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일본 반(反)기지운동으로부터 배운다 ②] 미사일기지 위에 꽃핀 평화적 생존권

 

나가누마 미사일기지 사건,

평화적 생존권 법정에서 인정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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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주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바야흐로 시엔엔(CNN)의 계절이다. 언제 적 모습인지 불분명하지만 살기 넘치는 북한군의 퍼레이드, 길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어먹는 남루한 옷차림의 굶주린 사람들, 비밀리에 입수하였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돌려대는 공개처형 장면들…. 구태의연한 레퍼토리이긴 하지만, 이런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북한은 두말 할 나위없는 ‘불량국가’(rogue state)이다. 그런 시엔엔(CNN)이 이번에 새로이 개발한 메뉴도 있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요격가능성과 관련한 언급이다. 부시는 이 미사일방어시스템이 아직 만족스럽지는 못하다고 하였지만, 뉴스의 행간을 읽어보자면 “위험스런 ‘공공의 적’을 공중에서 격파하는 공익의 수호자를 상상하여 보라.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적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환상적 논리도, 또한 알고 보면 미국의 군비증강을 위한 오랜 애창곡 중의 하나이다. 미국은 냉전이 한참일 무렵, 웨스턴 일렉트릭 컴퍼니(Western Electric Co.)라는 무기개발회사를 통하여 공중에서 소련의 폭격기를 요격할 수 있는 무기개발에 열을 올린 적이 있다. 급기야 이를 실전배치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나이키(Nike) 미사일이다.


작은 시골마을에 미사일기지 날벼락

그런데 이러한 개념의 미사일이 배치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공익이 수호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에 휩쓸려 공익이 송두리째 뽑혀나갈 가능성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폭격기나 미사일로 공격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요격미사일기지는 공격목표 제1호로 격상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미사일기지 주변에 사는 범부중생의 평화적 생존이 송두리째 날아가리라는 것은 말해 무엇하랴. 나아가 아무리 방어를 명목으로 건설되는 것이라고는 해도 미사일기지는 그 자체로 주변국을 위협할 수 있는 군사기지임에 분명하다. 나가누마 미사일기지 사건은 미국이 규정한, 1960년대의 이른바 불량국가 소련의 폭격기에 대비하는 요격미사일 나이키를 나가누마(長沼)에 배치하려는 데서 시작되었다.

일본 홋카이도에 위치한 나가누마현
나가누마는 일본 열도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에 위치한, 인구 2만을 넘어본 적이 없는 우리의 군 단위쯤에 해당하는 조그만 시골이다. 그나마 요즘은 삿포로시가 넓어지면서 전원생활을 하며 출퇴근하려는 사람이 늘었지만, 고원평야의 쌀농사가 전부이고 수해방지 등을 위한 숲(보안림)의 일종인 수원(水源) 함양림(涵養林) 마오이(馬追)산이 한 켠에 버티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조그만 촌동네에 미국과 일본정부는 대소련 방공(防空)기지로서의 ‘역사적 책무’를 맡기려고 하였다. 이에 일본정부는 방위력증강계획을 세우고 그 일환으로 이곳에 항공자위대의 기지를 설치, 이곳에 나이키 미사일을 배치하고자 하였다.

미사일기지 건설을 위해서는 막대한 토지가 필요하였는데, 일본정부는 이를 위하여 나가누마 내에 있는 마오이산 일대 약10만평(35헥타르)을 제공키로 하였다. 이를 위해 보안림 지정을 해제하고자 하였고, 해제 처분을 위한 법리상의 명분으로 들고 나온 것이 다름 아닌 ‘공익상의 이익’이었다.


‘강요된 공익’에 반기 든 주민들

그러나 지역주민 173명(이후 소송인단은 359명으로 늘어났다)은 기지건설을 위한 보안림 지정 해제 처분이 공익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익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보안림 해제 처분이 이루어진 1969년 7월 7일, 즉각 이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것이 나가누마 나이키미사일기지 사건의 시작이다.

사실 법을 접하다 보면 일반인은 물론이고 법률전문가조차도 아무 생각없이 넘어가는 추상적인 개념들, 괜히 주눅이 드는 개념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익, 국가안보, 뭐 이런 개념들이다. 이런 개념들은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첫째, 누구의 공익인지, 무엇을 위한 공익인지, 누가 판단하는 안보인지가 불분명하다. 둘째, 이런 개념에 시비를 걸면 괜히 공익보다는 사리사욕을 앞세우는 인간 같고, 안보는 도외시한 채 한가한 소리만 하는 사람으로 도매금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은 개념이라는 점이다. 셋째, 그런 탓인지 법률전문가조차도 그냥 넘어가기 때문에 대부분 정부가 생각하는 공익과 안보가 국민의 공익과 안보로 둔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가누마 주민들은 이에 대하여 NO라고 선언했다. 요격미사일기지가 설치되면 농사짓고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깨지고 전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기 때문에 공익이 증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익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사일기지 설치를 위해 ‘공익’을 이유로 보안림지정을 해제하는 것은 정부의 행정편의이자 정부가 생각하는 공익일 뿐이지 주민들의 공익, 곧 평화적 생존에 대한 배려와 증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나이키미사일기지 사건은, 그 시작은 비록 조촐하였지만 같은 해인 1969년에는 산리즈카(三里塚) 공항 분쇄 투쟁, 동경대학의 야스다강당 점거사태 등으로 이어지면서 일본 사회를 평화와 인권 함성의 격랑으로 밀어넣었다.


후쿠시마 판사, “미사일기지는 평화적 생존권 침해”

이 격랑의 와중에 주민들의 소박한 생각에 손을 들어 준 것은 후쿠시마 시게오라는 젊은 판사였다. 우리나라로 보면 386세대의 판사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실제 후쿠시마 판사는 사법개혁을 추동하기 위하여 결성된 청년법률가협회의 회원이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청년법률가협회의 지시나 시책에 따라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니고, 판사로서의 양심과 법리에 따라서 재판하였을 뿐이었다.

아무튼 후쿠시마 판사는 1973년 9월7일, ‘일본 헌법에 비무장평화주의를 규정하고 있는데도 그 규모로 보나 장비로 보나 군대에 해당하는 자위대를 두는 것은 헌법 원리에 반하며, 따라서 자위대의 일부인 항공자위대의 미사일기지 건설을 위한 보안림 지정해제는 공익과 무관하다’고 판결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정부의 보안림해제처분이 일본국 헌법 전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곧 나이키미사일 발사기지가 설치되면 유사시 상대국의 첫 번째 공격목표가 되는 바, 이는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의 권리를 침해하는 공권력 행사’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청년법률가협회와 같은 많은 법률가단체, 노동조합, 지역주민, 각종 정당과 사회단체의 지지 속에 14년이나 계속된 나가누마 미사일기지 사건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요즘 평택에서도 평화적 생존의 권리가 주창되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가 북한지역은 물론 아시아전역을 상대로 한 신속기동군기지로 재편되면 유사시 상대국의 첫 번째 공격목표가 되는 바, 이는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의 권리를 침해하고 침략전쟁을 부인한 우리 헌법의 평화주의원리에도 반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판사의 판결과 궤를 같이 하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재판규범으로서의 가능성 발견해

평화적 생존권 함성을 짓밟고 배치된 나이키 미사일 <사진 출처: www.naxnet.or.jp>
다시 1970년대의 일본으로 눈을 돌려보면, 용기있는 지역주민과 헌법원리에 충실한 재판을 하고자 했던 판사의 양식이 어우러져 헌법학자뿐만 아니라 평화애호세력을 흥분시키고, 전국민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나가누마 미사일기지 사건 1심판결은 이후 무참히도 뒤집혔다. 특히 고등재판소는 1976년 8월5일, 자위대설치와 같은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갖는 국가적 행위는 위헌무효로 명백히 확신할 수 없는 이상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른바 ‘통치행위론’이라는 궤변으로 평화적 생존에 대한 전국민적 기대를 뒤집은 것이다. 그 후 1982년 9월 최고재판소가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14년에 결친 재판은 종결되었고, 결국 나가누마에는 항공자위대의 미사일 기지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나이키미사일 대신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배치되어 오늘도 정체모를 가상의 적(아마도 북한)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고된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미사일기지가 결국에는 설치되고 현재까지 엄존한다고 하여, 고등재판소와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다고 하여 실망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간 추상적으로만 논의되던 평화적 생존권, 평화와 인권을 연결해주는 평화적 생존권이 재판규범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법정을 넘어 인간의 함성으로

사실 요즘 우리 사회의 새로운 관심은 평화와 인권이다. 그런데 이 평화와 인권은 별개의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정책의 문제이고 인권은 그저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평화적 생존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신체의 자유나 언론출판의 자유와 같은 인권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평화적 생존권은 인권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평화적 생존권은 평화적 생존을 저해하는 국가적 행위에 저항하는 권리이며, 무기수출과 같은 국가에 의한 평화저해행위를 견제하는 권리이며, 분쟁에 휩쓸리기 쉬운 정책을 취하지 않도록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평화적 생존권은 자기가 사는 나라에 대해서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다른 다라, 예를 들어 미국에 대해서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러한 인권을 어려운 말 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3세대의 인권’이라고 한다. 제3세대의 인권은 연대의 권리이기도 하다. 평택의 평화적 생존은 평택주민만의 분투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민과 미국민, 그리고 평화를 애호하는 모든 사람이 연대하여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신속기동군화전략을 견제하여야 하는 온전히 지켜질 수 있는 권리이다.

따라서 평화적 생존권이 우리 법원에서 재판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낙담할 필요는 없다. 인권은 재판규범이면서 동시에 정치 규범이다. 재판의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소의 이익, 입증책임 문제 등 복잡한 소송기술로 인하여 그 당위성은 인정받으면서도 승소할 수 없는 경우가 있지만, 정치규범으로서의 인권은 국가의 정책결정이나 입법과정을 통하여서 반영될 수 있는, 보다 진면목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평화적 생존을 저해하는 국가적 행위를 인권의 이름으로 반대함으로서 민초들의 목소리가 국가정책 결정에 반영되도록 하고, 평화적 생존을 저해하는 입법이나 조약을 개폐하도록 하는 것도 인권의 책무이다.

나가누마 미사일 기지 사건은 평화적 생존권이 재판규범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면서 동시에 평화적 생존의 권리는 법정에 가두어 둘 인권이 아니라, 국민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함성 속에 꽃피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평화적 생존의 권리, 한국 사회에서도 과연 주권자인 국민의 함성으로 메아리 칠 것인가.
이경주 님은 인하대 법학교수입니다.
인권오름 제 13 호 [입력] 2006년07월18일 16: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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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저항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

 

'평화야, 걷자!' 행진단장, 20일 구속적부 심사

 

  2006-07-19 오후 7:49:11

  지난 11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평화야, 걷자!'의 행진단장 박래군 씨에 대한 구속적부 심사가 20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씨는 9일 새벽 평택경찰서 앞에서 경찰에 항의하는 농성을 하던 중 행진단원 45명과 함께 연행됐다. 그 후 박래군 씨에게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으며 나머지 연행자들은 풀려났다.
  
  "검찰의 구속사유는 사실과 다르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한 이유로 "(박래군 씨가) 평택경찰서 앞에서 불법집회를 진행하고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경찰서 중앙 현관까지 무단으로 침입했으며, 3회에 걸친 해산명령에 불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 있던 '평화야, 걷자!' 행진단원들은 검찰의 구속사유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행진 참여자 20~30명 정도가 평택경찰서 마당 현관 앞쪽까지 들어갔다가 약 10분 후 스스로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며 이는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였고 경찰서를 무단으로 '침입'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평택경찰서 정문 앞에서 30분 정도 항의집회를 가진 뒤 자진해서 해산을 시작할 때 경찰이 갑자기 행진단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했다"며 해산명령에 불응한 것 또한 사실과 다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이들은 "당시 집회는 대법원의 판례로도 정당성이 증명되어 있는 '긴급집회'였고 더군다나 평화적으로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즉 신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회를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참가자들을 연행한 것은 법의 조문을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기계적으로 해석하고 집행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비폭력 항의집회는 '평화적 저항권'의 행사"
  
  한편 박래군 씨의 구속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 측은 "현행 형사소송법에서는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소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에만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다"며 "이는 인권운동가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박래군 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유"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인권운동사랑방은 "경찰의 직무유기와 인권침해에 항의하기 위해 비폭력적으로 항의집회를 가진 것은 '평화적 저항권'의 행사이며 이는 우리 헌법뿐 아니라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국제 인권기준에서도 인정되고 있는 '불복종의 권리'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평화야, 걷자!'는 지난 5~9일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와 한미 FTA 협상 반대를 내세우며 200여 명의 시민들이 서울에서 평택까지 도보로 행진한 행사다.

   
 
  강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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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자림 > 등꽃

 

            등       꽃

 

                                     김  명 인

 

 내 등꽃 필 때 비로소 그대 만나

 벙그는 꽃봉오리 속에 누워 설핏 풋잠 들었다

 지는 꽃비에 놀라 화들짝 깨어나면

 어깨에서 가슴께로

 선명하게 무늬진 꽃자국 무심코 본다

 달디달았던 보랏빛 침잠, 짧았던 사랑

 업을 얻고 업을 배고 업을 낳아서

 내 한 겹 날개마저 분분한 낙화 져내리면

 환하게 아픈 땡볕 여름 알몸으로 건너가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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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7-20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 좋구나 ...

Runa 2006-07-21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환해진달까요.
오늘 아침 한겨레의 문태준 시인이 생각나네요.
저는 시의 본령은 여전히 서정이라 여기는 구태를 못 벗어나 그런지,
요즘 나오는 소위 '미래파'들의 말 엮는 재주는 서커스보듯 찬탄하지만,
가까이 오래 보고 싶지는 않지요.
얼마전 김명인의 새시집을 만지작거리다 말았던 일도 있고,
소월의 서정을 닮았다는 문태준의 시집도 볼 겸 점심 먹고
서점에 들러야 겠습니다.

balmas 2006-07-22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참, 좋죠?
읽으니까 짜릿한 게 역시 서정의 힘은 대단하구나, 새삼 느끼겠더군요. :-)
그럼 저도 카우테님 따라서 한 권 사볼까요? ^^;
 

 

 

베버의 문화과학, 한계효용학파의 영향 결정적…10년만에 주류학계 수용
해외동향_ 베버 연구의 새로운 테제

2006년 07월 17일   김덕영 카셀대 이메일 보내기

베버는 문화과학자와 사회과학자들에게 영원한 ‘화두’다. 그들은 베버에게 끊임없이 회귀하고, 묻고, 시비 걸고, 도전하며 그를 더욱 발전시키거나 넘어서려 한다. 심지어 ‘베버 패러다임’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수많은 학자들이 베버를 연구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작고한 프리드리히 텐브룩을 비롯해 볼프강 슐룩터, 빌헬름 헤니스, 요한네스 바이스 등의 명성이 높다. 헤니스만 정치학자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학자다.


역사학자들 가운데에도 베버연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이들이 많다. 그 가운데 볼프강 몸젠(1930~2004)을 첫 번째로 거론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몸젠은 ‘막스 베버와 1890~1920년대의 독일정치’와 ‘막스 베버. 사회, 정치 그리고 역사’라는 저서를 남겼으며, 볼프강 슈벤트커와 함께 ‘막스 베버와 그의 동시대인들’이란 책을 편집했다. 또한 ‘막스 베버 전집’의 편집위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2004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Sociologia Internationalis’라는 저널에 ‘경제학자로서의 막스 베버. 이론경제학에서 문화과학으로’라는 논문을 기고했다(그의 사후에 게재됐음). 몸젠은 이 논문에서 베버를 오스트리아의 칼 멩거에 의해 창시된 한계효용학파와 연결시키고 있다. 베버가 방법론적 개인주의, 행위, 이념형 등에 기초하는 문화과학 연구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한계효용학파의 이론경제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게 몸젠의 테제다. 그에 따르면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론경제학은 문화과학의 “한 특수한 경우”(26쪽)다. 그리고 한계효용학파가 개인의 합리적 경제행위에 대해 제시한 엄밀한 이론과 유형 및 설명모델은 전형적인 이념형적 방법이라고 몸젠은 해석한다. 비록 멩거를 위시한 이론경제학자들이 그렇게 명명하지는 않았지만.


물론 베버가 한계효용학파의 이론경제학에서 문화과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주장할 정도로 몸젠의 논의는 거칠지 않다. 그는 당대의 다양한 철학, 문화과학, 사회과학 등이 베버의 지적 세계를 발전시키는 데 영향을 끼쳤음을 알고 있다. 가령 몸젠은 베버가 문화과학 및 사회과학의 논리와 방법론을 구축함에 있어 어떻게 신칸트주의 철학자 하인리히 리케르트의 가치론을 받아들였으며, 또한 베버가 이론적-역사적 문화과학 연구 프로그램을 제시함에 있어 어떻게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을 받아들였는가를 논증하고 있다.


베버의 문화과학과 한계효용학파의 이론경제학을 연결시키려는 몸젠의 시도는 베버연구의 새로운 방향으로 받아들여진다. 여태껏 베버의 문화과학의 발달과정에 대한 연구는 주로 리케르트의 신칸트학파나 독일역사학파 경제학에 초점을 뒀다. 당대 최고의 베버연구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슐룩터가 전자라면, 정치학자로서 탁월한 베버연구가인 헤니스가 후자를 대변한다.


이에 반해 한계효용학파는 단순히 심리학주의적이고 접근방법은 자연주의적이라며 간과, 무시돼왔다. 더불어 한계효용학파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멀리하는, 이른바 공리주의적 인간유형에 기초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사실 베버는 바로 이런 오해와 편견에 맞서 한계효용학파 경제학은 합리적 경제행위라는 근대적 문화과정과 시장이라는 근대적 문화제도에 대한 전형적인 이론임을 논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볼프강 몸젠 ©
그런데 연구사적으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으니, 이 같은 몸젠의 시도와 테제가 실상 독일어권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1996년에 몸젠이 논문을 게재한 바로 그 저널에 ‘막스 베버와 칼 멩거 중심의 한계효용학파. 사회학 발달과정에서 이론경제학이 지니는 의미에 대하여’(졸고)라는 글이 게재된 바 있다. 이 논문은 몸젠과 마찬가지로 베버는 한계효용학파의 이론경제학을 문화과학의 “한 특수한 경우”(48쪽)로 받아들인다고 해석하고 있다. 더불어 베버와 멩거와의 관계를 가치론, 이해와 이념형 등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여러 논문에서 한계효용학파의 이론경제학이 베버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연구했음). 물론 몸젠은 이들 글이 지니는 연구사적 의미를 잘 인지하며 인용하고 있다. 졸고가 좀더 이론적인 것이었다면, 몸젠의 논문은 역사적 접근방식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강조돼온 지성사적 사실이 왜 10년이 넘어 주목받게 됐을까. 그건 정형화된 베버 해석 때문이다. 베버 하면, 으레 리케르트의 신칸트학파를 연상하는 게 공식이 됐다. 더구나 최고의 베버연구가인 슐룩터는 베버를 칸트에까지 소급시킨다. 이런 지적 풍토에서 한계효용학파의 영향은 그저 공허한 외침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다가 베버가 학생들에게 나눠준 강의원고나 편지 등 다양한 자료가 편집되면서 베버의 지적 성숙과정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특히 몸젠의 섬세한 역사학적 분석은 한계효용학파와 베버의 관계가 단순히 이론적 차원에서나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사실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참고로 슐룩터도 최근의 연구에서 이전보다 강하게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베버는 당시의 수많은 지적 조류를 검토, 비판, 수용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문화과학 연구 프로그램을 구축했다. 이제 오랜 동안 간과되어온 한계효용학파의 이론경제학과 베버의 연구프로그램 사이의 관계가 새로운 연구테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는 과연 ‘제3 역사적-이론적 요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향후 수많은 책과 논문이 나와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수많은 반론과 비판이 제기돼야 할 것이다.

김덕영 / 독일 카셀대·사회학


©2006 Kyosu.net
Updated: 2006-07-18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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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헉! 내 리포트를 누가 팔고 있네
대학생 수업카페에 올려놓은 과제물 등
인터넷서 몰래 퍼다가 버젓이 거래 성행
판매사이트쪽 “중개만 할뿐…책임없어”
한겨레 임인택 기자
대학생들의 과제물 등 각종 개인 리포트들이 현대판 ‘봉이 김선달’에 의해 마구잡이로 온라인상에서 유료거래되고 있다. 이미 온라인 상에 공개된 남의 리포트를 수집해 인터넷 유료사이트에 올린 뒤, 거래된 만큼 수익을 챙겨가는 ‘리포트 절도범’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포트 판매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료를 찾던 채혜미(서울대 법대·23)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자신이 프랑스 예술가 ‘오를랑’에 대해 작성해 수업 커뮤니티 카페(같은 수업을 받는 학생들끼리 만든 온라인 모임)에 올린 문서 2개가 각기 다른 사람의 명의로 다른 사이트에 등재돼 버젓이 유료로 거래되고 있던 것이다. 수업 커뮤니티 카페에 가면 그냥 볼 수 있고 작성한지 1년이나 되는 이 문서를 이 사이트에서 내려받는 대가는 700원. 대동강 물을 팔았던 봉이 김선달의 뺨을 칠 만한 누군가가 채씨의 리포트로 간단히 벌어들인 수익은 1만3천원 가량이었다. 채씨는 “인터넷 게시판에 리포트를 올리면서 누군가 이걸 돈을 버는데 이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너무 황당하고 기분 나쁘다”고 말했다.

채씨와 같은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다. 온라인에는 대놓고 ‘리포트 수집 판매’의 요령을 알려주며 ‘사업’을 독려하는 글도 떠돌 정도다.

한 포털사이트의 구직 정보 카페에는 지난 2일 아이디 ‘강박사랑’이 ‘리포트 수집 판매 사업 요령’을 올렸다. 그는 “돌아다니는 한글자료는 대부분이 다른 사람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라며 “대학생들이 리포트를 많이 쓰는 ‘성수기’인 4~6월에 특히 많은 수익을 올린다”고 전했다.

이에 유료 판매사들은 저작권에 대한 ‘중개업’을 하기 때문에 도용에 대한 책임은 등재자에게 있다고만 말하고 있다. 한 리포트 유료사이트 관계자는 “100건 가운데 1건 정도가 도용된 문서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도 실제 작성자가 항의해 밝혀진 사례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지금까지 리포트 유료사이트 두 곳에서 자신의 리포트가 거래됐다는 박세완(고려대 법대·28)씨는 “사이트 한 곳에 항의를 했지만 ‘소명기간이 지났다’며 아무 보상도 없이 자료만 삭제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2개 사이트에서 박씨의 문서는 114차례가 거래됐고, 오간 돈은 확인된 것만 28만5천원어치다. 박씨는 지난 11일 자신의 문서를 도용한 이를 서울 종암경찰서에 우선 신고했다. 하지만 리포트 등재자가 허위 개인정보로 사이트에 가입했을 경우, 상대방을 찾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은 요원하다. 현재 리포트 유료 판매사이트는 레포트 월드, 네이버 지식시장, 해피캠퍼스 등 20여곳에 이르며 최대 300만건 이상의 자료를 보유한 곳도 있다.

임인택 기자, 송경화 인턴기자(서울대 지리학과4년)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417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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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7-17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정말 어떻게 해결 안되나?
리포트 베껴 내는 게 일반화된지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이제 이런 불법적인 거래 관행까지 판을 치니 ...

balmas 2006-07-17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렇군요.
그럼 저도 한번 검색해볼까요? ^^;

마립간 2006-07-17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는... 학생들만 뭐하라고 하지 말고 (아니 뭐라고 해야 하면서도 선생님들 측에서는) 레포트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식을 바꿔 예를 들면 구술 시험 아니면 open book 필기시험 등...
예전 S대 학생이 한자시험을 형편없이 치룬 것이 신문에 실렸는데, 학생의 항변이 한자는 모르지만 영어는 잘 한다면서 예전의 평가 방법을 고수하는 교수님을 질타한 글을 읽고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 교수님들도 세상의 변화에 맞게 변화해야죠.

cplesas 2006-07-17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레포트가 상품이 되고 있다더라도, 그 이전에 레포트를 한 명의 지적 재산으로 귀속시킬 법적 근거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정말 불법'적'인 건, 가령 해피캠퍼스의 경우 레포트를 거래하면서 레포트 가격의 50% 이상을 자기들이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간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4&dir_id=403&eid=BqXnHApdlRdsrW2GZOGrJ6Ws0FOiPbdf).

완죤 다단계 뺨치네요ㅋ

마립간님/ 제 생각에는 시험을 레포트 이외의 방식으로 대체할 것인지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담당 교수와 개개 수업의 학생들 간에 합의할 문제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여기서는 레포트를 사서 낼 수 있다는 부당함이 이유겠지요-성적 산출 방법이 문제된다면, 교수이든 학생이든 아무리 다른 방법을 일방적으로 주장한다더라도, 한쪽이 독단적이라는 점은 별로 변화되지 않을 것 같거든요. 물론 여기에 각 대학들이 이와 관련된 학칙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까지 더해지면 훨씬 복잡한 문제가 되겠지만요.


반딧불,, 2006-07-17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정말 짜증나죠.
열심히 썼는데 열심히 베끼고 짜집기한 것이 더 학점이 높게 나올때 정말 절망해요ㅠㅠ

balmas 2006-07-18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예, 평가방법을 다양화할 필요도 있죠. 그리고 보고서를 과제로 낼 때도
좀더 세심한 방법을 고안하면, 베끼거나 남의 페이퍼를 무단 도용해서 제출하는
일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죠. 그런데 사실 시간강사들은 대개 100명 이상의 대형강의를 맡는 일이 많기 때문에, 평가 방식을 다양화한다든지 보고서 주제를 세심하게 생각한다든지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_-a
무영님/ 그렇군요. 그것도 수수료가 꽤 많네요. 저런 업체들이 버젓이 영업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반딧불님/ 글쎄 말입니다.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말이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