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 (2003, 9, 23)


이른바 '국익'론이 파병 주장의 논거가 되는 듯하다. 그 허구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번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전투병 파병 요청은 전후 복구 참여가 아닌 미군 전투병 교체의 시급한 필요성 때문이다. 미국 부시행정부는 유엔의 결의를 유도함으로써 외국의 금전적 지원과 병력 지원을 유리하게 할 조건을 마련하려 하고 있으나, 프랑스가 조속한 통치권 이양을 요구하고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시의 한국 등 몇 나라에 대한 파병요청은 미국의 지휘권 하에서 현재 미국의 점령군으로서의 역할을 분담하자는 것으로서 이것은 전후 복구사업과 이라크의 민주적 재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프랑스가 계속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는 이유는 미국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이라크 과도정부 구성, 지휘권, 그리고 전후복구에서 다른 강대국과 전혀 권한을 분담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다시 유엔이나 주변 국에게 손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전투병력 교체가 원할하지 않을 경우 자신이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고, 그것은 재선에 적신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부시의 요청은 미군의 점령군 역할을 분담하여 미군의 교체를 신속히 하고, 국내의 정치적 곤경을 탈피하자는 것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파병요청은 현재 미국 내에서 부시에 대한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점에 대한 탈출구로서 모색된 것이다. 현재 부시에 대한 지지도는 약 50% 정도인데, 이것은 9.11 직전과 거의 같은 수치이다. 내년 2,3월까지 현재 주둔하는 미군의 순조로운 병력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부시는 더욱 심각한 정치적 곤경에 처할 것이다. 현재 미국 내에서 이라크 파병 군인 가족들은 의회와 행정부에 빗발치는 항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이라크 사정으로 볼 때 설사 후세인이 체포된다고 하더라도 이라크에서의 미군에 대한 공격은 계속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한국이 파병해서 미군의 대신 역할을 해 준다면 한국은 미국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미군 대신 총알받이 역할을 함으로써 미국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곤경에 빠진 부시를 구제해 주는 결과가 된다. 전세계 어느 나라도 선뜻 부시의 이라크 전쟁과 현재의 점령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데, 미국에게 만만한 한국이 세계의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파병을 한다면 그것은 세계를 버리고 미국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부시를 지지한다는 말은 2000년 집권 이후 한반도의 평화적 해결을 더욱 꼬이게 만든 장본인인 부시가 더욱 자신만한하게 남북화해를 이간시키고 북한을 공격하고 고립시킬 수단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이 파평했다고 해서 미국이 한반도 정세를 푸는 데 있어서 한국을 더 봐줄리는 없다. 오히려 최근들어 부시가 궁지에 몰리게 됨으로써 북한에 대해서도 더욱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파병은 한반도 문제를 푸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보다는 부시의 재선을 도와주고, 결국 한국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 봐서 한국이 이라크 유전개발이나 전후 복구 작업 등 각종 사업에서 별로 실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라크 유전은 이미 미국 회사들과 미국 정부 간에 계약이 끝나서 작업을 진행중이고, 전기 전화, 도로 등 각종 인프라 사업도 미국 정부와 기업사이에서 상당부분 계약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작전 지휘권이나 자신이 사실상 임명한 이라크 임시 대표부 교체를 완강히 거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권한을 놓치 않겠다는 이야기이다. 현재 러시아와 독일이 이라크 전후 복구에 약간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프랑스도 상황에 따라 전투병은 파견하지 않더라도 경찰은 훈련시키겠다고 말하고 있어서 미국이 이들 프랑스, 독일 등과 이면에서 약간의 타협을 해서 이들의 참여 몫을 허용할 수는 있으나, 한국이 어떤 발언권을 갖고서 전후 복구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라크 정세가 대단히 불안정하기 때문에 각종 시설들을 이제 외국 기업들에게 넘기겠다고 말하고는 있으나 그것이 한국에게까지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설사 파병을 통해서 이러한 이권을 노린다고 하더라도, 부도적한 전쟁의 전리품을 나누어갖는 오명을 뒤집어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르크 파병은 아랍권에서 한국의 위상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이란의 유전을 잃어버린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사우디 등 미국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국가가 버티고는 있으나 이들 아랍 국가의 내심, 그리고 국민들의 여론은 미국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제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위상은 흔들리고 있으나 아랍권은 이제 깨어나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아랍국가가 민주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 한국은 미국이라는 썩은 동아줄에 목을 메는 곡예를 하는 셈이 된다. 아랍권 사람들에게 한국이 결국 미국의 수족에 불과한 점령군이자, 마름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인상을 줄 경우 장기적으로 석유 수급 문제를 비롯한 경제적 관계에서도 불이익을 당할 위험성이 있다. 인도, 파키스탄, 터키 등이 모든 이러한 문제와 자국의 여론을 의식해서 파병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 한국이 진정한 성숙한 국가라면 어려움에 처한 이라크 국민들을 도와주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라크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것은 미국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일 것으로 예상되던 수니파까지도 미국의 점령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데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테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라크의 반한감정이라는 뉴욕타임즈의 보도에서 확인한 것처럼 이라크인들은 미국을 대신하는 어떤 외세가 오더라도 그들을 하나씩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에는 과도 정부 대표자까지 공격하였는데, 그것은 미국과 그 대리자를 동일하게 보겠다는 태도의 표현이다. 파병요청은 미국군인 대신 한국군인이 점령자의 하수인이 되어 총알받이가 되어달라는 이아기다.

만약 노무현 정부가 국내에서의 부정적 여론을 부릅쓰고 어설픈 실리론에 기대어 파병할 경우, 이 정부의 개혁적 드라이브는 심각한 좌초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한국인 전투병 중 이라크 인들의 공격을 받아 사망자나 부상자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이 정부에대한 총체적 불신으로 연결될 것이다.

한국인들 80퍼센트가 이 전쟁이 미국의 자국의 이익을 위한 부도적한 전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을 평화유지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파병을 한다면 한국이 사실상 미국과의 일방적인 종속관계 속에서 비굴하고 불가피하게 파병하게 되었다는 것을 쓰라라게 쓰라리게 인정하는 것이 되고, 그것은 한국인들이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도덕적으로 옭지 않은 일을 지지해야 하는 정신적 공황상태로 이들을 몰아갈 것이다. 아무리 큰 이익이 오더라도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일을 국민에게 설득하는 정부나 국가는 장기적으로 지탱하기 어렵다.

 

 

한미동맹을 위해 김선일을 버렸다 (2004, 6, 25)


슬프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어이없고,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답답하다. 그 착한 젊은이가 월 200만원 벌기 위해 사지에 가서 테러범에게 참혹하게 살해된 일이 너무 슬프다. 미 점령군의 하수인이 되어 이라크에 파병을 하는 처지에 ‘평화 재건’이라는 호소로 헛물을 켜서 이라크 테러범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 정부의 무지, 무능함, 외교의 부재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김선일씨의 피살은 철저히 부시의 부도덕한 전쟁에 동조하여 3000명이라는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려는 한국에 대한 정치적 경고임에도 불구하고 파병 강행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극우파의 입장과 완벽하게 보조를 맞추어 이 사건을 이라크 사람 혹은 테러범에 대한 분노로 몰아가는 한국의 보수 세력의 현실인식에는 말문이 막힌다. 한국과 이라크는 아무런 원수질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쟁 장난의 희생양이 되어 자국 민간인의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이 약소국 한국의 처지를 생각하면 답답하다.

가눌 수 없는 슬픔을 어찌할 수 없지만,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1945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인이 정치적으로 희생된 모든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정부를 보지 말고 미국을 보아야 하듯이, 이 모든 과정에는 ‘한미동맹’ 문제가 걸려있다. 5월30일 이후 미국과 한국정부가 그의 억류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문제는 아직 진실이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좀 더 두고 보자. 우리는 19일 이후 미국 정부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 부시의 발언을 보면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이 파병 계획을 변경할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두고 있었고, 또 미국은 공개적으로도 한국에 신호를 보냈다. 한국정부는 김선일씨의 목숨이 백척간두에 서 있던 바로 그 위기에 순간에 ‘파병방침 불변’이라고 미국의 요구에 충실하게 화답을 했다. 테러범들은 이 메시지를 듣고 김선일씨를 살해했다. 김선일씨의 살해 소식이 알려진 이후에도 부시는 재차 “한국정부가 파병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못을 박았다.

즉 한국정부는 부시의 부도덕한 전쟁을 지지하기 위해 김선일씨를 버렸다. 이것이 진실의 처음과 끝이다. 정말 테러범들이 ‘한국군은 평화 재건을 목적으로 이라크에 간다’는 호소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정부는 바보다. 현재 상황, 이라크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과 상처, 미국에 대한 그들의 굴욕감과 분노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평화와 재건이 얼마나 공허한 구호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런 줄 알고서도 ‘헛소리’를 계속했다면 이 정부는 한국인의 정부가 아니라 부시의 정부임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 된다. 물론 그 짧은 시간에 한국 정부가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파병론을 철회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부의 행동은 사실상 그를 죽여도 좋다는 사인에 불과했다.

테러범들의 잔인한 처형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미국, 영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가 지금 이라크에서 빠져나오고 있으며 생색내기 파병만 하고 있는데, 이 시점에 한국이 오직 부시를 도와주기 위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추가로 보내려한다는 사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한국인의 목숨을 포기하더라도 미국의 으름장에 화답해야 했었다는 사실이 문제의 근원이다. 이라크인은 한국인의 적이 아니다. 한국에서 이 어리석은 파병강행론이 강해질수록, 그리고 파병방침이 원점에서 재검토되지 않는 한, 죄 없는 한국인의 희생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동맹’을 지킨다는 명분 하에 지난 50년 동안 그 만큼 많은 한국인이 죽고 다쳤으면 됐지 얼마나 더 죽어야 하나 “한국은 이라크에서 나와야 한다”는 김선일씨의 마지막 절규가 가슴을 친다.

김동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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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의 핵심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입니다"

신기남, 홈페이지 통해 파병 불가피론 주장... 뜨거운 논쟁 촉발

 

이한기 기자

 

고 김선일씨 피살사건 이후 이라크 파병 찬반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이 "이라크 파병 정책이 어떤 경우에도 변해서는 안될 지고지순한 정책은 아니며 파병을 철회할 필요성이 있다면 철회할 수 있다"며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의 협박에 굴종하여 파병을 철회할 수는 결단코 없다"고 이라크 파병 원칙을 명확히 했다.

신 의장은 26일 오후 열린우리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지금 파병을 반대하는 분들의 목소리가 높고 당원 동지들 중 일부는 파병 원칙을 재확인한 당과 정부의 태도에 반대하며 탈당하시겠다는 분도 있다"며 "그러나 파병을 반대하는 분들도 나름의 정당성과 이유가 있지만, 파병을 찬성하는 것에도 나름의 정당성과 이유가 있는 것을 생각해달라"며 이같이 밝혔다.

신 의장이 이라크 파병 불가피론을 주장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테러리즘에 결코 타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미동맹을 굳건히 함으로써 국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김선일씨 피살사건 이후 더욱 거세진 파병반대 주장에 대해, 아이를 납치해 살해한 유괴범의 협박 요구에 대한 대응을 예로 들며 "만약 유괴범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그 가정은 또 다른 유괴범의 표적이 될 것이고, 국가를 대상으로 한 테러 협박의 경우에도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고 반박 논리를 폈다.

이어 그는 "만약 이번에 테러리스트들의 야만적인 협박에 굴복하여 파병을 철회한다면, 파병 문제로 인한 희생자는 더이상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은 협박에 굴종하는 나약한 정부로 인정됨으로써 테러집단의 표적이 돼 더 큰 테러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국익론'과 관련해 신 의장은 "이라크 전쟁뿐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모든 전쟁은 명분이 없고 오로지 전쟁하는 이유만 있을 뿐"이라고 전제한 뒤 "현실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국가가 참전, 찬성, 중립, 반대, 아니면 응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외교관계에서의 국익"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남의 전쟁에 파병해야 하느냐'는 반대론자의 주장에 대해 "미국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동맹국"이라며 "수십 수백 가지의 파병 원칙 이유 가운데에서도 핵심은 미국과의 관계이며, 이를 통해 지켜가야 할 국익"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을 활용해야 하고, 미국에 줄 건 주고받을 건 받는 관계는 필수"라고 덧붙였다.

신 의장은 "시민단체뿐만이 아니라 정치인들 가운데에도 (파병을) 반대할 수 있고 자신의 사상대로 실천할 권리와 의무도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국가정책을 책임지는 정부와 여당이 테러에 굴복하여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정부 여당 책임론을 폈다.

신 의장의 이같은 파병 불가피론에 대한 주장과 관련해 열린우리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당원들을 중심으로 한 네티즌들 사이에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며 뜨거운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그는 6월 중순 당·정·청 간의 불협화음이 불거졌을 때도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렸고, 가급적 일주일에 한 번은 직접 정국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홈페이지에 밝히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다음은 신기남 의장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 전문이다.

이번주에도 글을 남겨야 할 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정치인에게는 때때로 '무언(無言)의 실천'의 시기가 필요한데, 지금이 그 때가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과의 약속이 더 소중하다는 판단으로 글을 남깁니다. 무거운 글이 될 수밖에 없겠습니다.

고(故) 김선일씨를 생각하면 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슬프고도 비통할 뿐입니다.

그날 밤 막 잠자리에 들려 할 때, 이라크에서 동양인 시신이 발견되었고 정황상 김선일씨일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사실이 아니길 하늘에 간청했건만, 결국 확인 전화를 받고서 충격과 슬픔을 주체하기 힘들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한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새벽녘… 정신을 바로 세우고는 '당과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전 세계가 지켜볼텐데…' 하는 고통스러운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한국군은 이라크에서 나가달라"고 절규하던 고 김선일씨의 살아생전 모습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침 일찍 소집한 고위 당·정·청 회의에 나가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테러를 강력히 규탄하고, 테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음을 천명하며, 파병 원칙은 변함이 없어야 함을 힘주어 강조하기로 결심했고, 결심대로 실천했습니다.

파병반대 여론이 이미 70%에 육박해 있었고, 시민단체에서 파병반대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칠 것이 예상되었으며, 이 흐름의 맨 앞에서 열린우리당 당원동지들의 대다수가 파병반대를 외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의 선택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찬찬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감정은 조금만 뒤로하고, 여러분과의 이성적인 대화를 바랍니다. 이 문제는 '테러리즘에 대해 국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테러리즘에 대해 국가는 확고한 원칙을 가져야 합니다. 테러에 대해서 국가는 의연하고 흔들림 없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테러를 통해서는 어떤 목적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테러는 공공의 적입니다. 테러를 통해 국가정책이 변화된다면 테러는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부추기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만약 이번에 테러리스트들의 야만적인 협박에 굴복하여 파병을 철회한다면, 파병문제로 인한 희생자는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협박에 굴종하는 나약한 정부로 인정됨으로써 테러집단의 표적이 되고, 따라서 더 큰 테러의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유괴범이 협상도 벌이지 않은 채 자신의 요구가 관철될 기미가 없자 아이를 살해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살해하면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당신의 두 번째 아이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합니다.

이 경우 유괴범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나요? 만약 요구를 들어준다면 그 가정은 또 다른 유괴범들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자녀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며, 부모가 유괴범을 체포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됩니다.

국가를 대상으로 한 테러 협박의 경우에도 같은 이치가 적용됩니다. 테러리스트들의 요구를 대한민국의 정부가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소위 한나라당의 논리도 아니고, 수구 기득권 세력의 논리도 아닙니다. 이는 주권국가로서 변함없이 견지해야 할 지극히 당연한 원칙입니다.

물론 이라크 파병정책이 어떤 경우에도 변해서는 안될 지고지순한 정책은 아닙니다. 파병을 철회할 필요성이 있다면 철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의 협박에 굴종하여 파병을 철회할 수는 결단코 없습니다.

지금 파병을 반대하시는 분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당원동지들 중 일부는 파병원칙을 재확인한 당과 정부의 태도에 반대하며 탈당하시겠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한 가지만 생각해 주십시오. 파병을 반대하시는 분들도 나름의 정당성과 이유가 있지만, 파병을 찬성하는 것에도 나름의 정당성과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파병을 반대하시는 분들의 핵심적 이유는 두 가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는 이라크 전쟁이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나라 전쟁'에 국민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라크 전쟁만 명분이 없는 것이 아니고, 모든 전쟁은 명분이 없습니다. 세상에 명분 있는 전쟁이 어디 있습니까? 과거 근대국가 시절까지는 국민의 생명보다 왕과 국가의 존엄이 중요했기에 국민 생명의 희생을 감내할 명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현대사회에서 모든 전쟁은 명분이 없습니다. 있다면 오직 전쟁하는 이유가 있을 뿐이겠지요.

그러나 전쟁은 벌어집니다. 그리고 국가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태도를 정해야 합니다. 참전, 찬성, 중립, 반대, 아니면 응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외교관계에서의 국익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지난한 논의 끝에 파병을 결정한 것입니다. 그것도 실제 전쟁은 끝난 후, 재건과 정권이양의 시기에 평화재건을 목적으로 비전투병 위주의 파병을 결정한 것입니다. 물론 저항세력의 활동이 활발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이것이 국가간의 전쟁은 아니라는 점에서 전후에 평화재건과 복구를 위한 파병이라는 점은 자명합니다.

그리고 남의 나라 전쟁이라는 것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와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가 전세계 몇 개국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오직 한 나라 밖에 없습니다.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동맹국입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지난한 논의 끝에 결정한 파병정책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 이유를 대라면, 수십 수백 가지를 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하나입니다. 바로 미국과의 관계이며, 이를 통해 지켜가야 할 국익입니다. 대한민국은 더 발전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미국을 활용해야 합니다. 미국에 줄 건 주고받을 건 받고, 도와주고 도움 받는 관계는 필수적입니다.

파병을 철회하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의 충정도 이해합니다. 그 분들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시위나 집회를 열 권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시민단체가 그렇게 주장하고 행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 분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정치인들 중에서도 반대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파병을 반대한다면 자신의 사상대로 실천할 권리는 물론 의무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그래서는 안됩니다. 국가정책을 책임지는 집단이 테러에 굴복하여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최명길은 청나라와의 화의론(和議論)을 주장하며 항서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명나라와의 의리를 중시한 김상헌은 최명길의 항서를 찢고 통곡하였습니다. 최명길은 "항서를 찢는 김상헌의 행동도 의미가 있지만, 찢어진 항서를 붙이는 최명길도 필요하다"며 독단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당시 새로운 대국으로 등장한 청나라와 균형 잡힌 외교를 강조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가 바로 최명길의 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파병반대를 주장하는 분들의 행동도 의미가 있지만,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파병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정부와 여당의 확고한 자세도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정부의 미숙한 대처는 반드시 바로잡을 것입니다. 20일 넘도록 피랍사실을 몰랐다는 외교부의 사건 초기 무사안일한 대응, AP통신의 전화통화 사실에서도 확인된 공직기강 해이 등 납득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당원동지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다음주 또 찾아 뵙겠습니다.

2004년 6월 26일
당 의장 신기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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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004-06-28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보고 있기가 괴롭군요. 이거야 원, 황희 정승이 따로 없군요. '니도 옳지만 나도 옳다..' 도 닦자는 것도 아니고 대체 ...

욕이 부글부글 끓지만, 손님 된 몸이니 자제해야 겠네요. 쩝.

balmas 2004-06-28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열받게 해드려서 ... 그래도 이게 현실이니 어쩌겠습니까?
평화개혁 정당이라는 열린 우리당 당의장의 의식수준이 고작 "대하사극"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주상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고 무지한 백성들 다독거려가면서 대국의 눈치도 살펴야하니, 참 신 대감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러니 열린 우리당이 노무현의 사당이라는 말이 안 나오겠습니까?
 


 
파병 위해 '은폐'했다면 정권 퇴진"  

국민행동, 김선일씨 사건 진상규명 위한 청문회-국정조사 촉구 
 
  
   
 "정부가 6월초에 김선일씨의 납치 사실을 알고도 외교 안보라인에서 은폐
했다면 문책을 넘어 처벌되어야 한다. 청와대와 대통령이 (김선일씨의) 파
병을 위해 피랍 사실을 숨기고 추가 파병결정을 발표했다면 이는 정권의 
도덕성과 진퇴가 걸린 문제이다.

(김선일씨의 피랍 사실을) 미국 정부가 몰랐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미
국이 피랍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면 부시 미 대통령은 한국민에게 석고대
죄 해야 하며, 한미동맹은 재정립되어야 한다.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관철
해 김선일씨 피랍사건 은폐사건을 진상 규명하겠다."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은 강한 어조로 고 김선일씨 피납 은폐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가 
고 김선일씨 피납사실을 알고도 추가 파병을 위해 은폐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AP통신의 TV뉴스인 APTN이 6월 초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단체한테 
심문을 받는 모습을 찍은 비디오를 확보한 뒤 김씨의 실종여부를 한국 외
교통상부에 문의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김 사무처장의 의혹 제기는 설득
력을 얻어가고 있다. 

김 사무처장은 24일 오전 11시 30분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이하 파
병반대 국민행동)'이 외교통상부 정문 앞에서 가진 '고 김선일씨 피랍의
혹 규명촉구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의혹을 제기한 뒤 진상 규명을 촉구했
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홍근수·한상렬 공동대표와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
처장 등 시민사회단체 인사 50여명이 참석했다. 

'파병반대 국민행동'은 ▲김선일씨 피랍사실에 대한 정부의 인지시점 ▲외
교부가 공개한 김천호(가나무역 대표)씨의 관련 진술 ▲정부의 무장세력과
의 교섭과정 및 내용 ▲미국 당국의 김선일씨 피랍 인지시점 등을 묻는 공
개질의서를 외교부에 전달했다. 

이날 시민단체 회원들은 "노대통령은 사건은폐 책임지고 국민 앞에 사죄하
라" "사건은폐 진상규명 책임자를 철폐하라" "김선일을 살려내라, 진상을 
공개하라, 국정조사 실시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한국과 미국정부에 진
상규명을 촉구했다. 

한상렬 공동대표는 회견에서 "죽지 않고 살고 싶다고 몸부림치던 김선일씨
를 누가 죽였는가"라고 물으며 "테러 단체에 참수된 미국인 니컬러스 버그
의 아버지가 '내 아들을 죽인 것은 부시와 럼스펠드'라고 절규했듯이 김선
일씨를 죽인 것은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책임을 물었다. 

한 대표는 또한 "노 대통령이 파병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김선일씨를 죽이
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제2, 제3의 김선일씨 같은 희생자를 막기 위
해서는 파병결정이 철회되어야 한다.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파병을 강행
할 경우 탄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종환 민화련 이사장은 "이 정부가 어느 나라 정부인지 묻고 싶다. 파병 
변함없다는 말로 김선일씨를 죽게 한 비인도적 비인간적인 우리 정부에 실
망했다"며 "김선일씨의 유해가 도착하면 모든 부모들이 한 마음이 돼 정부
가 일으킨 사태에 항의하는 국민행동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파병반대 국민행동'은 이날 외교부에 전달한 공개질의서에서 "정부는 '이
라크는 안전하며 한국군 파병은 이라크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결론을 내는데 급급했다"며 "김선일씨 피살사건은 정부가 이라
크 정세나 이라크 국민들의 정서에 심각한 판단오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추가파병을 강행하면서도 정부가 유사시에 취할 수 있는 대응능력
은 거의 부재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며 "정부는 한국군 파병에 
대한 심각한 판단오류에 대해 책임져야 하며 또한 한국군 이라크파병은 재
검토되어야 한다"며 파병철회를 촉구했다. 

미군이 몰랐다고 정부가 단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파병반대 국민행동'이 외교부에 전달한 공개질의 가운데 주요 내용은 다
음과 같다. 

▷5월 31일 이후 이라크 혹은 카타르 한국대사관 등 외교부 현지 외교관들
이 김선일씨 피랍여부에 대한 정보보고 혹은 첩보 등을 해당 국가 대사 혹
은 외교부 아중동국 등 보고라인에 보고한 기록이 전혀 없는가?

▷가나무역이 민간인 학살 군사작전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이 일고 있는 팔
루자 주둔 미군에게 군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교부는 알고 있었는가? 
4월 5일 이후 가나무역 직원의 안전문제와 관련, 외교부가 미국 당국과 협
의했던 모든 기록을 공개해달라.

▷테러 위협에 대비해 주재 중인 국민들에 대한 일일점검을 해왔다면 왜 
김선일씨의 피랍 사실을 3주 동안이나 알지 못했는지 입장을 밝혀달라. 외
교부가 시행하고 잇는 재외국민보호 매뉴얼, 가나무역을 비롯한 교민에 대
한 일일점검 일지 등 관련 기록 일체를 공개해달라. 

▷김 사장은(가나무역 대표) 미군과 외교부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외교부가 받아냈다는 사유서와 진술서는 외부 압력
이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작성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외교부는 의혹의 중심에 서 있으며 따라서 (피랍 은폐) 조사를 외교부
가 진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외교부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감사원 차원
의 특별감사나 국회의 국정조사를 스스로 요구할 의사는 없는가?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은 (무장세력과) 직접협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정부가 김선일씨 석방에 대한 희망적인 전망을 보고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접촉했던 미국당국과 성직자, 부족장이 누구
인지 밝혀달라. 

▷반기문 장관이 '납치단체가 처음부터 김씨를 살해할 목적을 갖고 있었
던 것 같다'고 발언한 근거는 혹시 정보에 근거하지 않은 추측의 결과는 
아닌가? 피랍자 석방 협상을 책임졌던 주무기관의 장이 조사에 근거하지 
않은 추측으로 피랍자의 의도를 설명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는가

▷김 사장 진술만으로 미군이 몰랐다고 정부가 단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사건지역의 미군지휘관을 포함한 미군 당국이 김씨의 피랍사
실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공식적으로 확인요청 한 적이 있
는가? 그리고 해당지역의 미군지휘관은 누구인지 밝혀달라.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미군이 몰랐다는 미국과 외교부의 주장은 설득력
이 없다. 만약 미국이 알고도 한국정부에 일러주지 않았거나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미리 알고도 몰랐다고 허위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매
우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정말로 미국과 한국 정부는 몰랐는가?

▷한국 정부는 정세예측과 안전대책 마련 실패를 인정하고 파병을 원점에
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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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6-2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말하면 로쟈님의 코멘트를 들으니 허탈한 생각이 듭니다.
어이업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기사 한 편을 퍼왔습니다. 이는 외교부에서 AP 통신 문의사실을 시인하기 이전에 나왔던 기사입니다.
 

제가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 같으면 대통령 탄핵사유에 해당할 만한 문제다"라고 했던 것은, 가령 닉슨 같은 경우를 염두에 두고 했던 이야기입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사임했던 것은 도청 여부가 아니라 거짓말을 했기 때문 아닙니까?

부시가 이라크에 있지도 않은 대량 생화학 무기 공장을 트집잡아, 후세인과 빈 라덴의 연계를 트집잡아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는데, 실제로 이 일들은 다 근거없는 거짓말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의회나 언론이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은, 지난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가 그만큼 맹목적인 애국주의에 빠져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겠지요.

더욱이 이는 미국의 소위 이중적인 성격, 곧 대외정책에서 드러나는 야만적인 제국주의적 성격과 국내정치에서 유지되는 철저한 법치 민주주의적 성격과도 관련되겠지요. 다시 말해 만약 부시의 거짓말이 이라크라는 먼 중동의 “독재국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국 국내 문제를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이것이 언론이나 의회에서 공개적인 쟁점이 되었다면, 이는 전혀 상이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거란 뜻입니다.

지금 열린 우리당에서 현재 외교부장관과 국정원장의 책임 문제를 제기하고 나온 것은, AP 통신 문제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옮겨가는 것을 차단하려고 한다는 것, 그만큼 열린 우리당 내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닙니까?

<" So you act with them (strategecally)? To achieve '파병철회'? To me, it's absurd!..>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저는 솔직히 제가 왜 이런 질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글을 잘 읽어본다면, 제 이야기가 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게 분명할 텐데, 어떻게 제 이야기가 "파병철회를 위해 조선일보와 전략적 동맹을 맺겠다"는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제 이야기는 이 사안을 계기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반동세력과 전략적 동맹을 맺음으로써 노무현 정권을 타격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AP 통신 문제가 노무현 정권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는 것은 제 생각이 아니라, 모든 언론이 동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 객관적 사실이 현재의 정국에 미칠 영향, 다시 말해 각각의 세력들이 이 사실,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는지 주의깊게 관측, 예측하고 거기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반동세력은 AP 통신 문제로 노무현 정권의 목줄을 움겨쥐고,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 이 문제를 계속 활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은 이미 파병강행을 통해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반동세력과 객관적 동맹을 맺고 있는 상황에서, AP 통신 문제까지 불거진 이상,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수구반동세력의 주도권에 좌우되어 나갈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권의 생명이 사실상 끝났다고 말한 것입니다. 정권 초창기부터 도덕성을 그렇게 강조해왔던 정권이 김선일 씨 피랍사실을 사전에 알고서도 그것을 묵과했다면, 이 문제는 파병강행론 때문에 이미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노사모 내부에서 또다른 분열의 소지를 제공해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많은 국민들은 노무현 정권이 무능할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기까지 한 정권이라고 비난하지 않겠습니까? 이를 수구반동세력들은 최대한 활용할 것이구요.

자 그러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조선일보]와 수구반동세력이  AP 통신 문제를 계기로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과 시스템 붕괴를 공격하고 나서니, 거기에 맞서 우리 노무현 대통령은 그럴 분이 아니다, 모든 것은 아랫놈들의 잘못이다, 수구반동언론은 중상모략을 당장 중지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는 결국 파병철회라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회피하고 문제를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과 무능성으로 집중시키려는 수구반동세력의 포석에 그대로 말려드는 게 아닙니까?

로쟈님은 또 ["또는 오히려 올바른 싸움의 쟁점과 방향을 제기하고 사람들을 이쪽으로 끌어모으려고 노력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 Is it political judgement, if not, ethical judgement?.. And, as you know, Josun has no right to say "이게 정부인가?". Why we shoud refer to Josun's view to protest Noh? Is it political judgement (accorfing to which Josun has 'power')? If so, you opinion is perflexing to me!... ]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오히려 로쟈님의 논평이 당혹스럽습니다. 다른 점에 관해서는 위의 답변으로 어느 정도 해명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하고, 아직 남은 문제는 도덕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의 구분입니다.

만약 이런 것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다면[저는 솔직히 왜 그래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는 오히려 올바른 싸움의 쟁점과 방향을 제기하고 사람들을 이쪽으로 끌어모으려고 노력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라는 제 이야기는 정치적이면서 도덕적인, 또는 오히려 윤리적인 판단입니다. 파병철회라는 문제는 국내 정치만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관계라는 점에서도 핵심적인 쟁점이고, 이 문제를 자신의 진퇴와 관련된 쟁점으로 악화시킨 것은 노무현 씨 자신의 잘못이지요[객관적인 한계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무현 씨의 정치적 행동은 늘 그렇습니다. 타협의 여지, 합리적인 정정과 변화의 여지를 주지 않고, 늘 내편이냐 적이냐 하는 첨예한 대립선을 긋습니다. 이전의 문제들은 수구와 민주주의/개혁이라는 경계선 위에서 작용했던 만큼, 노무현 씨의 이런 극단주의적인 정치기술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파병문제를 계기로 그가 얼마나 위험스러운 인물인가, 얼마나 극단적인 성격의 정치가인지가 분명히 드러났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정당성이 없는 전쟁에 참여해서 죄없는 사람들을 살해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제 2, 제 3의 김선일 씨를 낳을 수밖에 없는 파병에 반대하는, 무책임한 테러리즘에 맞서 평화와 정의의 연대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로쟈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현재의 파병문제와 관련하여 하고 싶은 말씀이 있거나 제 이야기에 논평하고 싶으신 게 있으시다면, 이렇게 단편적인 코멘트를 달지 마시고 따로 페이퍼를 통해 말씀해달라는 점입니다. 단편적인 코멘트를 들으니 로쟈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어떤 경우는 좀 황당한 중상이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합니다. 오해가 있다면 좀더 정확히 풀고, 견해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좀더 정확히 드러낼 수 있도록 페이퍼를 따로 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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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 2004-06-28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은 모르겠지만...) 로쟈님은 balmas님이 밑에 조선일보 사설을 인용한 것을 보고 balmas님이 그 사설에 동의하고, 노무현 정부의 비도덕성의 근거로 인용했다고 해석하신 건가요? 제가 보기엔 balmas님은 이미 노무현은 자기 정치적 지지를 끌어내는 구호였던 '도덕성'이라는 것까지 수구세력에 저당잡혀버렸다는 증거로 조선일보사설을 제시한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동시에 파병강행 입장을 밝힌 노무현을 추켜세우기도 했지요. 수구세력은 이제 굳이 노무현을 자리에서 끌어내리지 않아도 자기 뜻을 펼 수 있는 입장이 되어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할 것은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 상실을 규탄하면서도 파병강행을 외치고 있는 수구세력에 박자를 맞춰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노무현을 끌어내리고 파병을 막는 것이다!ㅡ라는 것이 balmas님의 글의 의도로 보이는데요...

balmas 2004-06-28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 공식 대변인으로 삼아도 되겠구만.^^

릴케 현상 2004-06-28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의문이 드는군요. 미국과 다른 선진국 같으면 닉슨의 경우처럼 탄핵을 단행한다고 얘기하시는데, 과연?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처럼 이런 침략전쟁을 수없이 자행하면서도 노무현을 탄핵하고 민주적으로 정권이양을 해 내면 미국 수준의 선진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건가요?
기본적으로 미국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고 님은 생각하시는지 의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탄핵을 하는 것만은 높이 사서 우리도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노무현 탄핵 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이런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쩐지 찜찜합니다.
언젠가 촘스키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민주주의의 발전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미국 내의 권력다툼의 일환이었다고요...
탄핵해서 파병 막는다는 것이 발람스님의 생각인가요?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 혹은 가능하지 않아서 하고야 말겠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balmas 2004-06-28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제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예로 든 건 단순한 사례를 가리키기 위해서 든 것이고. 미국 같은 선진국이라고 말한 건, 상식적인 수준에서 미국 같은 나라들은 법치민주주의가 철저하게 확립된 나라가 아니냐라는 점을 지칭하기 위해서 말한 거지요. 저는 분명히 미국의 대외 정책과 대내 정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미국의 정치 일반으로 확장시켜서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말한 것이고, 그것을 "법치민주주의"라고 표현한 겁니다. 촘스키의 말처럼 워터게이트 사건 때 정파들 사이의 권력 다툼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제 이야기는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냐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이 사건이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의회에서 논의되고 결국 대통령이 책임지고 사임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법치민주주의에 기반하고 있지 않느냐는 점을, 지나치면서 지적하고 싶었던 거지요. 제가 불필요한 예를 들어서 오히려 혼란만 초래했다면, 이 예를 배제하면 되겠지요. 꼭 이 예에 근거할 때에만 우리가 현재의 사태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여름아이 님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고 님은 생각하시는지 의문입니다.”라고 물으셨는데, 그렇게 정색을 하고 물으시니 좀 당혹스럽니다.^^ 제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경솔했다면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탄핵해서 파병막는다"는 게 제 생각이냐고 물으셨는데, 우선 AP 통신 문제는 사안 자체가 대통령 탄핵까지도 갈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문제는 이걸 제대로 밝힐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는 점이지요. 제 생각에는 이 문제는 한나라/조선과 노무현/열우당 사이의 타협의 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한나라/조선이 이 문제에 목숨걸고 노무현을 탄핵시키려고 노력할 만한 동기가 현재는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불과 석달 전에 어설픈 탄핵해서 호되게 곤욕을 치렀는데, 또다시 탄핵정국으로 밀고나가지는 않을 것이고, 다만 이 문제를 활용해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내겠지요. 다시 말해 사태의 진상은 이리저리 은폐되고 최대한 외교부장관과 국정원장이 책임지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되겠지요.

저는 이 문제의 진상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문제를 파병철회라는 과제와 결합해서 제기하는 것이지요. 저들은 이 문제를 파병철회 문제와 분리시켜 철저하게 당리당략적 관점에서 해결하려고 할 것이고, 그 경우 파병강행은 물론이거니와 이 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것도 불가능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가 탄핵까지도 갈 수 있는 사안이니까 당장 탄핵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오자는 뜻은 아닙니다. 탄핵이라는 문제는 일차적으로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노무현과 미국이 김선일 씨 납치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서도 파병을 막기 위해 이를 은폐했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까, 먼저 탄핵이라는 구호를 제시하기는 어렵겠지요. 현재로서는 진상규명, 파병철회, 노무현 퇴진이라는 구호가 우리가 집중해서 요구해야 할 구호인 것 같습니다. 더욱이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기어이 파병을 강행해서 (더욱 더 생각하기 싫은 일이지만)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테러 등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다른 나라의 침략 전쟁에 무모하게 동참해서 여러 국민들을 살상하고 피해를 끼친 것은 또다른 탄핵의 사유가 될 수 있겠지요(법리적으로는 별로 자신이 없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정리해서 말하면 제 이야기는 탄핵을 해서 파병을 막자는 이야기가 아니라(파병철회 요구에도 콧방귀를 뀌는데 탄핵하자고 그러면 저들이 알아듣겠습니까?^^), (1) AP 통신 사태는 대통령 탄핵으로 갈 수도 있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고, 현재 이 사안이 수구반동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 (2) 이 과정에서 진상조사라는 명목 아래 파병철회의 문제가 배제되고, 지루하고 시시콜콜한 문제제기로 쟁점을 흐리는 조사과정이 진행되면서 당리당략적 타협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 (3) 이를 통해 노무현 정권은 대내외적인 수구반동 세력과 객관적 동맹을 맺는 데 그치지 않고 철저하게 포섭되고 통제당할 것이라는 점 (4) 따라서 저들의 논리에 말려들지 말고 파병철회의 구호를 분명하게 지키고,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의 문제를 철저하게 요구할 것, 곧 노무현 자신과 미국까지 포함하는 모든 관련 당사자에 대한 조사를 요구할 것. 그리고 파병을 강행하고 사태의 진상을 은폐하고 호도하려 하는 노무현 정권 퇴진의 요구를 제기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간단한 이야기를 공연히 모호하고 복잡하게 한 게 아닌가 부끄러워지는데-_-;;;, 제가 무언가 잘못 이야기한 점이 있다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릴케 현상 2004-06-2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상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저는 솔직히 요즘 벌어지는 일들에 일관된 입장을 갖지도 못하고 불안해하는 서민의 입장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님의 요지를 이해하겠습니다. 가끔 어리석은 질문들을 하는 편이니 아량을 베풀어주세요^^

balmas 2004-06-2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말씀을요. 여름아이 님이 질문해주신 덕분에 로쟈님이 왜 그런 질문들을 하셨는지도 좀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모호하게 쓴 잘못이 크지요.
 

 


열린 우리당이여, 최면에서 깨어나라

[긴급제언] 솔로몬의 지혜는 추가파병 '재검토'에 있다

정욱식 기자

 

평화개혁 세력을 자임하며 지난 4·15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이 중대한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반전평화'라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와 여당 및 한미관계라는 현실적 고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16대 국회 때 파병 반대를 비롯한 '반전평화'를 주창했던 의원들과 386 및 전대협 출신 초선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추가파병 재검토 결의안'에 서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비난 여론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들이 파병 반대 입장을 철회했거나 결의안 서명을 주저하고 있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그래도 '생각 있는' 의원들이 제시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추가파병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수 있거나, 최소한 파병을 통해 상황 악화는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뒤집어서 추가파병을 철회하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는 물론이고 열린우리당 의원 대다수가 내세우고 있는 핵심적인 '파병 현실론'이다.

둘째, 주한미군 감축 등 한미동맹 재조정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추가파병을 철회하면 한국의 협상력이 크게 저하될 뿐만 아니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미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현실에서 추가파병의 철회는 한국의 경제적 불안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추가파병 철회→한미관계 불안→투자자들의 불안 심리 고조→경제 불안'이라는 연결고리를 갖는 추론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우려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치, 경제, 안보에 있어서 결코 미국을 무시할 수 없는 우리의 처지에서 미국에게 약속한 추가파병을 철회하면, 아무래도 한미관계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관적 현실주의'에 허덕이는 자신들을 보라

그러나 파병과 관련해 상당수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모습을 보면, 비관적 현실주의에 빠져 정작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미동맹에 눈이 멀어 국가와 국민을 총체적인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들은 그토록 현실을 강조하면서도 한미관계를 지극히 감상적인 수준에서 접근하고 있다. "한국이 파병을 철회하면 부시가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혹은 어려울 때 부시를 도와주면 우리를 잘 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파병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국익을 강조하면서도, 현실주의에 기반을 둔 국익을 '감상주의' 차원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먼저 '파병 현실론'의 최대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북핵 문제는 파병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한국의 추가파병이 국제사회에서 궁지에 몰리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 체면을 살려줌으로써 '재선 지원군'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부시의 재선이 한반도 평화에 얼마나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인지는 열린우리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합리적이고 단호한 해법을 기초로 미국을 설득하고 압박하는 것에 있지, '파병'이라는 편법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작년 9월 윤영관 당시 외무장관이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한국의 파병과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연계시키는 발언을 했다가 면박을 당한 일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최근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미묘한 변화 조짐이 보이는 이유 역시, 한국의 추가파병 결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서 발목이 잡히고 북한과의 협상을 촉구하는 미국 안팎의 압력이 높아진 것에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특히 믿었던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고는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권유하고, 대체로 '중립적 위치'에 있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최근 미국에게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면서 성실한 협상을 촉구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추가파병'이라는 꼼수에 의존해 미국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분명 되새겨야 할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경제문제를 따져보자. 추가파병을 철회하면 한미관계가 불안해지고 이에 따라 덩달아 외국 투자자도 동요하고 신용등급이 떨어질 것처럼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한미관계와 한국 경제에 정통한 한 미국 전문가는 지난 5월 초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준 바 있다. 그는 국무부 등 미국 정부에서 20년 넘게 경제문제를 다뤄온 베테랑이며 한국이 파병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파병 철회와 경제 문제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한국인들의 심리적 영향이다.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면 경제도 나빠질 수 있다. 그러나 외국 투자자들과 신용평가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파병 여부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이다."

또 한 가지. 미국이 갑작스럽게 주한미군 일부 병력을 이라크로 차출하고 주한미군 병력수 3분의 1을 감축한다고 했을 때,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미국의 대표적인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A3)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조정하지 않았는가?

2004/06/26 오후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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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6-2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극히 현실적인 제안입니다. 그런데 열린 우리당이 과연 이 정도 제안마저도 받아들이고 수행할 능력이 있을까요?
냉소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노무현과 열린 우리당을 포기할 수 없다면, 열린 우리당에 이런 제안을 하십시오. 왜 이 정도도 받아들이지 못하느냐고 다그치십시오. 소위 재야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그들의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고 촉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