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에 발표했던 글을 한편 올립니다. 아직 좀더 다듬어야 되는 글인데, 한번 읽어보시고 지적할 점들이 있으면 메일을 보내시거나 답글을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원래 결론 부분에 인간학적 함의에 관한 두 세쪽 정도의 내용이 더 붙어 있는데, 일단은 생략했습니다. 관련된 논의를 잘 모르면 좀 지루하실 텐데, 그럼 그러려니 하고 넘기시면 됩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야 원래 좀 사소한데 목숨거는 사람들이니까요.^^ 제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 역시 완성된 글이 아니므로 인용은 불허합니다.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은 자기모순적 개념인가?



서론: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통상적 이해

자기원인(causa sui) 개념은 신 또는 자연(Deus sive Natura)이나 코나투스(conatus) 개념 등과 더불어 스피노자 철학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간주되어 왔으며, 이는 그럴 만한 자격을 지닌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기원인 개념을 스피노자 철학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더 많이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곧 자기원인 개념은 형용모순이거나 또는 적어도 불가해한 어떤 것으로, 이는 스피노자 철학의 신비적이고 불가해한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는 것이다.
  이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쉽게 입증될 수 있다. 1870년대에 쓰여진 유명한 한 편지에서 스피노자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을 극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던 니체는 『선과 악을 넘어서』의 한 구절에서 자기원인 개념을 “자기원인은 오늘날까지 사유된 것 중에서 가장 멋진 자기모순이며, 일종의 논리적 강간, 반(反)자연적 행동이다.”(Nietzsche 1999, 35쪽/Nietzsche 2002, 41쪽―번역은 수정)[국역본은 니체의 신랄한 어조를 너무 점잖게 표현하고 있다.]라고 조롱섞인 어조로 폄훼하면서, 이를 “뮌히하우젠을 능가하는 무모함”(같은 곳)으로 간주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이데거는 『동일성과 차이』의 한 구절에서 “근거(Grund)라는 의미에서 존재자의 존재는 근본적으로(gründlich) 자기원인으로밖에는 표상될 수 없다. 형이상학적 신 개념은 이렇게 불린다”(Heidegger 1957, 64쪽/ Heidegger 2000, 쪽)고 간주함으로써, 자기원인 개념을 서양의 존재-신-학적 형이상학이 도달하게 되는 모순적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원인 개념의 수용과 관련하여 좀더 징후적이고 의미있는 사례는 헤겔에서 발견된다. 헤겔은 초기 저작에서부터 후기 저작에 이르기까지 계속 스피노자 철학과의 대결을 자신의 철학적 작업의 중요한 한 과제로 간주했으며, 이러한 대결에서 자기원인 개념은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초기 저술인 『변증법과 회의주의』(1802)에서 헤겔은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은 설명과 더불어 그의 『윤리학』을 시작하고 있다: “나는 자기원인을, 그것의 본질이 현존재(Dasein)를 자기 안에 포함하는(in sich schließt) 것으로, 또는 그것의 본성이 실존하는(existierend) 것으로밖에는 파악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본질이나 본성의 개념은 실존으로부터 추상됨으로써만 정립될 수 있다. 곧 하나는 다른 하나를 배제한다. 이렇게 각자가 타자와 대립하는 한에서 각자는 규정될 수 있다. 양자가 결합하여 하나의 통일된 것으로 정립될 경우, 양자의 결합은 모순을 포함하고 따라서 양자는 함께 부정된다.(Hegel 1971a 229쪽; Hegel 2003 40-41쪽)

이 인용문이 보여주다시피 헤겔은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대개의 평가와 정반대로 자기원인 개념의 중요성을 그 모순성에서 찾고 있다. 이는 헤겔이 보기에는 자기원인 개념이야말로, 유한한 지성이 파악하는 규정들을 절대화하는 독단론 및 이들의 한계를 반성함으로써 이들을 반박하는 회의주의에 맞서 이성의 우위를 확립할 수 있게 해주는 토대를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겔은 조금 뒤에서는(같은 책, 76-77쪽) 자기원인 개념을 독단적 회의주의의 반대 원리로 설정하고 있다. 반면 헤겔은 나중의 『철학사 강의』(1830)에서는 자기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좀더 부정적으로 논평하고 있다.

사유와 실존의 통일은 곧바로 동시에 정립된다[본질은 일반적인 것, 사유다―헤겔의 추가]. 영원히 문제가 될 것은 바로 이 통일이다. 자기원인은 중요한 표현이다. 결과는 원인과 대립한다. 자기원인은 결과를 산출하고 타자를 분리시키는 원인이지만, 이것이 밖으로-내놓는(hervorbringt) 것은 바로 자기자신이다. 이러한 밖으로-내놓음에서 자기원인은 또한 차이를 지양한다. 자기를 하나의 타자로 정립하는 것은 퇴락임과 동시에 이 퇴락의 부정이다. 이는 철저하게 사변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원인은 어떤 결과를 산출하며, 결과는 원인과 다른 어떤 것이라고 표상한다. 반대로 여기서는 원인의 외출(das Herausgehen der Ursache)는 곧바로 지양되며, 자기원인은 자기만을 산출한다. 이는 모든 사변에 근본적인 개념이다. 이는 원인이 결과와 동일한 무한한 원인이다. 만약 스피노자가 자기원인 안에 포함된 것을 좀더 정확하게 발전시켰다면, 그의 실체는 부동적인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Hegel 1971b, 168쪽)

다시 말해 헤겔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자기원인에 담겨 있는 근본통찰, 곧 원인과 결과의 대립의 지양이라는 통찰을 변증법적으로 전개시키지 못한 채, 자기원인을 통해 표현되는 절대자를 무매개적으로 전제함으로써, 결국 부동적인 절대자를 주장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헤겔의 주장은 우리의 논의와 관련하여 두 가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첫째, 헤겔은 자기원인 개념 수용의 핵심은 이 개념의 자기모순성에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둘째, 더 나아가 헤겔은 이러한 개념적 자기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결국 사변적인 변증법적 해석에 있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보여준다[헤겔의 스피노자 해석에 대한 좀더 상세한 고찰과 반비판으로는 특히 Macherey 1990/Macherey 2004를 참조.].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원인 개념을 스피노자 철학의 중심개념으로 간주하고 있음에도, 그리고 이 개념이 『윤리학』의 첫번째 정의라는 매우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이 개념을 중심적으로 다루는 스피노자 연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겉보기에는 매우 역설적으로 보이는 현상은 사실 그리 놀라울 게 없는 것으로 보인다[『윤리학』 주석서 중에서 가장 상세한 논의는 Gueroult 1968에서 볼 수 있지만, 게루의 논의에는 비판받을 소지가 여럿 담겨 있다. Robinson 1928이나 Macherey 1998은 간략하고 일반적인 논의만 제시해 주고 있다. 그 이외의 단행본 연구서로는 Huan 1914에 비교적 상세한 논의가 나와 있으며, Rousset 1996은 데카르트와 관련하여 한 두 가지 흥미로운 비교 결과를 보여 주고 있고, Scala 1998은 『윤리학』의 기하학적 논증 방법과 관련하여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몇 가지 좋은 지적을 제시해 주고 있고, Kaplan 1998은 스피노자의 기하학적 방법에 관해 비판적으로 논의하면서 자기원인 정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연구논문들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다. Breton 1974; 1983; 2001은 신플라톤주의와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 사이의 관련성에 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으며, Narbonne 1995는 스토아학파와 스피노자 철학의 연관성을 검토하고 있지만, 상세한 텍스트 분석은 없이 다소 막연한 개략적 비교에 머물러 있다. Wilson 1991은 『윤리학』 1부 공리 4의 인과율 공리와 관련된 맥락에서 자기원인 개념을 간략하게 고찰하고 있다.]. 자기원인 개념이 명백한 형용모순적 성격을 보여 주고 있고, 따라서 사변적인 해석 이외에 이 개념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협소하다면, 이 개념을 중심적인 논의대상으로 삼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스피노자 이후에만 생겨난 현상이 아니라 스피노자 이전에 여러 철학자들이 이 개념에 대해 공통적으로 보여준 반응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우리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능성이다. 이 개념에 대한 통상적인 수용방식들은 이 개념이 보여 주는 외양적인 형용모순적 성격에만 치중함으로써 이 개념이 스피노자 철학, 특히 『윤리학』에서 지니고 있는 의미와 기능을 간과해 왔다. 자기원인 개념이 『윤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는 통상적인 이해방식이 가정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이유, 다른 기능 때문이다. 따라서 스피노자 철학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의미와 기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이 개념이 『윤리학』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방식을 문헌학적으로 꼼꼼하게 분석해야 하는데, 이 분석을 통해 우리는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정의 및 이 정의가 『윤리학』에서 활용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이러한 독특성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윤리학』 이전의 초기저작에서 자기원인이 사용되는 방식 및 이러한 용법이 데카르트가 『『성찰』 반론들에 대한 답변들』에서 이 개념을  사용하는 용법과 맺고 있는 관계를 밝히는 게 필요하다. 이는 첫째, 자기원인 개념이 초기 저작에서 『윤리학』으로 나아가면서 변화하고 정정되는 방식을 보여줄 것이며, 둘째, 이러한 변화와 정정이 데카르트의 자기원인 개념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보여줄 것이다. 끝으로 이런 분석이 이루어지면, 스피노자 철학에서 자기원인 개념은 목적론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론에 대한 비판을 통해 내재적인 인과론을 확립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이 드러날 것이며, 이는 『윤리학』 후반부의 인간학적,윤리적 논의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해 준다는 점이 밝혀질 것이다[지금부터 스피노자 저작은 다음과 같은 규칙에 따라 약어로 표기하겠다. 『윤리학』의 경우 영문 E는 저작을 표시하고, 로마자(I, II, ...)는 1부, 2부 등을 표시하며, D는 정의, A는 공리, P는 정리를 가리키고, 그 다음의 숫자는 정의와 공리, 정리의 숫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소문자 d는 증명, c는 따름정리, s는 주석을 나타낸다(예: E I P25s → 『윤리학』 1부 정리 25의 주석). 그리고 『소론』의 경우 KV는 저작을 표시하고, 로마자 I, II는 1부와 2부를, 아라비아 숫자 1, 2, 3은 각 부의 장을, 그리고 § 기호 다음의 숫자는 각장의 절수를 표시한다. 아울러 알파벳 약어들은 『윤리학』과 마찬가지로 정의, 공리, 정리, 증명 등을 뜻한다(예: KV II, 17, §5 → 『소론』 2부 17장 5절). 『지성교정론』의 경우는 TIE는 저작이름을, 숫자는 절수를 가리킨다. 그리고 『서한집』은 EP로 표기하고, 해당 편지의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하겠다. 또한 필요한 경우에는 스피노자 고증본 전집(Spinoza 1925)의 해당 권수와 쪽수를 적어 두었으며, 관례에 따라 G라는 표기로 저작 이름을, 로마자로 권수를, 아라비아 숫자로 쪽수를 지시했다(예: G I 47 → Spinoza 1925의 1권 47쪽).].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텍스트 분석

1) 자기원인에 대한 정의의 독특성

  따라서 우리는 스피노자 원전으로 돌아가서 좀더 세심하게 텍스트를 분석해 볼 생각인데, 먼저 자기원인 개념이 사용되는 『윤리학』 1부의 텍스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윤리학』에 제시되고 있는 자기원인 개념은 텍스트상으로 몇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을 보여 준다.
  우선 자기원인 개념의 위치에 주목하는 게 필요하다. 자기원인 개념은 『윤리학』 1부인 신에 대하여(De Deo)의 첫번째 정의의 대상을 이루고 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ordine geometrico demonstrata)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윤리학』은 엄밀한 연역적 체계를 지닌 저작인데, 제 1부, 그것도 제일 첫번째로 자기원인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개념이야말로 『윤리학』, 또는 적어도 신에 대하여의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의미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위에서 우리가 인용했듯이 헤겔이 자기원인 개념을 시초의 절대자로 제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개념의 상징적 위치에 주목한 결과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자기원인 개념은 『윤리학』은 신에서 출발하고, 마지막 5부인 지성의 역량에 대하여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De Potentia Intellectus, seu de Libertate Humana)에 나오는 신의 지적 사랑(Amor intellectus Dei) 개념이 가리키듯이 결국은 신과의 합일을 통해 자유에 이르게 된다는,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일반적 통념을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1) 자기원인 개념이 절대자 또는 신을 표현하고 있으며, 2) 『윤리학』의 논증방식, 또는 적어도 서술방식이 엄밀한 순서에 따르고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데 반해, 적어도 『윤리학』의 텍스트는 이런 가정들을 그 자체로 확인시켜 주지는 않는 것 같다. 또는 반대로 『윤리학』의 텍스트는 문자상으로는 주목할 만한 비규정성 내지는 다의성을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자기원인 개념의 정의가 표현하는 문법적,의미론적 비규정성이 존재한다. 스피노자는 자기원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나는 자기원인을, 그 본질이 실존을 함축하는 으로, 또는 그 본성상 실존하는 것으로밖에는 인식될 수 없는 으로 파악한다.”[“Per causam sui, intelligo id, cujus essentia involvit existentiam, sive id, cujus natura non potest concipi, nisi existens.”] 문법적인 차원에서 우선 주목할 만한 것은 우리가 “것”으로 번역한 “id”라는 중성지시대명사다. 이는 완전히 비규정적인 표현으로서, 단어 그 자체만으로는 절대자 또는 실체만이 아니라, 양태, 곧 사람이나 기타 사물 중 그 어떤 것이든 가리킬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스피노자가 자기원인이라는 개념으로 신 또는 절대자를 표현하려고 했다면, 왜 그는 곧바로 “나는 자기원인을, 그 본질이 실존을 함축하는 신으로, 또는 인 신으로 파악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왜 『윤리학』, 그것도 1부의 첫머리에 제시된 정의에서 그는 좀더 엄밀하고 분명한 규정을 제시하지 않고, “id”라는 매우 비규정적인 지시대명사를 사용하고 있을까? 이는 하나의 단순한 언어적 표현의 문제에 불과한 것인가? 이것이 자기원인 정의와 관련하여 첫번째로 제기되는 물음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규정성은 우리가 자기원인 정의의 내용을 살펴볼 경우 또다른 측면을 드러낸다. 문제는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정의가 스피노자 자신의 고유한 개념적 규정들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정의를 살펴보면 정의에 나오는 “그 본질이 실존을 함축하는”이나 “그 본성이 실존하는 것으로밖에는 인식될 수 없는”이라는 규정은 스피노자가 자신의 정의에 고유하게 부여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뒤에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지만, 데카르트가 『성찰』이나 『『성찰』 반론들에 대한 답변들』에서 신존재증명의 문제와 관련하여 제시하고 있는 규정들이다. 곧 데카르트는 『다섯번째 성찰』에서 “항상 실존한다는 것이 신의 본성에 속하고 있음”(AT VII, 65)[데카르트 저작은 관례에 따라 AT라는 약칭 다음에 권수(로마자)와 쪽수(아라비아 숫자)를 표기하겠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Descartes 1973, 곧 알퀴에(Alquié)판의 쪽수를 같이 인용하겠다. 『성찰』의 경우 대개 국역본(Descartes 1997)의 번역을 따랐지만, 필요에 따라 일부 수정한 곳이 있다.]이라고 하거나 “실존하지 않는―곧 어떤 하나의 완전성이 빠져 있는―신을―곧 지고하게 완전한 존재자를―생각하는 것은 골짜기 없는 산을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모순이다”(같은 책, 66)라고, 또는 “신을 실존하는 것으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67)고 하고, “나는 그 본질에 실존이 귀속되는 것은 신 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68)고 말하고 있다. 이는 스피노자가 자기원인의 내용으로 제시하는 규정은 데카르트가 신의 실존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이미 여러 가지 표현으로 제시한 규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는 곧 스피노자 자기원인 정의의 특징은 널리 알려져 있는(또는 적어도 “흔히 말하는”(ut vulgo dicitur)) 내용을 인과적인 형식으로 제시했다는 데 있다. 곧 자기원인이 내용상으로 기존에 널려 알려진 내용을 제시하는 데 불과하다면, 이는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정의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표현이라는 점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 정의의 핵심은 바로 개념적인 내용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인과적인 표현방식에, 그리고 그것의 비신학적 기능에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텍스트 분석은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낳는다. 1) 왜 스피노자는 『윤리학』 제 1부의 첫번째 정의에서 이처럼 문법적,의미론적 비규정성을 제시하고 있는가? 2) 역으로 자기원인 정의의 내용이 기존에 널리 알려져 있는 내용과 다를 게 없다면, 이를 인과적인 표현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3) 왜 스피노자는 자기원인 정의를 신에 대하여의 첫번째 정의로 제시하고 있을까?

2) [신에 대하여]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이례적인 용법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잠시 뒤로 미뤄 두고, 그 다음에는 이 개념이 『윤리학』에서 활용되는 용법을 검토해 보는 게 필요하다. 『윤리학』에서 자기원인 개념은 1부에서만 사용되고 있으며, 그것도 단 6차례, 곧 정의 1(G II 45), 정리 7의 증명(G II 49), 정리 12의 증명(G II 55), 정리 24의 증명(G II 67), 정리 25의 주석(G II 68), 정리 34의 증명(G II 77)에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윤리학』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용법은 자기원인에 대한 정의만큼이나 독특한 특징을 보여 준다. 첫째 자기원인 개념은 네 번의 증명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증명의 기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정리 7의 증명이다. 정리 7은 “실체의 본성에는 실존함이 속한다”(Ad naturam substantiae pertinet existere)이며, 이 정리에 대한 증명은 “[A] 실체는 다른 사물에 의해 생산될 수 없다(앞의 정리의 따름정리에 따라). [B] 따라서 이는 자기원인일 것이다. [C] 곧 (정의 1에 따라) 그 본질은 필연적으로 실존을 함축한다. 또는 그 본성에는 실존함이 속한다”(Substantia non potest produci ab alio(per Coroll. Prop. praeced.); erit itaque causa sui, id est(per Defin. 1), ipsius essentia involvit necessario existentiam, sive ad ejus naturam pertinet existere)이다. 이 정리의 증명의 특징은 A와 B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스피노자는 “실체는 다른 사물에 의해 생산될 수 없다”고 말한 뒤에 곧바로 “따라서 이는 자기원인일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정의 1에서 표현된 자기원인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당한 증명이라면 오히려 A에서 어떻게 C라는 내용이 논리적으로 따라나오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마지막에 B, 곧 “따라서 이는 자기원인일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본다면 스피노자의 논증은 (A) “실체는 다른 사물에 의해 생산될 수 없다”면, 이는 곧 자기자신에 의해 실존한다는 것, 곧 (C) “그 본질은 필연적으로 실존을 함축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곧바로 반론이 제기되듯이(Scribano 2002, 223쪽) 이는 자기자신에 의해 실존하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곧 그것이 단지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을 전제하는 것이다[이것이 더 주목할 만한 이유는 스피노자가 증명을 할 생각이었다면, 충분히 올바른 증명의 형식을 갖추어서 증명을 제시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칼라가 보여주듯이 다음과 같은 증명이 가능하다. “만약 스피노자가 이를 증명하려 했다면, 정리 6의 두 번째 증명의 모델 위에서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리 4에 따르면 결과에 대한 인식은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하고, 이를 함축한다. 그런데 실체에 대한 인식은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실체는 자기자신에 의해 인식되기 때문이다(공리 2에 의해. “다른 사물에 의해 인식될 수 없는 것은 자기자신에 의해 인식되어야 한다.”). 따라서 실체는 필연적으로 자기원인이다.” Scala 1998 p. 115. 이는 스크리바노, 또는 그 이전에 라이프니츠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스피노자가 어쩔 수 없이 논리적 궁지에 몰려서 자신의 증명을 제시하지 못한 게 아니라, 스피노자가 여기에서 증명을 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 또는 적어도 신의 실존증명과 관련된 증명을 제시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징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또하나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정리 12의 증명에서 자기원인 개념이 사용되는 기묘한 방식이다. 방금 본 것처럼 스피노자는 정리 7의 증명에서 자기원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정리 12의 증명에서는 자기원인 개념에 대한 전거를 정리 7에서 찾지 않고, 정리 6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정리 12. 그로부터 실체가 분할될 수 있다는 점이 따라나올 수 있는 실체의 속성은 참되게 인식될 수 없다. <증명> 사실 실체가 분할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부분들은 실체의 본성을 보유하거나 아니면 보유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앞의 경우라면 (정리 8에 따라) 각각의 부분은 무한해야 하며, (정리 6에 따라) 자기원인이어야 하고 ...”(Propositio XII. Nullum substantiae attributum potest vere concipi, ex quo sequatur, substantiam posse dividi. <Demonstratio> Partes enim, in quas substantia, sic concepta, divideretur, vel naturam substantiae retinebunt, vel non. Si primum, tum (per 8 Prop.) unaquaeque pars debebit esse infinita & (per Prop. 6) causa sui & ...)]. 영어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편집본 중 한 권인 『스피노자 저작집』 1권의 편집자인 에드윈 컬리(Edwin Curley)는 이러한 변칙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무런 문헌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문의 “정리 6에 따라”를 “정리 7에 따라”로 바꿔 놓고 있을 정도다(Spinoza 1985, 411쪽 주 11) 참조).
   둘째, 자기원인 개념이 보여주는 또다른 변칙적 성격은 이 개념이 신존재증명에서는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곧 『윤리학』에서 신의 실존에 관한 네 가지 증명이 제시되고 있는 정리 11의 증명과정에서는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데카르트에서 이 개념의 용법이나 『윤리학』 이전의 저작에서 이 개념의 용법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변칙, 이례성이다.
  이처럼 『윤리학』 1부의 자기원인에 대한 정의가 보여주는 독특한 성격 및 1부의 전개과정에서 자기원인 개념이 사용되는 용법의 변칙적인 성격은, 우리가 보기에는 앞서 우리가 제기한 세 가지 질문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이 질문들에 곧바로 답하기 이전에  『윤리학』 이전의 저작에 나타나는 자기원인 개념의 용법들을 살펴 봄으로써, 문제의 범위를 좀더 정확하게 한정해 보기로 하자.

3) 『윤리학』 이전 저작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용법

『윤리학』 이전의 저작에서 자기원인이라는 표현은 여러번 사용되고 있다. 『지성교정론』에서는 단 한 차례(92절) 사용되고 있고(G II 34)), 『윤리학』이 저술되기 이전의 서신교환[대다수의 연구자들은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1663년경에 저술이 시작되어 1665년경에 네덜란드어 번역 및 출간계획이 논의되다가 『신학정치론』(1670)을 집필하는 동안 작업이 중단된 후, 그 이후부터 다시 작업이 재개되어 1675년경에 대략 현재 남아있는 형태의 『윤리학』으로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1663년 이전의 서신교환, 특히 올덴부르크와의 2-4번째 서신교환은 『윤리학』 이전 시기의 스피노자의 ‘존재론적’ 사유방향을 더듬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에서도 한 차례 사용되고 있지만(G IV 11), 네덜란드어 번역본만 남아있는 『소론』에서는 라틴어의 “causa sui”에 해당하는 “oorzaak van zich”라는 표현은 8번 등장한다[ KV I, 1, §10(G I 18), I, 3, §2(G I 36), I, 7, §8(G I 46), I, 7, §12(G I 47), I, 9, §2(G I 48), II, 17, §5(G I 86) 부록 I, A6(G I 114), 부록 I, P3d(G I 115).]. 『윤리학』 이전의 용법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지성교정론』과 『소론』 2부 17장 5절에서의 용법이다. 스피노자는 『지성교정론』 92절에서 “만약 사물이 자기 안에 있다면, 또는 흔히 말하듯이 자기원인이라면”(si res sit in se, sive, ut vulgo dicitur)(G II 34)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첫째, 자기원인 개념은 “흔히”, “보통”(vulgo) 말하는 방식이지만, 둘째, 그 실재적 내용은 “자기 안에 있음”(in se)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성교정론』의 용법에 따른다면, 자기원인은 “자기 안에 있음”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 그것도 그렇게 썩 미덥지 않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소론』 2부 17장 5절에서는 자기원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욕망은 자유롭다고 말한다면, 이는 마치 이 욕망 또는 저 욕망이 자기원인이라고, 곧 그것은 그 자신이 존재하기 전에 자신이 실존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이는 부조리 그 자체이며, 성립할 수 없다.”(G I 86) 그런데 여기서 스피노자가 “부조리 그 자체”로 한 마디로 일축하고 있는 관점은 우리가 위에서 자기원인에 대한 통상적인 관점이라고 부른 것, 곧 니체가 조롱하고, 헤겔이 사변화한 자기자신에 대한 자기의 시간적 선행성이라는 관점이다. 이는 스피노자 자신이 통상적인 자기원인 개념의 불가능성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윤리학』 1부의 자기원인 개념은 이와는 다른 개념이라는 점을 명료하게 보여 준다.   
  그런데 『윤리학』 이전 저작에서 나타나는 자기원인의 용례에서 좀더 주목할 만한 것은 자기원인 개념이 선험적 신증명의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소론』에서 자기원인에 관해 비교적 명시적인 규정을 제시하고 있는 두 가지 용례에서 분명히 나타나는데, 이 두 용례는 모두 후험적 신증명에 대한 선험적 신증명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가 신의 실존을 선험적으로도 후험적으로도 모두 증명할 수 있다는 점이 명석하게 따라나온다. 사실은 선험적 증명이 더 낫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후험적으로] 증명하는 것들은 자기자신을 통해 알려지는 게 아니라 외적 원인들을 통해서만 알려지기 때문에 명백한 불완전성을 지니고 있고, 따라서 그것들의 외적 원인들에 따라 증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물의 첫 번째 원인이자 자기원인인 신은 자기자신을 통해 스스로를 알려 준다. 따라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는 것―신은 가정상 아무런 원인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선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1부 1장 10절(G I 18)) “세번째 주장―신은 선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과 관련하여 우리는 이미 여기에 대해 앞서 답변한 바 있다. 신은 자기원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신을 통해 그를 증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이러한 증명은 대개 외적 원인들로부터만 진행하는 후험적 증명보다 더 확실하다.”(1부 7장 12절(G I 47)) 따라서 이 두 가지 용례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선험적 증명은 후험적 증명보다 우월한데, 이는 선험적 증명은 자기원인으로부터 증명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런데 역으로 스피노자는 후험적 증명의 열등성은 외적 원인으로부터 진행한다는 데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기원인 개념의 중요성은 이것이 바로 내적 원인이라는 데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윤리학』 이전의 저작에 나타나는 자기원인 개념의 용법상의 특징은 1) 스피노자가 이해하는 자기원인 개념은 “자기자신에 대한 자신의 시간적 선행성”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며, 2) 이 개념은 신의 실존에 대한 선험적 증명의 우월성의 근거라는 것, 3) 그리고 이는 자기원인 개념이 내적 원인으로부터 논증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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