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 형,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양 선생님도 잘 계시고 따님도 무럭무럭 자라는지 궁금합니다. 타향에서 설을 맞아서 좀 쓸쓸할지도 모르겠는데, 새해에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공부에도 많은 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최원 형이 좋은 문제제기를 해주셨네요. 질문은 크게 두 가지인 듯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라틴어 “intelligendum”, 동사원형으로 하면 “intelligere”의 번역에 관한 문제지요. 제가 이 동사를 “파악하다”라고 번역한 것은, 이 동사가 지닌 인지적 의미를 조금 더 부각시켜 보자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 동사는 간혹 “이해하다”(영어로는 understand, 불어로는 “entendre”나 “comprendre”)로 번역되곤 하는데, 알다시피 지난 19세기 말 이후 사회과학 방법론 논쟁에서 “이해”와 “설명”은 늘 대립되는 개념쌍으로 제시되어왔죠.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해”라는 개념 내지 용어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비과학적인 앎의 양식을 뜻하겠지요. 그런데 스피노자는 이런 방법론 논쟁의 맥락과는 무관한 사람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논쟁과 상반된 입장에 서 있는 철학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겠죠. 따라서 저로서는 intelligere라는 용어를 “이해하다”라고 번역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오해를 막아보자는 뜻에서 “파악하다”라고 번역한 것입니다(이 점에 관해서는 마슈레의 생각을 많이 따른 셈이죠).

그 다음 두 번째 질문은 “percipere/perceive”와 “intelligere/understand” 사이의 관계와 차이에 관한 것이죠. 우선 이런 점을 지적할 수 있을 듯합니다. 스피노자에서 “percipere/perceive”라는 용어는 상당히 의미가 넓은 편입니다. “의미가 넓은 편”이라는 말은, 이 용어가 반드시 “감각 지각”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또 부적합한 인식이나 혼동되고 단편적인 인식을 뜻하지도 않는다는 뜻이죠. 다시 말해 스피노자에서 “percipere/perceive”와 “concipere/cenceive”는 거의 등가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몇 군데에서는 “percipere, sive concipere”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서 양자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데, 스피노자 자신이 {윤리학} 2부 정의 3의 해명에서 “perceptio”와 “conceptio”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 전자는 “정신이 대상으로부터 수동적인 영향을 받는 반면”, 후자는 “정신의 작용/능동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지요. 실제로 스피노자의 용법을 살펴보면 “percipere”의 경우는 늘 표상적인 측면, 곧 어떤 대상에 대한 표상이나 인식이 명석판명한지 아닌지, 또는 적합한지 아닌지와 관련되어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2부 정리 29의 주석에 보면 “외적으로 규정되는” 경우는 “percipere”로, “내적으로 규정되는” 경우는 “intelligere”로 쓰고 있는데, 이러한 용법은 다음과 같이 부연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스피노자에게 인식은 항상 신체의 “affectio”를 대상으로 하는데, 이 “affectio”가 외부 물체의 작용에 대한 영향을 함축하는 한에서 인식은 늘 수동적인 표상/지각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죠. 이것은 2부 정리 29의 주석에 나오는 “외적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잘 보여주는 경우겠지요. 그런데 두 번째, “내적으로 규정되는” 경우에 정신은 개별적이고 단편적인 지각의 상태에서 벗어나 다수의 표상들을 비교, 고찰한다는 의미에서 첫 번째 경우와 같은 단편적이고 고립적인 인식의 상태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여전히 대상들, 표상들에 대한 지각에 기초를 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전자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이러한 다면적인 비교, 고찰을 통해 “실재들 사이의 합치, 차이 및 대립을 파악”하는 데까지 나아감으로써 적합한 인식, 능동적인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제가 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쓴 것은 이 점을 감안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실재들을 동시에 고려하게 되면, 자연의 공통 질서에 따라 인식할 때와는 달리 이러저러한 실재들과의 우발적인 마주침에 따라 실재들의 이런저런 측면들을 단편적으로 지각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다면적인 인식 내지 지각은 이를 기초로 하여 실재들 사이의 합치와 차이, 대립을 고려하기 때문에, 단편적 지각에 수반되는 혼동된 인식에 빠질 위험성도 적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은 훨씬 더 명석하고 판명한 인식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내적 규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인식은 여전히 지각의 차원에서, 곧 변용들의 질서와 연관에 대한 지각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상상적 인식이다. 따라서 이것과 자연의 공통 질서에 따라 이루어지는 지각과의 차이는 동일한 상상적 인식 내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다면적 지각의 노력을 통해 우리가 소수의 물체들 사이의 공통적 특성을 지각하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삼아 좀더 많은 물체들 사이의 특성들에 대한 지각으로 인식의 범위를 확장하게 된다면, 우리는 좀더 많은 공통 통념들에 기초를 둔 인식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공통 통념들에 기초를 둔 2종의 인식은 상상적 인식 안에서 자신의 성립 조건을 발견한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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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 2008-02-09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렇군요.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저도 외적으로 규정된 인식으로부터 내적으로 규정된 인식으로의 전환이 수동에서 능동으로의 전환의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규정된 인식'이 상상적 인식이라는 점에는 여전히 선뜻 동의가 안되는군요. 저에게는 내적으로 규정된 인식이 common notions를 말한다는 것도 아주 명료하진 않습니다. common notions 자체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들은 언제나 1종과 2종 사이의 미분으로 기능을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데리다적인 의미에서 '결정불가능한 것'으로 남아있거나, 또는 오히려 1종과 2종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게 됩니다. ommon notions를 어느 한 쪽에만 귀속시키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항상 어떤 곤란을 갖게되지 않나 싶은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의 눈에는 더욱 더 스피노자가 perceive와 conceive를 혼용하면서 common notions를 묘사하는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군요. 그리고 예전에 토론을 하고나서 나름대로 저도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곤 하는데, 아직 가설적이기는 하지만 common notions를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은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부 정리 38의 corollary에 보면 "there are certain ideas or notions common to all men"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예전부터 느껴온 것이지만 이 문제는 참 힘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답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