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 같으면 대통령 탄핵사유에 해당할 만한 문제다"라고 했던 것은, 가령 닉슨 같은 경우를 염두에 두고 했던 이야기입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사임했던 것은 도청 여부가 아니라 거짓말을 했기 때문 아닙니까?

부시가 이라크에 있지도 않은 대량 생화학 무기 공장을 트집잡아, 후세인과 빈 라덴의 연계를 트집잡아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는데, 실제로 이 일들은 다 근거없는 거짓말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의회나 언론이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은, 지난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가 그만큼 맹목적인 애국주의에 빠져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겠지요.

더욱이 이는 미국의 소위 이중적인 성격, 곧 대외정책에서 드러나는 야만적인 제국주의적 성격과 국내정치에서 유지되는 철저한 법치 민주주의적 성격과도 관련되겠지요. 다시 말해 만약 부시의 거짓말이 이라크라는 먼 중동의 “독재국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국 국내 문제를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이것이 언론이나 의회에서 공개적인 쟁점이 되었다면, 이는 전혀 상이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거란 뜻입니다.

지금 열린 우리당에서 현재 외교부장관과 국정원장의 책임 문제를 제기하고 나온 것은, AP 통신 문제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옮겨가는 것을 차단하려고 한다는 것, 그만큼 열린 우리당 내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닙니까?

<" So you act with them (strategecally)? To achieve '파병철회'? To me, it's absurd!..>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저는 솔직히 제가 왜 이런 질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글을 잘 읽어본다면, 제 이야기가 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게 분명할 텐데, 어떻게 제 이야기가 "파병철회를 위해 조선일보와 전략적 동맹을 맺겠다"는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제 이야기는 이 사안을 계기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반동세력과 전략적 동맹을 맺음으로써 노무현 정권을 타격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AP 통신 문제가 노무현 정권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는 것은 제 생각이 아니라, 모든 언론이 동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 객관적 사실이 현재의 정국에 미칠 영향, 다시 말해 각각의 세력들이 이 사실,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는지 주의깊게 관측, 예측하고 거기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반동세력은 AP 통신 문제로 노무현 정권의 목줄을 움겨쥐고,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 이 문제를 계속 활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은 이미 파병강행을 통해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반동세력과 객관적 동맹을 맺고 있는 상황에서, AP 통신 문제까지 불거진 이상,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수구반동세력의 주도권에 좌우되어 나갈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권의 생명이 사실상 끝났다고 말한 것입니다. 정권 초창기부터 도덕성을 그렇게 강조해왔던 정권이 김선일 씨 피랍사실을 사전에 알고서도 그것을 묵과했다면, 이 문제는 파병강행론 때문에 이미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노사모 내부에서 또다른 분열의 소지를 제공해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많은 국민들은 노무현 정권이 무능할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기까지 한 정권이라고 비난하지 않겠습니까? 이를 수구반동세력들은 최대한 활용할 것이구요.

자 그러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조선일보]와 수구반동세력이  AP 통신 문제를 계기로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과 시스템 붕괴를 공격하고 나서니, 거기에 맞서 우리 노무현 대통령은 그럴 분이 아니다, 모든 것은 아랫놈들의 잘못이다, 수구반동언론은 중상모략을 당장 중지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는 결국 파병철회라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회피하고 문제를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과 무능성으로 집중시키려는 수구반동세력의 포석에 그대로 말려드는 게 아닙니까?

로쟈님은 또 ["또는 오히려 올바른 싸움의 쟁점과 방향을 제기하고 사람들을 이쪽으로 끌어모으려고 노력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 Is it political judgement, if not, ethical judgement?.. And, as you know, Josun has no right to say "이게 정부인가?". Why we shoud refer to Josun's view to protest Noh? Is it political judgement (accorfing to which Josun has 'power')? If so, you opinion is perflexing to me!... ]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오히려 로쟈님의 논평이 당혹스럽습니다. 다른 점에 관해서는 위의 답변으로 어느 정도 해명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하고, 아직 남은 문제는 도덕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의 구분입니다.

만약 이런 것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다면[저는 솔직히 왜 그래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는 오히려 올바른 싸움의 쟁점과 방향을 제기하고 사람들을 이쪽으로 끌어모으려고 노력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라는 제 이야기는 정치적이면서 도덕적인, 또는 오히려 윤리적인 판단입니다. 파병철회라는 문제는 국내 정치만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관계라는 점에서도 핵심적인 쟁점이고, 이 문제를 자신의 진퇴와 관련된 쟁점으로 악화시킨 것은 노무현 씨 자신의 잘못이지요[객관적인 한계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무현 씨의 정치적 행동은 늘 그렇습니다. 타협의 여지, 합리적인 정정과 변화의 여지를 주지 않고, 늘 내편이냐 적이냐 하는 첨예한 대립선을 긋습니다. 이전의 문제들은 수구와 민주주의/개혁이라는 경계선 위에서 작용했던 만큼, 노무현 씨의 이런 극단주의적인 정치기술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파병문제를 계기로 그가 얼마나 위험스러운 인물인가, 얼마나 극단적인 성격의 정치가인지가 분명히 드러났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정당성이 없는 전쟁에 참여해서 죄없는 사람들을 살해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제 2, 제 3의 김선일 씨를 낳을 수밖에 없는 파병에 반대하는, 무책임한 테러리즘에 맞서 평화와 정의의 연대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로쟈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현재의 파병문제와 관련하여 하고 싶은 말씀이 있거나 제 이야기에 논평하고 싶으신 게 있으시다면, 이렇게 단편적인 코멘트를 달지 마시고 따로 페이퍼를 통해 말씀해달라는 점입니다. 단편적인 코멘트를 들으니 로쟈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어떤 경우는 좀 황당한 중상이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합니다. 오해가 있다면 좀더 정확히 풀고, 견해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좀더 정확히 드러낼 수 있도록 페이퍼를 따로 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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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 2004-06-28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은 모르겠지만...) 로쟈님은 balmas님이 밑에 조선일보 사설을 인용한 것을 보고 balmas님이 그 사설에 동의하고, 노무현 정부의 비도덕성의 근거로 인용했다고 해석하신 건가요? 제가 보기엔 balmas님은 이미 노무현은 자기 정치적 지지를 끌어내는 구호였던 '도덕성'이라는 것까지 수구세력에 저당잡혀버렸다는 증거로 조선일보사설을 제시한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동시에 파병강행 입장을 밝힌 노무현을 추켜세우기도 했지요. 수구세력은 이제 굳이 노무현을 자리에서 끌어내리지 않아도 자기 뜻을 펼 수 있는 입장이 되어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할 것은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 상실을 규탄하면서도 파병강행을 외치고 있는 수구세력에 박자를 맞춰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노무현을 끌어내리고 파병을 막는 것이다!ㅡ라는 것이 balmas님의 글의 의도로 보이는데요...

balmas 2004-06-28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 공식 대변인으로 삼아도 되겠구만.^^

릴케 현상 2004-06-28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의문이 드는군요. 미국과 다른 선진국 같으면 닉슨의 경우처럼 탄핵을 단행한다고 얘기하시는데, 과연?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처럼 이런 침략전쟁을 수없이 자행하면서도 노무현을 탄핵하고 민주적으로 정권이양을 해 내면 미국 수준의 선진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건가요?
기본적으로 미국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고 님은 생각하시는지 의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탄핵을 하는 것만은 높이 사서 우리도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노무현 탄핵 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이런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쩐지 찜찜합니다.
언젠가 촘스키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민주주의의 발전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미국 내의 권력다툼의 일환이었다고요...
탄핵해서 파병 막는다는 것이 발람스님의 생각인가요?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 혹은 가능하지 않아서 하고야 말겠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balmas 2004-06-28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제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예로 든 건 단순한 사례를 가리키기 위해서 든 것이고. 미국 같은 선진국이라고 말한 건, 상식적인 수준에서 미국 같은 나라들은 법치민주주의가 철저하게 확립된 나라가 아니냐라는 점을 지칭하기 위해서 말한 거지요. 저는 분명히 미국의 대외 정책과 대내 정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미국의 정치 일반으로 확장시켜서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말한 것이고, 그것을 "법치민주주의"라고 표현한 겁니다. 촘스키의 말처럼 워터게이트 사건 때 정파들 사이의 권력 다툼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제 이야기는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냐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이 사건이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의회에서 논의되고 결국 대통령이 책임지고 사임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법치민주주의에 기반하고 있지 않느냐는 점을, 지나치면서 지적하고 싶었던 거지요. 제가 불필요한 예를 들어서 오히려 혼란만 초래했다면, 이 예를 배제하면 되겠지요. 꼭 이 예에 근거할 때에만 우리가 현재의 사태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여름아이 님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고 님은 생각하시는지 의문입니다.”라고 물으셨는데, 그렇게 정색을 하고 물으시니 좀 당혹스럽니다.^^ 제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경솔했다면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탄핵해서 파병막는다"는 게 제 생각이냐고 물으셨는데, 우선 AP 통신 문제는 사안 자체가 대통령 탄핵까지도 갈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문제는 이걸 제대로 밝힐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는 점이지요. 제 생각에는 이 문제는 한나라/조선과 노무현/열우당 사이의 타협의 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한나라/조선이 이 문제에 목숨걸고 노무현을 탄핵시키려고 노력할 만한 동기가 현재는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불과 석달 전에 어설픈 탄핵해서 호되게 곤욕을 치렀는데, 또다시 탄핵정국으로 밀고나가지는 않을 것이고, 다만 이 문제를 활용해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내겠지요. 다시 말해 사태의 진상은 이리저리 은폐되고 최대한 외교부장관과 국정원장이 책임지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되겠지요.

저는 이 문제의 진상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문제를 파병철회라는 과제와 결합해서 제기하는 것이지요. 저들은 이 문제를 파병철회 문제와 분리시켜 철저하게 당리당략적 관점에서 해결하려고 할 것이고, 그 경우 파병강행은 물론이거니와 이 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것도 불가능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가 탄핵까지도 갈 수 있는 사안이니까 당장 탄핵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오자는 뜻은 아닙니다. 탄핵이라는 문제는 일차적으로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노무현과 미국이 김선일 씨 납치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서도 파병을 막기 위해 이를 은폐했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까, 먼저 탄핵이라는 구호를 제시하기는 어렵겠지요. 현재로서는 진상규명, 파병철회, 노무현 퇴진이라는 구호가 우리가 집중해서 요구해야 할 구호인 것 같습니다. 더욱이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기어이 파병을 강행해서 (더욱 더 생각하기 싫은 일이지만)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테러 등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다른 나라의 침략 전쟁에 무모하게 동참해서 여러 국민들을 살상하고 피해를 끼친 것은 또다른 탄핵의 사유가 될 수 있겠지요(법리적으로는 별로 자신이 없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정리해서 말하면 제 이야기는 탄핵을 해서 파병을 막자는 이야기가 아니라(파병철회 요구에도 콧방귀를 뀌는데 탄핵하자고 그러면 저들이 알아듣겠습니까?^^), (1) AP 통신 사태는 대통령 탄핵으로 갈 수도 있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고, 현재 이 사안이 수구반동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 (2) 이 과정에서 진상조사라는 명목 아래 파병철회의 문제가 배제되고, 지루하고 시시콜콜한 문제제기로 쟁점을 흐리는 조사과정이 진행되면서 당리당략적 타협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 (3) 이를 통해 노무현 정권은 대내외적인 수구반동 세력과 객관적 동맹을 맺는 데 그치지 않고 철저하게 포섭되고 통제당할 것이라는 점 (4) 따라서 저들의 논리에 말려들지 말고 파병철회의 구호를 분명하게 지키고,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의 문제를 철저하게 요구할 것, 곧 노무현 자신과 미국까지 포함하는 모든 관련 당사자에 대한 조사를 요구할 것. 그리고 파병을 강행하고 사태의 진상을 은폐하고 호도하려 하는 노무현 정권 퇴진의 요구를 제기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간단한 이야기를 공연히 모호하고 복잡하게 한 게 아닌가 부끄러워지는데-_-;;;, 제가 무언가 잘못 이야기한 점이 있다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릴케 현상 2004-06-2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상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저는 솔직히 요즘 벌어지는 일들에 일관된 입장을 갖지도 못하고 불안해하는 서민의 입장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님의 요지를 이해하겠습니다. 가끔 어리석은 질문들을 하는 편이니 아량을 베풀어주세요^^

balmas 2004-06-2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말씀을요. 여름아이 님이 질문해주신 덕분에 로쟈님이 왜 그런 질문들을 하셨는지도 좀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모호하게 쓴 잘못이 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