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최우영 납북자가족협의회 회장…아버지는 비전향 장기수
2006-06-26 11:33 | VIEW : 116

"진보, 더 이상 침묵하는 건 죄입니다"



이준규(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 2006년 6월 26일



지난 6월19일, 최우영 (납북자가족협의회 회장, 87년 납북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씨 딸)를 만났다. 인터넷신문 <레디앙>과 함께 기획한 이번 인터뷰(인터뷰기사 [원문보기])는 이미 레디앙에 기사화되었으며 많은 반향이 있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만을 정리한 부분이다. 기사는 레디앙의 윤재설기자가 작성했다.

- “동진호가 납북, 억류된 경위에 대해 먼저 말씀을 해주시죠.”

=“1987년 1월15일 텔레비전 속보를 통해 동진호가 납북되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정부로부터 ‘아버님이 인천에 모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할 것이다, 2월초에 아버님이 오실 것이다’라는 통보를 받았죠. 그러고 나서 며칠 있다가 ‘아버님 기자회견이 취소됐다’고, ‘남북한에 미묘한 뭔가가 있어서 오지 못하게 됐다, 최선을 다하겠다…’ 그런 공문이 왔어요.

사실 저는 북한을 몰랐어요. 아버지가 납치되셨지만 배를 타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매일 매일 돌아오는 분이 아니라 한달에 한번 정도 오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납치돼도 실감이 안 났어요. 언제나 그랫듯이 저희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사오시며 집으로 오실 것만 같았어요.

아버지가 납치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건 어머니가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납북되었음을 절감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1999년이었는데 북한 인권과 관련한 전반적인 실태조사가 모든 일간지에 실린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정치범 수용소…. 저는 정치범 수용소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를 못했어요. 짐승도 먹지 않는 그런 것을 먹는 곳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한국인 22명. 거기서 아버지 이름을 봤어요. 너무나 황당하고 믿을 수가 없었죠. 어떻게 믿어요.”

최우영 씨는 먼저 통일부에 전화를 했다. 통일부에서는 그 자료는 국가정보원에서 배포한 것이라며 자기들은 모른다고 했다. 국정원에 전화했더니 담당자는 만나지 않겠다, 자신이 누군지 밝힐 수 없다, 자료에 대해 알려줄 수 없다며 귀찮아했다.

“아버지가 어떤 상태인지, 인간 이하 삶을 살고 있는데 얼마나 힘드신지 알고 싶어 통일부 를 찾아갔죠. 갔더니 공무원이 87년도 자료를 그대로 읽고 있는 거예요. 똑같은 얘기 들었다고 얘기하니까 그 공무원은 충격을 받아서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그러더라고요.


"왜 탈출 못하냐고 원망했었는데…"

저는 아버지를 원망한 시절이 더 많았어요. 제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했고 목숨을 걸고 오시는 분인데 기다려도 오지 않으시는 거예요. ‘목숨을 걸고 탈출을 왜 못해’하고 원망했던 마음이 너무 죄송스럽고 아버지가 너무 불쌍한 거예요. 한달을 울었어요.”

이 얘기를 지금까지 수백 번 했을 테지만 이 대목에서 최씨의 목소리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뒤에 아버지 소식을 듣기 위해서 탈북자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탈북자들을 만나면서 놀라운 사실을 많이 듣게 됐죠. 그분들 중에 한분이 아버지를 봤는데 아버지가 한달에 한번 햇볕을 보러 나왔대요. 한달에 한번 햇볕을 보는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고, 살아있을 확률이 높다고 희망을 가지라는 거예요.

박종철 사건 잘 아실 거예요. 수지김 사건도 알려졌고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게 있다면 바로 저희 아버지 사건일 거예요. 87년 그날 박종철 사건이 있었고 김만철 씨 가족이 탈북해서 대만으로 갔었죠. 북한에서는 김만철 씨가 탈북이 아니라 배가 떠내려 간 거라고 하면서 송환을 요구했죠.”

당시 전두환 정권은 탈북해서 대만으로 갔던 김만철 씨 가족을 남한으로 데려왔다. 그러자 북한은 동진호를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고 김만철 씨 가족과 맞교환을 요구했고, 남한 정부가 이를 거절하자 북한은 동진호를 간첩선으로, 선장인 김순근 씨와 어로장인 최종석 씨를 간첩으로 몰았다.

- “아버지가 생존해 있다는 것을 정부를 통해서 들은 적은 없나요.”

= “정부를 통해서 들은 적은 없어요. 기사를 통해서 봤죠. 적어도 나에게는 국가는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댈 곳이 없는 거죠. 그때 그 기사를 못 봤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 “납북 후에 최종석 씨가 북한에서 비전향장기수로 몰렸었는데요.”

= “북한은 아버지를 비전향장기수로 주장하고 있어요. 북한에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비전향 장기수는 김순근씨와 아버지입니다. 우리정부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보내주고 그 전에 이인모 씨도 보내줬죠. 그런데 한국은 북한이 인정하고 있는 비전향장기수에 대해서도 송환을 얘기하지 못하고 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워 경제적 지원이 없으면 견디기 어렵고 이미 300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었지만, 이 부분만큼은 우리 정부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남한에서 학교 나왔고, 공무원으로 자리를 잡았고, 세금을 내고, 제 동생은 군대를 갔어요.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 건데 침묵 당하고 무시 당하고…. 자다가도 눈물이, 피눈물이 나요.”

- “납북자 가족들은 취직 등에서 불이익을 받아왔다고 들었는데 실제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 “국정원에서 연락이 와요. 이사 가면 찾아오고…. ‘납북자 가족’이란 말, 들어보셨어요? 납북자 가족이라고 지금도 밝히지 않아요. 전쟁 때 82,950명, 전쟁 후에 489명 납치가 됐어요. 한 집 건너 납북자와 관련이 다 있을텐데…. 언론인이 납치됐다는 얘기 들으셨어요? 방송국 피디가 납치됐어요. 학교 선생님이 납치됐어요. 한살짜리 애가 납치됐어요. 온가족이 납치가 됐고, 독일에서 공무원이 일하다 납치됐고, 학생들이 납치됐어요. 그런데 납북경위라든지 하나도 밝혀지지가 않았잖아요.”

- “납북자들 중에서 돌아오신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분들 같은 경우에는 정보기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는 등 돌아와서도 고통을 받고 있는데요.”

= “그렇죠. 그런데 저희가 그런 분들까지 못 챙겼어요. 저희는 피해자 단체이고 다들 직장들이 있고, 직업으로 활동하는 분이 없거든요. 갈 곳이 없으니까 저희한테 오시는데, 그런 분들을 지원할 수 있는 단체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분들은 고문을 많이 당해서 40세 이전에 많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남은 분들이라도 살아계실 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되었으면 해요”

- “납북자가 485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국정원에서 명단을 통보해주는 것은 아닌가요.”

= “생사확인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현재로선 이산가족 만날 때 한번 만나는 것이 전부입니다.”

비전향 장기수는 똑같은 간첩이었는데 북한에서는 가족들이 영웅대접을 받잖아요. 장기수들은 국내 30여 인권단체들 도움으로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 생활하는 모습을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보기도 하지만, 납북자 가족들은 생사확인조차 못하고 있지요.”

인터뷰 말미에 최씨는 “<송환>을 보면 우리가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반대하는 단체로 비쳐졌다”며 “그건 명백히 왜곡된 이미지”라고 말했다.

“납북자 가족들 만나보세요. 가난이 대물림되는 생계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어요.

납북자 가족들은 지난 6년간 (납북자 관련 특별)법제정을 요구해왔지만 아직도 법제정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 “김대중 정부 시절에 정부를 향해서 청원을 한다던가 그런 적은 없었는지요.”

= “방법을 몰랐어요. 최근에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님이 도와주셔서 하게 됐죠. 일찍 알았으면 그런 것부터 했었어야 했는데 아쉬워요”

- “2003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농성이 있었고 이듬해 4월 국가인권위가 ‘납북자가족 인권침해에 관한 실태 파악과 특별법 제정 권고안’을 발표했는데요. 그 이후 이종석 통일부 장관 청문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약속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 “역대 장관들 중에 특별법 제정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한 분입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 “납북인지, 월북인지 어떻게 아냐, 그런 질문을 받았던 경험을 얘기한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 “그땐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예를 들어 아이가 유괴를 당했어요. 유괴 납치범이, ‘가출해서 나한테 왔다’고 하면 그 얘길 누가 믿나요? 그런 사람한테 손을 잡고, 괜찮을 거라고, 곧 올 거라고, 고생이 얼마나 많냐고 하는 게 인지상정이잖아요. 저희들은 북한보다 남한의 벽이 더 두터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

그 고통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진보단체들의 무관심, 냉대, 의혹의 눈초리

최우영 씨는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금세 납북자 가족을 지원해줄 단체가 생길 것으로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한달만에 생겼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지원단체가 쉽게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평화, 인권, 통일과 관련된 단체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최씨에게 돌아온 것은 무관심과 냉대, 의혹의 눈초리뿐이었다.

= “더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진보진영에서는 어느 정도 대안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이제 납치 문제는 전세계의 인권문제가 되어 미국, 일본 뿐아니라 유럽의회에서도 납치문제의 심각성을 논의하고 있어요. 독일, 폴란드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이며 인터뷰 요청을 하고 있어요.

2003년에는 이미 영국의 목사님이 납북된 안승운 목사에 대한 생사확인을 북한에 제기한 사례도 있어요. 시대가 많이 변해 세계적으로 한국의 납북자 인권문제에 대해 행동을 시작하고 있는데 과연 납북된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네요. 언제까지 그렇게 팔짱만 끼고 있을런지요. 진정한 진보주의자는 납북자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켓 하나 들어주는 게 고마울 따름

물론 피해자와 제3자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보진영이 그동안 얼마나 납북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는가를 되묻게 하는 최씨의 토로는 많은 고민을 던져주고 있었다.

- “일본내 주류의 움직임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나 인권법 제정을 통해 압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듯 합니다. 한국에서도 시청 앞에서 30만이 모여 북한인권대회를 하면서 압박을 하는데 그게 과연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도주의적인 접근일텐데요. 2월에 적십자 회담에서 북한이 낮은 수준이지만 납북자 문제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산가족문제에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생사 확인 문제를 포함시켜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한다’는 것인데요. 가족들은 더디고 답답하게 느끼겠지만 그나마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남북화해협력 정책이나 대화채널 확보로 가능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지금부터 한국의 납북자 문제해결 방향은 중요한 실험대에 오르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납북자 가족들은 만나야겠고 만난 가족들은 송환을 포기하고 국민들 관심 속에서 사라져 버렸지요. 오는 28일 최계월 씨가 아들 김영남 씨를 만나러 가는데 분명, 북한은 ‘자기가 스스로 왔다. 북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찬양을 하리라 생각돼요. 이 상황에서 납북자 김영남 씨 가족이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받쳐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요. 그래서 단 1명이라도 송환되기를 기원합니다.”


“북한, 일본에는 잘 하면서 우리는 무시”

- “그게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일본 납치피해자 가족들은 그래서 만나지 말라고 하는데요.”

= “일본에서는 이미 ‘만나는 문제’가 아니에요. 일본에서는 귀국의 사례가 있었잖아요. 요코다 메구미 씨는 유골이 송환됐고요. 그런데 그게 가짜였고 한 분은 동물뼈가 섞여 있었다고 하고요. 우리는 돌아온 사례가 없어요. 송환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살아계시면 송환해야 되고, 돌아가셨으면 유해라도 모셔와야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북한은 일본의 납북자문제만큼 우리를 존중해줬으면 해요. 그것이 진정한 통일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납북자 문제는 북한 인권 문제 아니다"

우리는 북한 인권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이건 국내 인권의 문제예요. 우리도 북한인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납북자 문제는 국내문제예요.

- “납북자 문제가 북한 인권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북한인권 문제와 납북자 문제를 섞어서 얘기하면 진보는 얘기하기 꺼려지고 보수는 북한체제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납북자 문제는 남한 정부가 책임을 다 했는가라는 문제이고, 북한이 힘없는 민간인에게 가한 국가적 범죄행위로 성격을 규정해야 할 것입니다.”

최씨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두 시간 넘도록 길게 이어진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최우영 씨는 작은 소망을 밝혔다.

“저도 아름다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러기에는 납치피해자 가족만으로는 힘이 없습니다. 많은 국민들과 양심있는 지식인과 NGO활동가들의 역할을 기대해봅니다.”

다음 주면 김영남 씨 모자의 상봉이 이뤄질 것이고, 미국과 일본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국회에서는 납북자 관련 특별법 제정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그동안 납북자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침묵으로 일관해온 진보진영이 이제 최씨의 작은 소망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자세가 되어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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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당신은 그렇게 많은 부추가 필요한기요?"

만약에 참기름과 고춧가루와 올리브유와 생리대와 샴푸가 한꺼번에 떨어진다면?

상상만 해도 숨이 가빠진다.
시장에 가는 발걸음은 무겁기 짝이 없을 것이다.
평소 시장비가 5만 원이라면 10만 원을 써야 한다.
10만 원이라면 20만 원은 각오해야 한다.
거기다 소고기 국거리라도 큰맘먹고 한 근 사게 되면
계산대 앞에서 가슴이 두방망이질 칠 게 틀림없다.

그런데 만약 지갑 속에서 현금을 꺼내어 계산한다면
시장바구니는 절반 정도로 줄지 않을까?
카드로 지불하면 아무래도 자신이 쓴 돈의 구체적인 액수가 실감나지 않게 마련이다.

살 것이 많을 땐  대형마트가 편하다.
매대 사이를 누비며  메모해 온 물품을 집어 카트에 던질 때는 묘한 쾌감이 인다.
메모에는 분명 없는데 안 사면 손해일 것 같은 물품들도 있다.
1 플러스 1 상품이 그렇고, 사은품이 본품을 능가하는 물건도 있다.
사은품으로 주는 밀폐용기 같은 건 찾아보면 한 박스는 될 텐데 볼 때마다 욕심이 난다.
예전에는 동네에 슈퍼가 새로 문을 열면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통을 개점 선물로 주었다.
그 플라스틱 통이 탐나 온 식구를 동원해서 슈퍼에 가는 아줌마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주부가 되고 보니 플라스틱통의 용도는 어쩜 그리도 다양하고 쓸모가 있는지
나도 가능하면 아이들까지 줄 세워서 한 개 더 받고 싶다.
더구나 플라스틱은 분리수거가 가능하니 낡아서 버릴 때 따로 애쓸 필요가 없다.

요즘은 의도적으로 대형마트에 가지 않는다.
동네의 농협슈퍼를 이용한다.
달걀 한 줄이나 급히 필요한 두부, 맥주 큐팩 같은 건 단지 앞의 작은 가게에 가서 해결한다.
장사가 안 되어 술만 드시고 있는 아저씨를 보면 가슴이 무겁다.
채소나 나물 같은 건 되도록 노점을 이용하려고 한다.
땡볕에 시든 나물 바구니 앞에 쪼그리고 앉은 할머니들이 우리 동네엔 어쩜 그리 많은지......

지난주 겉절이 하려고 연하디연한 열무 한 보따리를 샀더니 그걸 봉지에 담으며 할머니,
"이 채소로 반찬 맛있게 해먹고 가족들 모두 건강하시오!"하는 인사를 해주시는 게 아닌가.
그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부추와 생강을 사러 농협슈퍼에 들렀더니 부추단이 너무 실하다.
'부침개 한 번 해먹고 겉절이에 좀 넣고 그래도 남겠네?'하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자니 조금 전 부추를 장바구니에 집어넣은 할머니가
말을 건넨다.

"당신은 그렇게 많은 부추가 필요한기요?"

"아뇨, 딱 절반이면 좋겠는데......"

"그러면 우리 절반 노눕시다. 부추는 꼭 남아서 버리게 되더라고."

화끈하신 할머니는 말이 끝나자마자  절반 딱 나눈 부추를 비닐봉지에 넣어 내게 내미셨다.
급히 지갑에서 동전을 찾아 반에 해당하는 돈을 드렸더니 안 받으시겠단다.
죄송해서 어쩌냐고 했더니 서로 좋은 일이란다.
참으로 쿨하고 멋진 할머니였다.
다음에 만나면 그때는 내가 부추든 뭐든 사겠다고 인사하고 할머니와 헤어졌다.

좀전 알라딘에 들어오니 노마트, 즉 마트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 기사를
라주미힌님이 퍼오셨다.
그날 두 분 할머니에 대해 페이퍼를 하나 써야겠다 생각하면서 집으로 왔는데 까먹고 있었다.
잊기 전에 급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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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법천자문 > 16강 진출에 실패할 경우 예상되는 언론 반응

백분토론 '위기의 한국축구, 해법은 무엇인가?'

추적60분 '총체적 부실 한국축구, 어디로 가고 있나?'

SBS 특별기획 16시간 릴레이 생방송 '축구를 살립시다'

조선일보 - 햇볕정책이 대표팀 사기 떨어뜨려

동아일보 - 선수 선발에 정권 실세 개입 의혹

중앙일보 - 정부의 대표팀 지원 허점 투성이, 국민 혈세 낭비

문화일보 - 정몽준 회장 '본선진출만도 대단한 성과' 선수단 격려

국민일보 - 박주영, 첼시에서 '러브콜'... 이적료 1000만달러 넘을 듯

스포츠서울 - '무전술, 한심한 용병술'로 일관한 아드보카트에 네티즌 비난 빗발쳐

스포츠조선 - '일부 선수들 경기 전날 나이트클럽에서 배회' 익명의 제보 파문

일간스포츠 - 대표팀 정신력 해이 심각, 태극마크에 자긍심 없어

신동아 - [본지 대특종] 대표팀 코치 H씨 6시간 격정 토로 '아드보카트는 사기꾼'

월간조선 - 편집장의 편지 '나약한 좌파 집권 10년의 결과, 새마을 정신으로 몽골기병의 투혼 되살려야'

여성중앙 - [본지 독점] 이동국 선수 부인 이수진씨 5시간 통곡 인터뷰 '동국씨가 뛰었더라면...'

국정브리핑 - 16강 한 두번 떨어졌다고 축구 역사가 바뀌지는 않는다

이계진 대변인 - 노무현 정권의 반미외교 때문에 국제사회 고립, 편파판정으로 이어져

본프레레 전감독 - 쌤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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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6-25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갑제의 노마디즘이 가장 웃기네요.ㅋ

waits 2006-06-25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구 얘기 본 것 중 젤 웃겨요. 이계진은 "한국 축구가 16강 진출에 좌절할 때까지 대체 노무현 대통령은 무얼 하고 있었는가!" 도 잊지 않을 것 같은데.. ㅎㅎ

balmas 2006-06-25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정말 웃기죠?
국정 브리핑도 만만찮습니다. ㅋ
달의눈물님 쎈스가 대단하신 듯 ... ^^;;

비로그인 2006-06-2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드컵에 대한 짧은 시

정한 축구 팬은

연하게 관람한다.

망없이.

 

ㅋㅋㅋ


balmas 2006-06-26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자꾸 때리다님 ...
 

 

 

대중문화시장인가? 투전판인가?
[김승수의 자본·권력·미디어] 2006 한국 문화산업의 빛과 그늘
2006년 06월 11일 (일) 23:14:37 김승수 교수

문화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영화, 방송, 게임, 출판 등 한국 10대 문화산업의 규모가 50조원이고, 종사자도 45만 명가량 된다고 한다. 인터넷, 휴대폰 등 40조원 규모의 정보통신서비스까지 합치면 전체 대중문화시장의 규모는 90조원쯤 된다.

이것이 대부분 내수용 서비스인 점을 고려하면 국민 1인당 18만 7500원을 부담한 셈이다. 대중문화산업은 진공청소기처럼 더 많은 돈을 빨아들이기 위해 무료방송은 유료방송으로 바꾸고, 새로운 매체와 서비스를 속속 시장에 내놓았다. 돈, 권력, 명예, 인기, 이런 것들이 대중문화시장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온갖 것들이 시장에 진입하여 더 많은 돈을 벌겠다고 하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이 모습은 일제치하인 1930년대에 금광을 찾겠다고 집 팔고 논 팔아 전국 곳곳을 헤매고, 땅을 파헤치는 것과 비슷하다.

   
  ▲ 대중문화산업의 주력 노동자라 할 수 있는 작가, 스탭, 프로그래머, 애니메이터들 대부분은 최저생활비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다. 사진은 지난 2003년 11월 범애니메이션업계가 국산 창작만화의 확대 편성을 요구하며 KBS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대중문화산업의 과잉 생산은 문화생산력주의와 허영이 바탕에 깔려있다. 국가 문화생산력(National Cultural Productivity)이란, 문화를 사적 소유와 거래 그리고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보고 투자함으로써 문화시장을 형성하고, 국내 총생산을 자극한다는 개념이다. 문화의 경제적 기능을 강조하는 문화생산력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규제가 고삐가 풀린 상태에서 문화와 자본의 결합은 문화시장을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아사리판'으로 변질시켰다.

돈 벌이 목적의 게임, 스포츠, 유료채널은 오래 전부터 공급 과잉이다. 다른 부문과 과잉 생산 추제가 뚜렷하다. 이런 문화 분야를 보면 경쟁, 이윤, 효율성, 마케팅과 같은 시장 논리만이 횡행할 뿐 우리 삶을 진정으로 윤택하게 만드는 것들은 보기도 어렵다. 대중문화시장은 규모의 경제에 얽매이고, 자기 잇속만 챙기다 보니 문화와는 동떨어진 것들이 대중문화라는 상표를 달고 국민 주머니를 터는 흉물스런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의 삶에 기본적인 탁아, 의료, 교육, 주택 문제를 해소하는 데 들어갈 재원이 태부족인 판에 대중문화시장까지 국민 경제를 잠식해 들어가니 안타까울 뿐이다.

사회와 국민에게 바른 정보, 더 다양한 문화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윤의 논리가 대중문화시장을 지배한다. 사회적으로 필수적이고, 유용한 서비스나 콘텐츠를 만들어도 돈이 안 되면 그만이다. 이렇게 대중문화시장은 정보와 문화를 교류하는 곳이 아니라 투전판으로 변질된 것이다. 간단히 말해, 한국대중문화시장은 사상의 자유시장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이곳은 투기의 자유시장이며, 독점의 횡포가 판치는 영역이며, 천박한 자본 검열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사람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격려하는 문화, 물건이나 자본 또는 권력이 사람을 앞서지 않도록 하는 가치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사회와 민족이 살아남는다. 이것이 문화 가치력이다. 세계 사람들은 미국 헐리웃의 문화 생산력은 경탄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문화 가치력에 대해서는 냉소한다.

지금 한국 문화산업의 상황도 그렇다. 몇 개 부자 기업과 호사스런 연예인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데 혈안인 대중문화시장은 국민에게 큰 부담이다. 대중문화시장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돈과 시간을 쓰는 기계에 불과하다. 대중문화산업의 주력 노동자라 할 수 있는 작가, 스탭, 프로그래머, 애니메이터들 대부분은 최저생활비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다. 이들은 문화산업 자본을 위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지만 정작 자기들 손에는 몇 푼 쥐지 못하고 소외를 당한다.

대중문화산업의 스타, 엘리트 중독은 중증이다.

그러다 보니 대중문화산업의 관심은 온통 국내외 스타나 행사에 쏠린다. 신문의 3단 기사, 방송 뉴스의 단신이면 족할 미국의 대중 스타 미쉘 위나 하인즈 워드 관련 소식이 한국 매체를 도배질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비롯해 우리 민족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가 산적하지만  방송사는 이를 외면하고, 월드컵 축구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이들은 3채널 동시에 같은 경기를 중계방송하면서 방송 시간을 물 쓰듯 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청자의 혼을 빼서라도 돈을 벌고야 말겠다는 심산이다. 월드컵이 끝나면 방송사마다 100억 원가량의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리한 행태에 대하여 국민의 불만이 폭발직전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을 못해서 쓰러진 경우도 있지만 과잉 생산을 하다가 쓰러지는 경우가 더 많다. 대중문화 시장도 과잉생산-과잉 투자의 위험이 보인다. 정부, 국회, 학계 그리고 시민단체는 대중문화시장의 과잉 성장과 투기화에 경각심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월드컵축구가 그렇고, 거기에 참여해 혹시 16강, 이참에 4강까지 하면서 시청자를 유혹하는 중계방송이 투기가 아니면 무엇인가? 영화산업이야말로 투전판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가? 대중문화시장은 공공성, 공익성, 문화주권 같은 것은 살아남기 어렵고, 경쟁과 이윤 그리고 효율성의 가치가 난무하다. 이것이 자본 독재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런 늪에서 만든 콘텐츠를 진정 문화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대중문화산업은 언제까지 자본의 노예를 자처하면서 선량한 국민의 주머니와 감성을 공격할 것인가? 또 언제쯤 대중문화시장에서 투기가 사라지고, 문화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대중문화자본의 도우미를 자처하는 국가는 언제 국민의 도우미가 될 것인가? 한국대중문화시장은 돈 많은 사람들의 투기판이 아니며, 연예인, 스포츠 스타의 놀이터도 아니다. 이곳은 문화를 교류하고 창달하는 사람의 공간이어야 한다. 대중문화시장은 돈도 필요하겠지만 더 시급한 것은 바른 정신, 올바른 가치의 복원이다. 학계도 특히 대중문화산업의 생산력주의에 편향하지 말고, 문화다운 문화, 사람에게 유용한 문화를 구현하는 문화가치론에도 적절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승수 교수(전북대·신문방송학)는 한양대 신문학과를 거쳐, 서울대 신문학과 석사와 영국 래스터 대학 언론학 박사과정을 마쳤고, KBS 책임연구원·방송개혁위원회 실행위원·EBS 시청자위원·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한국언론산업론(나남, 1995), 매체경제분석(커뮤니케이션북스, 1997), 디지털 제국주의(나남, 2000), 매체소유연구(언노련, 2002), 디지털방송의 정치경제학(언노련, 2003), 언론산업의 정치경제학(개마고원, 200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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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4 2006-06-25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문화시장이든 투전판이든 답은 대중에게 있습니다. 대중이 성숙하지 않고는 돈만 밝히지 말자고 주장 해도 소용 없습니다. 그런데 대중은 성숙할 수 있습니까?

balmas 2006-06-25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이 성숙할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그럴 수 있다고 답변하고 싶네요. ^^;
물론 '성숙'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 또 그 방법이 어떤 것이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요 ...

가넷 2006-06-25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을 무슨 봉으로 알고 있는건지...-_-; 가끔가다가 TV를 볼때는 짜증만-...

로드무비 2006-06-26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박과 파렴치로 정리되는.

balmas 2006-06-27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로님/ 예, 방송이 아무리 초등학생을 기준으로 삼는다지만, 때로는(사실은 상당히 자주) 너무 폭력적이죠. -_-;
로드무비님/ 그런데, 사실 또 사람들이 그런 데 길들여져 있고 그걸 즐기니까요.
바람구두님/ ㅋㅋ 그렇게 정색을 하고 비판하시니, 좀 뻘쭘하군요. ^^;
그런데 뭐 문화산업이 투기 자본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더군요. 지식인들의 경우도 그렇구요. 제 주위에 있는 몇몇 철학도들을 보면, 한국의 문화산업의 '발전'을 철학의 발전의 한 발판으로
간주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구요. ㅎㅎㅎ 아마 필자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요. ^^;
그러니 한국의 문화산업이 투기자본주의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은
나름대로 각성의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더욱이 이 글은 논문이라기보다는
신문기사니까, 섬세한 논의를 하기가 좀 어려웠겠죠.

balmas 2006-06-2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런가요?
 

맨날 퍼오기만 해서 넘 미안한데,

정기구독이라도 한번 해줄까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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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마트에서 길을 잃다

이마트 해고노동자이면서도 카트를 끌고 매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최옥화씨… 인구 15만명당 1개의 대형 할인점 시대, 지역 커뮤니티와 사회적 연대를 파괴

▣ 글·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최옥화(42)씨는 노동자다. 그는 또 소비자다.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최씨는 이마트에서 노동하고, 이마트에서 소비한다. 노동자 최씨는 매일 이마트 용인시 수지점 계산대 앞에 하루 7시간씩 서서 일하고, 소비자 최씨는 주말마다 중학교 2학년짜리 막내아들의 손을 잡고 이마트 진열대를 돌아다닌다.

노조 결성하게 만든 ‘하얀 장갑 사건’

2004년 12월21일 오전 이마트 수지점에서는 신세계 이마트 노조 창립식이 열렸다. 40대 주부 노동자들은 노조 깃발을 들었다. 그 중심에는 분회장인 최씨가 있었다. 그는 동료 캐셔(계산원) 노동자 23명을 이끌고 민주노총 경기일반노조 수지 이마트 분회를 조직했다.


평범한 주부 최옥화씨가 이마트 노동자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4남매 학원비만 각각 한 달에 35만원씩이에요. 학원비라도 벌려고 나갔지요.”

그가 보여준 2003년 8월 첫 월급 명세서에 찍힌 금액은 80만원(시간당 3850원)이 좀 넘었다. 하루 7시간 일하는 계약직 파트타임 노동자로 일한 대가다. 최씨는 재빨리 캐셔 일에 적응해갔다. ‘어서 오세요’ ‘봉투 필요하십니까’ ‘상품 다 올리셨습니까’ ‘얼마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로 이어지는 6대 용어를 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안면 근육도 키웠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있는 스피드 채점도 좋은 성적으로 통과했다.

“근무시간 중에 슈퍼바이저(SV)가 갑자기 빈 카운터로 불러요. 그 다음 초시계를 들고 속도 측정을 하지요. 20개의 물건을 갖다놓고 얼마나 빨리 바코드 센싱을 하는지 시험을 보는 겁니다.”

손이 빨라야 한다. 성적은 A·B·C등급으로 나눠 매겨지고, 각각 3만·2만·1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20대의 젊은 슈퍼바이저가 갑자기 불러 치르는 시험은 40대 아주머니에게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래도 “007 작전처럼 손님으로 위장해 계산대에 들어와 검사하는 것”보다 낫다.

그의 계산은 정확한 편이다.


그의 손에 하루 1500만원이 오가지만, 과부족되는 날보다 ‘빵내는’ 날이 훨씬 많다. 계산기에 찍힌 금액과 입금액이 다른 과부족 금액이 5천원 이상이면 사유서를 써야 한다. 1만원 이상이면 점장 결재를 받아야 한다. 캐셔들의 과부족 통계는 게시판에 붙여 공개된다.

최씨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계기는 ‘하얀 장갑 사건’이었다. 캐셔 노동자는 장갑을 껴서는 안 되고 맨손으로만 일해야 한다. 장갑을 끼면 소비자가 보기에 좋지 않고 때가 타 더러워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씨의 손은 상품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태그를 떼느라 갈라지고, 잔돈을 내주느라 돈독이 올랐다. 회사 쪽은 장갑을 끼고 근무하는 최씨를 나무랐다. 이 문제를 가지고 최씨가 민주노총을 찾아갔고, 결국 노조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거의 한 달 동안 일하지 못하고 점장과 서울에서 내려온 본사 간부들과 면담만 했어요. 간혹 일할 때는 가장 힘든 소량 계산대에만 보냈고요.”

2004년 12월21일 노조 창립 뒤, 무노조 경영을 굳건히 지켜온 ‘범삼성가’의 대응은 집요하고 공격적이었다. 노조원 23명 가운데 19명이 떨어져나갔고, 1명은 해고됐고, 3명이 남았다. 노조원과 갈등을 빚던 이마트 수지점장은 ‘대기발령’을 받았다. 인사위원회는 최씨 등 3명에게 세 달 정직을 통보했다. 이후 회사 복귀 명령과 근무, 다시 해고와 복직 투쟁이 이어졌다. 이마트 수지점은 지난해 7월5일 이들을 복직시켰다. 그리고 놀랍게도 복직 닷새 만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장을 보러 가도 보안요원들이 따라다녀

이마트 최초의 노조 설립 사건은 2000년 미국 월마트 노조 사건과 닮아 있다. 그때 월마트는 잭슨빌 점포 정육부 노동자 10명이 노조를 설립하자, 아예 부서를 해체하고 노조원들을 타 근무지로 전보 발령했다. 이마트와 월마트는 노동자의 희생을 대가로 한 소비자 지상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좀더 싼 가격과 티끌조차 없는 제왕적 편의를 위해서 비정규직은 ‘무결점 서비스’ 노동을 한다. 고객이 부당한 요구를 해도 화내면 안 된다. 고객이 불만을 제기하면 불려가 이유를 막론하고 잔소리를 듣거나 사유서를 써야 한다.


△ 최옥화씨는 이마트의 노동자이자 소비자이다. 그는 “이마트에서 번 돈보다 쓴 돈이 많았다”고 말한다.

6월7일 해고노동자 최씨는 기자와 함께 롯데마트 수지점에 쇼핑을 하러 갔다. 그는 “지난해 롯데마트가 생겨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정직을 당했던 직장인 이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그때마다 장을 보는 최씨 뒤로 무전기를 든 보안요원들이 따라다녔다. “이마트에서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마트를 다녔다.

최씨는 신도시에 사는 전형적인 ‘마트형 인간’이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대형 할인점에 가서 15만원어치 장을 봐온다. 여느 신도시의 주부처럼 식품에서부터 옷, 생활용품까지 모두 할인점에서 해결한다. 할인점에 갈 때는 자가용을 이용한다. 롯데마트는 집에서 2.5km 떨어져 있다.


한 번 갈 때마다 0.5ℓ의 휘발유를 소비한다. 그가 사는 아파트 앞 2층짜리 상가는 부동산 가게로 가득 차 있다. 근처엔 재래시장은 물론 변변한 슈퍼조차 없다. 할인점이 지구환경에도 안 좋고 과잉 소비를 유도하는 걸 알지만, 일상의 쳇바퀴를 바지런히 굴려야 하는 그로선 할인점 외의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롯데마트에 들어서자 ‘매일매일 최저가’라는 광고가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대형 할인점의 최저가 신기원은 노동비용을 통제한 데 힘입었다. 롯데쇼핑(롯데마트·백화점)에 고용돼 일하는 노동자는 1만6246명. 신세계는 1만1782명(이마트·백화점)이고, 홈플러스는 1만800명이다. 매장에 입점한 업체가 고용하는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수는 더욱 많아진다. 대형 할인점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70~80%가 비정규직이다. 구인·구직 포털 알바몬이 3~5월 대형 할인점 일자리 공고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각 업체에서 제시한 한 달 임금은 대부분 60만~100만원 수준으로 근로자의 월 평균임금 240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최씨는 롯데마트 2층에 전시된 분홍색 꽃무늬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4만5천원”이라는 말에 넥타이를 놓고 몇 번 뒤돌아보더니 1층으로 내려갔다. 최씨는 “보이지 않으면 안 사도 되는 건데…” 하면서 물건을 쉴 새 없이 집어들었다. 진라면 5입, 삼양라면 5입, CJ 물만두, 핫도그, 흙대파… 15분 만에 23개 품목으로 쇼핑카트가 메워졌다. 롯데카드로 10만1294원을 결제하니 505포인트가 적립됐다. 집에 오자마자 중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은 비닐봉투 속에 묻혀 있는 요구르트를 꺼내 먹었다.

그는 지난 5·31 지방선거 때 민주노동당 용인시의원 후보로 나갔다. ‘이마트 아줌마’가 큼지막하게 박힌 선거 홍보물에는 “아파트 건설로 재미를 본 업자들이 난개발로 만들어놓은 수지를 바꾸겠다”는 공약이 쓰여 있다. 최씨는 “시의원에 당선됐다면, 대형 할인점 규제 조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마트 아줌마를 지지해준 표는 1882표. 6.2%의 지지율이었다. 여태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가 없는 곳에서 혼자 선거운동을 벌인 것치곤 의미 있는 성과였다.

이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때

“묶음 단위로 구매해 남은 양은 쓰레기로 발생합니다. 일시 다량 구매로 그만큼 경제적 지출이 많습니다. 할인점으로 가는 길은 교통 혼잡, 대기오염, 에너지 낭비를 발생시킵니다.”


△ 경기 시회물류센터에서 상품 적재를 기다리는 차량들. 전국에서 구입된 상품은 물류센터에 모였다가 다시 전국으로 흩어진다.

친환경소비자단체인 녹색소비자연대가 1990년대 후반에 펴낸 캠페인 구호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단체는 할인점 출입을 줄이자는 운동을 폈다. 그러나 운동은 지속되지 못했다. 김진희 녹색소비자연대 실장은 “갈수록 편리함을 추구하며 할인점으로 향하는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젠 한국을 점령한 대형 할인점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야 할 단계”라고 주장했다.

대형 할인점이 이 땅에 처음 들어온 지 13년, 경북 경산에는 6월15일 317번째 마트가 문을 열었다. 어느새 한국은 이마트의 나라가 됐다. 이마트 체제가 확산시킨 소비자 지상주의의 화살은 언젠가 소비자 자신을 겨냥할지도 모른다. 윤리적 소비는 과연 달성 불가능한 습관일까. 대형마트 해고노동자이자 대형마트 소비자인 최옥화씨는 그 물음을 가슴에 품고 마트를 다닌다.


“신세계가 2억1천만원 준다고 했다”

금품 제공 폭로한 이마트 노조간부, 삼성가의 전통인가

대형 할인점에 노조는 적이다. 노조가 결성되면 최저 판매가를 지탱해주는 저임금을 잡아둘 수 없고, 노동쟁의로 매장 이미지가 타격받는다고 생각한다. 할인점 운영의 전형을 보여준 월마트가 1962년 설립 뒤 40년 이상 노조 설립을 막아온 것도 이 때문이다.

최옥화 경기일반노조 신세계 이마트 분회장은 6월7일 인터뷰에서 “신세계 쪽이 지난해 1월 노조를 탈퇴하고 사표를 쓰는 대가로 2억1천만원을 주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해 1월11일 삼성전자 직원 홍두하(43)씨가 폭로한 이래 두 번째 나온 범삼성가의 ‘금품 제공’ 주장이다.

당시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전자 수원공장 세탁기 개발실에서 근무하던 홍씨에게 노조 탈퇴와 사직을 조건으로 2억5천만원을 건넨 지급 확인서와 홍씨의 통장 사본을 공개했다. 홍씨는 이 자리에서 “2004년 9월 삼성전자의 한 차장이 노조를 탈퇴하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최옥화씨 등 3명이 금품 제안을 받은 것도 이즈음이다. 그는 “밤 9시쯤 수지점 남자 탈의실에서 신세계 본사의 한 과장이 내려와 ‘월급이라 생각하고 1~10월까지 1천만원씩 1억원을 주고, 이와 함께 2억원도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신세계 과장은 “일단 부산비치호텔로 가자” “좋은 일자리를 알아봐줄 수도 있다”는 말도 했다고 최씨는 증언했다. 이 제안을 듣고 최씨는 황당해하며 “그럼 50억원을 주라. 어려운 사람이라도 도와주게”라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최씨가 되레 금품을 요구했다는 말이 나와 항의했다고 최씨는 말했다.

얼마 뒤 삼성전자 홍두하씨 폭로사건이 언론에 터졌다. 신세계 쪽에서는 더 이상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이 흔들린 최씨는 추석 즈음 신세계 과장과 서울 삼성동에서 만났다고 털어놨다. “돈을 받고 나가겠다고 했어요. 다른 할인점에서도 취직이 안 될 테고…. 내가 사람들을 끌고 여기까지 왔으니 총대를 메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다행히 그는 다음날 바로 전화를 걸어 이 말을 취소했다. 민주노총에서 희생자구제기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한겨레21> 취재진은 신세계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홍보실을 통해 이야기하라”며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했다. 신세계 홍보실 관계자는 “최씨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일개 과장이 그런 제안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현재 최씨 등 3명은 신세계를 상대로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최씨 등에 대한 계약 해지는 부당 해고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신세계 관계자는 “이미 정직 3달을 받아 취업 규칙상 해직 사유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은 현재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린필드 캠페인을 아는가

25년 동안 경제적·환경적 이유로 대형마트와 싸워온 시민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그를 “월마트 제1의 적”이라고 일컬었다. 알 노먼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그린필드에서 월마트를 막아낸 전설적 인물로 통한다. 대형 할인점에 대항하는 지역사회 운동에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어떻게 월마트 반대운동에 뛰어들게 됐나.

=올해 14년째다. 내 고향인 매사추세츠주의 그린필드에 월마트가 지점을 내려 했던 1993년이다. 월마트는 공장용지를 상업용지로 바꿔 건설 공사를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월마트가 창출한 일자리만큼 고용이 사라지기 때문에 결국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주민 투표가 이뤄졌다. 주민들은 용도 변경에 반대하는 쪽을 선택했고, 월마트는 물러났다. 그린필드 캠페인은 세계적인 이야기가 됐다. 나는 그 캠페인을 주도한 사람이다.

미국에서 월마트 반대운동의 역사는 얼마나 됐나.

=지난 25년 동안 시민들은 대형마트에 싸워왔다. 경제적·환경적 이유가 있었다. 대형 할인점은 소도시와 마을의 고유한 지역색을 사라지게 했다. 더욱이 경제적인 혁신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단지 수십만 에이커의 땅을 비생산적인 땅으로 바꿔놨을 뿐이다. 월마트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움직임도 있다. 월마트 노동자들은 대부분 학생이거나 노인들이어서 조직화가 쉽지 않다. 하지만 물밑에서 월마트 노동자들을 ‘월마트노동자협회’로 조직화하는 움직임이 있다. 월마트는 노조 조직을 위한 어떤 활동도 금지하고, 적발되면 바로 해고한다. 캐나다에서는 노조 조직화를 허락하느니 점포를 폐쇄하기까지 한다.

월마트 반대운동의 성공 가능성은.

=그동안 300곳에서 할인점을 저지시켰다. 월마트는 최근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철수했다. 독일에서 점포를 줄이고 있다. 이것은 월마트가 모든 곳에서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월마트와치(http://walmartwatch.com)에 가면 월마트와 싸우고 있는 ‘배틀 마트’들이 소개돼 있다. ‘월마트 배틀 플랜(투쟁 계획)’을 보면 월마트와 싸우는 우리의 전략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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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4 2006-06-25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마트는 알바와 아줌마가 일군기업이죠. 앞으로 이마트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그런데 가정의 대부분의 수입이 학원으로 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전혀 생산적이지도 않고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지도 않는 학원이 날로 커지는게...쩝

balmas 2006-06-25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이마트를 별로 이용해보지 못해서 잘 몰랐는데,
이마트의 위세가 대단하네요.
학원으로 나가는 수입이 정말 많긴 합니다.
(사실 저도 그 돈으로 공부를 하긴 했지만서도 ... -_-a)

가넷 2006-06-2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이마트를 다녀왔는데.... 이것도 퍼가서 보겠습니다..~^^;

비로그인 2006-06-2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 님도 논술 수업을 하셨나 보네요...

저는 모 논술 학원에(나름대로 좌파인 척 하는) 250여만원을 퍼준 뼈 아픈 기억이 있어서
"논술 학원=도둑놈 집단"이란 판단이 있습죠...
학부모들의 애간장 태우면서 돈을 긁어들이는 기법이
대단하더군요...

물론 발마스 님 같은 분이 하면 갓 학부 졸업한 아르바이트 강사
하고는 차원이 다를 듯 하지만요...

balmas 2006-06-2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로님/ 예, 그러셈~
자꾸때리다님/ 꽤 오래 했죠. 한 6-7년 가량?
사실 논술 수업은 여러 가지 점에서 한계가 많죠.
특히 수능 끝나고 하는 집중 논술 강좌는 더 그렇습니다.
제가 볼 때 그나마 좋은 논술 강의는 그런 것 같아요.
문제 잘 설명해주고, 학생들이 글을 여러 편 직접 써보도록 지도해주고
학생들이 써온 글을 성실하게 첨삭해주고, 이 정도만 해주면
학원 논술 강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한 거라고 봅니다.
배경지식강좌네 어떻네 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과 현대 철학자들에 대한
개론적 지식들을 팔아먹는 강사들이나 학원들은 좀 문제가 있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