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페이퍼 올립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는데, 모두 별 탈 없이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는 10월 30일부터 엑스북스 아카데미에서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가지고 


8주 동안 강의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번역할 때 고생도 좀 했지만,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드문 책들 가운데 한 권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약 8년만에 다시 이 책을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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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소개

이 강의에서는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함께 읽어보려고 합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후기 데리다 정치철학의 요체를 담고 있는 책이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독특한 재해석이 시도되고 있는 책입니다특히 이 책에서 데리다는 처음으로 유령론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이 개념을 바탕으로 시간과 정의의 관계애도와 초혼(招魂), 새로운 인터내셔널과 도래할 민주주의혁명의 아포리아이데올로기와 물신숭배 같은 현대 정치철학의 주요 주제를 독창적으로 해명하고 있습니다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시간의 이음매가 어긋나 있다를 화두 삼아 하이데거와 벤야민마르크스를 독해하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마르크스주의와 민주주의를 새롭게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커리큘럼

‣ 1강.  유령의 시간 – 『햄릿』과 유령

‣ 2강.  시간과 정의 – 하이데거벤야민데리다

‣ 3강.  애도와 초혼 – 마르크스를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 4강.  세계화와 도래할 민주주의

‣ 5강.  새로운 인터내셔널

‣ 6강.  혁명의 아포리아

‣ 7강.  유령론 – 마르크스와 슈트르너의 유령 전쟁

‣ 8강.  이데올로기와 물신숭배

‣ 교재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진태원 옮김그린비, 2014.

수강기간 : 2020. 10. 30 ~ 2020. 12. 18 (총 8회, 금요일 저녁 7:30~9:30)



자세한 수강 안내는 아래 나온 엑스북스 아카데미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xbooks.academy:46794/products/xplex-lecture/mar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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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과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에 대한 기록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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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흥미 위주의 세계사 이야기. 심심풀이로 읽을 만하지만, 돈 주고 사볼 정도의 책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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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격동 : 1 인정과 욕망 / 2 연민 / 3 사랑의 등정 (전3권)
마사 누스바움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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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을 함께 살펴보지 않고서는 내용을 충실히 이해하기 어려운 번역본. 번역본만 읽으면 논지가 대충은 이해되지만, 논변의 섬세한 흐름은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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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를 위하여
루이 알튀세르 지음, 서관모 옮김 / 후마니타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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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금요일치 한겨레신문에 실릴 [마르크스를 위하여] 서평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3번째 번역되는 셈인데,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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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를 위하여>는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였던 루이 알튀세르의 대표작이다. 이 책은 자크 라캉의 <에크리>,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현대 프랑스 사상의 걸작이다. 이번이 3번째 번역인데, 지난 두 차례의 번역본보다 더 정확하고 가독성도 좋아서 알튀세르를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1965년 처음 간행되자마자 <마르크스를 위하여>는 알튀세르가 같은 해에 그의 제자들과 공저로 출간한 <자본을 읽자>와 더불어 프랑스 사상계를 뒤흔들고 곧바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 학계, 그리고 저 멀리 라틴아메리카에도 급속히 번역소개되어 20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는다. 이는 특히 이 책의 세 가지 핵심 논점 덕분이었다.


첫째, 청년 마르크스와 성숙한 마르크스 사이에는 엄밀한 인식론적 절단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제시된다. 당시는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이래 불어닥친 반()스탈린주의의 흐름 속에서 초기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청년 마르크스는 아직 자신의 이론적 핵심을 발견하지 못한 채 헤겔과 포이어바흐 사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주장한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개념인 생산양식, 이데올로기 같은 개념들을 발견하게 되며, <자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르크스는 마르크스 자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하지만 알튀세르는 <자본>의 마르크스 역시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이러한 이론적 미완성과 공백은 현실 정치의 실천적인 오류를 낳는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가 되며, 무엇보다 헤겔 변증법과 구별되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독창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여기에서 저 유명한 과잉결정 개념이 도출된다. 생산양식과 생산관계 사이의 또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경제적 모순은 역사의 동력을 이루는 기본 모순이지만, 이러한 모순은 늘 상부구조에 의해, 이데올로기에 의해 과잉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혁을 위해서는, 레닌이나 마오가 했듯이 경제적 모순과 상부구조의 모순, 이데올로기의 모순이 집적된 약한 고리를 찾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셋째, 하지만 더 나아가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는 사회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며, 심지어 공산주의 사회에도 이데올로기는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이나 기만, 조작된 표상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세계 자체, 상상적 관계 그 자체를 뜻한다. 간단히 말하면 개개인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계급이나 국민, 민족 같은 집단의 정체성 역시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되며, 우리는 그러한 정체성을 살아간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의 핵심 기능은 주체를 주체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지배가 유지되기 위한 조건이면서 또한 역설적이게도 해방 투쟁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이 된다. 우리는 반공주의에 의해, 민족주의에 의해, 신자유주의적 경쟁 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되지만, 또한 주권자로서의 국민으로 호명되며, 갑질에 고통받고 분노하는 을들로서도, 여성 혐오에 맞서는 메갈리안으로서도 호명된다.


1980년 알튀세르가 부인을 목졸라 살해하고 정신병원에 유폐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는 영원히 망각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에티엔 발리바르,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같이 그의 사상의 세례를 받았던 제자들에 의해, 또한 미국 학계의 슬라보예 지젝이나 주디스 버틀러 등에 의해 알튀세르는 21세기 사상의 젖줄임이 입증되었다.


실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예속적 주체화 메커니즘에 맞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주체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알튀세르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사상가는 보기드물다. ‘을의 민주주의를 위해 알튀세르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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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um21 2017-01-1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질문이라 죄송합니다만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를 읽으려는데 2004년 김웅권님 판과 2010 김성도님 판 중 어떤 책을 봐야 할까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메일로도 글을 올렸으니 그리 답변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그럼..

balmas 2017-01-14 17:12   좋아요 1 | URL
두 번역서 모두 번역에 문제가 많아서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를 읽으려면 불어 원서나 영역본 등을 읽는 수밖에 없습니다.

geum21 2017-01-14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귀찮으시겠지만 메일 좀 봐주세요 ^^
 
복지의 배신
송제숙 지음, 추선영 옮김 / 이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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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올리는 김에 하나 더 올립니다.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실린 촌평입니다. 이 글에 대한 논평이나 토론 역시 


[창작과비평]에 수록된 판본을 대상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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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2003년 일리노이주립대 박사학위논문을 수정·보완해서 2009년 듀크대출판부에서 영어로 출판한 저작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책의 주제는 1997IMF외환위기를 통해 한국사회가 겪게 된 변화를 ‘()자유주의적 통치성이라는 관점 아래 서술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복지의 배신이라는 책 제목은 이러한 변화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1997IMF외환위기가 한국사회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 그것은 사상 유례없는 대량 해고와 사회경제적 혼란을 초래한 국가적비극이었다.”(28) 둘째, 그런데 IMF위기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와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199712월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후보였던 김대중이 한나라당 후보인 이회창을 누르고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김대중 대통령이 IMF외환위기를 진보적인 정책을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IMF 및 국제금융세력의 압력과 조언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관점에 의해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김대중정권은 역사상 전례없이 이루어진 대량 해고를 합법화하고, ‘정보사회생산적 복지의 기치 아래 대한민국을 더 유연하고 자본 친화적인 탈개발국가로 이행”(62)하게 하는 데 앞장섰다. 따라서 김대중정권을 통해 한국 최초의 보편적 복지국가”(6) 또는 대한민국에 최초로 성립된 복지국가”(256)가 등장했지만, 그것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인 국가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이다. “민주화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과정이 자본주의 시장의 확장과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을 정당화시킨 과정”(83)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착근시킨 주체에 민주화투쟁의 주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중심에는 과거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사람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자유주의적 사회 통치의 대리인으로 변모했다는 분명한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32) 그리고 저자가 보기에 이러한 지식인들의 딜레마는 단지 한국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자유주의적 사회에 적용”(52)되는 것이다.


저자는 1998~2001년까지 약 29개월 동안 진행한 현장조사에 입각하여 이러한 과정을 분석한다. 그는 특히 노숙인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를 구체적인 소재로 삼아 자신의 기본적인 주장을 입증하려고 한다. 노숙인 문제와 관련하여 저자는 자활 가능한 일시적 노숙자와 장기적 노숙자를 선별하여 전자만을 집중 지원한 것을 문제 삼으며(2), 또한 여성 노숙자의 존재 자체를 집요하게 부인하는 정책 담당자들의 태도에서 드러나는 남성중심적·가부장제적 복지정책의 편견을 지적한다(4). 또한 5장에서는 “‘자기 관리가 가능한주체 및 자기의 기업화가 가능한주체로서의 청년실업자들에 대한 사회적 통치를 분석한다.


이 책이 번역되기 전부터 이 책의 평판을 소문으로 듣고 있었지만, 막상 책을 읽고 상당히 실망감을 느꼈다. 우선 김대중 정권의 개혁 정책이 신자유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이 책의 주장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에서는 오히려 진부한 느낌마저 주는 주장이다.


그보다 더 실망스러운 점은 이 책의 이러한 거시적인 이론적 주장이 설득력있는 자료나 구체적 논거를 통해 충실히 뒷받침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분석은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인 전환을 입증하기에는 너무 단조롭고 단편적이다. 우선 노숙자와 청년 실업자에 대한 대책이 김대중정권의 복지정책을 대표할 수 있는 사례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또한 노숙자를 자활 가능한 노숙자와 그렇지 못한 노숙자로 구별했다는 것, 그리고 여성 노숙자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했다는 것은 김대중정권의 복지정책이 상당히 미흡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는 될 수 있어도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저자의 분석 중에 좀더 설득력이 있고 구체성을 띠고 있는 것은 청년실업에 관한 논의이다. 저자는 서울시 청년실업대책위원회에 고용된 모니터링 팀 소속 젊은이들의 경험에 입각하여 신지식인닷컴기업’, ‘정보사회에 관한 담론이 청년실업 및 그 대책에 관한 정책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내준다.


이 책에서 제일 실망스러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푸꼬(M. Foucault)에 대한 저자의 인식이 꽤 피상적이라는 점이다. 내가 역설적이라고 말한 이유는, 저자 자신이 내가 한국 당시의 사회 통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채택한 주요 프레임의 하나인 푸꼬의 통치성 개념이, 한국사회에서 좀더 유용하게 쓰이길 바란다”(18)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이해하는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푸꼬 작업에 입각했다고 자처하면서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과연 무엇인지 의아했다. 과연 푸꼬에 대한 직접적인 독서경험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저자의 푸꼬에 대한 인식이 매우 허술해보였다.


가령 저자는 푸꼬의 통치 개념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이 책은 푸꼬의 이론에 의거해 ...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국가 행정제도로서의 정부의 개념과 달리, ‘통치라는 용어를 선택함으로써 주체 형성을 통해 인구 전체를 관리하는 자유주의적 정치권력의 작동방식을 ‘government’ 또는 ‘governing’으로 명명한다.”(34) 이 인용문에서 놀라운 점은 통치에 관한 정의가 별로 푸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만약 저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가령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주체 형성을 하지 않고 인구 관리도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저자의 통치에 대한 정의는 너무 막연하고 허술하다. 푸꼬 자신은 통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구를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정치경제학을 주된 지식의 형태로 삼으며, 안전장치를 주된 기술적 도구로 이용하는 지극히 복잡하지만 아주 특수한 형태의 권력을 행사케 해주는 제도절차분석고찰계측전술의 총체”([안전, 영토, 인구],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163)


또한 저자는 이 책에서 푸꼬적인 통치 개념에 입각하여 신자유주의를 분석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계속해서 ‘()자유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하나는 자유주의 민주화 세력이었던 김대중정권이 신자유주의 개혁의 집행자였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이든 신자유주의이든 자본주의 통치 양식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푸꼬적인 관점이라기보다는 맑스주의적인 관점이며, 더욱이 꽤나 고전적인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교조적인 맑스주의적 관점이다. 반면 푸꼬는 고전 자유주의가 자연적 소여로서의 교환에 근거를 둔 반면 신자유주의는 인위적 관계로서의 경쟁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바로 이 때문에 결혼과 범죄, 아이 양육 등에 이르는 인간 활동의 모든 부문을 경제적 관계로 간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에서 모든 개인이 기업가, 자기 자신의 기업가”([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2, 319)로 간주되는 것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저자의 관점은 푸꼬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푸꼬와 상당히 충돌할 수밖에 없는 관점이다.


다음 대목을 보자. “신자유주의 국가가 잉여 인구를 비롯한 다양한 국민의 안전과 복리를 증진하는 권력기구로 작동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 정규직이 줄어들고 노동시장이 더욱 불안정해진 후기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에서는 국가의 잉여 인구 관리 방식이 생명권력적 복리 증진의 형태를 더 확연히 띠게 된다.”(136) 저자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국가는 잉여 인구를 비롯한 다양한 국민의 안전과 복리를 증진하는국가이며, 그것의 잉여 인구 관리 방식은 생명권력적 복지 증진의 형태를 더 확연히 띠게 된다.” 만약 그렇다면 자연히 이런 질문이 나올 것이다. 다양한 국민의 안전과 복리를 증진하고 생명권력적 복지 증진을 도모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국가라면, 그것에 반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엉뚱한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저자가 푸꼬의 생명권력 개념이나 통치 개념, 또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가령 생명권력=신자유주의적 통치 같은 도식적 규정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지면의 한계상 더 상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이 책은 훨씬 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는 외국 독자들에게 얼마간 쓸모 있는 참고 도서가 될 수 있겠지만, 푸코에 대한 인식과 활용에 관해서도,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역사적 경험을 분석하는 데도 한국의 연구자들은 저자에게 배울 만한 바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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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2016-12-25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메리 크리스마스 , 선생님!

올 한 해도 좋은 글로 강연으로
제게 많은 생각거리와 고민거리를 던져수셨네요.
지면으로나마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더욱 좋은 성과 거두시길 바랍니다!

balmas 2016-12-28 19: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님.

댓글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감사! 2016-12-28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대안연구공동체에서 철학 강의를 듣는 학생입니다.
선생님이 강의 하신 스피노자 강의 화일을 오늘 복사해왔습니다.
선생님의 노고가 담긴 결과물인데 무료로 쓸려니 넘 죄송한 마음이 들어
이렇게나마 감사의 인사드리고자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almas 2016-12-28 19: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공부하시는 데 강의 파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