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수요일에 오랜만에 아는 후배를 만났는데, 존 버거 책을 한 권 번역했다고 줘서 틈틈이 읽고 있다. 교육방송 PD로 일하고 있는 친구인데, 바쁜 와중에도 책을 번역한 게 용하다. 존 버거를 좋아하는 나로서야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선물인데, 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시라고(장 모르의 사진들도 좋다^^) 권하는 의미에서 몇 구절을 적어보겠다.

 

행운아 - 어느 시골 의사 이야기

존 버거 (지은이), 김현우 (옮긴이), 장 모르 (사진) | 눈빛


정   가 : 9,000원
판매가 : 8,100원(10%off, 900원 할인)
마일리지 : 243원(3%)
2004-11-11 | ISBN 8974092085
반양장본 | 184쪽 | 188*128mm (B6)
알라딘 Sales Point : 360
예술/대중문화 주간베스트 56위

  



부커상 수상작가로 폭넓은 저작활동을 해오고 있는 존 버거가 쓴 글과 장 모르가 찍은 사진을 함께 담았다. 점점 더 궁핍해지는 후미진 시골, 의사 존 사샬은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을 보살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행한 현대사회에서 '행운아'인 한 의사의 삶을 통해 인간 삶의 가치를 돌아본다.



존 버거 (John Berger) - 1926년 런던 태생으로 미술비평가, 소설가, 극작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 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술평론으로 활동을 시작해 사유의 영역을 확대해 왔으며 역사에 대한 통찰과 감각도 탁월하다. 1962년 영국을 떠나 알프스의 작은 마을에 은거해 글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소설로는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 상(Booker Prize)을 수상한 <G>, 농민을 노래한 3부작 <그들의 노동에 함께하였느니라 Into Their Labours>가 있고, 평론으로는 <랑데부 Keeping a Rendezvous>, <시각 The Sense of Sight>, <보는 방법 Ways of Seeing> 등이 있다.

김현우 -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옮긴 책으로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수녀의 나를 사로잡은 그림들>, <두첸의 세계명화비밀탐사> 등이 있다.

장 모르 (Jean Mohr) - 지난 20년 동안 유네스코,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적십자사의 사진가로 일해 왔다. 2004년 현재 스위스 제네바에 살고 있다.

한겨레신문 : 세계 문화예술계 최고의 팔방미인을 꼽자면 빠질 수 없는 이가 영국 출신의 작가이자 극작가, 비평가인 존 버거다. 화가이기도 한 존 버거는 미술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이미지-시각과 미디어>란 책으로 유명해졌다.

이후 다큐멘터리 작가와 방송인으로도 활동해왔고, 사회비평가로서도 좌파 진영의 손꼽히는 논객으로 자리매김했다. <결혼을 위하여> 등을 쓴 소설가로도 널리 알려져 해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며, 인간소외와 현대인의 고독감을 잘 포착해내는 수필가로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중년 이후 존 버거는 프랑스 알프스산맥 기슭 농촌에 들어가 글 쓰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은 역시 시각 이미지 쪽이다. 사진작가 장 모르가 사진을 찍고 그가 글을 쓴 일련의 연작 가운데 하나인 <행운아>가 최근 출간됐다. 존 버거는 환자들과 진실한 인간적 교감을 시도하며 마을주민들의 보살피려는 영국의 한 시골마을 의사 존 사샬의 일상을 통해 삶의 가치란 무엇인지 묻는다.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총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이 의사가 바로 '행운아'이며 역설적으로 현대인 대다수는 불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역시 존 버거와 장 모르의 공동작업물인 <제7의 인간>과 <말하기의 다른 방법>도 각각 같은 출판사에서 10여년 만에 재출간됐다. <제7의 인간>(차미례 옮김)은 <행운아>처럼 강렬한 이미지의 사진을 통해 현대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으로 1970년대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삶을 그린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희재 옮김)은 산악지방 농촌마을 사람들을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사진의 미학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찰하는 독특한 에세이풍의 사진이론서다. 7년에 걸쳐 찍은 농부들의 사진 자체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풍성하며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사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존 버거 나름의 답변을 구하는 작업이다. - 구본준 기자 ( 2004-11-13 )

 

69-70쪽

사람들은 사샬이 솔직하고,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하기에 편하며, 가까이 있고, 다정하고 이해력이 있으며, 남의 말을 경청하고, 언제라도 필요할 때는 달려와서는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또한 사람들은 그가 분위기 있고, 성과 같은 주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좀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가끔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줄도 아는 그런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의사로서 그가 어떻게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 주는지는 위에서 말한 것들처럼 복잡한 것은 아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의사-환자 관계에 고유한 특질과 깊이를 생각해야 한다.

성직자나 무당 혹은 판관을 겸하기도 했던 원시시대의 의사들은 종족을 위해 식량을 생산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어다. 이러한 특권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특권에 의해 그에게 주어지는 권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의사가 해결해 주는 인간의 욕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몸이 아픈 것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알아 가는 과정에서 최초로 지불해야 하는, 어쩌면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불하고 있는 대가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고통이나 불편함을 배가시킨다. 그런데 그러한 인식의 결과로 생겨나는 자의식은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이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자의식에서 치료의 가능성, 약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원시시대 부족민들이 의사의 치료에 대해서 취했던 주관적인 태도를 지금 상상으로 재구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문화에서 우리 자신의 태도는 어떠한가? 자신의 몸을 의사에게 맡기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신뢰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우리는 의사들이 우리의 몸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런 접근은 연인에게만 허락되는 것인데-심지어 연인에게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따지고 보면 의사는 완전히 낯선 사람 아닌가?

(장 모르의 사진들 몇 장이 중간에 나온다)

74쪽-75쪽

의사들의 윤리지침은 의사로서의 역할과 연인으로서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의사와 환자 관계에서의 친밀감의 한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 구분은 의사들이 여자의 벗은 몸을 보고, 원하는 곳을 만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칫 환자와 자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거라는 염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가정은 상상력이 결여된 철없는 상상일 뿐인데, 의사들이 환자들을 접하게 되는 상황은 성욕을 감퇴시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성적인 사항을 의사의 윤리지침에 넣은 것은 의사들을 행동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일종의 약속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들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주는 그런 약속 말이다. 그것은 성적인 것과는 상관없는 육체적인 친밀감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약속이다. 그렇다면 그 친밀감이 의미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이 어린 시절의 경험에 속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의사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은 스스로 어린이의 상태로 돌아가서, 그 의사를 가족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 순간에 의사는 가족과 동등해지는 것이다.

환자의 심리가 부모에게만 고정되어 있는 경우에, 의사는 그 부모의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관계에서 성적인 생각들은 진료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몸이 아플 때 사람들은 의사를 큰형이나 언니 정도로 가정한다.

비슷한 일이 죽음에서도 일어난다. 의사는 죽음과 친숙한 사람이다. 의사를 부를 때, 우리는 그가 우리를 치료해 주고, 우리의 고통을 덜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치료가 불가능할 때는 그가 우리의 죽음을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지켜보는 행위의 가치는 그가 다른 죽음을 많이 보았다는 것(이 가치는 한때 성직자들이 기도나 의식을 진행하는 것 이외에 가졌던 진정한 가치였다)이다. 의사는 우리와 갖가지 죽음 사이의 살아 있는 중재자인 셈이다. 그는 우리에게 속하기도 하지만, 그 죽음들에 속하기도 한다. 다른 죽음들이 의사의 중재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그 힘들지만 실제적인 위안 역시 형제애에서 오는 위안이다. ... 

 

*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논의가 뒤에 시작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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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21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의 이미지를 재밌게 읽었어요. 유익하고, 재밌고~ ! 일단 보관함에 넣어놓을게요 ^^

balmas 2004-11-21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미지] 재미있죠??^^

저는 존 버거 책 중에서는 예전에 열화당에서 나온(맞나?)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를 처음으로 읽었답니다. 그 다음부터 존 버거의 팬이 됐는데,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정말 훌륭한 작가죠.^^

로드무비 2004-11-2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참, 그리고 열화당이 아니고 아트북스예요.^^

balmas 2004-11-2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로드무비님, 제가 말한 건 84년에 나온 책인데요.

그런데 확인해보니까 열화당이 아니라 미진사더군요. 아트북스에서는 작년인가 다시 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