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이데올로기와 한판승부!





‘피할 수 없는, 조직의 명운을 건’ 민주노총의 총파업 선언…비정규직 법안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정규직의 ‘배부른 파업’은 없다. 민주노총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비정규직 싸움에 나선다. 총파업을 지휘하는 이수호 위원장의 인터뷰도 준비했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이번 총파업은 노동운동의 조직적 힘과 건강성을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11월14일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사진 / 김진수 기자)





“내 손에 최소한 50만표를 쥐어달라.”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11월26일로 예정된 비정규직 법안 관련 총파업을 앞두고 전국 사업장을 돌며 파업 찬반투표를 독려할 때 줄곧 이렇게 외쳤다. 민주노총이 그동안 대의원대회에서 통과시켰던 총파업을 전체 조합원(59만5천명)이 직접 참여하는 투표를 거쳐 결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찬반투표 결과 30만5천명이 참가해 20만7천명(67.9%)이 총파업에 동참하겠다고 찬성표를 던졌다.

비록 50만표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68%에 달한 총파업 찬성률은 ‘뜻밖의’ 높은 수치라는 게 노동계의 반응이다. 올 상반기 투쟁에 따른 조직적 피로감이 누적된데다 외환위기 이후 해마다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에 동원돼온 만큼 ‘파업 피로감’이 클 수밖에 없는데, 이를 감안할 때 찬성 20만표는 현장의 총파업 열기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민주노총 단위노조 가운데 자체 사업장 문제로 파업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노조가 수두룩하다”며 “이를 고려할 때 이번 투표 참가율과 찬성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노동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법안(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국회에 이미 제출돼 조만간 상임위원회(환경노동위원회)로 넘겨질 예정이다. 노동계는 정부가 △기간제 근로자를 3년 이내에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하고 △파견 대상 업무를 전면 자유화해 비정규직 확산을 조장하는 최악의 개악안을 강행하고 있다며 “비정규직 정부 법안 폐기 및 대화를 통한 새로운 법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노동부는 “법안은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고 남용을 규제하되 노동 유연성을 훼손하지 않는 데에 기본 방향을 두고 마련됐다”면서 노동계가 총파업으로 맞서더라도 연내에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법안이 상임위에 상정되는 순간, 정부가 법안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찬성’20만표가 말하는 것은…



민주노총이 사상 처음으로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찬반 여부를 묻고, 또 높은 찬성률이 나왔다는 건 이번 총파업이 ‘비정규직 법안 싸움’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민주노총은, 해마다 총파업 선언을 되풀이했지만 별다른 위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판판이 깨지고 말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금껏 총파업 이슈는 임단협 투쟁이거나 ‘일방적 구조조정 반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 총파업은 성격이 다르다. 정규직 대공장 노조의 이른바 ‘배부른 파업’이 아니라 조직 노동자들 스스로 비정규직 싸움에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수호 위원장은 “정부가 이번 개악 법안을 밀어붙인다면 민주노조 운동의 정통성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민주노총으로서는 어느 때보다 비장한 각오로 이번 싸움을 맞고 있다.

사실 민주노총으로서는 비정규직 법안 총파업을 대의원(870여명)한테 묻지 않고 60만 전체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치는 것이 모험이기도 했다. 이수호 위원장의 말마따나 총파업이 부결된다면 민주노조 운동은 정통성에서 일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는 현 노동운동에 대해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의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운동”이라고 늘 비판해왔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최근 “대기업 노조의 경우 노력에 비해 과도한 과실을 따먹고 있다”고 또다시 노동계를 자극하기도 했다. 결국 총파업이 부결되거나, 총파업에 돌입하더라도 동원부족으로 패배한다면 ‘정규직의 배부른 운동’이라는 정부 논리를 노동계가 입증해주는 셈이 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싸움은 ‘대기업 정규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면승부 성격도 띠고 있다.



정부 “여기서 노동계에 밀리면 끝장”



특히 이번 총파업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흐름 속에서 수세에 몰려 있는 노동운동의 조직적 힘이 과연 얼마나 살아 있는지, 또 노동운동이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는 ‘건강성’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정부는 “정규직 대공장 이기주의에 젖어 있는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위한 총파업을 한다고? 그래 어디 한번 보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단지 ‘구호’로만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민주노총은 “그렇다면 우리의 실력을 이번에 제대로 한번 보여주겠다. 정부의 생각이 오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겠다”고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주환 국장은 “정규직 노동자 20만명이 비정규직을 위해 총파업을 선언했다는 건, 그동안 말로만 비정규직 투쟁을 외쳐왔다는 비판을 받아온 정규직 노동조합이 무언가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 이번 총파업은 노-정 대립의 분수령이 돌 것으로 보인다. 올초 김대환 노동부 장관(왼쪽)과 이수호 민주노총위원장이 만나고 있다. (사진 / 박승화 기자)





물론 법안이 통과되면 노동시장이 비정규직 중심으로 재편돼 정규직도 비정규직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에 예상외로 높은 총파업 찬성률이 나왔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번 비정규직 법안을 막아내지 못하면 앞으로 노동시장에서 정규직의 씨가 마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노동운동 조직이 취약해질 뿐만 아니라 이수호 집행부가 ‘비정규직 확산을 저지하는 데 실패한 집행부’라는 역사적 평가를 짊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위기감도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싸움은 1998년 2월 노사정 대타협 당시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했던 상황과 비슷한 수준의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총파업이 노-정 대립의 분수령이 될 공산도 크다. 물리적 힘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노-정 관계가 파국에 이른다면 현 정부가 줄곧 표방해온 ‘사회적 대화’는 이제 노무현 정부 임기 내내 말도 꺼내기 어렵게 된다. 김유선 소장은 “비정규직 법안을 밀어붙인다면 정부가 대화 의지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법안 처리 강행은 노사정위원회 대화 틀조차 공식적으로 폐기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지금 상황은 1996년 말∼97년 초 노동법 날치기 처리 때의 총파업을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번 총파업 국면이 향후 노사 관계를 판가름짓는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정부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당정은 국가보안법 등 4대 법안뿐 아니라 비정규직 법안을 포함해 갈등을 겪고 있는 법안들을 연내에 한꺼번에 털어버리겠다는 구상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노동부쪽은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비정규직 법안은 그동안 충분히 논의된 사안이다. 재논의를 한다 해도 합의가 이뤄질 문제가 아니고, 손질해봤자 별로 달라질 건 없다. 내년부터는 노동법·제도 선진화 방안 등 다른 과제를 풀어야 한다”며 “총파업을 피해간다고 해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계 관계자는 “이번에 끝내지 못하면 비정규직 법안이 노-정 관계를 악화시킬 최대 이슈로 계속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도 피할 수 없는 싸움으로 보는 것 같다”며 “김대환 노동부 장관도 여기서 노동계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 대대적 가세, 판이 커진다



한편, 열린우리당에서는 노동계의 저항이 의외로 강한 만큼 연말 총파업 소나기 국면을 일단 피해가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환경노동위원회)은 “열린우리당 환노위 소속 의원들 사이에 이번 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을 꼭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며 “법안 내용도 더 토론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법안 처리가 연기되더라도 앞으로 국회가 열릴 때마다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긴장은 지속되겠지만, 열린우리당은 이럴 경우 노동계도 지쳐 파업 동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는 계산도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 11월22일 총파업을 앞두고 민주노총 지도부가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해 정부에 노-정교섭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 김진수 기자)





이번 총파업 국면이 정부와 이수호 집행부의 첫 대규모 정면대결이기도 하지만, 사회경제적으로 볼 때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제도’를 둘러싼 최초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각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철폐, 차별 해소 등을 놓고 산발적인 싸움이 계속됐지만 법과 제도라는 측면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정치적 쟁점’으로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법안을 “이미 노동시장에서 불법·탈법적으로 횡행해온 비정규직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합법화해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운동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까지 이번 싸움에 가세해 판이 커지고 있는 양상은 주목할 만하다. 양대노총·한국비정규노동센터·참여연대·한국여성단체연합·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103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비정규노동법 공동대책위원회’는 법안 철회를 촉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또 학계·법조계·예술단체·시민단체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그동안 기존 노동운동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해온 참여연대까지 비정규직 법안 투쟁을 사업의 전면에 배치하면서 연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참여연대쪽은 “비정규노동법 개악은 단순히 노동 문제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라, 소득 불평등과 경제 양극화 등 사회 불평등의 근본 문제”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총파업은 노동운동만의 고립된 싸움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주변부로 밀려난 절대 다수 노동인구의 삶의 조건을 결정하기 위한 ‘사회세력간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올 초 취임 당시 “내가 대화와 교섭을 중시하는 건 맞지만, 차근차근 준비해서 노무현 정부 임기 안에 신자유주의 시장 흐름에 맞서는 제대로 된 한판 싸움을 벌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총파업은 비정규직 법안이란 긴박한 변수로 인해 그 싸움이 생각보다 일찍 닥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노동계에서는 “피할 수 없고, 조직의 명운을 건 싸움”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과연 총파업에서 노동자들의 함성이 얼마나 크게 터져나올 수 있을까? 일부에서는 이번 총파업이 노동법 날치기로 촉발됐던 96년 말∼97년 초의 총파업처럼 커질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물론 당시에는 새벽 날치기라는 극적 사태가 있었고 정리해고 도입이라는 ‘충격적 이슈’가 있었지만 비정규직 급증은 이미 시장의 대세로 굳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정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당시 법외단체였던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거쳐 노동운동 세력으로서 실체와 지위를 인정받고 국민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만약 민주노총이 이번 비정규직 법안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조직적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이래저래 이번 싸움은 민주노총에게 하나의 도전이자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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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1-2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는 판이 크군요

balmas 2004-11-2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이 커질지는, 글쎄요 ...
 
 전출처 : nrim > [퍼온글] 브레송 사진집 구입하실 분, 서두르셔야겠습니다!

석달 전 사망소식을 알렸던 사진가 브레송을 기억하시는지요? 브레송을 아시는 분이라면 아마도 한번쯤 그의 사진집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누구인가>를 소장하고 싶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정가 80,000 원, 알라딘 할인가 68,000 원이라는 높은 가격 때문에 선뜻 구입하시지는 않았을텐데요, 만약 꼭 이 사진집을 갖고 싶으시다면 서두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방금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출판사에서 가지고 있는 재고가 채 100 부도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에는 이렇게 책이 떨어지면 곧 다시 찍기 때문에 별 걱정이 없는데요, 이 책의 경우는 전량 해외주문제작방식인데다, 거기에 필요한 비용이 워낙에나 크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곧바로 다시 찍어낼 수가 없다네요.

제 입장에서는 "아니 아니 그래도 책이 떨어지면 곧바로 다시 찍으셔야죠!"라고 말하고 싶긴 합니다만, 사실 이렇게 비싼 책의 경우는 출판사에서도 적지 않이 부담이 되리라는 생각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재고가 떨어지면 한동안은 구하기 어려울 거라는 소식, 미리 알려드립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렵다는데 이런 소식을 날리다니, 제가 곱지만은 않으실 거라 생각하지만 ^^:; 그래도 떨어지고 나면 서운하실 것 같아서요. 자, 그럼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봐 주세요! ^^  -- 알라딘 이예린(yerin@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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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1-2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다고 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모르겠군 ... ^^;;;

그런데, 정진국 씨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정진국 씨 번역을 믿기가 어려워서(중요한 책들을 골라서 번역해주는 건 고마운데, 번역은 그다지 성의가 없고 오역들도 여럿 보인다) 책을 안사고 있는데, 책 읽어본 분들 중에서 누가 번역이 어떤지 좀 이야기해주시면 좋겠군요.

瑚璉 2004-11-2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해서 보기는 했는데 번역의 질에 대해서 평할 만한 재간이 없는 관계로 결국 별 도움이 못되어 드리는군요 (-.-;).

balmas 2004-11-22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련님, 잘 읽히면 번역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별 막힘없이 잘 읽히던가요?

바람구두 2004-11-25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 책 저도 사서 읽었는데, 워낙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의 책을 읽는다는 일만으로도 흥분한 나머지 그런 부분엔 거의 주목하지 못했거든요. 사진 보는 재미에서만이라도 구입하심이 가한 줄 아뢰오.

balmas 2004-11-26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까요 ...

비싸기는 하지만.^^
 

 

 

이주노동자의 ‘못다 부른 悲歌’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한계상황에 몰렸을 때 찾는 마지막 피난처, 명동성당. 올 한해도 한달 남짓 남겨둔 명동성당은 1년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초췌한 모습과 이 곳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검문하는 경찰의 모습에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거동이 힘든 어머니가 얼마 전에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돈 벌러 나왔지만 이젠 고향으로 갈 차비마저 없다”고 말하는 방글라데시인 A씨의 눈은 벌겋게 충혈됐다.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볼 뿐이다. 임금체불과 잦은 폭행에 견디다 못해 일터를 뛰쳐나온 그는 현재 불법체류자 신세다.

임금체불에다 이유없는 인권차별을 겪는 외국인 노동자들 150여명이 강제출국을 피해 철야농성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15일. 현재 허름한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30명도 채 안된다. 대부분 단속에 걸려 추방당하거나 전망이 불투명한 농성투쟁에 지쳐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10개국 이상에서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이주 노동자는 줄잡아 40여만명. 지금 그들은 단순한 인종차별의 차원을 떠나 노동자로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다음주면 1년간의 농성을 마치고 해산식을 갖는다. 하지만 그들의 농성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동안 여러 사회단체들이 우리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명동성당 농성을 마친다고 해서 우리들의 목소리를 접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는 아노와르씨(34. 방글라데시). 한국에서의 생활을 8년째 맞고있는 그는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언급하며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하는 농성이다.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앞으로 전국에 흩어진 이주노동자들의 결의를 다져나갈 것이다”며 향후의 계획을 밝혔다.

이주노동자들의 권익보호와 관련, 윤혁(민주노총 서울경인지역 평등노동조합) 정책위원은 “고용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사업장을 이동할 자유조차 없다는 것. 이것이 지금 이주 노동자들이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의 어떤 부당한 요구에도 따를 수 밖에 없으며 그 곳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불법체류자의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1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조정회의에서 합동단속반을 구성한 뒤 연말까지 집중단속을 통해 불법 체류자를 전체 외국인노동자의 10% 수준인 4만-5만명으로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윤위원은 “불법체류자를 증가시키고 광범위하게 양산시킨 것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그릇된 정책에 기인한다. 산업연수생 제도라는 편법을 통해 노동비자도 발급하지 않고 월 평균 40-50만원대의 임금을 준다. 게다가 사업장 이동의 자유조차 없다. 불법체류자를 양산한 것은 정부의 폭압적이고 수탈적인 이주노동자 공급 시스템에 있다”며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노동권 보장을 호소했다. 10년동안 숨어다니며 한국의 제조업을 먹여 살린 그들에게 강제추방은 잔혹한 처사라는 주장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장기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 대하여 시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오래 전부터 제기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재선 성공 후 미국 내 불법 이민자들의 지위를 한시적으로 합법화하는 이민법 개혁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부시 대통령은 “외국인노동자들이 미국인이 채우지 못하는 일자리에서 일하기 위해 입국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며 “미국이민법을 더 합리적이고 인간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민 급증에 대한 보수층과 공화당 내의 반발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되나 부시 정권도 불법체류자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인정하고 있으며 불법체류자의 합법화에 주목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불법체류자의 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다. 각종 외국인 범죄의 급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그들이 가지는 경제적 효용은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불법체류자 중에는 이른바 ‘재팬 드림’을 꿈꾸고 건너간 한국인들이 많다. 출입국관리국의 단속에 적발되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된다. 불법체류자들이 외국인 범죄의 주범으로 매도되면서 단속도 강화되는 현실이지만 그들의 처지는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과는 상반된다.

얼마전 일본에서 5년간의 불법체류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한 박모씨(43)는 “오히려 한국인 고용주의 횡포가 더 심했다”며 “일본인 고용주는 일을 하는데 있어 장애가 없는 한 다른 일본인들과 똑같은 임금을 줬다. 불법체류자 신분을 떠나 노동력만 가지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경우 거의 인맥을 통해 일자리를 구했지만 사업장 이동이 자유로우며 노동의 대가는 충분히 받았다는 것이다.

명동성당에서 외치는 이주노동자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왔던지 일을 했으며 노동에 대한 대가를 달라는 것이다. 산업연수생 제도나 고용허가제등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오히려 무거운 족쇄로 변형돼 악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은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

악덕 고용주의 횡포에 의한 노동자의 설움이 비단 이주노동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현실에 명동성당으로 향한 계단은 더욱 가파르게 보인다.

〈미디어칸 고영득기자 ydko@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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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을산 > 우리의 의료, 구멍이 커지고 있다.

어제 오전, 국무회의에서
경제자유구역에 세워질 외국 병원에서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고
영리법인의 설립을 가능하게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의료관련 NGO들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재경부에 맞서서 그래도 김근태 장관이 버텨 줄 것이라는 미련이 아직 한가닥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상은 이미 지난주에 합의를 다 해놓고는 NGO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이미 합의가 되고도 1주일동안 합의가 안된 줄 알고 그 전에 막아보겠다고 
미친놈들처럼 인터넷 여기저기 영향을 미칠만한 게시판에 의견글을 올리자는 전문들, 언론에 관련 기사나 사설을 싣도록 힘쓰던 계획, 전국 순회 강연 등을 준비하던 것들..... 그냥 다 허공에 떠버렸다.

외국계 병원에서 환자 좀 볼거라고, 우리 나라 돈이 외국으로 흘러들어간다고 아우성 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체계가 조각나게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부 도입된 민간의료보험이 더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후회하는 것은,  게시판에 의견글을 올려달라는 메일이나 글들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
물론, 내 글 하나 더 올라갔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겠지만,
발 동동굴리던 중앙의 사람들과 달리
지방에 산다는 면죄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는 미안함이 앞서서이다.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대신 '공공의료 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 고 5년간 4조원을 들여 무엇무엇을 하겠다고 나열해 놓았다.
그런데, 그 대책이라는 것이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영리법인과 내국인 진료 허용이 되지 않았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다. 
게다가 5년간 4조?  이걸로 누구 코에 붙이게? 현재 의료보험 재정만 해도 1년에 15조인데! 

민간의료보험의 확대가 되기 전에 우선 공공의료보험을 안정시켜야 한다.
현재 의료비의 50%을 겨우겨우 보장하는 공공의료보험을 최소한 80%로 끌어올려놓고 민간의보를 열어야 한다. 

그런데도 복지부의 "대책"에는 공공의료보험의 강화에 대해서는 단 한줄도 나와 있지 않다.
공공의보의 확충에 대한 의지가 없고, 국민의 건강을 민간의보에 기댈 속샘인게다!!!

 

어제, 원래는 경제자유구역의 '예상되는'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모이려던 자리를 급히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모임으로 바꾼 자리에서,  
국회에서 법안의 심의 과정이 남아있으니 그때까지 무엇을 할지에 대해 의논했다.

'알려내자'. '투고하자'  등등의 이야기들이 또 나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후회를 덜하기 위해 일단 여기에라도 글을 남긴다. 

아래에 덧붙이는 글은 얼마전 한 회지에 올렸던 글이다.  이곳에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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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료, 구멍이 커지고 있다.

                                                      


사람 치고 아프지 않을 사람은 없고, 중환이 있을 경우에 우리 나라에서 부담이 되지 않을 가정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의료제도는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마음 놓고 살 것이냐 아니냐, 아플 때 마음놓고(?) 아플 것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1970년대 말에 의료보험이 도입된 이후, 비교적 최근까지 여러 가지 곡절을 거치면서 의료보장은 점점 확대되었고, 병원 문턱은 점점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에는 그런 추세가 반전 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대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요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 대상자들은 늘고 있고, 의료보험 가입자들의 의료보험료 미납 세대 또한 점차 늘고 있다. 경기가 좋지 않음을 나타내는 반증이다.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들은 본인 부담금 거의 없이 의료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외래 진료나 입원의 경우 비보험 항목, 즉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은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 우리나라 보험 체계상 의료비의 30-50%는 비보험이라 나타나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라 하더라도 실재로는 많은 병원비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른바 차상위 계층, 즉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는 아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은 더욱 사정이 어렵다.

불황이 지속됨에 따라서 의료보험료와 의료비가 가계에 부담이 되는 세대가 점차 늘고 있으며, 만약 의료보험료를 3개월 이상 미납하기라도 하면 의료보험 자격이 상실되어 실질적인 의료 이용이 거의 단절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오히려 기초생활 수급권자보다도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들 계층의 의료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와같이 가만히 있어도 어렵고 구멍이 점점 커지고 이는 우리의 의료안전망에 외부로부터 큰 충격이 닥쳐오고 있다.


요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켜면 수시로 나오는 ‘의료보험’ 광고. ‘다보장’이니 ‘1만 몇천가지 질환’이니 하며 우리의 주의를 끌고 있고, 뉴스마다 나오는 경제 특구나 시장 개방 이야기 중에 의료개방도 꼭 포함되어 있다.

광고에 나오는 의료보험은 엄밀하게 말하면 ‘민간 의료보험’으로, 기본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운용되는 의료보험이다. 한달에 2-3만원으로 보장을 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1인당 비용이고, ‘다보장’은 실제로는 다보장이 아니라 일반 의료보험이 커버하고 남는 부분을 일부 보조하는 구조일 뿐이다. 게다가 많은 경우 가입하기 전에 검진을 해서 ‘건강한’ 사람만, 즉 병을 앓을 가능성이 적은 사람만 골라서 뽑는다.

그러니, 어찌 이런 민간 의료보험이 싸다고 할 수 있으며, 다보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돈을 낼 여력이 안되고, 또 가입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아 거절당하는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돈을 낼 수 있고, 건강한 사람만 가입할 수 있는 보험에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도록 기댈 수 있는 것인가? 참으로 위험한 일인데, 이런 방향으로 착착 진행이 되어가고 있다.


경제특구나 의료시장 개방, 대덕 특구 문제도 그렇다.

원래 경제특구에서의 의료개방은 ‘경제특구의 외국인들의 의료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제안되었었다. 그러나 점차 경제특구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 허용, 이익금의 본국 송금, 영리의료법인 허용, 전면적인 민간의료보험 도입(국가 의료보험과 민간보험 중에서 택일하는 것) 등의 문제가 꼬리를 물고 제기되고 있다. 진보적인 보건의료단체들이 언뜻 생각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사안에 왜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일까?

작은 물꼬가 트이면 그것을 따라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정책을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나게 큰 물줄기가 밀고 들어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에 나열된 정책들이 도입이 되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돈 많이 내고 혜택이 많다는 민간의료보험으로 대거 이동할 것이고, 지금도 허술한 점이 많은 국가 의료보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사회적 압력(아쉬워하는 사람)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사실상 의료비가 많이 드는 환자 가족이나 노인들은 경제적 여력이 그다지 없는 경우가 많다. 소득에 비례해서 내는 의료보험료이기 때문에 이들이 내는 보험 재정은 적은 반면 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더 악화될 것이다.


영국에서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의 사망률을 비교해보았는데, 최하위 계층의 사망률이 최상위 계층의 네 배에 이른다는 통계 자료가 있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되고, 본인부담금이 거의 없는, 비교적 고른 의료 혜택을 받는 영국의 계층간 사망률의 차이가 이정도인데, 하물며 비보험 항목의 부담이 커서, 본인부담금의 벽에 막혀서, 의료보험료 낼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는 우리 나라의 사망률은 얼마나 크게 벌어질 것인가? 생각만해도 아찔한 일이다.


의료생협이 대안적인 모색으로 점차 관심을 많이 받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의 건강권을 위해, 아플 권리를 위해서, 의료 제도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함께 대안, 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려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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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0.토 이라크 학살 미국규탄 만민공동회에 함께 해요

 

이라크 학살 미국 규탄! 파병한국군 즉각 철군!
부시·블레어·노무현을 전범심판대로!
전쟁에 반대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높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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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11-1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 2004-11-18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

비발~* 2004-11-18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AZ에 실렸던 사진입니다. 이라크 부상자 사살.

balmas 2004-11-1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기자 앞에서 이렇게 할 정도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정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