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수요일에 오랜만에 아는 후배를 만났는데, 존 버거 책을 한 권 번역했다고 줘서 틈틈이 읽고 있다. 교육방송 PD로 일하고 있는 친구인데, 바쁜 와중에도 책을 번역한 게 용하다. 존 버거를 좋아하는 나로서야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선물인데, 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시라고(장 모르의 사진들도 좋다^^) 권하는 의미에서 몇 구절을 적어보겠다.

 

행운아 - 어느 시골 의사 이야기

존 버거 (지은이), 김현우 (옮긴이), 장 모르 (사진) | 눈빛


정   가 : 9,000원
판매가 : 8,100원(10%off, 900원 할인)
마일리지 : 243원(3%)
2004-11-11 | ISBN 8974092085
반양장본 | 184쪽 | 188*128mm (B6)
알라딘 Sales Point : 360
예술/대중문화 주간베스트 56위

  



부커상 수상작가로 폭넓은 저작활동을 해오고 있는 존 버거가 쓴 글과 장 모르가 찍은 사진을 함께 담았다. 점점 더 궁핍해지는 후미진 시골, 의사 존 사샬은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을 보살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행한 현대사회에서 '행운아'인 한 의사의 삶을 통해 인간 삶의 가치를 돌아본다.



존 버거 (John Berger) - 1926년 런던 태생으로 미술비평가, 소설가, 극작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 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술평론으로 활동을 시작해 사유의 영역을 확대해 왔으며 역사에 대한 통찰과 감각도 탁월하다. 1962년 영국을 떠나 알프스의 작은 마을에 은거해 글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소설로는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 상(Booker Prize)을 수상한 <G>, 농민을 노래한 3부작 <그들의 노동에 함께하였느니라 Into Their Labours>가 있고, 평론으로는 <랑데부 Keeping a Rendezvous>, <시각 The Sense of Sight>, <보는 방법 Ways of Seeing> 등이 있다.

김현우 -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옮긴 책으로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수녀의 나를 사로잡은 그림들>, <두첸의 세계명화비밀탐사> 등이 있다.

장 모르 (Jean Mohr) - 지난 20년 동안 유네스코,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적십자사의 사진가로 일해 왔다. 2004년 현재 스위스 제네바에 살고 있다.

한겨레신문 : 세계 문화예술계 최고의 팔방미인을 꼽자면 빠질 수 없는 이가 영국 출신의 작가이자 극작가, 비평가인 존 버거다. 화가이기도 한 존 버거는 미술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이미지-시각과 미디어>란 책으로 유명해졌다.

이후 다큐멘터리 작가와 방송인으로도 활동해왔고, 사회비평가로서도 좌파 진영의 손꼽히는 논객으로 자리매김했다. <결혼을 위하여> 등을 쓴 소설가로도 널리 알려져 해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며, 인간소외와 현대인의 고독감을 잘 포착해내는 수필가로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중년 이후 존 버거는 프랑스 알프스산맥 기슭 농촌에 들어가 글 쓰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은 역시 시각 이미지 쪽이다. 사진작가 장 모르가 사진을 찍고 그가 글을 쓴 일련의 연작 가운데 하나인 <행운아>가 최근 출간됐다. 존 버거는 환자들과 진실한 인간적 교감을 시도하며 마을주민들의 보살피려는 영국의 한 시골마을 의사 존 사샬의 일상을 통해 삶의 가치란 무엇인지 묻는다.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총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이 의사가 바로 '행운아'이며 역설적으로 현대인 대다수는 불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역시 존 버거와 장 모르의 공동작업물인 <제7의 인간>과 <말하기의 다른 방법>도 각각 같은 출판사에서 10여년 만에 재출간됐다. <제7의 인간>(차미례 옮김)은 <행운아>처럼 강렬한 이미지의 사진을 통해 현대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으로 1970년대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삶을 그린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희재 옮김)은 산악지방 농촌마을 사람들을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사진의 미학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찰하는 독특한 에세이풍의 사진이론서다. 7년에 걸쳐 찍은 농부들의 사진 자체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풍성하며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사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존 버거 나름의 답변을 구하는 작업이다. - 구본준 기자 ( 2004-11-13 )

 

69-70쪽

사람들은 사샬이 솔직하고,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하기에 편하며, 가까이 있고, 다정하고 이해력이 있으며, 남의 말을 경청하고, 언제라도 필요할 때는 달려와서는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또한 사람들은 그가 분위기 있고, 성과 같은 주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좀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가끔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줄도 아는 그런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의사로서 그가 어떻게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 주는지는 위에서 말한 것들처럼 복잡한 것은 아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의사-환자 관계에 고유한 특질과 깊이를 생각해야 한다.

성직자나 무당 혹은 판관을 겸하기도 했던 원시시대의 의사들은 종족을 위해 식량을 생산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어다. 이러한 특권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특권에 의해 그에게 주어지는 권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의사가 해결해 주는 인간의 욕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몸이 아픈 것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알아 가는 과정에서 최초로 지불해야 하는, 어쩌면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불하고 있는 대가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고통이나 불편함을 배가시킨다. 그런데 그러한 인식의 결과로 생겨나는 자의식은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이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자의식에서 치료의 가능성, 약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원시시대 부족민들이 의사의 치료에 대해서 취했던 주관적인 태도를 지금 상상으로 재구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문화에서 우리 자신의 태도는 어떠한가? 자신의 몸을 의사에게 맡기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신뢰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우리는 의사들이 우리의 몸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런 접근은 연인에게만 허락되는 것인데-심지어 연인에게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따지고 보면 의사는 완전히 낯선 사람 아닌가?

(장 모르의 사진들 몇 장이 중간에 나온다)

74쪽-75쪽

의사들의 윤리지침은 의사로서의 역할과 연인으로서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의사와 환자 관계에서의 친밀감의 한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 구분은 의사들이 여자의 벗은 몸을 보고, 원하는 곳을 만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칫 환자와 자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거라는 염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가정은 상상력이 결여된 철없는 상상일 뿐인데, 의사들이 환자들을 접하게 되는 상황은 성욕을 감퇴시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성적인 사항을 의사의 윤리지침에 넣은 것은 의사들을 행동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일종의 약속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들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주는 그런 약속 말이다. 그것은 성적인 것과는 상관없는 육체적인 친밀감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약속이다. 그렇다면 그 친밀감이 의미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이 어린 시절의 경험에 속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의사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은 스스로 어린이의 상태로 돌아가서, 그 의사를 가족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 순간에 의사는 가족과 동등해지는 것이다.

환자의 심리가 부모에게만 고정되어 있는 경우에, 의사는 그 부모의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관계에서 성적인 생각들은 진료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몸이 아플 때 사람들은 의사를 큰형이나 언니 정도로 가정한다.

비슷한 일이 죽음에서도 일어난다. 의사는 죽음과 친숙한 사람이다. 의사를 부를 때, 우리는 그가 우리를 치료해 주고, 우리의 고통을 덜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치료가 불가능할 때는 그가 우리의 죽음을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지켜보는 행위의 가치는 그가 다른 죽음을 많이 보았다는 것(이 가치는 한때 성직자들이 기도나 의식을 진행하는 것 이외에 가졌던 진정한 가치였다)이다. 의사는 우리와 갖가지 죽음 사이의 살아 있는 중재자인 셈이다. 그는 우리에게 속하기도 하지만, 그 죽음들에 속하기도 한다. 다른 죽음들이 의사의 중재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그 힘들지만 실제적인 위안 역시 형제애에서 오는 위안이다. ... 

 

*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논의가 뒤에 시작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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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21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의 이미지를 재밌게 읽었어요. 유익하고, 재밌고~ ! 일단 보관함에 넣어놓을게요 ^^

balmas 2004-11-21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미지] 재미있죠??^^

저는 존 버거 책 중에서는 예전에 열화당에서 나온(맞나?)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를 처음으로 읽었답니다. 그 다음부터 존 버거의 팬이 됐는데,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정말 훌륭한 작가죠.^^

로드무비 2004-11-2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참, 그리고 열화당이 아니고 아트북스예요.^^

balmas 2004-11-2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로드무비님, 제가 말한 건 84년에 나온 책인데요.

그런데 확인해보니까 열화당이 아니라 미진사더군요. 아트북스에서는 작년인가 다시 냈었죠?
 


 

 

 
 
권력 유지에 동원된 사회과학의 역사
화제의 책_ ‘대학과 제국’(브루스 커밍스 외 지음, 한영옥 옮김, 당대 刊, 2004, 345쪽)

2004년 11월 19일   최철규 기자 이메일 보내기

철의 장막으로 둘러쳐진 냉전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학자들의 연구에 어떠한 모습으로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을까. 좀 더 간단하게 질문을 바꿀 수 있다. 과연, 지식은 진리를 향해 행군하는가.

미국 New Press 사의 냉전과 대학 시리즈 제2권에 해당하는 ‘대학과 제국’은 냉전시기 미국의 군사기관과 정보기관이 대학에 끼친 영향을 집중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최소한 당대의 사회과학과 행동과학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직접적으로 탐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오해와 편견’을 깨고 있다.

각종 재단 기금을 통한 권력의 대학으로의 유입이 학문의 패러다임 전부를 창출하거나 지속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질문이 허용될 수 있고 누구의 결과를 합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할 것이냐”라는 쟁투를 통해 권력과 돈은 일정 주제에 대한 ‘권위 있는’ 전문가를 결정하고, 비판적 학자들을 배제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 책에서 브루스 커밍스는 “권력과 돈이 먼저 학자들의 연구주제를 발견하였고, 그에 따라 연구의 장을 규정해 놓았다”라고 표현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1950~51년의 MIT의 트로이 프로젝트나 국제연구센터에서 구체화된 사회과학의 모델, 카멜롯 프로젝트, 맥스 밀리칸과 월트 로스토의 ‘대외경제정책 보고서’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1954년 초에 CIA에 제출할 보고서로 작성됐던 ‘대외경제정책보고서’는 그간 미발간 된 원고로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개발’과 ‘근대화’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여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핵심을 이룬 이 보고서는 미국이 관심 지역의 엘리트층을 근대화하고 “직·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사회로 전개되어 나가지 않는 환경”을 창출한다는 목적아래 경제적 동기부여정책과 국내 안보조치를 적절히 구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밀리칸과 로스토는 50년대 중반, 국제연구센터에서 아이젠하워 정권 기간 내내 국무부와 CIA에 영향력 있는 국제문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책의 마지막 글에서 로렌스 솔리는 냉전기 국가안보를 위한 국가-대학관계의 시대가 기업지원의 ‘장학금’과 ‘지식’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대체되고 있는 미국대학의 ‘재건설’ 모습을 그리고 있다. 기업가들은 대학을 근거지로 하여 기업의 수요에 적합한 인재 양성을 요구하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스포츠 후원 계약을 체결하거나, 각종 연구소들에 용역을 맡겨 능동적으로 지식정보를 생성·매매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대학의 학문적 권위를 이용하여 예측 가능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맞춤형 홍보 프로젝트’라는 것이 분석의 핵심이다.

사실 새로이 제시된 몇몇 정보 이외에 책의 내용들은 상당부분 이미 다 밝혀졌고 뜨거운 논쟁이 됐던 사안들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들이 단순히 일회적 흥밋거리로 머무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보다 더 본질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그 내재적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학문으로서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면, 바로 지금 학문을 짊어지고 서 있는 그 자리를 꼼꼼하게 살펴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예술의 이름으로 혁명을 말하다
예술계 신간_『티나 모도티』마거릿 훅스 지음| 윤길순 옮김| 해냄 刊| 416쪽

2004년 11월 20일   이은혜 기자 이메일 보내기

‘장미’, ‘릴리’를 찍은 20세기 최고의 여성사진가이자, ‘망치와 낫’, ‘깃발을 든 여인’을 찍으며 20세기 혁명의 대열에 동참한 활동가 티나 모도티의 평전이 국내에서 처음 출간됐다. 


티나는 원래 연극배우이자 할리우드배우 출신으로, 그녀의 연인이자 저명한 사진작가였던 에드워드 웨스턴의 모델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타고난 예술가의 영혼을 지녔던 티나는 예술의 객체에만 머물 수 없었다. 1922년 멕시코로 이주하면서 예술의 ‘주체’가 돼야겠다는 그녀의 욕망은 현실화 됐다. 당시 멕시코는 디에고 리베라를 중심으로 벽화운동이 절정에 달해 있었는데, 티나는 이들 예술가와 혁명가들에게 융화되면서 사회적 변혁의 요구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1927년의 작품들은 멕시코 혁명이 열망한 것과 성취한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옥수수와 낫, 탄띠를 배열해 찍은 작품은 “위대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완벽한 종합”이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유사한 일련의 작품 속에는 멕시코 헌법조항과 같은 혁명의 상징들이 통합돼 있었다. 이듬해엔 슬럼가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기록하는 ‘거리사진’에 열중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돼 누워있는 여자의 모습이나 지저분한 곳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그녀의 기록들은 빈곤과 퇴폐로 얼룩진 거리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한때 사회적인 메시지를 사진을 통해 표현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믿었으나, 그녀의 이런 믿음은 ‘엉터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녀의 삶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주제였던 ‘예술’과 ‘정치’는 하나로 통합되고 있었던 것이다. 1928년 이후 그녀는 10년을 베를린, 소비에트 연방, 스페인을 옮겨 다니며 적색후원회의 중심인물로 활동했고, 스페인 내전 때는 반파시스트 연대활동을 펼쳤다.


한편, 티나는 20세기 초 자유주의 연애사상의 흐름에 서있었다. 그녀는 멕시코의 유명한 벽화가이자 화가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의 연인이자, 하비에르 게레로의 연인이었으며, 쿠바 혁명가 안토니오 멜라와도 사랑을 나눴는데, 이들 모두 혁명적 동지자들이었다. 또한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에게도 아주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돈독한 우정을 나눴던 사이기도 하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2004 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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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1-2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권 모두 당분간 볼 시간이 없다 ...

stella.K 2004-11-2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가져갈께요. 꾸벅.^^

balmas 2004-11-2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반갑습니다. 그러세요.^^

딸기 2005-01-07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권 모두 봐야겠군요.
 

 

 

이주노동자의 ‘못다 부른 悲歌’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한계상황에 몰렸을 때 찾는 마지막 피난처, 명동성당. 올 한해도 한달 남짓 남겨둔 명동성당은 1년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초췌한 모습과 이 곳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검문하는 경찰의 모습에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거동이 힘든 어머니가 얼마 전에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돈 벌러 나왔지만 이젠 고향으로 갈 차비마저 없다”고 말하는 방글라데시인 A씨의 눈은 벌겋게 충혈됐다.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볼 뿐이다. 임금체불과 잦은 폭행에 견디다 못해 일터를 뛰쳐나온 그는 현재 불법체류자 신세다.

임금체불에다 이유없는 인권차별을 겪는 외국인 노동자들 150여명이 강제출국을 피해 철야농성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15일. 현재 허름한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30명도 채 안된다. 대부분 단속에 걸려 추방당하거나 전망이 불투명한 농성투쟁에 지쳐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10개국 이상에서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이주 노동자는 줄잡아 40여만명. 지금 그들은 단순한 인종차별의 차원을 떠나 노동자로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다음주면 1년간의 농성을 마치고 해산식을 갖는다. 하지만 그들의 농성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동안 여러 사회단체들이 우리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명동성당 농성을 마친다고 해서 우리들의 목소리를 접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는 아노와르씨(34. 방글라데시). 한국에서의 생활을 8년째 맞고있는 그는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언급하며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하는 농성이다.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앞으로 전국에 흩어진 이주노동자들의 결의를 다져나갈 것이다”며 향후의 계획을 밝혔다.

이주노동자들의 권익보호와 관련, 윤혁(민주노총 서울경인지역 평등노동조합) 정책위원은 “고용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사업장을 이동할 자유조차 없다는 것. 이것이 지금 이주 노동자들이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의 어떤 부당한 요구에도 따를 수 밖에 없으며 그 곳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불법체류자의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1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조정회의에서 합동단속반을 구성한 뒤 연말까지 집중단속을 통해 불법 체류자를 전체 외국인노동자의 10% 수준인 4만-5만명으로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윤위원은 “불법체류자를 증가시키고 광범위하게 양산시킨 것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그릇된 정책에 기인한다. 산업연수생 제도라는 편법을 통해 노동비자도 발급하지 않고 월 평균 40-50만원대의 임금을 준다. 게다가 사업장 이동의 자유조차 없다. 불법체류자를 양산한 것은 정부의 폭압적이고 수탈적인 이주노동자 공급 시스템에 있다”며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노동권 보장을 호소했다. 10년동안 숨어다니며 한국의 제조업을 먹여 살린 그들에게 강제추방은 잔혹한 처사라는 주장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장기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 대하여 시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오래 전부터 제기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재선 성공 후 미국 내 불법 이민자들의 지위를 한시적으로 합법화하는 이민법 개혁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부시 대통령은 “외국인노동자들이 미국인이 채우지 못하는 일자리에서 일하기 위해 입국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며 “미국이민법을 더 합리적이고 인간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민 급증에 대한 보수층과 공화당 내의 반발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되나 부시 정권도 불법체류자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인정하고 있으며 불법체류자의 합법화에 주목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불법체류자의 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다. 각종 외국인 범죄의 급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그들이 가지는 경제적 효용은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불법체류자 중에는 이른바 ‘재팬 드림’을 꿈꾸고 건너간 한국인들이 많다. 출입국관리국의 단속에 적발되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된다. 불법체류자들이 외국인 범죄의 주범으로 매도되면서 단속도 강화되는 현실이지만 그들의 처지는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과는 상반된다.

얼마전 일본에서 5년간의 불법체류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한 박모씨(43)는 “오히려 한국인 고용주의 횡포가 더 심했다”며 “일본인 고용주는 일을 하는데 있어 장애가 없는 한 다른 일본인들과 똑같은 임금을 줬다. 불법체류자 신분을 떠나 노동력만 가지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경우 거의 인맥을 통해 일자리를 구했지만 사업장 이동이 자유로우며 노동의 대가는 충분히 받았다는 것이다.

명동성당에서 외치는 이주노동자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왔던지 일을 했으며 노동에 대한 대가를 달라는 것이다. 산업연수생 제도나 고용허가제등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오히려 무거운 족쇄로 변형돼 악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은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

악덕 고용주의 횡포에 의한 노동자의 설움이 비단 이주노동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현실에 명동성당으로 향한 계단은 더욱 가파르게 보인다.

〈미디어칸 고영득기자 ydko@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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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을산 > 우리의 의료, 구멍이 커지고 있다.

어제 오전, 국무회의에서
경제자유구역에 세워질 외국 병원에서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고
영리법인의 설립을 가능하게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의료관련 NGO들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재경부에 맞서서 그래도 김근태 장관이 버텨 줄 것이라는 미련이 아직 한가닥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상은 이미 지난주에 합의를 다 해놓고는 NGO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이미 합의가 되고도 1주일동안 합의가 안된 줄 알고 그 전에 막아보겠다고 
미친놈들처럼 인터넷 여기저기 영향을 미칠만한 게시판에 의견글을 올리자는 전문들, 언론에 관련 기사나 사설을 싣도록 힘쓰던 계획, 전국 순회 강연 등을 준비하던 것들..... 그냥 다 허공에 떠버렸다.

외국계 병원에서 환자 좀 볼거라고, 우리 나라 돈이 외국으로 흘러들어간다고 아우성 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체계가 조각나게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부 도입된 민간의료보험이 더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후회하는 것은,  게시판에 의견글을 올려달라는 메일이나 글들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
물론, 내 글 하나 더 올라갔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겠지만,
발 동동굴리던 중앙의 사람들과 달리
지방에 산다는 면죄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는 미안함이 앞서서이다.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대신 '공공의료 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 고 5년간 4조원을 들여 무엇무엇을 하겠다고 나열해 놓았다.
그런데, 그 대책이라는 것이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영리법인과 내국인 진료 허용이 되지 않았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다. 
게다가 5년간 4조?  이걸로 누구 코에 붙이게? 현재 의료보험 재정만 해도 1년에 15조인데! 

민간의료보험의 확대가 되기 전에 우선 공공의료보험을 안정시켜야 한다.
현재 의료비의 50%을 겨우겨우 보장하는 공공의료보험을 최소한 80%로 끌어올려놓고 민간의보를 열어야 한다. 

그런데도 복지부의 "대책"에는 공공의료보험의 강화에 대해서는 단 한줄도 나와 있지 않다.
공공의보의 확충에 대한 의지가 없고, 국민의 건강을 민간의보에 기댈 속샘인게다!!!

 

어제, 원래는 경제자유구역의 '예상되는'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모이려던 자리를 급히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모임으로 바꾼 자리에서,  
국회에서 법안의 심의 과정이 남아있으니 그때까지 무엇을 할지에 대해 의논했다.

'알려내자'. '투고하자'  등등의 이야기들이 또 나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후회를 덜하기 위해 일단 여기에라도 글을 남긴다. 

아래에 덧붙이는 글은 얼마전 한 회지에 올렸던 글이다.  이곳에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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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료, 구멍이 커지고 있다.

                                                      


사람 치고 아프지 않을 사람은 없고, 중환이 있을 경우에 우리 나라에서 부담이 되지 않을 가정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의료제도는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마음 놓고 살 것이냐 아니냐, 아플 때 마음놓고(?) 아플 것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1970년대 말에 의료보험이 도입된 이후, 비교적 최근까지 여러 가지 곡절을 거치면서 의료보장은 점점 확대되었고, 병원 문턱은 점점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에는 그런 추세가 반전 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대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요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 대상자들은 늘고 있고, 의료보험 가입자들의 의료보험료 미납 세대 또한 점차 늘고 있다. 경기가 좋지 않음을 나타내는 반증이다.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들은 본인 부담금 거의 없이 의료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외래 진료나 입원의 경우 비보험 항목, 즉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은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 우리나라 보험 체계상 의료비의 30-50%는 비보험이라 나타나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라 하더라도 실재로는 많은 병원비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른바 차상위 계층, 즉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는 아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은 더욱 사정이 어렵다.

불황이 지속됨에 따라서 의료보험료와 의료비가 가계에 부담이 되는 세대가 점차 늘고 있으며, 만약 의료보험료를 3개월 이상 미납하기라도 하면 의료보험 자격이 상실되어 실질적인 의료 이용이 거의 단절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오히려 기초생활 수급권자보다도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들 계층의 의료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와같이 가만히 있어도 어렵고 구멍이 점점 커지고 이는 우리의 의료안전망에 외부로부터 큰 충격이 닥쳐오고 있다.


요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켜면 수시로 나오는 ‘의료보험’ 광고. ‘다보장’이니 ‘1만 몇천가지 질환’이니 하며 우리의 주의를 끌고 있고, 뉴스마다 나오는 경제 특구나 시장 개방 이야기 중에 의료개방도 꼭 포함되어 있다.

광고에 나오는 의료보험은 엄밀하게 말하면 ‘민간 의료보험’으로, 기본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운용되는 의료보험이다. 한달에 2-3만원으로 보장을 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1인당 비용이고, ‘다보장’은 실제로는 다보장이 아니라 일반 의료보험이 커버하고 남는 부분을 일부 보조하는 구조일 뿐이다. 게다가 많은 경우 가입하기 전에 검진을 해서 ‘건강한’ 사람만, 즉 병을 앓을 가능성이 적은 사람만 골라서 뽑는다.

그러니, 어찌 이런 민간 의료보험이 싸다고 할 수 있으며, 다보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돈을 낼 여력이 안되고, 또 가입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아 거절당하는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돈을 낼 수 있고, 건강한 사람만 가입할 수 있는 보험에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도록 기댈 수 있는 것인가? 참으로 위험한 일인데, 이런 방향으로 착착 진행이 되어가고 있다.


경제특구나 의료시장 개방, 대덕 특구 문제도 그렇다.

원래 경제특구에서의 의료개방은 ‘경제특구의 외국인들의 의료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제안되었었다. 그러나 점차 경제특구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 허용, 이익금의 본국 송금, 영리의료법인 허용, 전면적인 민간의료보험 도입(국가 의료보험과 민간보험 중에서 택일하는 것) 등의 문제가 꼬리를 물고 제기되고 있다. 진보적인 보건의료단체들이 언뜻 생각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사안에 왜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일까?

작은 물꼬가 트이면 그것을 따라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정책을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나게 큰 물줄기가 밀고 들어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에 나열된 정책들이 도입이 되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돈 많이 내고 혜택이 많다는 민간의료보험으로 대거 이동할 것이고, 지금도 허술한 점이 많은 국가 의료보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사회적 압력(아쉬워하는 사람)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사실상 의료비가 많이 드는 환자 가족이나 노인들은 경제적 여력이 그다지 없는 경우가 많다. 소득에 비례해서 내는 의료보험료이기 때문에 이들이 내는 보험 재정은 적은 반면 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더 악화될 것이다.


영국에서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의 사망률을 비교해보았는데, 최하위 계층의 사망률이 최상위 계층의 네 배에 이른다는 통계 자료가 있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되고, 본인부담금이 거의 없는, 비교적 고른 의료 혜택을 받는 영국의 계층간 사망률의 차이가 이정도인데, 하물며 비보험 항목의 부담이 커서, 본인부담금의 벽에 막혀서, 의료보험료 낼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는 우리 나라의 사망률은 얼마나 크게 벌어질 것인가? 생각만해도 아찔한 일이다.


의료생협이 대안적인 모색으로 점차 관심을 많이 받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의 건강권을 위해, 아플 권리를 위해서, 의료 제도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함께 대안, 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려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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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숨은아이 > 반품되는 책의 운명

내게는 지금, 바꿔달라고 서점에 요구해도 될 만한 책이 두 권 있다. 표지에 먹박으로 찍은 제목 글자가 두 번 겹쳐져 눈이 조금 어지러운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와...


앞부분 면지와 내지가 철심 종이찍개로 찢긴 듯한 시공주니어판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다. 왜 이런 상처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내지는 상당히 여러 장에 걸쳐 찢어졌고, 그 뒤에도 찢어지진 않았지만 눌린 자국이 꽤 여러 쪽 있다.




하지만 글을 읽는 데는 큰 불편이 없기에 반품하지 않았다. 다만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를 샀을 때는, 책을 열어보지 않아도 첫눈에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앞으로 책을 보낼 때 주의하길 바란다는 메일을 알라딘에 보냈다. (알라딘에서는 흠이 있으면 반품하라는 정중하지만 형식적인 답장이 왔던 걸로 기억한다. --;)

물론 책의 내용이 있는 부분에 인쇄가 잘못되었다거나 제책이 잘못되어 몇 장이 빠졌다면 당연히 반품하고 새 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반품 사유가 분명한데도 이들 책을 바꾸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전에 다니던 한 출판사에서는 전 직원이 한 달에 한 번, 사무실 근무를 오전에 마치고 우르르 찾아가던 곳이 있었다. 책의 보관과 유통을 대행해주는 회사의 책 창고였다. 매달 결산을 앞두고 전국 각지의 서점에서 반품한 책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서점에서 책을 반품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책에 흠이 있는 경우. 곧 인쇄가 잘못되거나 책이 찢어졌다든가. 둘째, 오래도록 팔리지 않은 책이라서. 셋째, 책은 잘 팔리지만 그달 출판사에 지불할 금액을 낮추기 위해. 이 경우는 아주 악질적이라고 볼 수 있다. 잘 나가는 책을 자기들이 대량 주문해놓고는, 출판사에 돈을 줄 날짜 직전에 왕창 반품해버린다. 출판사에서는 그 서점이 주문한 책들의 값에서 반품한 책들의 값을 뺀 액수를 받는다. 그것도 전액 다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서점에선 그 날짜가 지나면 똑같은 책을 또 주문한다.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책은 상하고, 일시적으로 그 서점에선 그 책이 품절된 탓에 독자도 놓치고, 또 책을 서점으로 배송하는 비용뿐 아니라 반품 비용까지 출판사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출판사로서는 이중 삼중 손해를 보게 된다.)

산처럼 쌓인 반품 상자를 풀고, 반품 명세서와 상자 속에 든 책이 일치하는지 확인한 다음, 종류별로 책을 쌓는다. 멀쩡한 책은 다시 유통하고, 흠이 있거나 너무 오래되어 독자가 다시 찾을 가능성이 없는 책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버려지는 책들.

흠이 있거나, 너무 오래되어 독자가 다시 찾을 가능성이 없는 책, 너무 안 팔려 출판사 쪽에서 영업을 포기한 책은 한데 모아 빨간색이나 까만색 라커를 뿌린다. 책을 확실히 더럽혀 불법 유통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순간, 지은이와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열정이 빚어낸, 어떤 지혜나 지식, 재미와 웃음, 감동을 담은 책 한 권이 몇 십 원짜리 폐지가 된다. 폐지를 전문으로 다루는 회사에서 이것들을 싣고 가서는 며칠 뒤, 이 책(이었던 것)들을 조각조각 자른 사진을 보내온다. 불법 유통하지 않고 틀림없이 폐지 처리했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서, 정말 책을 함부로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렇게 쉽게 버려질 책은 만들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웬만한 흠 가지고는 반품 교환도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일차로 독자의 손때를 묻히며 읽히다가, 이차로 헌책방이나 도서관 같은 곳에서 쓰임새를 다하다가, 수명을 다해 낡고 해어져서 버려지는 건 괜찮다. 책으로서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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