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나의 인권이야기]

위협받는 물·에너지 권리

 

 

기사인쇄
송유나 
2005년 7월, 단전 때문에 촛불을 켜고 공부를 하던 한 여중생이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저소득층과 장애인 등 소외된 민중들은 여전히 공공요금을 내지 못해 고통받고 추위와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말 기승을 부리는 추위 속에서 정부는 동절기와 하절기, 극한의 상황을 막기 위해 단전과 단수 조치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으며, 공공서비스 확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12월 22일, 에너지 기본법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였으며, 대통령직속 지속가능위원회에서는 물기본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 '법'과 '조치'는 한계적이며, 에너지와 물의 민영화 즉 시장화를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다.

전기, 가스, 물. 이들은 거대 네트워크 산업이자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장치 산업이다. 이는 철도와 지하철 등 궤도 산업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사회 뿐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이들 산업은 공적영역으로 출발한다. 국가는 자본과 시장경제의 발전을 위해 공공영역의 토대를 쌓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게 국가가 견실히 마련한 토대 속에서 사적 자본은 성장할 수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수탈을 위해 철도와 도로를 깔고, 조선시대의 공동체적 수리제도를 접수하여 지주 제도를 강화한 것이 한 예이다. 또한 한국의 발달된 전력 시스템과 집중적인 댐 건설이 70년대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을 위한 교두보였다는 점이 또 다른 사례라 할 것이다. 이렇듯 공공부문, 공공서비스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기본적으로 공급하고 보편성을 유지해야 하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본주의 발달을 위해 기여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이중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경우 아직까지는 전기와 가스, 수도요금 등 대부분의 공공서비스 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다. 물론 최근 고유가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해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상당 부분 인상되었으며, 수도요금 역시 요금현실화 기하기 위해 부단히 올라가는 실정이다. 철도나 지하철, 버스 요금 등 소위 이동권을 중심으로 한 공공서비스 요금 역시 낮은 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공공부문 즉 공공서비스가 국민을 위한 보편적 서비스와 자본축적의 효율화를 기하는 이중적 측면을 지닌다 할지라도 역시나 공공부문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부문이 그 정체성을 잃는 그 순간, 이 존재는 매우 자유로워진다. 국내외 자본이 줄곧 민영화를 주장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 협정 및 자유무역협정 등을 통해 일국의 공적 영역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점은 이 때문이다. 물론 공공서비스의 축소가 비단 요금의 인상만을 가져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통신 산업을 보자. 전 국민의 기억 속에 한국통신이 공기업이었으며, 공공적 영역이었다는 기억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중후반까지 114 서비스는 무료였다. 114가 분사되자 유료로 전환했고, 현재 문의한 번호가 1번을 누르면 직통으로 연결되어 필기도구를 찾아 헤매는, 번거로운 고통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100원 이상의 요금을 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중전화는 사라졌고 돈이 되지 않는 고장난 기계를 수리하는 공적 서비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90년대 중후반 피시에스와 휴대전화 도입은 분사화, 민영화, 아웃소싱을 낳았다. 경쟁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신자유주의의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불과 3-4년만에 경쟁 시장은 3개 사의 과점 시장으로 돌변했고, 화려한 광고에 눈이 멀어 버린 우리들은 그들 간의 담합 속에서 막대한 통신요금을 물고 있다. 한 가구의 10년 전 통신 요금과 지금의 통신요금의 비율을 따져본다면 어떠할 것인가?

민영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전력과 가스, 철도 등 공공부문을 사수해야 한다는 소망은 노동자들의 투쟁, 정확히 표현하면 노동조합의 생존권 쟁취 투쟁 속에서 시작되었다. 민영화는 해당 산업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며, 경쟁과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노동권을 말살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연스럽게 공공성 쟁취 투쟁과 결합하여 발전하였다. 이는 비단 사회공공성이 공공서비스 요금이나 고용안정의 문제를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신이 시장의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우리의 개인정보 역시 상품화되어 인터넷 내외부의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렇듯 공공영역은 보편적인 공급의 책임과 더불어 그 공공영역이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어떠한 목표에서 지배되고 관리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더욱 중요한 문제를 내포하게 된다.

한국사회는 에너지원의 98%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거의 모든 자원이 그러하다. 최근 중국과 인도의 자본주의적 성장은 그들의 엄청난 인구의 규모와 맞물려 동북아 진영의 에너지 전쟁에 이르는 위기적 정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석유전쟁이 이라크 전을 불러일으키고, 러시아의 에너지 마피아가 유럽 사회를 초긴장 상태로 내몰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한국에 에너지원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미칠 파고가 어디까지 이를 것인지는 상상을 불허할 것이다.

물은 에너지와 달리 국내에서 자급자족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100%에 이르는 통신과 에너지의 보급률에 비해 상수도 보급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특히 농촌 등 군 단위 보급률이 33%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간이상수도나 우물에 의존하는 농어촌 지역의 수질은 심각히 오염되어 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개발과 공급 위주의 국가 정책은 국토를 유린하였고, 물이라는 동맥을 썩어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듯 에너지 산업이 어떠한 에너지원을 어떻게 공급해야 할 것인가 하는, 친환경적 에너지 체제 전환이라는 근원적 과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과 에너지를 상품화하여 보편적 공급권을 박탈하고자 하는 민영화 정책을 막아내는 것은 우리의 인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교두보가 된다. 그러나 에너지원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자립, 친환경적 재생 가능한 에너지 체제 전환을 위한 에너지 전원 구성의 다변화, 에너지 저소비를 위한 효율화 정책 등 중장기적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 자원의 보존과 수질 관리 역시 중요하며 물을 과소비하고 오염시키는 현재의 소비구조, 그리고 산업 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고민이 시급하다. 물과 에너지를 인권으로 인식하는 확장된 의미의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송유나 님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사무처장입니다.
인권하루소식 제 2986 호 [입력] 2006년02월07일 20:29:36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02-09 0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마호메트 풍자화를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큰 그림들을 보니까, 화가들의 정치적 성향이 문제가 있긴 있네요.

일부러 자극하기 위해 그렸다는 인상을 줄 만하네요 ...

 

http://permanent.nouvelobs.com/cgi/edition/aff_photo?cle=20060202.OBS4859&offset=1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수아France Soir]라는 신문이 처음으로

이 풍자화를 실었다는데, Le MRAP 라는 단체, 번역하자면

"반인종주의와 인민들 사이의 우정을 위한 운동"(mouvement contre le racisme et pour l'amitié entre les

 peuples)이라는 단체가 이 신문을 고소했다고 한다.

"언론의 자유를 인종주의적으로 남용"(détournement raciste de la liberté d'expression)

했다는 이유로 ...

충분히 그런 혐의를 받을 만한 그림들인 듯(모든 그림이 다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 

 관련 기사는 아래 링크로 ...

http://permanent.nouvelobs.com/medias/20060205.OBS5186.html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6-02-06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그렇죠?
프랑스나 유럽의 다른 신문들 중에는 이 문제를
장삿속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데도 있나 보더라구요.

비로그인 2006-02-06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현의 자유라는 게....정말 애매해서.... 무엇이든 표현의 자유라는 딱지만 붙이면 OK...

해적오리 2006-02-06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처럼 이슬람을 믿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 나라에서 저런 만화를 싣는다는 것은 결과를 뻔히 보면서 일을 저지르는 건데... 관련된 기사를 좀 보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chika 2006-02-0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심하다는 표현에 그림 보기가 겁납니다.
사실 우리 아버지를 그런식으로 풍자해도 화가 날텐데, 그들이 신성시하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비아냥거린거라면 표현의 자유,로 이해될 수는..... 쩝~

사량 2006-02-06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유럽인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네요. 그림 속 인물이 마호메트가 아닌 유태인이었어도 그렇게 말할 거냐고.

balmas 2006-02-0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때리다님/ 표현의 자유가 모호한 건, 말과 행동의 구별이 모호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날나리님/ 상업적인 목적도 있었을 것 같고, 또 정치적인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겠죠. 기사를 잘 보셨다니 다행이네요. ^-^
치카님/ 글쎄 말입니다. 오늘 [한겨레]를 보니까 한국의 무슬림 한 사람이
한겨레가 옮겨 실은 풍자화 한 컷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나오더군요. 다른 무슬림들도 마찬가지겠죠.
사량님/ 글쎄요. 예수나 성모 마리아를 좀 풍자해보지, 왜 애먼 남의 문명의
종교를 풍자하면서 표현의 자유 운운 하는지 모르겠어요.
 

마호메트 풍자만화가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단다 ...

아래는 [한겨레] 기사 ...

그런데 실제 풍자 만화를 이렇게 퍼와도 되는거야?? 이건 신성모독에 동조하는 것 아냐??

(그림 출처)

 

‘마호메트 풍자화’ 유럽 강타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99491.html

 

 

----------------------------------------------------------------------------------------------

어제 마호메트 풍자화 사진을 올렸는데,

혹시나 알라딘(오! 그러고 보니 알라딘 이름이 ...)에 있을지도 모를 무슬림 분들에게

폭력적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사진들을 지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다른 페이퍼에 링크되어 있는 사진들을 참조하세요.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02-07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6-02-08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숨어계신 님,
그건 제가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우선 내가 그 글을 읽어보지 않았고,
서 모씨의 발언 여부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두 사람은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더욱더 경솔하게 발언하기가 어렵네요.
서 모씨는 조만간 한번 만날 것 같은데, 제가 발언의 사실 여부를 한번
확인해봐야겠네요.
 

2002-08-17 오전 12:06:17

집배원들이 쓰러지고 있다!!

"우연히 <6mm 세상 속으로>라는 TV프로그램에서 집배원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다.

검붉게 그을린 얼굴의 아저씨가 열심히 우편물을 나르고 있었는
데, 말투로 보아 남해쪽 어느 지방인 거 같았다. 섬으로 산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발걸음 사이에서, '시골우체부 아저씨' 하면 떠
올리곤 하는 낭만적 분위기란 찾을 수 없었다. 마침 그 전날이었
던가? 에서 김호진이 시골 우체부 역할을 했었
는데... 무척 낭만적인.. 

그 마을엔 모두 30명의 집배원이 있는데, 그들 모두가 비정규직
이라고 했다. 과중한 업무에, 임금은 정규직의 87 %, 편지가 단 
한통 있더라도 오토바이로는 갈 수 없는 산길을 힘들게 걸어올라
가야 한단다.

한 아저씨는 인터뷰에서, IMF 때 정리해고로 집배원이 대량해직
되었지만, 그 부족한 인원이 충원되지 않아 대부분 16시간 이상
의 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9시 뉴스보며 가족들과 저녁식사
를 먹는 게 소원이라는.. 인간답게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그 소
박한 소원이 하나같이 시커멓게 탄 얼굴마냥 힘겹게 보였다.

시골이라 두 가구, 세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들에 우편물을 나르
는 집배원들은 배고프면 먹는 게 점심이고, 그 먹는 것두 아무 
수퍼에나 들어가 빵이나 사먹는 게 고작이었다. 오전에 3천통, 
오후에 또 3천통을 배달해야 한다니 점심을 못 먹게 되는 것도 
당연한 듯 했다. 날이 더워도 피부가 탈까봐 반팔 옷은 입을 수 
없고...

자신들의 일이 봉사직이라 뿌듯함을 느낀다는 집배원들은 옛날
엔 집배원이 오면 모두들 반가운 얼굴로 맞이하곤 했는데, 요즘
엔 모두들 집배원을 꺼리고 기피하는 눈길이 역력하다고 안타까
워 하더라. 난 그렇게 말하는 아저씨가 더 안타깝기만 하던데...

예전에 뉴스에서 우편물을 버린 집배원이 보도되어서 사람들이 
엄청 비난을 했던 적이 있었다. 혹시 그 집배원도 일이 너무 힘
들어 그랬을까..?

'봉사직'이란 말이 얼마나 사람을 옭아매는지.. 성직이라며, 아
이들을 저버린다며 전교조 교사들 비난하는 언론이나, 국민의 심
부름꾼 공무원이 웬 노조냐구 씹어대는 사람들이나...

'우체국은 편리합니다' 광고 속에 묻힌 사람들의 땀과 그 얼굴들
이 너무나 지쳐보였다." 

라고 어느 게시판에 올렸더니, 어떤 분이 리플을 다셨더군요. 
그 분이 말하길, 



"하루 근무시간 14-16시간, 월 150시간 이상 초과근로.. 98년부
터 우편물은 1.5배 소포는 거의 2배가 늘어났는데, 집배원 수는 
5732명이 감축되었다는군요.(현재 집배원은 비정규직 4000명 포
함 14000명) 게다가 우체국은 작년에 심지어 1000억 이상의 흑자
였다네요"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군요...
[답변] 저희 아버지는 집배원이십니다^^
저희아버지는 집배원이시거든여


근 5년전 쯤만 해도 이렇게 바쁘시지 않았는데..

요즘 머 카드고지서니 핸드폰 고지서니 학생들 학습지니 홈쇼핑
전단지 이런것들이 넘 많아져서 넘 바빠지셨네여

저희 아버지는 아침 7시쯤에 출근하셔서요 

밤 9시반이나 되서야 집에 오시는데여

이것도 우편배달하는구역을 한달쯤전 한가한곳으로 옮겨서 그런
거구요

한달전만 해도 새벽6시 반정도에 출근하셔서 밤 11시 반에 퇴근
하셨답니다 - 그것도 우체국 문닫아야된다고 해서 11시 30분에 
퇴근하신거랍니다 T_T


아버지가 넘 힘드셔서 작년 9월부터 올해3,4월까지 한달에 한 열
흘씩 저녁에 일을 도와드리러 갔더랬습니다 - 휴학생이라 시간
이 있거든여^^

가보면 우체국에선 정말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집배원분들의 가족들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거의가 부
인이죠..  저희가족은 어머니와 저 이렇게 두명이 돕고 있었구요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이죠..

할수 없는 겁니다 일이 워낙 많으니...

 함께 일하는 가족에겐 물론 수당이 없죠..


그래서 한달에 열흘씩은 밤 11시 30분쯤이면 저희 세 식구는 함
께 집으로 퇴근을 하곤 했습니다


12월인가 1월인가였습니다

아버지 옆자리에서 일하고 계시던 분이 몇일 계속 보이지 않으시
더군요

어디 가셨나고 여쭸더니 많이 아프시다고 하십니다. 위암이라고 
하더군여


갑자기 왜 그러시나고 여쭈니까 말씀해주십니다

"전에 우편물 값나가는걸 잃어버리셔서 대신 물어드린후 돈이 아
까워서 점심식사도 안 하시고 하시더니 그리 됐네..."


그리고 한달쯤후 아버지로부터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
습니다.......

그렇습니다.. 우편물이 오면서 혹은 그 수백 수천의 편지와 소포
들이 정말 행방이 묘연할때도 있죠.. 잘못 배달할수도 있구여

그것들을 집배원분들이 다 책임을 지셔야된다는 겁니다..... 정
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아버지께 여쭸었습니다

노조가 없냐고요

우체국도 그렇고 공무원들은 노조가 힘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요즘 구청같은데 가 보시면 공무원들이 이마에 끈 질끈 동여매
고 무언가를 외치고 있습니다

공무원노조가 인정되지 않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말도 안되
죠..그것땜에 요즘 구청입구에서 많은 공무원분들이 구호를 외치
고 있구여


....... 왜 이리 두서없는 글이 되었지 ㅡ.ㅡ;;

어쨌든........


님들 괜찮으시면 정기구독같은거좀 피해주세여... 그런건 직접 
사보셔도 그렇게 힘들진 않을 듯한데

그리고 안 쓰는 카드는  좀 정리해주시면  저희 아버지 노고도 
좀 줄어드실듯 하네여^^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6-02-06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러고 보니 나도 집배원 분들을 상당히 피곤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자책감이 ... -_-;;;

조선인 2006-02-06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이 쓴 글이 참 가슴 아프네요. 정기구독이며 카드를 없애달라니 어쩜 그리 힘없는 도움인지. ㅠ.ㅠ

chika 2006-02-0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가 몇년전부터 했던 행동 수칙입니다.
1. 왠만한 고지서는 이메일로 수령한다.
2. 우편물이 편중되게 몰리는 연말연시에는 편지, 카드쓰기를 자제한다.(물론 특별한 편지들은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3.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편물 갖다 주시는 분에게 인사한다. (이쁘게 인사하고 싶지만 그건 잘 안되네요. ^^;;;;;;;)
4. 가끔 사무실에 음료수 들어온 것 있으면 기회될 때 드시라고 드린다.

그리 큰 건 아니지만 자그만 성의가 그분들의 봉사에 대한 보답이 되리라 믿습니다.
 

294호 2006년 1월 31일(화)


2006년 전망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2006년 지자체 선거는 다음해 대선의 예비무대이자 집권세력의 레임덕이 더욱 빨리 드러날 것이냐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집권세력은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을 위한 '소재'의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 타협을 통한 양극화 해소 재원 마련'이나 '외자확대가 한국경제의 프리미엄을 높여 전체 국부를 증진한다'는 주장의 기만성이 점차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현정부가 민중에게 무언가 양보할 수 있다거나 정부의 정책개혁의 큰 틀이 변화될 수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이는 한국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허구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은 사회운동의 진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미국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

미국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해외로부터 엄청난 부를 수탈하는 메커니즘을 향유했다. 미국이 해외에서 흡수하는 자본소득은 미국기업이 국내 활동으로 얻는 이윤의 80%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미국이 원자재, 특히 에너지 가격에 압력을 가하여 얻는 이득과 주변부의 저렴한 노동력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세계적인 부의 이전은 막대하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 경제는 심각한 불균형에 직면했다. 수입 증가가 수출 증가를 훨씬 앞지르면서 무역적자는 계속 확대되어 2000년 이후 GDP 4% 수준을 계속 상회하고 있다. 또한 무역적자에 조응하여 미국 내 외국인의 자산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고(즉 외국은 무역을 통해 번 달러를 미국에 다시 투자하고 있다), 미국이 여기에 지불해야 하는 자본소득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 외국인 자산은 1984년 GDP 대비 19%였으나, 2003년 72%로 증가했고, 미국의 해외자산 규모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미국이 해외자산을 통해 얻는 자본소득은 외국이 미국 내 자산으로 얻고 있는 규모와 거의 동일하다. 이는 미국의 수익률이 두 배나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미국 제국주의는 해외에서 강력하게 소득을 흡수하고 해외 자본가, 기업, 국가에게 그것을 다시 지불하고 있다(이를 '달러 환류'라 부른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미국이 해외에서 소득을 빨아들이는 데 매우 '효율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러한 궤도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미국의 대외불균형이 계속 악화되면 미국에 대한 투자가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가지 경로로 진행될 수 있다. 먼저 달러의 가치하락으로 귀결될 수 있다. 달러 가치하락은 미국의 무역적자 교정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환율 변화가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던 것처럼 이러한 변화가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금융지배력과 국제적 지위를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물론 미국이 이자율을 높여서 달러를 방어하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외국에 지불하는 소득을 증대시킴으로써 불균형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이 해외자산규모를 더욱 확대하거나, 무역적자를 통제하는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현재보다 더 빠른 수준으로 자산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공산이 크다. 또한 무역적자 악화의 주요 원인인 부유층의 가계소비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적인 지지층의 반발을 초래할 정치적 위험이 있다. 이처럼 날로 심각해지는 미국 제국주의의 모순은 세계자본주의와 착취자들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파괴는 곧 미국 헤게모니의 최종적 위기, 나아가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외경제정책과 동아시아

미국 경제의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이런 우려 자체가 대미투자를 감소시켜 불균형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상황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부시정부는 2009년까지 현재의 재정적자를 절반 이하로 축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대규모 전비가 지출되었고, 감세조치의 영구화와 연금개혁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현실화되긴 어렵다. 따라서 부시정부는 환율·통상 등 대외경제정책을 통해 경제적 난관을 부분적으로 타개하려고 한다. 물론 이는 위기의 대가를 타국의 민중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부시정부는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통상정책의 핵심수단으로 활용하고, '경쟁적 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하였다. 이는 미국이 FTA를 체결한 나라에게만 미국시장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차별을 우려하는 다른 나라도 FTA를 체결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FTA를 단순한 교역확대수단(관세인하)으로 여기지 않고 비관세장벽의 제거와 경제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이용하며, 다자간무역협정의 선례로 활용하고자 한다. 즉 단순히 무역적자 교정을 넘어서 초민족기업의 자유로운 활동과 미국의 금융적 지배를 보장하는 수단이다.

최근 부시정부는 무역적자를 통제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해외 중앙은행이 달러 급락을 막기 위해 달러표시 자산을 계속 매입할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를 주요 통화 대비 20-40%의 절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 수준에 이르러 동아시아 통화를 중심으로 환율조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특히 미국 의회는 위안화의 추가절상을 위해 무역 제재를 준비중이다).

 

부시정부 2기와 민주주의·인권외교

이라크 전쟁은 부시 정부의 핵심적인 관심사다.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승리가 "이라크 보안군이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라크가 더 이상 테러리스트의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게 될 때" 달성된다고 규정했다. 이 정의를 따르면 미국의 승리는 요원하다. 미 의회는 2006년 이라크, 아프간 전쟁과 범세계적 대테러전쟁 비용으로 3500만 달러를 승인해야만 했다. 이 규모는 한국전쟁 당시 전체 비용과 맞먹는다. 또한 부시정부는 더 이상 의회에 이라크 재건 기금을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이라크 재건지원이라는 허울마저 던져버렸다.

하지만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라도 추인 받고 싶은 듯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는 국제기구와 국가주권의 메커니즘을 위반하는 일방주의적 개입도 충분히 정당하다는 접근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부시 정부 2기가 출범한 후 이른바 네오콘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미국의 새로운 전쟁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많이 잦아들었다. 그렇지만 공화당이 다수를 장악한 미국 의회는 민주당 인사들의 도움을 얻어 민주주의증진법(ADVANCE Act)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안은 '세계 45개 독재자들을 2025년까지 끌어내린다'는 목표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비폭력적 수단에 호소해 정권교체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법안은 국무부 담당 하에 처음 두 해 동안 민주화운동에 2.5억 달러를 지출하고, 민주화에 저항하는 국가의 자금흐름을 차단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할 계획이다. 결국 이는 탈냉전 이후 클린턴 정부의 '다자주의'나 세력균형 정책과 다르고, 인권 이슈를 제기해 공산권과 데탕트(무역협정이나 군축협정 체결)에 찬물을 끼얹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포진한 냉전 매파의 전통적인 '인권외교'의 확장판이다.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여, 최근 미국은 북한인권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제기하고 위조화폐-마약 등 불법거래 자금차단에 나서면서 6자회담이 큰 위기에 처했다. 특히 북한인권 의제는 한반도 정세에 장기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한국 사이에 협의가 긴밀해질수록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초민족자본의 한국경제 지배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협약을 거치며 초민족자본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매각을 통해 외국인직접투자 크게 증가했고,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2004년 말 42%에 이르렀다. 당연히 개별기업에서도 외국인 지분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금융업 부문에서 직접투자가 크게 증가해서 SC제일, 외환, 한국씨티은행이 외국계 은행으로 분류되며, 우리금융지주와 전북은행을 제외하면 모든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초과했다.

따라서 '외국자본'의 성격과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4년 영국계 홍콩자본인 BIH가 브릿지증권의 유상감자를 실시해 10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회수한 사건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외국자본의 높은 배당 성향과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배당액 전체 규모도 문제가 되었다(외국자본이 챙긴 배당액 규모는 1998년 5억 달러에서 2003년 33억 달러로 급증했다). 또한 외국자본이 거래소 상장을 폐지하여 자본조달보다는 단기이익을 추구한다거나, 외국인직접투자 비중이 줄고 포트폴리오 투자의 비중이 높아지며, 직접투자로 분류되더라도 공장을 새로 세우는 게 아니라 사실상 지분 참여 수준의 인수합병(M&A)형의 비중이 증가한다거나, 한국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며 설비투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소액주주운동을 펼치며 초민족기업이나 기관투자가가 편에 섰던 쪽은 이러한 비판이 '외자 마녀사냥론'이고, 재벌개혁의 문제를 뒤로 미루고 '사이비 민족주의'를 부추긴다고 대응했다.

그런데 최근 논쟁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 2005년에 주식배당액으로 외국자본이 가져간 금액이 2004년보다 50% 급증한 73억 달러에 이르고, 2005년 주가 폭등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3조 6천억원 어치의 주식을 처분해 엄청난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버린의 SK(주)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나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경영권 위협 사건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이 외국자본의 적대적 M&A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어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삼성은 이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를 검토중이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또 다른 논란도 일고 있다. 물론 반대하는 입장은 국내 상장사 지분의 40%가 외국인이어서 자금이탈 가능성이 높고, 홍콩-싱가포르 등이 자본이득과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런 논쟁의 와중에도 한국 자본 역시 초민족화에 적응하기 위한 해외투자와 '글로벌경영'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 금융사 역시 해외투자 펀드를 내놓고 있으며, 퇴직연금과 각종 연기금 역시 해외로 투자대상을 더 확대해 나갈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2003년에 60만대 규모의 중국공장을 세웠고 2005년에는 30만대 규모의 미국 공장을 설립했다. 또한 2006년에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 법원, 채권단의 관리에 처해 있던 대형기업들의 매각이 이루어져, 글로벌펀드와 국내 사모펀드의 각축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국제금융기구, 한국정부, 신자유주의 NGO는 초민족자본의 직접적인 지배력을 보장했고, 한국의 기존 재벌은 초민족화를 대세로 받아들이며 명운을 걸고 초민족화의 혈로를 찾고 있다. 물론 한국 경제의 급격한 재편과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에 따라 삼성과 같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로비와 여론조성에 몰두해야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지배구조개혁) 대 한국자본 보호(적대적 M&A 방어)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세계경제의 위기 때문에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 일부의 공생·경쟁관계가 작동하는 토대가 무너지는 것이 문제다. 미국이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자본소득을 퍼올리고, 세계는 미국에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달러를 벌어들여 이를 다시 미국에 투자하는 '달러 환류' 메커니즘이 미국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저하)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수출분야의 팽창, 한국증시의 급상승과 같은 현상은 미국의 금융세계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체계가 위기에 빠지면 한국 경제의 종속성과 취약성은 더욱 극적으로 표출될 것이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과 노무현 정부의 집권 하반기 프로그램

주식시장은 팽창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M&A가 이뤄지면서 금융지배력과 집중력은 날로 강화되지만, 한국 경제는 경기회복은 매우 짧고 경기침체는 매우 오래 이어지는 장기불황에 빠져들었다. 인민주의적인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에 의존해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부로서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과 경제적 이해가 맞물려 있는 '비즈니스 네트워크'로 전환한 386세대, '개혁적' 지식인과 기술관료 NGO,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 대중의 일부 상층부의 명예욕과 실리주의를 자극하고, 청년층 도시프롤레타리아의 감정적인 지지를 일시적으로 이끌어 내고, IMF 구제금융협약 이후 위기에 빠진 지역들의 소외감을 자극함으로써 일시적인 지지층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는 특정한 정치이념을 보유한 다계급연합이 아니라 계급형성을 봉쇄하는 '탈계급연합'일 뿐이며 사상누각처럼 불안정하다. 따라서 노무현정부와 세계 곳곳에서 만개한 인민주의 정치스타일의 공통점은 지지층의 휘발성이 매우 강하며, 따라서 지지율이 급상승과 급락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 시도로 기사회생하여 2004년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내친 김에 자신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 즉 개헌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연정제안 실패와 2005년 10월 재보선 참패 때문에 목표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노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간의 미래구상'을 1월 또는 2월에 발표하겠다고 공언했고, 여기에는 노대통령의 탈당과 거국내각 구성, 임기단축과 조기개헌론 점화와 같은 충격적인 제안이 포함될 수 있다는 추측이 무성했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권력구조의 개편은 특정 정치분파가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이를 공고화할 수 있는 조건에 도달하거나, 사회경제적 위기가 정치적으로 표출됨으로써 지배세력의 '집단적인' 책임이 긴급해진 경우에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집권세력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처해있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이라는 조건에서 이질적인 지지층을 포괄할 수 있는 정책개혁 전망을 제시할 수도 없고,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초민족자본이나 대자본에게 개헌을 매우 긴급한 과제로 제시할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권세력에는 소폭 수준이더라도 개헌을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 현재의 위기관리 체계의 근간을 유지하고, 이 체계에 여러 사회운동 세력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입장이 혼재해 있다. 개헌에 미련을 두는 입장은 내각제나 '사회적 대타협'의 틀로서 상원제 도입이 어려우면 대통령과 국회위원 임기불일치 조정과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이라도 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집권 핵심층은 중도개혁-진보진영의 연대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결선투표제 도입을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한편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의 하나로 꼽히는 정동영은 개헌이나 정계개편을 포함한 중장기적 정치프로그램에 대해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열린우리당 내의 확고한 입지 구축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한 명의 주자인 김근태는 '양심세력통합론'을 제시하며 '외연을 넓힌 통합을 시도해야 하고, 지방선거 이전 통합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어떠한 입장도 집권세력 내에서 확고한 정치프로그램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전망의 불투명성은 경제위기의 불가피한 특징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연설에서 정치프로그램에 관한 '미래구상'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취임 전부터 검토된 사회경제정책 묶음을 다시 꺼내들었다. 물론 청와대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 미래과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의사결정 시스템 마련'(저출산고령화, 국민연금 등 중장기적 정책과제 해결)이 노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라고 포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민주의가 구사하는 사회정책은 국가온정주의라는 보수주의에 훨씬 더 가깝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종속적 수단으로 전환된다. 완전고용과 같은 케인즈주의 목표는 제거되고, 장기실업층을 산업예비군으로 포섭하려는 사회정책이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의 시혜 형태로 제공된다. 또한 간접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거나 노동신축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시되는 다소간의 증세를 통해 국가가 확보한 약간의 재원으로 특정 층을 겨냥한 복지정책이 활용된다. 그러나 국가의 시혜에 의존하라는 인민주의 정책은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연설을 통해 제시한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과제와 정책방향은 인민주의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다. 연설에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정 확충,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보호, 부동산과 사교육비 문제가 보수세력의 악의적인 선동만 없다면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는 듯이 역설했다. 또한 노대통령은 각각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노무현정부의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대리전'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보였다(이미 지난해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국민연대'가 결성되어 이러한 의도의 일단이 드러나기도 했다). 물론 증세는 부유계급에 대한 수사적 공격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활용될 여지도 있다. 그렇지만 인민주의적 공격이 부유계급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공문구에 그칠 때가 많지만, 민중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통을 강요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노무현정부는 성장잠재력의 약화, 사회양극화의 심화,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한 새로운 미래 위험요인의 등장이 한국경제의 당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값싼 노동력 투입의 둔화(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산업예비군층의 축소)와 설비투자의 감소, 생산성 향상의 저하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고갈, 산업부문·업종·기업·계층간 양극화 심화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한국 경제가 택한 신자유주의 생존전략의 필연적인 귀결일 뿐이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 국제금융기구의 경제구조조정에 편승해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한 일부 산업·기업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통해 팽창에 성공했지만, 이는 결국 초민족자본의 자본소득과 경제지배력 확대에 기여한다. 최근 초민족자본의 성격과 이들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른 논쟁이 확산되고 있지만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을 외치든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추구하든 이는 민중에게 다른 형태의 재앙일 뿐이다.

노무현정부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려 있고, 매우 빠른 시일 내에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계승하면서도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의존해 지지층을 끊임없이 재규합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기술관료-NGO를 매개로 위기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사회운동을 공격 또는 포섭하면서,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의지해서 정치적 국면들을 돌파해왔다. 그러나 아랫돌을 빼내서 윗돌로 얹는 조삼모사 방식의 양극화 해소 방안은 민중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물론 노무현정부의 집권 이후 인민주의적인 정치토양은 더욱 굳건해졌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위기는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의 '공생관계'를 근저에서 잠식하고 있으며, 한국 지배세력의 정치프로그램을 제약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거나, '외국자본'에 대항해 한국자본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현 정부와의 대화나 협약을 통해 민중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모든 주장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거부한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지양하려는 사회운동은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서만 대안세계화운동에 적합한 노동자운동의 개조,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결합,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운동의 결합이라는 우리의 과제를 펼쳐나갈 수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6-02-05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글쎄요, 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