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IPTV의 경제학 : 비밀은 곧 수익이 된다


[IPTV가온다](2) 'IPTV' 개인정보보호는 어떻게?



홍지(진보네트워크) idiot@jinbo.net / 2008년02월11일 18시13분




[출처: 일러스트 : 달군]

이름: 강선생(30세,여)
직업: 아이티 업계 종사(?)
가족관계: 남편, 1녀
참고사항: 최근 태왕 용준과 이별, 지성과 열애중


강선생은 태왕 배용준에 이어 최근 지성과 열애중이다. 벌써 며칠째 <뉴하트>와 <이산>을 번갈아가며 정복중인데 어제는 새벽2시까지 이미 본 뉴하트 1,2,3편에다 새로 보게된 4편까지 총 4편을 섭렵했다. "봤던 걸 또 봐"라는 남편에게 "그럼 오늘 밥먹고 내일은 밥 안먹냐!"라며 쏘아붙이기까지 했지만 사실 강선생은 며칠 전 남편의 석연찮은 행동에 신경이 쓰이고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이산'의 지난편을 '다시보기' 위해 '최근 본 프로그램' 목록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때 새벽 2시33분 낯선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김양의 러브러브1,2> '이 인간이 김양과 열애중이었구만!'모두 잠이 든 야심한 시각에 남편이 에로무비를 시청하고 있었던 것인데, 다음부터 혼자보지 말고 같이 보자는 의미로 던진 말이 무안하게 했던지 최근 남편은 채널선택에 굉장히 조심하는 눈치다.


농을 섞긴 했지만 심지어 어제는 '이렇게 사생활보호가 안되면 차라리 티비를 각자 두고 보자' 는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떤 이가 어떤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지 훔쳐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기는 하지만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떤 채널의 어떤 프로그램을 보았는지까지 상세하게 남는 기록을 혹시 다른 사람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선생은 갑자기 뒷목이 서늘해졌다.[편집자주]



 

부모님 몰래, 남편 몰래, 자식 몰래 TV 본다는 이야기 이제 옛 말이다. 일찍 자라는 부모님 말씀 어기고, 기어코 보고 싶은 드라마가 있어서 거실 형광등을 끄고, 음량은 ‘0'으로 해놓고 TV 앞에서 이불 뒤집어 쓴 채로 몰래 영화 보기 글렀다. 수능 특강 대신 관심 있는 다큐멘터리 보고나서, 부모님께 교육방송 봤다고 거짓말 할 수도 없게 되었다. 홈쇼핑 채널을 한 번이라도 지나쳤으면 “너 또 뭐 샀어?”라는 이야기 꼭 듣게 될 것이다.


휴대폰으로 전송되는 스팸 문자나 전화는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폭증할 것이며, 그 내용도 더욱 구체적으로 변할 것이다. “오빠, 나 한가해.”가 아니라 “나는 오빠가 좋아하는 드라마 ○○○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생겼어요.” 그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총기난사 사고를 전하는 보도에서 기자들은 “가해자가 마릴린 맨슨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라는 언급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음악은 죄가 없으나, 바보상자 TV는 언제나 죄가 많으니, 내가 기자라면 이렇게 말한다. “가해자는 ‘○○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TV 앞에 'IP(Internet Protocol)'가 붙기 때문이다. IP는 TV앞에서 ‘군중(mass)’이었던 나를 이제 식별 가능한 ‘개인’으로 탈바꿈시켰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무엇을 얻으려면 무엇을 희생해야 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등가교환의 법칙이라 일컫는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세상은 언제나 균형 상태의 에지워스 상자(Edgeworth Box)1)이기 때문에, 그 상자 안에 공돈이나 쓰레기는 굴러다니지 않는다.


IPTV는 2008년 정보통신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서비스 개시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국내의 내로라하는 미디어 기업들이 너도나도 IPTV 진출을 노리고 있다. 또한, IPTV의 물리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광대역통합서비스망(BcN) 구축은 이미 2010년 완공을 목표로 올해 마지막 3단계 사업에 들어가며, 정부와 통신·방송 업계가 앞으로 3년 동안 쏟아 부을 돈의 액수만 18조 2000억 원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으니, 정부와 기업이 이처럼 공을 들이고 있는 IPTV는 그 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수익을 안겨다 줄 금맥이라는 이야기일 터. 과연 금맥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국정보사회진흥원이 지난 1월 31일 발표한 <2008 유비쿼터스 IT 10대 이슈> 중 ‘방통융합에 따른 IPTV시대의 본격 개막’과 ‘온라인 개인정보보호’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IPTV를 시발로 본격화 될 유비쿼터스 시대, 정부와 기업이 노리는 무한 수익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개인정보이다.


IP, 즉 1인 기반의 고유한 주소체계를 이용한 서비스라는 점에서 IPTV 시청자와 인터넷 이용자의 개인정보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IPTV 시청자의 개인정보는 기존의 인터넷 사용자의 개인정보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 왜냐하면 인터넷이 개방형 서비스인 반면, IPTV는 폐쇄형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웹 서핑(surfing:파도타기)’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터넷은 콘텐츠에 대한 접근장벽이 거의 없다. 유일한 접근장벽이라면 브라우저의 존재유무일 뿐이다. 하지만, IPTV는 TV만 있으면 무조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입’ 즉, IP이외에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더 많은 나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서비스이다. 때문에 IPTV 시청자의 개인정보는 인터넷의 개인정보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코드다. 반면, 인터넷에서의 IP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식별자이나 본인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즉 IP와 개인은 1대1로 완벽히 매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IPTV의 IP는 처음 가입할 때 제시하는 개인정보와 함께 개인을 증명하는 보다 강력한 식별자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식별코드가 부여되면서, 지금껏 비밀의 영역에 자리했던 개인의 TV 시청 행위는 네트워크에 기록되고 저장될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할 변화는 단순히 ‘가족들 몰래 보는 TV’의 종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장 대중적이고 일상화된 매체인 TV의 이러한 변신은 그 어떤 미디어보다 구체적인 개인 정보의 보고(寶庫)를 구축한다. 내가 TV로 무엇을 보고, 듣고, 행하는지를 같은 TV를 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업이 알고, 정부가 알게 된다.


소비자의 일거수일투족이 판매경로인 기업에게 IPTV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때문에 IPTV의 상용화는 그간 통신사업자 간에 횡행했던 개인정보교환 영역이 TV로까지 확대됨을 의미한다. 이미 오래 전에 전 국민의 절반을 넘는 규모까지 커져버린 개인정보 유출은 IPTV시대에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를테면, IPTV 사업자인 A기업이 IPTV를 통해 광고 사업을 하려는 B기업에게 대가를 받고 개인정보를 제공할 때, 그 속에는 단순히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시청행태를 통해 추측된 취미 및 소비성향까지 포함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항상 국민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한 정부에게 IPTV는 성능 좋은 ‘텔레스크린’이 될 것이다. 13자리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아무개가 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손바닥 보듯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아직까지 개념 정의가 모호한 IPTV 사업자를 전기통신망법 상 통신사업으로 유추 적용될 경우, 이는 더 이상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IPTV 시청은 망에 대한 접속으로 구분되어 의무적으로 저장되어야할 정보에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의무적으로 1년 이상 보관되며, 수사기관이 원할 땐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90년대 말 처음 접했던 인터넷과 이후 10년이 지난 인터넷의 이용환경이 달라졌음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인터넷을 규제하는 온갖 법제들로 인터넷에서 글을 쓰는 행위는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마찬가지로, TV 시청이 그렇게 느껴질 날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IPTV가 무차별적인 개인정보남용과 유출을 초래할 가능성은 불을 보듯 뻔한데,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IPTV를 규제할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안’에서 이용자 보호는 말 그대로 선언적 문구에 머무른다. 제16조 2항에서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 제공사업자는 서비스나 전기통신설비의 제공 과정에서 취득한 개별 이용자에 관한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하며, 취득한 개인 정보를 공개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할 뿐이다. 대통령령으로 위임한다는 이야기도 없고, 부칙도 없는 상황이다. 이마저도 후단의 단서조항인 “다만, 본인의 동의가 있거나 법률의 규정에 따른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에 의해 전단의 선언마저 무색해질 가능성이 크다. IPTV 사업자의 개인정보보호 의무를 최소한 현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의무조항에 준하는 수준으로 규정하는 일이 급선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IPTV를 둘러싼 온갖 장밋빛 수익 지표들은 TV 시청 행위라는 사생활을 비용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IPTV의 일반 이용자가 프라이버시를 기업과 정부에 넘김으로써 얻게 될 수익은 말해주지 않는다. 개인이 프라이버시를 포기함으로써 얻게 될 이익이란 애당초 없기 때문이다. IPTV와 방통융합, 나아가 유비쿼터스 시대의 경제학은 비밀과 수익의 부등가교환이다. 들리는가. 에지워스 상자 안에서 우리의 개인 정보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소리가.


1) 에지워스상자(Edgeworth Box): 경제학에서 등가교환을 전제로 한 자원배분의 최적 상태를 사각형 상의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한 것

진보넷 아이디가 있으면 누구나 참세상 편집국이 생산한 모든 콘텐츠에 태그를 달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단어, 또는 내용중 중요한 단어들을 골라서 붙여주세요.태그: 인터넷 / 개인정보 / 융합 / IPTV / 미디어융합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트랙백 주소 http://www.newscham.net/news/trackback.php?board=news&id=42427 [클립보드복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라주미힌 2008-02-1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의 노출이 점점 심해질 수록 '광고'도 성황이겠네요.
TV 광고도 맞춤형으로... 호구조사에 입각하여 각각의 TV로 배달이 되는 시대가 오겠죠 ㅡ..ㅡ;;;

balmas 2008-02-18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글쎄 말입니다. 맞춤형 광고라고나 할까 ...
 

재인이 왔다갔구나.

내가 2박 3일간 워크숍 다녀오느라고 답변이 좀 늦었다.

네 질문은 결국 라틴어 접속사인 "ac"의 용법으로 집약되는 것 같은데, 다음과 같이 답변할 수 있을 것 같다.

"ac"나 "atque"는 비교의 대상이 되는 두 가지 항목을 연결하는 접속사야. 그래서 ac나 atque는 항상 두 항목에 대한 지시를

포함하고 있지. 무슨 말이냐 하면, 문제의 2부 정리 7의 경우 "ac"라는 접속사가 쓰였다면, 이것은 앞에 나오는 항목,

곧 "Ordo & connexio idearum"과 뒤의 항목, 곧 "ordo & connexio rerum"이 "ac"을 통해 서로 비교되고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야. 이 문장에서 비교의 내용은 당연히 "idem est", 곧 "[A는 B와] 같다"는 것이고.

따라서 "ac"라는 접속사에서 앞뒤의 절을 따로따로 분리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지.

여기서 쓰인 "idem est ac"라는 말을 불어로 번역하면 "~ est le meme que ~"이야.

그리고 영어로 번역하면 "~ is the same  as ~"가 되고.

또 독일어로 하면 "~ ist dieselbe wie ~"가 돼.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2부 정리 7의 번역에서 혼란이 생길 염려는 없겠지.

 

논문 열심히 쓰고, 나중에 한번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잘 지내시는지?

 

요즘 형의 학위논문을 잘 읽고 있어요.

번역(나아가 해석의 문제가 되겠지만)에서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형 논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에티카 2부 정리 7의 번역을 형은 이렇게 제안했는데(논문 97쪽 이하)

"관념들의 질서와 연관은 실재들의 질서와 연관과 같은 것이다."

Ordo & connexio idearum idem est, ac ordo & connexio rerum.

스피노자 전체 맥락을 모른 채로 질문하는 거여서, 혹시라도 무식한 질문이 될 수도 있겠는데, 암튼 용기를 내자면...

문장에서 ",ac" 부분 말야, 이게 도무지 해독이 안 된단말야.

사전을 찾아보니까, 그 단어는 atque와 동의어로 나와 있고, 그 뜻은 아래와 같더라고.

 conj. a copulative particle, and also, and besides, and even, and (indicating a close internal connection between single words or whole clauses; while et designates an external connection of diff. objects with each other, v. et; syn.: et, -que, autem, praeterea, porro, ad hoc, ad haec).

(참고: http://www.perseus.tufts.edu/cgi-bin/ptext?doc=Perseus%3Atext%3A1999.04.0059%3Aentry%3D%234276)

그렇다면 이렇게 번역할 수는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관념들의] 질서와 관념들의 연관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또한 [실재들의] 질서와 실재들의 연관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질문의 핵심은 '질서ordo와 연관connexio' 또는 '질서와 관념들의 연관connexio idearum 또는 실재들의 연관connexio rerum'의 동일성에 있지 않는가 하는 점이지.

나아가, 논문 100쪽에서 인용하고 있는 E II P7s에서도 unum eundemque ordinem, sive unam eamdemque causarum connexionem은 "하나의  동일한 질서, 즉[=부연 설명으로서의 sive] 원인들의 하나의 동일한 연쇄"라고 볼 수 있고, E III P2s에서도 ordo, sive rerum concatenatio una sit은 "질서 즉 실재들의 연관은 하나다"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해서 말이야.

이런 식으로 본다면, 질서ordo에 대한 여러 가지 부연 설명으로서 형이 인용한 세 대목이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정리하자면, 이런 번역의 차이가 전체 텍스트 해석에 끼치는 영향이 어떨지는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했고, 이런 번역이 그냥 문법적으로 타당한가 여부를 묻는 거야. 혹시 스피노자 철학의 맥락과는 무관하게 내가 제안한 번역이 타당한지 여부만 짤막하게 검토해 줬으면 해.

난, 논문 쓰고 있으니, 무척 바쁜데, 좀 더 여유롭게 형 논문 읽고 싶지만, 바삐 가느라 음미할 시간은 부족하네. 추운데, 건강 조심하고...

재인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8-02-15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8-02-1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아니 몸이 안좋으신가봐요. 쩝 ;;; 몸도 않좋으신데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천천히 읽다보면 언젠가 조금씩 이해가 되겠죠. :-)

2008-02-16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8-02-20 23:45   좋아요 0 | URL
제가 그 책을 갖고 있지 않아서 황종연 씨가 그렇게 번역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틀린 거라기보다는 무언가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옮겼겠죠. ㅎㅎㅎ 그 질문은 저보다는 황종연 씨에게 해야 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

2008-02-26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참세상]

IPTV가 뭐지?

 

[IPTV가온다](1)IPTV로 본 미디어융합 환경



김지희 (민중언론참세상)  / 2008년02월05일 17시04분

‘시간도 프로그램도 마음대로’, ‘영화도 골라주고 뭐든 다 된다’는 꿈의 TV, IPTV.


업체들의 수식어는 화려하기 짝이 없고, 정부의 산업지상주의와 맞물린 언론의 띄우기는 찬란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매번 비슷한 상품 소개, 빌어먹을 팔아먹기 전략’이라고.


분명 반복되고 지겨운 소비 촉진 과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IPTV는 이전의 몇몇 제품들과 달리 적당히 팔리면 끝날 이벤트로 취급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 자체로도 문화, 미디어 소비 패턴을 변경할 여지가 있을 뿐 아니라 대중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자본화 과정으로 전이, 확산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IPTV에 대한 분석을 통해 미디어 융합 상황을 조망하는 작업은 향후 변화하는 미디어 및 생활문화 지형을 파악하는 데 유의미하리라 본다.


IPTV가 뭐지?





[출처: 미디액트 http://www.mediact.org]
순전히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IPTV는 획기적인 신기술이라 보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IPTV는 기존 인터넷서비스에서 사용하는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 인터넷과 동일한 데이터 전송 방식을 활용하는 단말기만 - PC가 아닌 - TV인 서비스일 뿐이다. 물론 방송과 통신 등 미디어의 융합과 광대역망 구축, ISO MPEG4를 위시한 영상 포맷의 진화 등 관련한 기술이 진척되고 있다.


하지만 역시 핵심 개념은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주고 받는 IP(Internet Protocol)라는 정보전달 방식이다. IP방식은 매우 단순하기에 강력하고, 인터넷의 쌍방향성을 구현하는 주요한 개념이다.


따라서 IPTV 역시 인터넷과 동일하게 영상, 음성, 텍스트를 통한 방송은 물론 메일, 메신저, 전화, 카페, 온라인 게임, 파일 관리, 검색, UCC 등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IPTV 도입 단계인 현재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컨텐츠를 볼 수 있는’ VOD(Video on Demand) 서비스가 주를 이루고 있다. VOD서비스를 이용하면 기존 TV와 달리 마치 웹사이트처럼 채널을 메뉴에서 선택하고, 편성 시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원하는 시간에 마음대로 볼 수 있다. 1편부터 종편까지 쌓여있는 온갖 드라마와 시리즈물들은 벌써부터 잠 잘 때를 놓치고 빠져드는 ‘IPTV 폐인’ 양산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IPTV의 주요 특징


IPTV의 가장 큰 특징은 TV와 달리 채널 개념이 없다는 점이다. 기존 지상파와 케이블TV는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과 케이블 선의 분배에 따라 채널 개수에 제한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제한 조건은 때론 케이블TV의 채널 획득을 위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rogram Provider)들 간 치열한 경쟁과 비리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곤 한다.


그러나 IPTV는 멀티캐스트라는 방식을 사용하여 논리적으로 무제한의 채널을 제공할 수 있다. 실제 IPTV의 화면은 흡사 인터넷 포털의 메뉴 화면과 동일한 기능을 하며, 채널 제한으로 인한 자원의 효율적 분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따라서 향후에는 블로그나 온라인 카페같이 이용자가 운영하는 개인 매체 채널(Personal Media Channel) 서비스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주요한 특징은 TV와 달리 인터넷에 가까운 쌍방향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월 22일 다음커뮤니케이션이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셀런과 함께 ‘오픈 IPTV’ 서비스 개시를 위한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시연된 오픈 IPTV 테스트 버전에 의하면, 컨텐츠 레코드 기능은 물론 드라마 시청 시 관련 검색을 통한 인물정보, 쇼핑, 뉴스, 관련 카페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하나의 스포츠 경기를 다양한 위치에서 촬영하면서 이용자가 원하는 위치를 선택하여 시청하는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기능이 드라마에도 적용된다면 드라마에 다양한 결말을 설정하고 이용자가 선택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향후 상상 가능한 서비스들을 고려해볼 때 대중이 IPTV에 중독되어 갈수록 인터넷으로부터 비롯된 각종 컨텐츠와 서비스가 오히려 IPTV로 수렴될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출처: 다음goTV(2006버전) - 메뉴화면(http://www.daum.net)]

한편 IPTV가 채택한 데이터전송방식으로 인해 서비스 가능 범위가 파괴된다. 예를 들어 IPTV는 휴대용 무선 IPTV 장비 뿐 아니라 핸드폰이라든가 PMP 등 단말기에 제한이 없다. IP방식만 맞춰준다면 세계 모든 종류의 컨텐츠가 서로 교통하고 융합 가능한 것이다.


IPTV로 본 미디어융합 환경


그간 통신시장의 망 중심 네트워크 사업은 더 이상 물리적 확장 공간도 증가할 가입자도 없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케이블TV는 방송 뿐 아니라 인터넷망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해왔다. 수세에 몰리던 통신업계에게 IPTV는 새로운 시장 구축과 컨텐츠 사업으로의 확장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 되었다. 물론 사업 진행과정과 주체의 이해관계로 인해 IPTV가 철저히 산업 기조로 체계화되어가는 건 두말할 필요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28일 통과한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일명 IPTV법)만 보더라도 실시간 방송에 대한 규정만 존재할 뿐 핵심인 VOD 서비스에 대한 규제나 공공성 내용은 모두 빠져 있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을 위한 수화 내지는 자막방송 등의 비율 적용 규정도 없고 대중의 미디어 참여 권리를 위한 퍼블릭엑세스 규정도 전무하다.


게다가 모든 컨텐츠의 배치와 메뉴 구성 권한이 올곧이 사업자에게 주어지므로 엄청난 미디어 권력이 집중된 셈이다. 현재로서는 공공 컨텐츠 의무 전송이나 배치 규정도 없으므로 그 권력은 더욱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거대해질 것이다.


자본화 과정은 비단 IPTV로 한정되지 않는다.


이제 소통을 위한 네트워킹 기술은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넘어 인간과 사물의 소통으로 확장되어 간다. 통신업계는 향후 냉장고나 가스렌지와 대화하게 될 홈네트워크 시대를 대비하여, 가정 내 유무선 소통망과 이용 컨텐츠를 선점한 셈이다. 선점한 서비스 이용이 생활 습관화되면 미래의 예측 가능한 수익마저 독점하는 효과를 누리게 된다.





[출처: myLGTV - 메뉴화면(http://www.mylgtv.com)]

미디어 융합 상황이 가져오는 놀라운 현상 중 하나는 매체가 언론, 방송의 개념과 분리되는 것이다. 보통 ‘한겨레’라는 언론에는 ‘신문’이라는 매체가, ‘KBS'라는 방송에는 ’지상파 TV'라는 매체가 짝을 이루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제 매체라는 그릇은 언론과 방송이라는 내용물과 관계없이 성장하고 있다. 이미 케이블TV에서부터 진척된 이 개념은 IPTV에 이르러 방송 뿐 아니라 기존 인터넷 상의 각종 개인 또는 협업 컨텐츠로 확대 적용된다.


과정 속에서 소규모 미디어나 대안미디어 운동집단은 대중과의 접점이 현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동안 종이나 인터넷이 비교적 저렴한 매체의 역할을 해주었다면 IPTV를 위시한 융합미디어들은 진입조차 넘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안미디어들이 매체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 및 공공성 보장을 외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한편 IPTV는 개방성의 상징인 인터넷 정보전달방식을 이용하여 가입자 중심 서비스를 제공하는 폐쇄형 네트워크를 구현함으로써 ‘지불한 자만이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지불’로 형성되는 네트워크는 지불능력에 따라 이용자의 정보 격차를 가중시킬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비상업적이었던 인터넷을 자본화시킨다. 그리고 신뢰도 높은 가입자의 개인 정보는 각종 세트상품과 컨텐츠 제작자와의 계약 등을 통해 어느 범위까지 유통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진보넷 아이디가 있으면 누구나 참세상 편집국이 생산한 모든 콘텐츠에 태그를 달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단어, 또는 내용중 중요한 단어들을 골라서 붙여주세요.태그: 방통융합 / IPTV / 미디어환경융합 / 초고속인터넷망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트랙백 주소 http://www.newscham.net/news/trackback.php?board=news&id=42420 [클립보드복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최원 형,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양 선생님도 잘 계시고 따님도 무럭무럭 자라는지 궁금합니다. 타향에서 설을 맞아서 좀 쓸쓸할지도 모르겠는데, 새해에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공부에도 많은 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최원 형이 좋은 문제제기를 해주셨네요. 질문은 크게 두 가지인 듯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라틴어 “intelligendum”, 동사원형으로 하면 “intelligere”의 번역에 관한 문제지요. 제가 이 동사를 “파악하다”라고 번역한 것은, 이 동사가 지닌 인지적 의미를 조금 더 부각시켜 보자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 동사는 간혹 “이해하다”(영어로는 understand, 불어로는 “entendre”나 “comprendre”)로 번역되곤 하는데, 알다시피 지난 19세기 말 이후 사회과학 방법론 논쟁에서 “이해”와 “설명”은 늘 대립되는 개념쌍으로 제시되어왔죠.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해”라는 개념 내지 용어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비과학적인 앎의 양식을 뜻하겠지요. 그런데 스피노자는 이런 방법론 논쟁의 맥락과는 무관한 사람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논쟁과 상반된 입장에 서 있는 철학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겠죠. 따라서 저로서는 intelligere라는 용어를 “이해하다”라고 번역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오해를 막아보자는 뜻에서 “파악하다”라고 번역한 것입니다(이 점에 관해서는 마슈레의 생각을 많이 따른 셈이죠).

그 다음 두 번째 질문은 “percipere/perceive”와 “intelligere/understand” 사이의 관계와 차이에 관한 것이죠. 우선 이런 점을 지적할 수 있을 듯합니다. 스피노자에서 “percipere/perceive”라는 용어는 상당히 의미가 넓은 편입니다. “의미가 넓은 편”이라는 말은, 이 용어가 반드시 “감각 지각”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또 부적합한 인식이나 혼동되고 단편적인 인식을 뜻하지도 않는다는 뜻이죠. 다시 말해 스피노자에서 “percipere/perceive”와 “concipere/cenceive”는 거의 등가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몇 군데에서는 “percipere, sive concipere”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서 양자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데, 스피노자 자신이 {윤리학} 2부 정의 3의 해명에서 “perceptio”와 “conceptio”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 전자는 “정신이 대상으로부터 수동적인 영향을 받는 반면”, 후자는 “정신의 작용/능동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지요. 실제로 스피노자의 용법을 살펴보면 “percipere”의 경우는 늘 표상적인 측면, 곧 어떤 대상에 대한 표상이나 인식이 명석판명한지 아닌지, 또는 적합한지 아닌지와 관련되어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2부 정리 29의 주석에 보면 “외적으로 규정되는” 경우는 “percipere”로, “내적으로 규정되는” 경우는 “intelligere”로 쓰고 있는데, 이러한 용법은 다음과 같이 부연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스피노자에게 인식은 항상 신체의 “affectio”를 대상으로 하는데, 이 “affectio”가 외부 물체의 작용에 대한 영향을 함축하는 한에서 인식은 늘 수동적인 표상/지각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죠. 이것은 2부 정리 29의 주석에 나오는 “외적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잘 보여주는 경우겠지요. 그런데 두 번째, “내적으로 규정되는” 경우에 정신은 개별적이고 단편적인 지각의 상태에서 벗어나 다수의 표상들을 비교, 고찰한다는 의미에서 첫 번째 경우와 같은 단편적이고 고립적인 인식의 상태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여전히 대상들, 표상들에 대한 지각에 기초를 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전자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이러한 다면적인 비교, 고찰을 통해 “실재들 사이의 합치, 차이 및 대립을 파악”하는 데까지 나아감으로써 적합한 인식, 능동적인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제가 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쓴 것은 이 점을 감안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실재들을 동시에 고려하게 되면, 자연의 공통 질서에 따라 인식할 때와는 달리 이러저러한 실재들과의 우발적인 마주침에 따라 실재들의 이런저런 측면들을 단편적으로 지각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다면적인 인식 내지 지각은 이를 기초로 하여 실재들 사이의 합치와 차이, 대립을 고려하기 때문에, 단편적 지각에 수반되는 혼동된 인식에 빠질 위험성도 적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은 훨씬 더 명석하고 판명한 인식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내적 규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인식은 여전히 지각의 차원에서, 곧 변용들의 질서와 연관에 대한 지각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상상적 인식이다. 따라서 이것과 자연의 공통 질서에 따라 이루어지는 지각과의 차이는 동일한 상상적 인식 내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다면적 지각의 노력을 통해 우리가 소수의 물체들 사이의 공통적 특성을 지각하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삼아 좀더 많은 물체들 사이의 특성들에 대한 지각으로 인식의 범위를 확장하게 된다면, 우리는 좀더 많은 공통 통념들에 기초를 둔 인식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공통 통념들에 기초를 둔 2종의 인식은 상상적 인식 안에서 자신의 성립 조건을 발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최원 2008-02-09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렇군요.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저도 외적으로 규정된 인식으로부터 내적으로 규정된 인식으로의 전환이 수동에서 능동으로의 전환의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규정된 인식'이 상상적 인식이라는 점에는 여전히 선뜻 동의가 안되는군요. 저에게는 내적으로 규정된 인식이 common notions를 말한다는 것도 아주 명료하진 않습니다. common notions 자체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들은 언제나 1종과 2종 사이의 미분으로 기능을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데리다적인 의미에서 '결정불가능한 것'으로 남아있거나, 또는 오히려 1종과 2종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게 됩니다. ommon notions를 어느 한 쪽에만 귀속시키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항상 어떤 곤란을 갖게되지 않나 싶은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의 눈에는 더욱 더 스피노자가 perceive와 conceive를 혼용하면서 common notions를 묘사하는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군요. 그리고 예전에 토론을 하고나서 나름대로 저도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곤 하는데, 아직 가설적이기는 하지만 common notions를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은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부 정리 38의 corollary에 보면 "there are certain ideas or notions common to all men"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예전부터 느껴온 것이지만 이 문제는 참 힘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답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