장은 우리의 논의와 관련하여 두 가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첫째, 헤겔은 자기원인 개념 수용의 핵심은 이 개념의 자기모순성에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둘째, 더 나아가 헤겔은 이러한 개념적 자기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결국 사변적인 변증법적 해석에 있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보여준다[헤겔의 스피노자 해석에 대한 좀더 상세한 고찰과 반비판으로는 특히 Macherey 1990/Macherey 2004를 참조.].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원인 개념을 스피노자 철학의 중심개념으로 간주하고 있음에도, 그리고 이 개념이 『윤리학』의 첫번째 정의라는 매우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이 개념을 중심적으로 다루는 스피노자 연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겉보기에는 매우 역설적으로 보이는 현상은 사실 그리 놀라울 게 없는 것으로 보인다[『윤리학』 주석서 중에서 가장 상세한 논의는 Gueroult 1968에서 볼 수 있지만, 게루의 논의에는 비판받을 소지가 여럿 담겨 있다. Robinson 1928이나 Macherey 1998은 간략하고 일반적인 논의만 제시해 주고 있다. 그 이외의 단행본 연구서로는 Huan 1914에 비교적 상세한 논의가 나와 있으며, Rousset 1996은 데카르트와 관련하여 한 두 가지 흥미로운 비교 결과를 보여 주고 있고, Scala 1998은 『윤리학』의 기하학적 논증 방법과 관련하여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몇 가지 좋은 지적을 제시해 주고 있고, Kaplan 1998은 스피노자의 기하학적 방법에 관해 비판적으로 논의하면서 자기원인 정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연구논문들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다. Breton 1974; 1983; 2001은 신플라톤주의와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 사이의 관련성에 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으며, Narbonne 1995는 스토아학파와 스피노자 철학의 연관성을 검토하고 있지만, 상세한 텍스트 분석은 없이 다소 막연한 개략적 비교에 머물러 있다. Wilson 1991은 『윤리학』 1부 공리 4의 인과율 공리와 관련된 맥락에서 자기원인 개념을 간략하게 고찰하고 있다.]. 자기원인 개념이 명백한 형용모순적 성격을 보여 주고 있고, 따라서 사변적인 해석 이외에 이 개념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협소하다면, 이 개념을 중심적인 논의대상으로 삼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스피노자 이후에만 생겨난 현상이 아니라 스피노자 이전에 여러 철학자들이 이 개념에 대해 공통적으로 보여준 반응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우리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능성이다. 이 개념에 대한 통상적인 수용방식들은 이 개념이 보여 주는 외양적인 형용모순적 성격에만 치중함으로써 이 개념이 스피노자 철학, 특히 『윤리학』에서 지니고 있는 의미와 기능을 간과해 왔다. 자기원인 개념이 『윤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는 통상적인 이해방식이 가정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이유, 다른 기능 때문이다. 따라서 스피노자 철학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의미와 기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이 개념이 『윤리학』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방식을 문헌학적으로 꼼꼼하게 분석해야 하는데, 이 분석을 통해 우리는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정의 및 이 정의가 『윤리학』에서 활용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이러한 독특성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윤리학』 이전의 초기저작에서 자기원인이 사용되는 방식 및 이러한 용법이 데카르트가 『『성찰』 반론들에 대한 답변들』에서 이 개념을  사용하는 용법과 맺고 있는 관계를 밝히는 게 필요하다. 이는 첫째, 자기원인 개념이 초기 저작에서 『윤리학』으로 나아가면서 변화하고 정정되는 방식을 보여줄 것이며, 둘째, 이러한 변화와 정정이 데카르트의 자기원인 개념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보여줄 것이다. 끝으로 이런 분석이 이루어지면, 스피노자 철학에서 자기원인 개념은 목적론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론에 대한 비판을 통해 내재적인 인과론을 확립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이 드러날 것이며, 이는 『윤리학』 후반부의 인간학적,윤리적 논의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해 준다는 점이 밝혀질 것이다[지금부터 스피노자 저작은 다음과 같은 규칙에 따라 약어로 표기하겠다. 『윤리학』의 경우 영문 E는 저작을 표시하고, 로마자(I, II, ...)는 1부, 2부 등을 표시하며, D는 정의, A는 공리, P는 정리를 가리키고, 그 다음의 숫자는 정의와 공리, 정리의 숫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소문자 d는 증명, c는 따름정리, s는 주석을 나타낸다(예: E I P25s → 『윤리학』 1부 정리 25의 주석). 그리고 『소론』의 경우 KV는 저작을 표시하고, 로마자 I, II는 1부와 2부를, 아라비아 숫자 1, 2, 3은 각 부의 장을, 그리고 § 기호 다음의 숫자는 각장의 절수를 표시한다. 아울러 알파벳 약어들은 『윤리학』과 마찬가지로 정의, 공리, 정리, 증명 등을 뜻한다(예: KV II, 17, §5 → 『소론』 2부 17장 5절). 『지성교정론』의 경우는 TIE는 저작이름을, 숫자는 절수를 가리킨다. 그리고 『서한집』은 EP로 표기하고, 해당 편지의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하겠다. 또한 필요한 경우에는 스피노자 고증본 전집(Spinoza 1925)의 해당 권수와 쪽수를 적어 두었으며, 관례에 따라 G라는 표기로 저작 이름을, 로마자로 권수를, 아라비아 숫자로 쪽수를 지시했다(예: G I 47 → Spinoza 1925의 1권 47쪽).].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텍스트 분석

1) 자기원인에 대한 정의의 독특성

  따라서 우리는 스피노자 원전으로 돌아가서 좀더 세심하게 텍스트를 분석해 볼 생각인데, 먼저 자기원인 개념이 사용되는 『윤리학』 1부의 텍스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윤리학』에 제시되고 있는 자기원인 개념은 텍스트상으로 몇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을 보여 준다.
  우선 자기원인 개념의 위치에 주목하는 게 필요하다. 자기원인 개념은 『윤리학』 1부인 신에 대하여(De Deo)의 첫번째 정의의 대상을 이루고 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ordine geometrico demonstrata)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윤리학』은 엄밀한 연역적 체계를 지닌 저작인데, 제 1부, 그것도 제일 첫번째로 자기원인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개념이야말로 『윤리학』, 또는 적어도 신에 대하여의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의미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위에서 우리가 인용했듯이 헤겔이 자기원인 개념을 시초의 절대자로 제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개념의 상징적 위치에 주목한 결과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자기원인 개념은 『윤리학』은 신에서 출발하고, 마지막 5부인 지성의 역량에 대하여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De Potentia Intellectus, seu de Libertate Humana)에 나오는 신의 지적 사랑(Amor intellectus Dei) 개념이 가리키듯이 결국은 신과의 합일을 통해 자유에 이르게 된다는,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일반적 통념을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1) 자기원인 개념이 절대자 또는 신을 표현하고 있으며, 2) 『윤리학』의 논증방식, 또는 적어도 서술방식이 엄밀한 순서에 따르고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데 반해, 적어도 『윤리학』의 텍스트는 이런 가정들을 그 자체로 확인시켜 주지는 않는 것 같다. 또는 반대로 『윤리학』의 텍스트는 문자상으로는 주목할 만한 비규정성 내지는 다의성을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자기원인 개념의 정의가 표현하는 문법적,의미론적 비규정성이 존재한다. 스피노자는 자기원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나는 자기원인을, 그 본질이 실존을 함축하는 으로, 또는 그 본성상 실존하는 것으로밖에는 인식될 수 없는 으로 파악한다.”[“Per causam sui, intelligo id, cujus essentia involvit existentiam, sive id, cujus natura non potest concipi, nisi existens.”] 문법적인 차원에서 우선 주목할 만한 것은 우리가 “것”으로 번역한 “id”라는 중성지시대명사다. 이는 완전히 비규정적인 표현으로서, 단어 그 자체만으로는 절대자 또는 실체만이 아니라, 양태, 곧 사람이나 기타 사물 중 그 어떤 것이든 가리킬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스피노자가 자기원인이라는 개념으로 신 또는 절대자를 표현하려고 했다면, 왜 그는 곧바로 “나는 자기원인을, 그 본질이 실존을 함축하는 신으로, 또는 인 신으로 파악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왜 『윤리학』, 그것도 1부의 첫머리에 제시된 정의에서 그는 좀더 엄밀하고 분명한 규정을 제시하지 않고, “id”라는 매우 비규정적인 지시대명사를 사용하고 있을까? 이는 하나의 단순한 언어적 표현의 문제에 불과한 것인가? 이것이 자기원인 정의와 관련하여 첫번째로 제기되는 물음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규정성은 우리가 자기원인 정의의 내용을 살펴볼 경우 또다른 측면을 드러낸다. 문제는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정의가 스피노자 자신의 고유한 개념적 규정들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정의를 살펴보면 정의에 나오는 “그 본질이 실존을 함축하는”이나 “그 본성이 실존하는 것으로밖에는 인식될 수 없는”이라는 규정은 스피노자가 자신의 정의에 고유하게 부여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뒤에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지만, 데카르트가 『성찰』이나 『『성찰』 반론들에 대한 답변들』에서 신존재증명의 문제와 관련하여 제시하고 있는 규정들이다. 곧 데카르트는 『다섯번째 성찰』에서 “항상 실존한다는 것이 신의 본성에 속하고 있음”(AT VII, 65)[데카르트 저작은 관례에 따라 AT라는 약칭 다음에 권수(로마자)와 쪽수(아라비아 숫자)를 표기하겠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Descartes 1973, 곧 알퀴에(Alquié)판의 쪽수를 같이 인용하겠다. 『성찰』의 경우 대개 국역본(Descartes 1997)의 번역을 따랐지만, 필요에 따라 일부 수정한 곳이 있다.]이라고 하거나 “실존하지 않는―곧 어떤 하나의 완전성이 빠져 있는―신을―곧 지고하게 완전한 존재자를―생각하는 것은 골짜기 없는 산을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모순이다”(같은 책, 66)라고, 또는 “신을 실존하는 것으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67)고 하고, “나는 그 본질에 실존이 귀속되는 것은 신 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68)고 말하고 있다. 이는 스피노자가 자기원인의 내용으로 제시하는 규정은 데카르트가 신의 실존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이미 여러 가지 표현으로 제시한 규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는 곧 스피노자 자기원인 정의의 특징은 널리 알려져 있는(또는 적어도 “흔히 말하는”(ut vulgo dicitur)) 내용을 인과적인 형식으로 제시했다는 데 있다. 곧 자기원인이 내용상으로 기존에 널려 알려진 내용을 제시하는 데 불과하다면, 이는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정의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표현이라는 점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 정의의 핵심은 바로 개념적인 내용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인과적인 표현방식에, 그리고 그것의 비신학적 기능에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텍스트 분석은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낳는다. 1) 왜 스피노자는 『윤리학』 제 1부의 첫번째 정의에서 이처럼 문법적,의미론적 비규정성을 제시하고 있는가? 2) 역으로 자기원인 정의의 내용이 기존에 널리 알려져 있는 내용과 다를 게 없다면, 이를 인과적인 표현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3) 왜 스피노자는 자기원인 정의를 신에 대하여의 첫번째 정의로 제시하고 있을까?

2) [신에 대하여]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이례적인 용법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잠시 뒤로 미뤄 두고, 그 다음에는 이 개념이 『윤리학』에서 활용되는 용법을 검토해 보는 게 필요하다. 『윤리학』에서 자기원인 개념은 1부에서만 사용되고 있으며, 그것도 단 6차례, 곧 정의 1(G II 45), 정리 7의 증명(G II 49), 정리 12의 증명(G II 55), 정리 24의 증명(G II 67), 정리 25의 주석(G II 68), 정리 34의 증명(G II 77)에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윤리학』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용법은 자기원인에 대한 정의만큼이나 독특한 특징을 보여 준다. 첫째 자기원인 개념은 네 번의 증명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증명의 기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정리 7의 증명이다. 정리 7은 “실체의 본성에는 실존함이 속한다”(Ad naturam substantiae pertinet existere)이며, 이 정리에 대한 증명은 “[A] 실체는 다른 사물에 의해 생산될 수 없다(앞의 정리의 따름정리에 따라). [B] 따라서 이는 자기원인일 것이다. [C] 곧 (정의 1에 따라) 그 본질은 필연적으로 실존을 함축한다. 또는 그 본성에는 실존함이 속한다”(Substantia non potest produci ab alio(per Coroll. Prop. praeced.); erit itaque causa sui, id est(per Defin. 1), ipsius essentia involvit necessario existentiam, sive ad ejus naturam pertinet existere)이다. 이 정리의 증명의 특징은 A와 B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스피노자는 “실체는 다른 사물에 의해 생산될 수 없다”고 말한 뒤에 곧바로 “따라서 이는 자기원인일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정의 1에서 표현된 자기원인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당한 증명이라면 오히려 A에서 어떻게 C라는 내용이 논리적으로 따라나오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마지막에 B, 곧 “따라서 이는 자기원인일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본다면 스피노자의 논증은 (A) “실체는 다른 사물에 의해 생산될 수 없다”면, 이는 곧 자기자신에 의해 실존한다는 것, 곧 (C) “그 본질은 필연적으로 실존을 함축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곧바로 반론이 제기되듯이(Scribano 2002, 223쪽) 이는 자기자신에 의해 실존하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곧 그것이 단지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을 전제하는 것이다[이것이 더 주목할 만한 이유는 스피노자가 증명을 할 생각이었다면, 충분히 올바른 증명의 형식을 갖추어서 증명을 제시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칼라가 보여주듯이 다음과 같은 증명이 가능하다. “만약 스피노자가 이를 증명하려 했다면, 정리 6의 두 번째 증명의 모델 위에서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리 4에 따르면 결과에 대한 인식은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하고, 이를 함축한다. 그런데 실체에 대한 인식은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실체는 자기자신에 의해 인식되기 때문이다(공리 2에 의해. “다른 사물에 의해 인식될 수 없는 것은 자기자신에 의해 인식되어야 한다.”). 따라서 실체는 필연적으로 자기원인이다.” Scala 1998 p. 115. 이는 스크리바노, 또는 그 이전에 라이프니츠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스피노자가 어쩔 수 없이 논리적 궁지에 몰려서 자신의 증명을 제시하지 못한 게 아니라, 스피노자가 여기에서 증명을 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 또는 적어도 신의 실존증명과 관련된 증명을 제시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징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또하나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정리 12의 증명에서 자기원인 개념이 사용되는 기묘한 방식이다. 방금 본 것처럼 스피노자는 정리 7의 증명에서 자기원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정리 12의 증명에서는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전거를 정리 7에서 찾지 않고, 정리 6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정리 12. 그로부터 실체가 분할될 수 있다는 점이 따라나올 수 있는 실체의 속성은 참되게 인식될 수 없다. <증명> 사실 실체가 분할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부분들은 실체의 본성을 보유하거나 아니면 보유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앞의 경우라면 (정리 8에 따라) 각각의 부분은 무한해야 하며, (정리 6에 따라) 자기원인이어야 하고 ...”(Propositio XII. Nullum substantiae attributum potest vere concipi, ex quo sequatur, substantiam posse dividi. <Demonstratio> Partes enim, in quas substantia, sic concepta, divideretur, vel naturam substantiae retinebunt, vel non. Si primum, tum (per 8 Prop.) unaquaeque pars debebit esse infinita & (per Prop. 6) causa sui & ...)]. 영어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편집본 중 한 권인 『스피노자 저작집』 1권의 편집자인 에드윈 컬리(Edwin Curley)는 이러한 변칙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무런 문헌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문의 “정리 6에 따라”를 “정리 7에 따라”로 바꿔 놓고 있을 정도다(Spinoza 1985, 411쪽 주 11) 참조).
   둘째, 자기원인 개념이 보여주는 또다른 변칙적 성격은 이 개념이 신존재증명에서는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곧 『윤리학』에서 신의 실존에 관한 네 가지 증명이 제시되고 있는 정리 11의 증명과정에서는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데카르트에서 이 개념의 용법이나 『윤리학』 이전의 저작에서 이 개념의 용법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변칙, 이례성이다.
  이처럼 『윤리학』 1부의 자기원인에 대한 정의가 보여주는 독특한 성격 및 1부의 전개과정에서 자기원인 개념이 사용되는 용법의 변칙적인 성격은, 우리가 보기에는 앞서 우리가 제기한 세 가지 질문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이 질문들에 곧바로 답하기 이전에  『윤리학』 이전의 저작에 나타나는 자기원인 개념의 용법들을 살펴 봄으로써, 문제의 범위를 좀더 정확하게 한정해 보기로 하자.

3) 『윤리학』 이전 저작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용법

『윤리학』 이전의 저작에서 자기원인이라는 표현은 여러번 사용되고 있다. 『지성교정론』에서는 단 한 차례(92절) 사용되고 있고(G II 34)), 『윤리학』이 저술되기 이전의 서신교환[대다수의 연구자들은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1663년경에 저술이 시작되어 1665년경에 네덜란드어 번역 및 출간계획이 논의되다가 『신학정치론』(1670)을 집필하는 동안 작업이 중단된 후, 그 이후부터 다시 작업이 재개되어 1675년경에 대략 현재 남아있는 형태의 『윤리학』으로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1663년 이전의 서신교환, 특히 올덴부르크와의 2-4번째 서신교환은 『윤리학』 이전 시기의 스피노자의 ‘존재론적’ 사유방향을 더듬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에서도 한 차례 사용되고 있지만(G IV 11), 네덜란드어 번역본만 남아있는 『소론』에서는 라틴어의 “causa sui”에 해당하는 “oorzaak van zich”라는 표현은 8번 등장한다[ KV I, 1, §10(G I 18), I, 3, §2(G I 36), I, 7, §8(G I 46), I, 7, §12(G I 47), I, 9, §2(G I 48), II, 17, §5(G I 86) 부록 I, A6(G I 114), 부록 I, P3d(G I 115).]. 『윤리학』 이전의 용법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지성교정론』과 『소론』 2부 17장 5절에서의 용법이다. 스피노자는 『지성교정론』 92절에서 “만약 사물이 자기 안에 있다면, 또는 흔히 말하듯이 자기원인이라면”(si res sit in se, sive, ut vulgo dicitur)(G II 34)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첫째, 자기원인 개념은 “흔히”, “보통”(vulgo) 말하는 방식이지만, 둘째, 그 실재적 내용은 “자기 안에 있음”(in se)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성교정론』의 용법에 따른다면, 자기원인은 “자기 안에 있음”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 그것도 그렇게 썩 미덥지 않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소론』 2부 17장 5절에서는 자기원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욕망은 자유롭다고 말한다면, 이는 마치 이 욕망 또는 저 욕망이 자기원인이라고, 곧 그것은 그 자신이 존재하기 전에 자신이 실존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이는 부조리 그 자체이며, 성립할 수 없다.”(G I 86) 그런데 여기서 스피노자가 “부조리 그 자체”로 한 마디로 일축하고 있는 관점은 우리가 위에서 자기원인에 대한 통상적인 관점이라고 부른 것, 곧 니체가 조롱하고, 헤겔이 사변화한 자기자신에 대한 자기의 시간적 선행성이라는 관점이다. 이는 스피노자 자신이 통상적인 자기원인 개념의 불가능성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윤리학』 1부의 자기원인 개념은 이와는 다른 개념이라는 점을 명료하게 보여 준다.   
  그런데 『윤리학』 이전 저작에서 나타나는 자기원인의 용례에서 좀더 주목할 만한 것은 자기원인 개념이 선험적 신증명의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소론』에서 자기원인에 관해 비교적 명시적인 규정을 제시하고 있는 두 가지 용례에서 분명히 나타나는데, 이 두 용례는 모두 후험적 신증명에 대한 선험적 신증명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가 신의 실존을 선험적으로도 후험적으로도 모두 증명할 수 있다는 점이 명석하게 따라나온다. 사실은 선험적 증명이 더 낫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후험적으로] 증명하는 것들은 자기자신을 통해 알려지는 게 아니라 외적 원인들을 통해서만 알려지기 때문에 명백한 불완전성을 지니고 있고, 따라서 그것들의 외적 원인들에 따라 증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물의 첫 번째 원인이자 자기원인인 신은 자기자신을 통해 스스로를 알려 준다. 따라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는 것―신은 가정상 아무런 원인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선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1부 1장 10절(G I 18)) “세번째 주장―신은 선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과 관련하여 우리는 이미 여기에 대해 앞서 답변한 바 있다. 신은 자기원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신을 통해 그를 증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이러한 증명은 대개 외적 원인들로부터만 진행하는 후험적 증명보다 더 확실하다.”(1부 7장 12절(G I 47)) 따라서 이 두 가지 용례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선험적 증명은 후험적 증명보다 우월한데, 이는 선험적 증명은 자기원인으로부터 증명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런데 역으로 스피노자는 후험적 증명의 열등성은 외적 원인으로부터 진행한다는 데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기원인 개념의 중요성은 이것이 바로 내적 원인이라는 데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윤리학』 이전의 저작에 나타나는 자기원인 개념의 용법상의 특징은 1) 스피노자가 이해하는 자기원인 개념은 “자기자신에 대한 자신의 시간적 선행성”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며, 2) 이 개념은 신의 실존에 대한 선험적 증명의 우월성의 근거라는 것, 3) 그리고 이는 자기원인 개념이 내적 원인으로부터 논증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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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메시지 > 서울시의 "꼴값 영어'<경향신문>

                       서울시의 '꼴값영어' <2004.6.12 경향신문>
 


  한 여성지가 구독자에게 증정할 목록을 광고했는데 이렇다. 'Special Present 12가지. 아모레 멀티코팅 헤어컬러, 라네즈 페이스 파우더, 에스비 윈드 브레이커, 스포트 리플레이 섹시 라이온---.' 이 목록을 보고 이렇게 말할 분이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영어를 좀 하는데 한글로 적혀 있어 잘 모르겠다.' 그런 분들을 위해 이런 글을 소개하고 싶다. 'You know what time how we kick right now.' '1TYM'이라는 희한한 이름의 4인조 힙합집단(그룹)의 노래 한 구절이다. '지금 당장 우리들 어떻게 발길질하는지 몇시여 너는 알아.' 해석을 아무리 잘해도 이 정도다. 물론 '지오디'처럼 제대로 된 영어를 쓰는 가수도 있다. '도대체 왜 이럴까 Why Why.'

  이 이야기는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안정효씨의 '가짜영어사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가짜영어사전'은 영어가 객지에 나와 고생하는 이야기를 가나다 순서로 쓴 두툼한 책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과연 우리가 800여쪽을 채우는 엄청난 '가짜 영어'를 버리고도 탈없이 살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가령 가죽(skin)을 벗겨 만든 배(ship)는 있어도, '스킨십'(skinship)은 없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황량할 것인가. '속이 메스꺼워 토할 것 같다'는 이름의 현대 아파트 '필그린'(Feel green)에서는 속편히 살지 못할 것이다. 안씨는 이런 '비(非)영어' '반(半)영어' '반(反)영어'를 다음과 같이 4자성어로 표현한다. '꼴값영어'. 이 꼴값영어는 영어뿐 아니라 우리말도 망친다. 감자 바구니 안에 있는 썩은 감자 하나는 결코 저 혼자 썩지 않는다.

  이 꼴값영어에 서울시가 동참했다. 'Hi, Seoul' 'We are Seoulites'가 도처에 넘쳐난다. 'Green 청계천'(창백한 청계천) 'Hi, Seoul 서울 JOB 페스티벌' 'Hi Seoul Red Festival'이 춤춘다. 새로운 버스체계 안내광고판에는 'Hi, Seoul my bus'가 적혀있다. 무슨 뜻인지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사실은 그렇게 하면 더 멋있어진다고 믿고 그려 넣은 '장식'이기 때문이다. 버스 운행영역을 4가지로 구분하고는 그 구분을 4가지 색과 로마자로 표시했다. 예컨대 B((Blue)라고 적힌 버스는 간선이지만, B와 간선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파블로프는 개에게 먹이를 줄 때 종치기를 반복했는데 나중에는 종만 울려도 개가 침을 흘렸다. 반복학습은 아무 관계가 없는 '먹이'와 '종'을 동일시하게 만든다. 서울시민이 아무래도 개만 못할까. 'B는 간선이다'라는 사실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왜 이런 바보짓을 할까 알아봤더니 이명박 서울시장이 서울을 국제화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천민의식'의 발로라고 지적했다. 이시장은 서울천민들이 영어라는 복음을 접하면 선민(選民)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LA 코리아타운의 한인들은 영어나라에 살지만 우리말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생각해 우리 말과 글을 사용한다. 캘리포니아주의 아널드 슈워츠네거 지사는 최근 이런 한인들을 위해 상거래때 한국어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비준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서울시는 시민의 유일언어를 빼앗고 오염시키는 데 시민의 세금을 쓰고 있다. 서울을 '짝퉁도시'로 만들려나. '도대체 왜 이럴까 Why Why.'

  <이대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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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6-19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green 청계천이라...!

nrim 2004-06-19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 버스는 당췌 이해가 안되고 있습니다. 7월1일부터 버스타기 무서워질듯. -_-;;;

balmas 2004-06-19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야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정작 제가 더 두려운 건 저 이명박이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 주자라는 점이고, 열린 우리당에는 그에 필적할 만한 정동영이 버티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차라리 국적을 바꿔서 미국 대선에 출마하라고 할 수도 없고 ...

로쟈 2004-06-2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t's terrible, horrible!...

balmas 2004-06-21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 나가서 맘 편하게 지내지도 못하시고 ...
 

지가 베르토프와 요리스 이벤스

그러나 상업영화의 역사와 싸운 다른 또 하나의 작가들의 연대기가 있다. 그들은 영화야말
로 역사 속에서 기록하고, 고발하고, 틀린 세상은 바꾸는 의지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역사에 대해서 영화의 임무를 강조한 것은 지가 베르토프였다. 볼세비키혁명
이 성공한 직후 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운 소비에트에서 "지금의 우리를 영원
히 기억하라" 는 슬로건으로 무장한 그는 카메라를 들고 혁명 직후의 세상을 담았다. 그
는 영화야말로 진실이라는 주장을 담은 "키노-프라우다" 선언을 통해서 카메라만이 "부르
주아들의 오염으로부터 정화된" 세상을 기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천(?)하였다.
지가 베르토프의 <키노 프라우다> 연작과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전 세계에 "새로운 세
상" 을 알리는 테르메스가 되었다.

지가 베르토프의 동세대였던 요리스 이벤스의 또 다른 이름은 "날으는 네덜란드인" 이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를 떠돌아다녔다. 그는 싸움이 벌어지는 최전선을 찾아나섰
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에 카메라를 세워 촬영하였다.

요리스 이벤스는 "30년대에 스페인 내란을, 그리고 중국으로 가서 모택동과 함께 대장정
을, 문화혁명을, 더 나아가 "60년대에 베트남에서 불벼락이 쏟아지는 하노이에 자신의 카
메라를 세웠다. 그는 억압받고 버림받은 자들이 어떻게 자기의 세상을 만들어가는지를 기
록하였다. 거기에는 어떻게 이름없는 자들이 역사를 하나씩 쌓아올리는 지가 담겼다. 그
의 다큐멘터리가 갖는 놀랄만한 감동은 같은 장소를 몇 년의 차이를 두고 다시 찾아가서
기록하는 정신에 있다. 그는 어떻게 시간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단련시키는 지를 기록한
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상의 일보전진을 이야기한다.

요리스 이벤스의 <우공은 어떻게 산을 옮겼는가>는 중국 문화혁명의 현장에서 5년간 12부
작으로 완성된 장대한 서사시이다. 이 영화는 때로는 기나긴 인터뷰가 이어지고, 때로는
아무런 설명없이 중국 변방의 시골 공회당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편집 없이" 살아가는 일
상생활을 담는다. 그리고 수많은 중국의 우공들이 어떻게 봉건주의라는 산을 저리로 옮기
고, 사회주의라는 산을 옮겨 오는지를 "마음으로" 보여준다.

<우공은 산을 어떻게 옮겼을까> (1976, 요리스 이벤스) ;

아사아에서 사회주의는 어떤 기적을 만들어냈을까? 요리스 이벤스의 애정 담긴 "좋은 세
상"을 향한 시선.

정성일 (영화평론가)

1. 존경하는 영화, 역사적 가치
1) 칠레 전투 (파트리시오 구즈만)
2) 용광로의 시간 (페르난도 솔라나스, 옥타비오 게티노)
3) 쇼아 (클로드 란츠만)
4) 슬픔과 동정 (마르셀 오필스)
5) 아메리카 원 (로버트 크레이머)
6) 태양도 없이 (크리스 마르케)
7) 하늘, 대지 (요리스 이벤스)
8) 민중의 용기 (호르헤 산히네스)
9) 러시아 엘레지 (알렉산드르 소클로프)
10) 나리타 투쟁 8부작 (오가와 신스케)

세상을 바꾸려고 영화는 항상 시도해왔습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은밀하고도 끈질기게
지속되어온 영화의 프로젝트입니다. 이를테면 지가 베르토프의 역사의 재구성, 요리스 이
벤스의 중국여행,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인물 자서전 연작, 오가와 신스케의 나리타 투쟁,
그리고 명동성당 앞의 노동자 뉴스 제작단, 말하자면 영화와 역사, 또는 이미지와 현실,
더 나아가서 보여지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저 모순의 대
립과 이율배반을 넘어서려는 것이 영화의 프로젝트이며, 뤼미에르 형제가 만들어낸 저 이
상적인 총체영화에로 돌아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바로 그 사이에 우리는 끼어든 셈입니
다. 물론 빠져나갈 수도 없으며, 하지만 도피할 생각도 없습니다.

 

* 아래 주소로 가시면 상영일정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iljuarthouse.org/screen/s_view.html?e_uid=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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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6-18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꼭 보러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balmas 2004-06-19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말에 일들이 계속 몰려 있어서 다음 주나 돼야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쨌든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전출처 : 수수께끼 > 한 번쯤 말해야 하는 뱀다리(蛇足)

 미술사학이란 학문이 참으로 재미는 있지만 쉬운 학문은 아닌것 같습니다. 우선은 워낙 방대한 분량의 문헌이 남았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 대한 완전한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아 문헌자료를 인용함에 있어서도 우선은 많이 읽고 찾아본 사람이 유리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많은 문헌 자료에서 인용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인용된 부분이 옳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문헌 자료의 신빙성에 대해서도 재고를 해 보아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실증자료와 문헌자료의 일치여부가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에는 곤란한 문제가 있습니다.

 흔히들 정사라고 하는 <삼국사기>와 야사에 속하는 <삼국유사>가 대표적인 문헌자료에 속하는데 이 마저도 사실은 정확하다고 볼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자료가 모두 고려시대에 편찬이 되었기에 고려 이전의 사실에 대한 역사적 내용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맞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후대에 문화재와 미술사학을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백제의 무왕이 세웠다고 하는 미륵사지의 발굴시에 신라 관직명이 음각된 작은 항아리 조각이 출토되었는데, 그렇다면 이 작은 조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백제 건축물로 알고 있는데 신라의 유물이 나왔다면 일차적으로는 "여기서 왜 신라의 유물이 나오지? 이 탑이 그럼 신라와 연관이 있나?"라는 의문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백제 무왕조에는 무왕이 세운 탑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한번 정도 <삼국유사>의 사실성에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당대에 작성한 것도 아니요...직접 보고 작성한 것도 아니기에 사실은 이야기를 적은 내용이라고 할것인데, 다만 '어디어디에 의하면...'이라는 출처가 있어 일반적인 이야기 책과는 달리 보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어디 어디에...'라는 것에 대한 검증은 문헌이 남아있지 않은지라 할 수 없는 형편이고 그 기술하고 있는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극단적으로 백제가 세웠다고 알고 있는 미륵사지 탑의 바닥에서 신라의 유물이 발견 되었으니 생각을 고쳐 신라가 쌓은 탑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무척 많이 있습니다. 익산 왕궁리에 있는 5층탑은 분명 백제의 양식을 간직한 탑인데 탑 아래 고려시대의 기와가 나왔다 해서 제작연대를 고려로 보게 되었는데 이 또한 탑에 문제가 있어서 탑을 고쳤다던가 하는 사실은 전혀 무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궁리 5층탑은 해체수리를 하면서 사리장엄구가 발견이 되었고, 다른 것으로 대신 채워 넣었으며, 그 유명한 신라의 감은사지 석탑도 해체 수리를 하면서 새로운 사리장치를 납입하였는데 후대...우리의 후손들이 탑을 다시 고쳐야 할 경우 지금 넣은 물품을 보고 신라의 탑이 아니라 2000년대의 탑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물론, 이 경우는 단순 매납이겠지만 사실은 언제 언제 누가 고쳐서 다시 세웠다는 내용도 함께 매납을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런 친절한 내용을 적은 경우는 극히 드문 형편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혼돈을 갖고 조사나 연구에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발굴 결과에 대한 연구의 부족으로 학자간에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여 상호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보이는 것은 정확한 문헌 자료의 부재에서 오는 결과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황룡사탑의 높이가 80여미터라느니...또는 100미터가 넘었다느니....당시 인구가 얼마였다느니, 또는 거북선의 모습과 내부 구조가 이렇다 저렇다니...등등 너무도 많은 분야에 달랑거리는 기록 한 장 제대로 남기지 않은 조상덕에 후손들이 옳으니 그르니 하는 볼성 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토인비는 "기록을 하는 민족은 절대 멸망하지 않는다"고 <역사의 연구>에 적어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자의 중요성은 태양의 아들이라고 자처했던 잉카의 인디오 문명이 기록의 부재로 인하여 무성한 추측만 남은것을 봐도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것 같습니다.

 솔직한 이야기로 저는 타임머쉰이라도 있다면 카메라를 달랑 메고 당시로 돌아가서 당시 상황이나 모습을 사진에 가득 담아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소!!"라고도 하고픈 마음입니다만 그런 일은 단지 꿈에 불과한 공상일 따름이라 앞으로도 많은 부분에 대하여 "왜?"라는 의문으로 다양한 검토와 연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알쏭달쏭 문화재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우려하는 마음이 하나 생겼습니다. 제가 쓰는 글은 단지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해 주십사는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아하~ 그게 그랬구나" 라고 단정을 하신다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학설을 접하면서 나름대로 스스로가 판단하는 가장 근접한 학설에 고개를 끄덕여 주시면 된다고 하겠습니다.

  얄미운 우리 조상님네는 거북선의 그림 하나 제대로 남긴것이 없어 후손들이 무척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조상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이에 대한 끊임없는 반론, 그리고 반론에 대한 반론을 위한 연구, 이러한 반복과정이 다소는 지루하고 볼성사납다 할지라도 사실에 점차 근접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것입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초기 1세대 학자들은 제대로 조사를 하거나 연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답니다. 그 분들을 결코 폄하하는것은 아니나 당시의 현실은 모든 여건이 제대로 연구를 할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며, 미술사학이라는 학문에 있어서도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때인지라 많은 부분 잘못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잘못된 부분에 대한 교정 작업이 현재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잘못이 바른 답인줄 알고 넘어가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이순우가 쓴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보고서 1,2>가 나온지 한참이 되었음에도 맞다 틀리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제깐놈이 뭘 안다고 그래?"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되고 있다고 보시면 될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후손을 위해서라도 잘못 조사된 부분이나 연구된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인정을 하고 재 조사를 해야만 합니다. 바로 <알쏭달쏭 문화재 이야기>는 과거에 조사되고는 두 번 다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우리의 문화재 중에서 의문이 간다거나 재론을 필요로 하는 유물을 한 번 짚고 가자는 의미에서 마련한 것입니다. 따라서 일부 알고 계시는 분야에서는 고개를 갸우뚱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이 란을 통해서 논의되는 유물은 한 번쯤 되새김질을 하고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꼭 정답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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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15 화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

(이해찬이 나대던 시절도 심란했고 유시민이 나대는 시절도 심란한데 둘이 함께 나대니 참으로 심란한 시절이다.)

유시민은 이해찬의 보좌관이었고 이해찬은 유시민의 의원님이었는데 하여튼 둘은 많이 닮았다. 기만적인 판타지를 사용하는 대중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해찬은 민주주의 이행기에 반독재투쟁기의 판타지를 사용하면서 제 입지를 구축했는데, 유시민은 근본적 민주화가 숙제인 오늘 민주주의 이행기의 판타지를 사용하며 제 입지를 구축한다. 말하자면 둘은 이미 지난 시간을 오늘에 불러들여 보수화한 자신을 은폐한다.

유시민은 거기에 덧붙여 ‘지식인 판타지’까지 사용한다.

“나는 자유주의자의 양심상 진보주의가 탄압받는 건 볼 수가 없다.”
“진보정당을 찍는 건 사표다.”

같은 시점에 두 가지 말을 동시에 했다면 미친놈이거나 나쁜 놈일 것이다. 그러나 유시민은 오묘하게도 두 말을 재료로 ‘지식인의 양식을 가진 정치인’이라는 최종적인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유시민은 현재 시점에서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이다. 물론 ‘개혁적 보수’ 정치인인 그보다 더 보수적인 정치인들이 많지만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 유시민 만큼 보수적인 정치인은 없다.

유시민의 개혁성은 대개 이미 개혁적인 대중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반면(결국 실제로 사회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반면), 유시민의 보수성은 진보적일 소지를 가진 대중들에게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정형근이라든가 한나라당의 떠올리기만 해도 비위가 상하는 인물들도 진보적일 소지를 가진 대중들에게 유시민만큼 보수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가장 심각한 악은 ‘은폐된 악’인 것이다.

Posted by gyuhang at 02:39AM | 트랙백 (8)
 
 
2004.06.16 수
유시민, 아비투스, 김태촌

유시민은 매우 나쁜, 이젠 극우 진영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아비투스를 가진 사람이다. 그의 대중적 이미지(대표적인 개혁 정치인이라는)와 그의 나쁜 아비투스의 부조화는 역설적으로 그를 한국 사회의 재앙으로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그는 토론에서 “학자로서 양식을 가진 분인 줄 알았는데 실망스럽다.” “격조 높은 토론을 기대하고 왔는데 실망했다.” 따위의 말들은 개연성 없이,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대중들은 텔레비전의 속도감 속에서 그런 말들이 개연성이나 근거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되새기기 어렵기 때문에 순식간에 유시민의 상대를 “학자로서 양식을 가지 못한 사람”이거나 “토론의 격조를 망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유시민은 또한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엔 절대로 답하지 않으면서, 역시 개연성이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그런 질문 자체를 ‘쓸모없는 것’처럼 깍아 내린다. 대중들은 애초의 질문보다는 그 질문을 배제한 유시민의 답변에 휩쓸리면서 오히려 유시민의 그런 대응을 우문현답으로 인식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콧구멍 생김새까지 들여다보는 텔레비전 토론에서도 그런 식이니 좀더 작전이 가능한 부분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유시민은 건달로 말하자면 김태촌에 해당한다. 언제나 자유주의적 양심과 게임의 룰을 말하지만, 실은 ‘주먹 싸움에 회칼을, 그것도 등 뒤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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