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우 2008-02-01  

balmas님 공부하다가 궁금한게 있는데 도저히 해소할 곳이 없어서 질문을 남깁니다~^^;

최근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는데, 발리바르의 경우 "지배이데올로기는 피지배계급의 상상들을 ~~~"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그것에 맞춰서 제 직업(?)답게 이것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적용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혼자서 머리를 싸매고 궁리를 해봤지만, 잘 모르겠더라구요.

특히나 프랑스 혁명을 비롯해서 유럽의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서 과연 이러한 도식화가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역사적으로 "혁명"이라는 특정한 정세들 속에서, 이 내용들을 읽어내고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계속해서 궁금증이 생기네요.

(이 중에서 특히나 프랑스 혁명에 대하여 많은 궁금증이 생기는군요. 박상현씨의 "마르크스주의와 정치 철학 및 사회학 비판" 中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와 정치철학 비판'에서 보면,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영국 혁명, 네덜란드 독립전쟁과 같은 것들이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통해 기존의 지배적 상징들의 체계와 의미를 재구성했다"(p.32 인용)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저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무슨 말인지 잘 와닿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혹시나 balmas님께 이러한 방식으로 해석되어 있는 역사서술이나 연구성과들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것이 있으면 가르쳐주십하하고 부탁을 드려보려고 하는데 괜찮나요?^^;

 

ps. 소개해주신 The Left라는 책은 정말 탐나는군요- 요즘 사회주의史를 다시 차근차근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핀란드 역으로"와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중 어떤 것들 사면 좀 더 책값도 아끼고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정 돈이 없으면 예전에 읽다가 책장에 박혀 있는 "현대 사회와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다시금 곰곰히 씹어가면서 읽을까라는 생각도;;) 분량과 가격은 부담되지만 왠지 제목부터도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게 된 것 같네요-ㅎ

ps2. 대학원에 합격하여 이제 학문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무지(無知)의 지(知) 때문에 괴롭기만 하군요-ㅎ(잡답입니다-ㅎ)

 
 
balmas 2008-02-02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리바르의 말을 역사적으로 이해한다면, 박상현 씨가 이야기한대로 어떤 상징 체계의 변혁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었던 "자유, 평등, 박애[형제애]" 같은 것들은 혁명 이후 지배적인 정치적 상징체계가 되죠. 그런데 만약 이것을 마르크스의 관점 그대로, 곧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다"라고 이해하면, "자유, 평등, 박애" 같은 것들은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계급 지배의 도구 및 피지배 계급에 대한 기만/조작이라는 함의를 포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자유, 평등, 박애" 같은 이념은 봉건 사회의 이데올로기보다는 나름대로 진보적이지만, 그래도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결국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알튀세르가 수행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조 작업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알튀세르의 개조가 가지는 중요한 함의 중 하나는 이데올로기는 단지 기만이나 조작이 아니라, 독자적인 물질적인 실존과 메커니즘을 지닌 적극적인(positve), 더 나아가 구성적인 층위라는 점입니다. 이는 이데올로기를 가상이나 신비화, 왜곡으로 보는 경우와 달리 이데올로기에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실존을 부여하게 되고, 사회 구조 및 계급의 구성과 재생산 및 개인들이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 편입되고 그 속에서 기능하는 방식에 대해 효과적인 설명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지만, 알튀세르도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다"라는 마르크스의 정식 그 자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의 애매성 중 하나인데,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을 역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와 진정한 정치(곧 프롤레타리아 혁명)를 계속 대립시키죠. 이 후자와 같은 경우 진정한 정치는 정의상 이데올로기 바깥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또 이데올로기를 초과하려는 경향을 지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데올로기의 물질성만을 계속 주장할 경우에는, 도대체 그가 말하는 이데올로기가 왜 이데올로기냐라는 물음, 다시 말해 (영원한 것, 물질적인 것으로서) 이데올로기와 정치, 곧 계급투쟁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부딪치게 되는데, 알튀세르의 관점이 기능주의에 빠져 있다는 주장은 이로부터 생겨나게 됩니다.

발리바르가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는 피지배 계급의 이념의 보편화다"라고 말한 것은 알튀세르의 개조 작업의 의의를 보존하면서도 이러한 애매성을 전위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배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상징체계를 피지배 계급의 이념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게 되면, 우선 마르크스와 같이 “자유, 평등, 박애” 같은 이념을 기만이나 조작, 왜곡으로 보지 않고 그것들이 지닌 적극적 함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할 수 수 있게 되죠. 왜냐하면 이러한 상징들은 지배 계급의 것이 아니라 피지배 계급, 대중들의 이상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왜곡이나 기만, 조작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이 상징들 자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징들을 제도적ㆍ계급적으로 전유하는 방식의 문제가 됩니다. 이는 역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상징들은 지배 계급의 정치를 비판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또 피지배 대중들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준거가 된다는 뜻이겠죠.

류우님이 질문한 문제로 되돌아간다면, 혁명 이후 유럽의 정치사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겠죠. 첫째는 상징들 사이의 갈등이라는 문제가 있겠죠. 곧 “자유, 평등, 박애”라는 상징들 자체는 처음부터 온전한 형태 그대로 정치의 이념으로 제시되었다기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이데올로기적ㆍ정치적 갈등과 대립을 겪으면서 정치의 상징들로 부각된 것이고, 또 그 이후에도 다른 상징들과의 지속적인 갈등 과정을 겪는 게 아닌가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자유”보다는 “질서”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테고(보수주의가 그렇겠죠), “평등”보다는 “능력”이나 “독특성/개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박애”의 남성 중심주의를 문제 삼는 경향도 있겠죠. 이는 정치 이데올로기들의 갈등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상징들이 제도적ㆍ계급적으로 전유되는 방식들이라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징들을 구현하는 다양한 제도적인 장치들의 역사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가령 프랑스 혁명 이후 선거 제도가 전개되고 변화되는 과정이라든가, 시민권이 변화 및 확장, 발전되어가는 과정, 또 교육 제도의 상이한 전개 과정들 등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두 가지의 역사는 서로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고, 또 사실 각각의 역사를 분석할 때 다른 쟁점들을 지속적으로 참조하는 것이 좀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분석을 제시해줄 수 있겠죠.

이 분야에 관해서는 많은 책들이 존재하지만, 우선 발리바르의 작업들을 체계적으로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죠. 그리고 혹시 불어를 할 줄 안다면, 첫 번째 역사에 관해서는 Florence Gauthier, Triomphe et mort du droit naturel en Révolution : 1789-1795-1802 같은 책이나 아니면 좀더 폭넓게는 Francois Chatelet, Histoire des ideologies, vol. 1-3 같은 책들이 도움이 되겠죠. 두 번째 경우에는 Robert Castel의 여러 저작들 및 Pierre Rosanvallon의 저작들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역사서는 아니지만, T. H. Marshall의 Citizenship and Social Class 같은 책도 이 분야의 고전으로 꼽을 수 있겠죠.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17세기 이래 서양의 정치사, 지성사, 법사학/법제사, 경제학설사 등등이 모두 이 문제들과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하자면 엄청 분야가 넓죠. 문제의식을 잘 가다듬어서 폭넓으면서 아주 구체적인 그런 연구를 한 번 해보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