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2014 한겨레 기획연재 "다시 변혁을 꿈꾸다-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마지막 편인 에티엔 발리바르에 관한 글입니다. 


글 가운데 "자유와 평등, 박애"는 "자유와 평등, 형제애"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네요.


어제 역사학자 한 분이 지적을 해주셨는데, 그렇게 고쳐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동안 계속 연재를 읽어주고 여러 가지 조언을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올 1년 동안 잘 보충하고 다듬어서 내년에는 책으로 출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81999.html








댓글(6)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레뽀 2015-03-1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수고하셨습니다

balmas 2015-03-14 23:23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해피 바이러스 2015-03-1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빨리 보고 싶어요~~~
드디어 선생님 단독저서도 볼 수 있는 건가요!!!

진태원 2015-03-19 12:2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제가 답글이 늦었네요. 예, 가급적 빨리 책이 출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관심 갖고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cobomi 2015-05-16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주로 기다리며 읽었던 기억이 나요.
도움이 되었고, 따로 보관해서 이따금 다시 봅니다.
저처럼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는 윤곽이나 흐름을 살핀 연재글을 보면서 흥미로웠고,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쉽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책도 기대되요!

balmas 2015-05-16 20:45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연재 내용 잘 보충해서 더 좋은 책으로 내겠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바쁘다보니 26회 원고를 아직도 올리지 못했네요. 


26회는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자크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론을 다뤘습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79969.html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any Thanks 2015-03-13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한겨례 마지막 연재 `발라바르` 편 드디어 읽었습니다.
장장 1년간의 연재, 너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이야 이루 말 할 수없이 고생하셨겠지만,
그 노고 덕분에 전 20세기 사상의 윤곽을 희미하게나마 그릴 수 있게 됐습니다.
앞으로 그 희마한 윤곽선을 더욱 또렷하게 만드는 것은 제가 하기 나름이겠지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젠 조금은 짐을 내려놓으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balmas 2015-03-13 11: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그동안 죽 연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어주고 조언해주는 분들 덕분에 무사히 연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2014 한겨레 기획연재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25번째 글입니다.

 

이번에는 아일랜드 출신의 정치철학자 필립 페팃의 공화주의론을 다루었습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77106.html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차아인 2015-02-0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강명관 씨의 시원한 한마디를 적어 봅니다.

△‘민족’, ‘개인’, ‘주체’, ‘자아’ 등이 좁은 의미의 ‘모던’으로 정리되기보다는 ‘복수의 근대성’처럼 폭넓게 봤을 때 서구적 의미와 달리, 다양한 모더니티의 이름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서구적 흔적을 모두 폐기할 수는 없지 않나.

(기자의 질문)


꼭 ‘근대’를 찾아야만 하는가. 그것을 찾지 않으면 역사나 문학사 연구가 안되나? 왜 이렇게 근대에 골몰하는가. 한국사의 연구가 시작된 이래 그 만큼 ‘근대’를 찾았으면 이제 식상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복수의 근대’, ‘다양한 모더니티’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근대’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 해도, 그것은 이미 서구의 근대를 보편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876년 개항 이전에는 서구의 근대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후기 역사에서 근대적인 것을 찾는 것은 망발이다. 우리가 경험한 근대는 1876년 개항 이후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된 근대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이후 1세기 이상의 장구한 시간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를 근대화했던 것이다. 나로서는 이런 시각에서 1876년 이후 강제로 주입된 근대 밖에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강명관 씨의 대답)


내가 보기에는 우문현답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복수의 근대성˝ 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구사를 주장하는 그레고리 벤틀리나 국방대학교의 홍태영 같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주장하거나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차크라바르티도 자기들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그의 문제의식을 왜곡하고 있다.

차크라바르티의 문제의식은 오히려 강명관에 가깝다.

왜냐고? 차크라바르티는 ˝근대˝를 <반식민적인> 감사의 정신으로만 얘기할 수 있다고 반어적으로 비꼬면서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아인 2015-02-06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화주의는 국민이 주권을 갖는 것을 가리킨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귀족과 평민이 서로 이른바 평화롭게 권력을 나눠 갖는 것.)

민주주의는 인민들 간에 평등한 관계 즉 권력이 없는 관계를 말한다.

권력이 없으므로 지배받는 자도 지배하는 자도 없다.

서기 1871년의 프랑스 파리에서는 공화주의가 민주주의를 박살내기도 했다. (파리 코뮌)

차아인 2015-02-06 18:5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그러고 보니 나폴레옹 1세나 나폴레옹 3세도 공화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승만이나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과 노태우도 굳이 말하자면 공화주의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

공화주의적 독재자!

차아인 2015-02-06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화주의를 민주주의와 혼동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지만 공화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다.

흥미로운 것은 공화주의는 국가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데 민주주의는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마 발마스 님은 다르게 얘기하실 것이다.

공화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공화주의를 너무 좋아하지 말기를 바란다.

차아인 2015-02-06 18:5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내가 발마스 님에게 기대하는 것은 발마스 님이 기존의 번역본을 욕하면서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

<자본을 먹자> 번역본이다.

그래! 前 大統領 이명박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을 많이 먹었지!

차아인 2015-02-06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5회. 필립 페팃-공화주의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나l2014 한겨레 기획연재


(나의 대답)


아니다! (공화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한겨레는 ˝순한글주의˝라는 망상에서 벗어나라!

... 2015-03-0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4년 1월에 시작한 연재가 이제 하나의 연재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힘내시고...
저에게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책, 기다립니다...감사합니다_ _)


balmas 2015-03-09 20:42   좋아요 0 | URL
예 맞습니다. 오늘 마지막 발리바르 원고를 신문사로 보냈습니다.^^ 오랫동안 연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약간 시간이 걸리겠지만, 빠른 시간 내에 책으로 정리해서 출간하도록 하겠습니다.
 

2014 한겨레신문 기획연재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24회 안토니오 네그리 편입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74872.html


댓글(3)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차아인 2015-02-02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발마스 님이 쓰신 유럽의 지방화에 대한 서평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덤으로 안토니오 네그리에 대해 한마디)



˝反植民的 感謝의 精神으로만 그것의 地方化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근대성을 유럽적인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탈유럽적인 것으로도 볼 것인가? 그런 차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며

동시에 유럽을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그것을 선물처럼 ˝수용˝할 것인가 하는 차원에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차크라바르티가 말했듯이 ˝불가결하면서도 부적합하다˝ 는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보편성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결코 보편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지요.


발마스 님이나 안토니오 네그리는 보편성이라는 ˝와인˝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차크라바르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발마스 님의 그러한 생각이나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 개념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발마스 님의 서평을 읽어 보니 제가 보기에는 엉뚱하게 차크라바르티를 소개하고 있더군요.

차크라바르티의 주장은 ˝반식민적˝ 감사의 정신으로만 근대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초점은 반식민적인 것인데 발마스 님이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를 읽는 방식은 저로서는 납득하기 힘들군요.

발마스 님의 방식대로 읽으면 그것은 오히려 <유럽을 중심화하기>가 아닐까요?


차아인 2015-02-02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차크라바르티의 (˝反植民的 感謝의 精神으로만 그것의 地方化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말은 조롱하고 비꼬는 反語法인 것이지요.

아무래도 그 말이 反語法이 아니라고 이해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차아인 2015-02-02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차크라바르티에 의하면 역사주의는 어떤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하나의 통일체이자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관념입니다.

그는 그 역사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재(말을 하고 있는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지금˝)를 <환원불가능하게 하나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 개념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장소˝를 무시하거나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 다중 개념은 홉스봄이나 톰슨이 말하는 단일하고 통일적인 계급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거주하는 ˝장소˝를 간과하는 ˝역사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 개념 자체가 역사주의에 사로 잡혀 있으므로

그것은 유럽중심주의에 갇혀 있는 또는 유럽중심주의적인 개념인 것입니다.

 

2014 한겨레 기획연재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23회차 원고입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72757.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