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병의 핵심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입니다"
신기남, 홈페이지 통해 파병 불가피론 주장... 뜨거운 논쟁 촉발
이한기 기자
고 김선일씨 피살사건 이후 이라크 파병 찬반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이 "이라크 파병 정책이 어떤 경우에도 변해서는 안될 지고지순한 정책은 아니며 파병을 철회할 필요성이 있다면 철회할 수 있다"며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의 협박에 굴종하여 파병을 철회할 수는 결단코 없다"고 이라크 파병 원칙을 명확히 했다.
신 의장은 26일 오후 열린우리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지금 파병을 반대하는 분들의 목소리가 높고 당원 동지들 중 일부는 파병 원칙을 재확인한 당과 정부의 태도에 반대하며 탈당하시겠다는 분도 있다"며 "그러나 파병을 반대하는 분들도 나름의 정당성과 이유가 있지만, 파병을 찬성하는 것에도 나름의 정당성과 이유가 있는 것을 생각해달라"며 이같이 밝혔다.
신 의장이 이라크 파병 불가피론을 주장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테러리즘에 결코 타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미동맹을 굳건히 함으로써 국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김선일씨 피살사건 이후 더욱 거세진 파병반대 주장에 대해, 아이를 납치해 살해한 유괴범의 협박 요구에 대한 대응을 예로 들며 "만약 유괴범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그 가정은 또 다른 유괴범의 표적이 될 것이고, 국가를 대상으로 한 테러 협박의 경우에도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고 반박 논리를 폈다.
이어 그는 "만약 이번에 테러리스트들의 야만적인 협박에 굴복하여 파병을 철회한다면, 파병 문제로 인한 희생자는 더이상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은 협박에 굴종하는 나약한 정부로 인정됨으로써 테러집단의 표적이 돼 더 큰 테러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국익론'과 관련해 신 의장은 "이라크 전쟁뿐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모든 전쟁은 명분이 없고 오로지 전쟁하는 이유만 있을 뿐"이라고 전제한 뒤 "현실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국가가 참전, 찬성, 중립, 반대, 아니면 응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외교관계에서의 국익"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남의 전쟁에 파병해야 하느냐'는 반대론자의 주장에 대해 "미국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동맹국"이라며 "수십 수백 가지의 파병 원칙 이유 가운데에서도 핵심은 미국과의 관계이며, 이를 통해 지켜가야 할 국익"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을 활용해야 하고, 미국에 줄 건 주고받을 건 받는 관계는 필수"라고 덧붙였다.
신 의장은 "시민단체뿐만이 아니라 정치인들 가운데에도 (파병을) 반대할 수 있고 자신의 사상대로 실천할 권리와 의무도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국가정책을 책임지는 정부와 여당이 테러에 굴복하여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정부 여당 책임론을 폈다.
신 의장의 이같은 파병 불가피론에 대한 주장과 관련해 열린우리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당원들을 중심으로 한 네티즌들 사이에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며 뜨거운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그는 6월 중순 당·정·청 간의 불협화음이 불거졌을 때도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렸고, 가급적 일주일에 한 번은 직접 정국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홈페이지에 밝히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다음은 신기남 의장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 전문이다.
이번주에도 글을 남겨야 할 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정치인에게는 때때로 '무언(無言)의 실천'의 시기가 필요한데, 지금이 그 때가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과의 약속이 더 소중하다는 판단으로 글을 남깁니다. 무거운 글이 될 수밖에 없겠습니다.
고(故) 김선일씨를 생각하면 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슬프고도 비통할 뿐입니다.
그날 밤 막 잠자리에 들려 할 때, 이라크에서 동양인 시신이 발견되었고 정황상 김선일씨일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사실이 아니길 하늘에 간청했건만, 결국 확인 전화를 받고서 충격과 슬픔을 주체하기 힘들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한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새벽녘… 정신을 바로 세우고는 '당과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전 세계가 지켜볼텐데…' 하는 고통스러운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한국군은 이라크에서 나가달라"고 절규하던 고 김선일씨의 살아생전 모습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침 일찍 소집한 고위 당·정·청 회의에 나가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테러를 강력히 규탄하고, 테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음을 천명하며, 파병 원칙은 변함이 없어야 함을 힘주어 강조하기로 결심했고, 결심대로 실천했습니다.
파병반대 여론이 이미 70%에 육박해 있었고, 시민단체에서 파병반대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칠 것이 예상되었으며, 이 흐름의 맨 앞에서 열린우리당 당원동지들의 대다수가 파병반대를 외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의 선택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찬찬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감정은 조금만 뒤로하고, 여러분과의 이성적인 대화를 바랍니다. 이 문제는 '테러리즘에 대해 국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테러리즘에 대해 국가는 확고한 원칙을 가져야 합니다. 테러에 대해서 국가는 의연하고 흔들림 없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테러를 통해서는 어떤 목적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테러는 공공의 적입니다. 테러를 통해 국가정책이 변화된다면 테러는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부추기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만약 이번에 테러리스트들의 야만적인 협박에 굴복하여 파병을 철회한다면, 파병문제로 인한 희생자는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협박에 굴종하는 나약한 정부로 인정됨으로써 테러집단의 표적이 되고, 따라서 더 큰 테러의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유괴범이 협상도 벌이지 않은 채 자신의 요구가 관철될 기미가 없자 아이를 살해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살해하면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당신의 두 번째 아이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합니다.
이 경우 유괴범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나요? 만약 요구를 들어준다면 그 가정은 또 다른 유괴범들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자녀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며, 부모가 유괴범을 체포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됩니다.
국가를 대상으로 한 테러 협박의 경우에도 같은 이치가 적용됩니다. 테러리스트들의 요구를 대한민국의 정부가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소위 한나라당의 논리도 아니고, 수구 기득권 세력의 논리도 아닙니다. 이는 주권국가로서 변함없이 견지해야 할 지극히 당연한 원칙입니다.
물론 이라크 파병정책이 어떤 경우에도 변해서는 안될 지고지순한 정책은 아닙니다. 파병을 철회할 필요성이 있다면 철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의 협박에 굴종하여 파병을 철회할 수는 결단코 없습니다.
지금 파병을 반대하시는 분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당원동지들 중 일부는 파병원칙을 재확인한 당과 정부의 태도에 반대하며 탈당하시겠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한 가지만 생각해 주십시오. 파병을 반대하시는 분들도 나름의 정당성과 이유가 있지만, 파병을 찬성하는 것에도 나름의 정당성과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파병을 반대하시는 분들의 핵심적 이유는 두 가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는 이라크 전쟁이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나라 전쟁'에 국민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라크 전쟁만 명분이 없는 것이 아니고, 모든 전쟁은 명분이 없습니다. 세상에 명분 있는 전쟁이 어디 있습니까? 과거 근대국가 시절까지는 국민의 생명보다 왕과 국가의 존엄이 중요했기에 국민 생명의 희생을 감내할 명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현대사회에서 모든 전쟁은 명분이 없습니다. 있다면 오직 전쟁하는 이유가 있을 뿐이겠지요.
그러나 전쟁은 벌어집니다. 그리고 국가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태도를 정해야 합니다. 참전, 찬성, 중립, 반대, 아니면 응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외교관계에서의 국익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지난한 논의 끝에 파병을 결정한 것입니다. 그것도 실제 전쟁은 끝난 후, 재건과 정권이양의 시기에 평화재건을 목적으로 비전투병 위주의 파병을 결정한 것입니다. 물론 저항세력의 활동이 활발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이것이 국가간의 전쟁은 아니라는 점에서 전후에 평화재건과 복구를 위한 파병이라는 점은 자명합니다.
그리고 남의 나라 전쟁이라는 것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와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가 전세계 몇 개국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오직 한 나라 밖에 없습니다.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동맹국입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지난한 논의 끝에 결정한 파병정책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 이유를 대라면, 수십 수백 가지를 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하나입니다. 바로 미국과의 관계이며, 이를 통해 지켜가야 할 국익입니다. 대한민국은 더 발전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미국을 활용해야 합니다. 미국에 줄 건 주고받을 건 받고, 도와주고 도움 받는 관계는 필수적입니다.
파병을 철회하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의 충정도 이해합니다. 그 분들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시위나 집회를 열 권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시민단체가 그렇게 주장하고 행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 분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정치인들 중에서도 반대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파병을 반대한다면 자신의 사상대로 실천할 권리는 물론 의무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그래서는 안됩니다. 국가정책을 책임지는 집단이 테러에 굴복하여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최명길은 청나라와의 화의론(和議論)을 주장하며 항서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명나라와의 의리를 중시한 김상헌은 최명길의 항서를 찢고 통곡하였습니다. 최명길은 "항서를 찢는 김상헌의 행동도 의미가 있지만, 찢어진 항서를 붙이는 최명길도 필요하다"며 독단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당시 새로운 대국으로 등장한 청나라와 균형 잡힌 외교를 강조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가 바로 최명길의 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파병반대를 주장하는 분들의 행동도 의미가 있지만,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파병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정부와 여당의 확고한 자세도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정부의 미숙한 대처는 반드시 바로잡을 것입니다. 20일 넘도록 피랍사실을 몰랐다는 외교부의 사건 초기 무사안일한 대응, AP통신의 전화통화 사실에서도 확인된 공직기강 해이 등 납득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당원동지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다음주 또 찾아 뵙겠습니다.
2004년 6월 26일
당 의장 신기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