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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2-02  

안녕하세요, balmas님~ 항아리 얘기하다 생각나서 재밌는 도자기들과 조각들 데리고 여기로 왔어요^^

요즘 작가들 사이에서 항아리나 도자기, 유리, 타일 같은 '세라믹' 재료가 인기에요. 이 세라믹은 작가 뿐 아니라 집안 화장실 바닥과 벽에 붙어 있는 타일, 채색 도자기류, 성당의 모자이크 등등 우리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매우 친숙한 재료죠. 이렇게 친숙한 세라믹도 그 역사는 파란만장했어요. 고대 페르시아 유적지나 그리스 주변 도시 국가들에서 아름다운 세라믹 타일이나 도기들이 발견되는 걸로 보아 세라믹은 적어도 3천년 이상을 인류와 동고동락해 온 재료네요. 물론 산업혁명 이전까지 세라믹을 사용할 수 있는 계층은 한정되어 있었을거에요. 왕족과 귀족의 궁전이나 이들이 사용했던 화려했던 도기들, 그리고 성당의 모자이크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이렇게 특수층이 사용하는 세라믹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실력 좋은 쟁이들과 이를 전수 받은 아들이나 제자였을 거구요.. 어쨌든 산업혁명으로 세라믹의 위상은 달라지게 되는데, 먼저 대량생산되는 싸구려 '상품'으로 전락되다 보니깐 고고한(?) 순수미술 울타리에 끼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구요(흑흑 ㅜ.ㅜ), 이후 20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그 울타리에 껴볼려고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결국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미국식 모더니즘 미술 강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이 강령을 따라야만 한 때 싸구려 '상품'으로 이용되었던 불명예를 깨끗이 씻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결국에는 상류층의 '장식'으로 전락(완전 초상집 분위기 ㅜㅜㅜㅜㅜ)

아무튼 세라믹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다가요, ㅎㅎㅎ(말해놓고 보니 넘 웃겨서요^^;) 60년대 이래 영미권 작가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질곡의 역사로부터 탈피를 시도하게 되요. 형식파괴나 장르혼성과 같은 이름으로요. 오늘날에도 세라믹은 작가나 비평가들에게 꾸준히 각광받는 재료랍니다. 불합리한 기성 사상이나 문화에 대항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려는 작가들이나 비평가들에게 안성맞춤~

   

데비 한(Debbie Han)이라는 재미교포 여성 작가의 <미의 조건들>이라는 세라믹 작업이에요. 모두 고려 시대 상감 청자 방식으로 구워졌다고 해요.ㅎㅎ 아깝다...www.debbiehan.net에 가면 최근 작업도 모두 볼 수 있어요.

 

그레이슨 페리(Grayson Perry)라는 영국 작가인데요. 좌측은 <빈곤(Poverty)>라는 제목의 도자기구요, 우측 사진 속 소녀가 바로 페리 오빠(?)에요-_-; 영국 테이트 갤러리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상 받을 때 저 복장으로 나타나셨대요^^; 제 보기에 현존하는 행동주의 성향의 작가들 중 정치적인 메시지를 작업으로 가장 잘 소화시켜 보여주는 작가에요. 하지만 안타까운 건, 페리가 한국 미술계에 처음 소개될 때 복장도착증 '환자'로 알려지는 바람에(그것도 딸을 둔 아버지한테요=_=;;) 그의 작품이 제시하는 '건강한' 메시지들이 많이 묻혀버렸다는 사실이죠.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전쟁, 난민, 기아, 질병이라는 문제에 대해 작업으로 꾸준히 발언하기가 미술판에서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다들 왜 그러시는지.. 페리 언니처럼 자신의 양심뿐 아니라 남의 양심을 위해서 작품을 제작하는 사람도 드문데..

gamma II  delta II

한국에서 4년전에 개인전을 가진 스티븐 곤타스키(Steven Gontarski)의 조각이에요. 왼쪽은 <감마(Gamma)>, 오른쪽은 <델타(Delta)>고, 둘 다 세라믹의 한 종류인 유리섬유로 제작된 거에요.(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대충 어떤 것인지는 감이 오지만, '감마'와 '델타'의  대해 알고 있는게 하나도 없네요. 그리스 알파벳 정도라는 것밖에는-_-*) 사진에선 잘 나타나지 않지만 실제로 저 조각들을 보면 유리섬유의 광택때문에 굉장히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느껴져요. 그런데 자꾸 보면 유리섬유의 고급스러움이란 것이 빛을 흡수하여 머금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반사시키기 때문에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제 친구 표현에 의하면 튜닝한 고급 외제차를 태양 아래서 보는 느낌^^). 이 친구가 1972년생인데, 미술계에 처음 데뷔했을 때가 1995년이니깐 23살부터 공식적으로 작가활동을 한거네요. 처음 데뷔할 때 한국-폴란드계 혼혈이고, 게다가 미남 게이여서 미술계 종사하는 몇몇 분들로부터 사랑을 독차지 했다는 후문이...믿거나 말거나.ㅋㅋ

이 무시무시하게 생긴 총이 달린 도자기들은 현재 쌈지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함경아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 사진입니다. 저도 아직 가보질 않았어요.  www.ssamziespace.com 3월9일까지 한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이 위엄있고 고풍스런 도자기들은 신미경씨가 모두 '비누'로 만든 것들이에요.ㅎㅎ 속으셨죠????? 안타깝게도 내일까지 전시네요. 전시 제목은 <트렌스레이션(translation)>. 삼청동에 가실 분들은 한 번 가보셔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balmas 2008-02-0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넘 흥미롭고 좋은 사진들이네요. 이것들도 페이퍼로 다시 올려놓을게요. 쫄바지님 감사. *^^*
 


자꾸때리다 2008-02-01  

저 이성적과 합리적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상당히 두리뭉실한 질문이긴 하지만.....

전에는 합리론이라 불리던 데카르트-라이프니츠-스피노자 전통을 이제는 이성론으로 분류하던데요...
 
 
balmas 2008-02-0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성적"과 "합리적"의 구별은 상당히 모호합니다. 가령 질문한 데카르트-스피노자-라이프니츠의 경우는 이성론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합리론이라고 할 수도 있죠. 제가 보기에 두 명칭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이야기를 하려면 좀 길어질 것 같아서 오늘은 그냥 이 정도로 해두겠습니다.

자꾸때리다 2008-02-01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종현 교수는 "합리주의(rationalism)"을 "이성주의"으로 부르자고 하시며 그 이유로 경험주의 역시 합리적인 사조이기 때문이다고 하시던데요.

balmas 2008-02-0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런 이야기도 일리가 있죠. 그건 결국 "합리성"과 "이성"에 차이를 두자는 이야기이고, 특히 독일 관념론 전통에 부합하는 생각이죠.
 


류우 2008-02-01  

balmas님 공부하다가 궁금한게 있는데 도저히 해소할 곳이 없어서 질문을 남깁니다~^^;

최근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는데, 발리바르의 경우 "지배이데올로기는 피지배계급의 상상들을 ~~~"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그것에 맞춰서 제 직업(?)답게 이것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적용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혼자서 머리를 싸매고 궁리를 해봤지만, 잘 모르겠더라구요.

특히나 프랑스 혁명을 비롯해서 유럽의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서 과연 이러한 도식화가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역사적으로 "혁명"이라는 특정한 정세들 속에서, 이 내용들을 읽어내고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계속해서 궁금증이 생기네요.

(이 중에서 특히나 프랑스 혁명에 대하여 많은 궁금증이 생기는군요. 박상현씨의 "마르크스주의와 정치 철학 및 사회학 비판" 中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와 정치철학 비판'에서 보면,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영국 혁명, 네덜란드 독립전쟁과 같은 것들이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통해 기존의 지배적 상징들의 체계와 의미를 재구성했다"(p.32 인용)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저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무슨 말인지 잘 와닿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혹시나 balmas님께 이러한 방식으로 해석되어 있는 역사서술이나 연구성과들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것이 있으면 가르쳐주십하하고 부탁을 드려보려고 하는데 괜찮나요?^^;

 

ps. 소개해주신 The Left라는 책은 정말 탐나는군요- 요즘 사회주의史를 다시 차근차근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핀란드 역으로"와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중 어떤 것들 사면 좀 더 책값도 아끼고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정 돈이 없으면 예전에 읽다가 책장에 박혀 있는 "현대 사회와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다시금 곰곰히 씹어가면서 읽을까라는 생각도;;) 분량과 가격은 부담되지만 왠지 제목부터도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게 된 것 같네요-ㅎ

ps2. 대학원에 합격하여 이제 학문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무지(無知)의 지(知) 때문에 괴롭기만 하군요-ㅎ(잡답입니다-ㅎ)

 
 
balmas 2008-02-02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리바르의 말을 역사적으로 이해한다면, 박상현 씨가 이야기한대로 어떤 상징 체계의 변혁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었던 "자유, 평등, 박애[형제애]" 같은 것들은 혁명 이후 지배적인 정치적 상징체계가 되죠. 그런데 만약 이것을 마르크스의 관점 그대로, 곧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다"라고 이해하면, "자유, 평등, 박애" 같은 것들은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계급 지배의 도구 및 피지배 계급에 대한 기만/조작이라는 함의를 포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자유, 평등, 박애" 같은 이념은 봉건 사회의 이데올로기보다는 나름대로 진보적이지만, 그래도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결국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알튀세르가 수행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조 작업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알튀세르의 개조가 가지는 중요한 함의 중 하나는 이데올로기는 단지 기만이나 조작이 아니라, 독자적인 물질적인 실존과 메커니즘을 지닌 적극적인(positve), 더 나아가 구성적인 층위라는 점입니다. 이는 이데올로기를 가상이나 신비화, 왜곡으로 보는 경우와 달리 이데올로기에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실존을 부여하게 되고, 사회 구조 및 계급의 구성과 재생산 및 개인들이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 편입되고 그 속에서 기능하는 방식에 대해 효과적인 설명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지만, 알튀세르도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다"라는 마르크스의 정식 그 자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의 애매성 중 하나인데,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을 역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와 진정한 정치(곧 프롤레타리아 혁명)를 계속 대립시키죠. 이 후자와 같은 경우 진정한 정치는 정의상 이데올로기 바깥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또 이데올로기를 초과하려는 경향을 지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데올로기의 물질성만을 계속 주장할 경우에는, 도대체 그가 말하는 이데올로기가 왜 이데올로기냐라는 물음, 다시 말해 (영원한 것, 물질적인 것으로서) 이데올로기와 정치, 곧 계급투쟁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부딪치게 되는데, 알튀세르의 관점이 기능주의에 빠져 있다는 주장은 이로부터 생겨나게 됩니다.

발리바르가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는 피지배 계급의 이념의 보편화다"라고 말한 것은 알튀세르의 개조 작업의 의의를 보존하면서도 이러한 애매성을 전위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배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상징체계를 피지배 계급의 이념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게 되면, 우선 마르크스와 같이 “자유, 평등, 박애” 같은 이념을 기만이나 조작, 왜곡으로 보지 않고 그것들이 지닌 적극적 함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할 수 수 있게 되죠. 왜냐하면 이러한 상징들은 지배 계급의 것이 아니라 피지배 계급, 대중들의 이상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왜곡이나 기만, 조작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이 상징들 자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징들을 제도적ㆍ계급적으로 전유하는 방식의 문제가 됩니다. 이는 역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상징들은 지배 계급의 정치를 비판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또 피지배 대중들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준거가 된다는 뜻이겠죠.

류우님이 질문한 문제로 되돌아간다면, 혁명 이후 유럽의 정치사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겠죠. 첫째는 상징들 사이의 갈등이라는 문제가 있겠죠. 곧 “자유, 평등, 박애”라는 상징들 자체는 처음부터 온전한 형태 그대로 정치의 이념으로 제시되었다기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이데올로기적ㆍ정치적 갈등과 대립을 겪으면서 정치의 상징들로 부각된 것이고, 또 그 이후에도 다른 상징들과의 지속적인 갈등 과정을 겪는 게 아닌가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자유”보다는 “질서”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테고(보수주의가 그렇겠죠), “평등”보다는 “능력”이나 “독특성/개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박애”의 남성 중심주의를 문제 삼는 경향도 있겠죠. 이는 정치 이데올로기들의 갈등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상징들이 제도적ㆍ계급적으로 전유되는 방식들이라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징들을 구현하는 다양한 제도적인 장치들의 역사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가령 프랑스 혁명 이후 선거 제도가 전개되고 변화되는 과정이라든가, 시민권이 변화 및 확장, 발전되어가는 과정, 또 교육 제도의 상이한 전개 과정들 등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두 가지의 역사는 서로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고, 또 사실 각각의 역사를 분석할 때 다른 쟁점들을 지속적으로 참조하는 것이 좀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분석을 제시해줄 수 있겠죠.

이 분야에 관해서는 많은 책들이 존재하지만, 우선 발리바르의 작업들을 체계적으로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죠. 그리고 혹시 불어를 할 줄 안다면, 첫 번째 역사에 관해서는 Florence Gauthier, Triomphe et mort du droit naturel en Révolution : 1789-1795-1802 같은 책이나 아니면 좀더 폭넓게는 Francois Chatelet, Histoire des ideologies, vol. 1-3 같은 책들이 도움이 되겠죠. 두 번째 경우에는 Robert Castel의 여러 저작들 및 Pierre Rosanvallon의 저작들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역사서는 아니지만, T. H. Marshall의 Citizenship and Social Class 같은 책도 이 분야의 고전으로 꼽을 수 있겠죠.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17세기 이래 서양의 정치사, 지성사, 법사학/법제사, 경제학설사 등등이 모두 이 문제들과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하자면 엄청 분야가 넓죠. 문제의식을 잘 가다듬어서 폭넓으면서 아주 구체적인 그런 연구를 한 번 해보세요. ㅎㅎㅎ
 


[해이] 2008-01-28  

지난번 세미나때 좋은 코멘트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는데요, 사회주의적 인간주의 말고

실천적 인간주의랑 현실적 인간주의는 같은 말인가요? 아님 다른 의미라면 어떤 차이가 있는 말인가요?

알튀세르는 이론적 반인간주의와 실천적 인간주의를 주장했다고 하는데 그럼 현실적 인간주의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balmas 2008-01-29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질문이네요. 사회주의적 인간주의와 현실적 인간주의, 실천적 인간주의는 사실 대체 가능한 표현들로 볼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적 인간주의"라는 말은 당시에 사회주의 국가들이나 서구의 일부 좌파 지식인들이 내세웠던 구호였다면, "현실적 인간주의"는 이러한 구호의 철학적, 이데올로기적 뿌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청년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사용된 표현이죠. 그리고 "실천적 인간주의"는 알튀세르가 앞의 두 가지 표현은 이론적인 가치를 갖지 않고 다만 실천적인, 이데올로기적인 효용을 갖는 말이라는 점을 명시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죠.

가령 {맑스를 위하여} 국역본 292쪽 주 1)에 보면 ""현실적 인간주의"의 개념은 ... 맑스의 청년기 저작으로부터 빌려온 개념이다"라는 지적을 볼 수 있죠. 또 298쪽에 보면 두 차례에 걸쳐 "현실적 또는 사회주의적 인간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죠.

[해이] 2008-01-29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세 가지가 모두 같은 건지는 지금 알았네요;;;;

그리고, 알랭 바디우의 [들뢰즈-존재의 함성] 번역이 어떤지 알 수 있을까요? 이번에 나온 [사도 바울] 도 번역이 어떤지요...? 이종영씨가 번역했던 [윤리학]이나 [철학을 위한 선언] [조건들] 은 믿을만 하지만 나머지 역자들은 다 처음 듣는 사람들이라;;;;

balmas 2008-01-29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뢰즈-존재의 함성] 번역은 이종영 씨의 [윤리학] 번역보다 훨씬 낫죠. [윤리학]이야 뭐 문제가 좀 있는 번역이죠.
[사도 바울]은 번역이 나온 줄도 몰랐습니다. ;;;

[해이] 2008-01-30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정말인가요...?;;;; 역시 영어판을 사서 대조해 보는게 좋겠죠?

balmas 2008-01-3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도 바울] 같은 경우는 조금 있으면 다른 분들이 서평을 올리지 않겠어요? 좀 기다려보시죠. 당장 읽어야 할 게 아니라면 ...
 


rememberingLenin 2008-01-26  

아, 궁금한 게 있는데요.

<에코그라피>가 품절되었더군요.

재판이 안 나올까요? 안 나오면 제본해야 겠지만

가능하면 구입하고 싶어서...

그리고 데리다 책의 영역본들은 번역이 어떤 지 조금 궁금하네요.

에코그라피가 너무 흥미로워서 데리다의 다른 책들을

더 읽어보려고 하는데...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같은 거요.

 
 
balmas 2008-01-26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침 잘 지적해주셨네요. 그렇지 않아도 민음사에 [에코그라피]를 다시 출간할 생각이 있는지, 없으면
판권을 다시 얻어서 다른 출판사에서 내겠다고 이야기하려던 참인데, 다른 일들이 밀려서 자꾸 깜빡깜빡 잊어버리곤
한답니다. [에코그라피]는 데리다의 후기 사상에 대한 제일 좋은 입문서일 뿐더러 그 자체로도 아주 흥미로운
책이죠. 다음 주 중에는 꼭 민음사에 알아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ㅎㅎㅎ


그리고 데리다의 영역본들은 대개 번역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간혹 사소한 오역이나 누락 등이 엿보이긴 해도
다른 사상가들의 번역과 비교해도 더 나은 편에 속하죠. 주로 데리다의 친구나 제자들이 많이 번역하다 보니까
번역의 질이 더 좋은 것 같더라구요. 그 점에서도 데리다는 운이 아주 좋은 편에 속합니다.
우리나라는 정반대지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