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 (2003, 9, 23)
이른바 '국익'론이 파병 주장의 논거가 되는 듯하다. 그 허구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번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전투병 파병 요청은 전후 복구 참여가 아닌 미군 전투병 교체의 시급한 필요성 때문이다. 미국 부시행정부는 유엔의 결의를 유도함으로써 외국의 금전적 지원과 병력 지원을 유리하게 할 조건을 마련하려 하고 있으나, 프랑스가 조속한 통치권 이양을 요구하고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시의 한국 등 몇 나라에 대한 파병요청은 미국의 지휘권 하에서 현재 미국의 점령군으로서의 역할을 분담하자는 것으로서 이것은 전후 복구사업과 이라크의 민주적 재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프랑스가 계속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는 이유는 미국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이라크 과도정부 구성, 지휘권, 그리고 전후복구에서 다른 강대국과 전혀 권한을 분담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다시 유엔이나 주변 국에게 손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전투병력 교체가 원할하지 않을 경우 자신이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고, 그것은 재선에 적신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부시의 요청은 미군의 점령군 역할을 분담하여 미군의 교체를 신속히 하고, 국내의 정치적 곤경을 탈피하자는 것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파병요청은 현재 미국 내에서 부시에 대한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점에 대한 탈출구로서 모색된 것이다. 현재 부시에 대한 지지도는 약 50% 정도인데, 이것은 9.11 직전과 거의 같은 수치이다. 내년 2,3월까지 현재 주둔하는 미군의 순조로운 병력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부시는 더욱 심각한 정치적 곤경에 처할 것이다. 현재 미국 내에서 이라크 파병 군인 가족들은 의회와 행정부에 빗발치는 항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이라크 사정으로 볼 때 설사 후세인이 체포된다고 하더라도 이라크에서의 미군에 대한 공격은 계속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한국이 파병해서 미군의 대신 역할을 해 준다면 한국은 미국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미군 대신 총알받이 역할을 함으로써 미국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곤경에 빠진 부시를 구제해 주는 결과가 된다. 전세계 어느 나라도 선뜻 부시의 이라크 전쟁과 현재의 점령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데, 미국에게 만만한 한국이 세계의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파병을 한다면 그것은 세계를 버리고 미국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부시를 지지한다는 말은 2000년 집권 이후 한반도의 평화적 해결을 더욱 꼬이게 만든 장본인인 부시가 더욱 자신만한하게 남북화해를 이간시키고 북한을 공격하고 고립시킬 수단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이 파평했다고 해서 미국이 한반도 정세를 푸는 데 있어서 한국을 더 봐줄리는 없다. 오히려 최근들어 부시가 궁지에 몰리게 됨으로써 북한에 대해서도 더욱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파병은 한반도 문제를 푸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보다는 부시의 재선을 도와주고, 결국 한국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 봐서 한국이 이라크 유전개발이나 전후 복구 작업 등 각종 사업에서 별로 실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라크 유전은 이미 미국 회사들과 미국 정부 간에 계약이 끝나서 작업을 진행중이고, 전기 전화, 도로 등 각종 인프라 사업도 미국 정부와 기업사이에서 상당부분 계약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작전 지휘권이나 자신이 사실상 임명한 이라크 임시 대표부 교체를 완강히 거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권한을 놓치 않겠다는 이야기이다. 현재 러시아와 독일이 이라크 전후 복구에 약간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프랑스도 상황에 따라 전투병은 파견하지 않더라도 경찰은 훈련시키겠다고 말하고 있어서 미국이 이들 프랑스, 독일 등과 이면에서 약간의 타협을 해서 이들의 참여 몫을 허용할 수는 있으나, 한국이 어떤 발언권을 갖고서 전후 복구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라크 정세가 대단히 불안정하기 때문에 각종 시설들을 이제 외국 기업들에게 넘기겠다고 말하고는 있으나 그것이 한국에게까지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설사 파병을 통해서 이러한 이권을 노린다고 하더라도, 부도적한 전쟁의 전리품을 나누어갖는 오명을 뒤집어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르크 파병은 아랍권에서 한국의 위상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이란의 유전을 잃어버린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사우디 등 미국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국가가 버티고는 있으나 이들 아랍 국가의 내심, 그리고 국민들의 여론은 미국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제국으로서 미국의 도덕적 위상은 흔들리고 있으나 아랍권은 이제 깨어나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아랍국가가 민주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 한국은 미국이라는 썩은 동아줄에 목을 메는 곡예를 하는 셈이 된다. 아랍권 사람들에게 한국이 결국 미국의 수족에 불과한 점령군이자, 마름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인상을 줄 경우 장기적으로 석유 수급 문제를 비롯한 경제적 관계에서도 불이익을 당할 위험성이 있다. 인도, 파키스탄, 터키 등이 모든 이러한 문제와 자국의 여론을 의식해서 파병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 한국이 진정한 성숙한 국가라면 어려움에 처한 이라크 국민들을 도와주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라크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것은 미국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일 것으로 예상되던 수니파까지도 미국의 점령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데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테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라크의 반한감정이라는 뉴욕타임즈의 보도에서 확인한 것처럼 이라크인들은 미국을 대신하는 어떤 외세가 오더라도 그들을 하나씩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에는 과도 정부 대표자까지 공격하였는데, 그것은 미국과 그 대리자를 동일하게 보겠다는 태도의 표현이다. 파병요청은 미국군인 대신 한국군인이 점령자의 하수인이 되어 총알받이가 되어달라는 이아기다.
만약 노무현 정부가 국내에서의 부정적 여론을 부릅쓰고 어설픈 실리론에 기대어 파병할 경우, 이 정부의 개혁적 드라이브는 심각한 좌초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한국인 전투병 중 이라크 인들의 공격을 받아 사망자나 부상자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이 정부에대한 총체적 불신으로 연결될 것이다.
한국인들 80퍼센트가 이 전쟁이 미국의 자국의 이익을 위한 부도적한 전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을 평화유지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파병을 한다면 한국이 사실상 미국과의 일방적인 종속관계 속에서 비굴하고 불가피하게 파병하게 되었다는 것을 쓰라라게 쓰라리게 인정하는 것이 되고, 그것은 한국인들이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도덕적으로 옭지 않은 일을 지지해야 하는 정신적 공황상태로 이들을 몰아갈 것이다. 아무리 큰 이익이 오더라도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일을 국민에게 설득하는 정부나 국가는 장기적으로 지탱하기 어렵다.
한미동맹을 위해 김선일을 버렸다 (2004, 6, 25)
슬프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어이없고,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답답하다. 그 착한 젊은이가 월 200만원 벌기 위해 사지에 가서 테러범에게 참혹하게 살해된 일이 너무 슬프다. 미 점령군의 하수인이 되어 이라크에 파병을 하는 처지에 ‘평화 재건’이라는 호소로 헛물을 켜서 이라크 테러범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 정부의 무지, 무능함, 외교의 부재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김선일씨의 피살은 철저히 부시의 부도덕한 전쟁에 동조하여 3000명이라는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려는 한국에 대한 정치적 경고임에도 불구하고 파병 강행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극우파의 입장과 완벽하게 보조를 맞추어 이 사건을 이라크 사람 혹은 테러범에 대한 분노로 몰아가는 한국의 보수 세력의 현실인식에는 말문이 막힌다. 한국과 이라크는 아무런 원수질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쟁 장난의 희생양이 되어 자국 민간인의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이 약소국 한국의 처지를 생각하면 답답하다.
가눌 수 없는 슬픔을 어찌할 수 없지만,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1945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인이 정치적으로 희생된 모든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정부를 보지 말고 미국을 보아야 하듯이, 이 모든 과정에는 ‘한미동맹’ 문제가 걸려있다. 5월30일 이후 미국과 한국정부가 그의 억류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문제는 아직 진실이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좀 더 두고 보자. 우리는 19일 이후 미국 정부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 부시의 발언을 보면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이 파병 계획을 변경할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두고 있었고, 또 미국은 공개적으로도 한국에 신호를 보냈다. 한국정부는 김선일씨의 목숨이 백척간두에 서 있던 바로 그 위기에 순간에 ‘파병방침 불변’이라고 미국의 요구에 충실하게 화답을 했다. 테러범들은 이 메시지를 듣고 김선일씨를 살해했다. 김선일씨의 살해 소식이 알려진 이후에도 부시는 재차 “한국정부가 파병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못을 박았다.
즉 한국정부는 부시의 부도덕한 전쟁을 지지하기 위해 김선일씨를 버렸다. 이것이 진실의 처음과 끝이다. 정말 테러범들이 ‘한국군은 평화 재건을 목적으로 이라크에 간다’는 호소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정부는 바보다. 현재 상황, 이라크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과 상처, 미국에 대한 그들의 굴욕감과 분노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평화와 재건이 얼마나 공허한 구호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런 줄 알고서도 ‘헛소리’를 계속했다면 이 정부는 한국인의 정부가 아니라 부시의 정부임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 된다. 물론 그 짧은 시간에 한국 정부가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파병론을 철회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부의 행동은 사실상 그를 죽여도 좋다는 사인에 불과했다.
테러범들의 잔인한 처형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미국, 영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가 지금 이라크에서 빠져나오고 있으며 생색내기 파병만 하고 있는데, 이 시점에 한국이 오직 부시를 도와주기 위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추가로 보내려한다는 사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한국인의 목숨을 포기하더라도 미국의 으름장에 화답해야 했었다는 사실이 문제의 근원이다. 이라크인은 한국인의 적이 아니다. 한국에서 이 어리석은 파병강행론이 강해질수록, 그리고 파병방침이 원점에서 재검토되지 않는 한, 죄 없는 한국인의 희생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동맹’을 지킨다는 명분 하에 지난 50년 동안 그 만큼 많은 한국인이 죽고 다쳤으면 됐지 얼마나 더 죽어야 하나 “한국은 이라크에서 나와야 한다”는 김선일씨의 마지막 절규가 가슴을 친다.
김동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